Raising my Fiancè with Money RAW novel - Chapter (59)
“간만에 보네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백작부인.”
“좀 전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왔군요.”
고개를 끄덕인 카르한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비올레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대답해주었다.
“일리아는 아침 일찍 외출했어요.”
카르한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축 처진 어깨를 본 비올레는 웃음을 머금은 채 이유를 말해주었다.
“온천 사업 건으로 한창 바쁠 때거든요. 그나저나 할 말이 있다니, 걸으면서 이야기할까요?”
카르한과 비올레는 후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환한 햇살이 사방을 밝히고,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카르한은 비올레를 찾아온 목적을 말해주었다.
“오늘 검술대회 신청서를 냈습니다.”
느긋하던 비올레의 눈빛이 돌변했다.
“당장 특별 훈련에 들어가야겠군요.”
우승은 당연히 자신의 제자가 차지해야 한다며 비올레가 중얼거렸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제자 중 한 명인 프란체는 귀족이 아니어서 참가할 수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카르한이 자신 없는 얼굴로 말했다.
“쟁쟁한 실력자들만 모인 것 같았습니다. 다들 자기가 우승할 거라 확신하더군요.”
“걱정하지 말아요. 소공자를 누가 가르쳤죠?”
“백작부인이십니다.”
“그럼 우승해야지요.”
무척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카르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카르한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했다.
어느새 두 사람은 저택 뒤쪽에 위치한 호숫가에 도착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호숫가는 유독 색감이 짙었다. 새파란 하늘과 우거진 녹음, 햇빛에 비친 물결…….
가만히 호수를 바라보는데, 문득 일리아의 생일이 떠올랐다. 그때 호수에 거대한 배가 띄워져 있어서 어찌나 놀랐던지. 사실 아직도 의문이었다. 도대체 배는 어떻게 끌고 온 걸까.
덩달아 말없이 호수를 바라보던 비올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일리아가 물에 빠진 적이 있어요.”
카르한이 고개를 돌려 비올레를 응시했다.
“구해준 사람이 리하트였죠.”
카르한도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블로든 저택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일리아가 직접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일리아는 그걸 운명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
“우리가 리하트를 크게 반대하지 않은 이유도 그가 일리아의 목숨을 구해줘서였어요.”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뜯어 말렸을 거라고 비올레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카르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자신이 일리아를 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일리아의 운명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카르한의 운명이 일리아인 것처럼 말이다.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던 카르한이 입을 열었다.
“……과거에 저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비올레가 관심을 가졌다.
“황궁 정원을 돌아다니다 발견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카르한은 기억을 더듬거리며 그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긴 했는데, 마침 블레어드가 저를 찾아오는 바람에 눈 뜨는 것까진 보지 못했다. 제법 된 일이지만 아직까지 죄책감이 남아있었다.
“잘했어요. 상대는 분명 고마워하고 있을 거예요.”
비올레의 말에 카르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둘이 연회에서 분위기 괜찮아 보이던데, 진전은 좀 있어요?”
비올레가 슬그머니 물었다. 카르한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째서요?”
“아직 고백은 하지 않았는데,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해서…….”
날은 화창한데 그의 얼굴에만 그림자가 드리운 듯했다. 비올레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이상하네, 분명 연회장에서 봤을 때만 해도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는데……. 거기다 요즘 일리아의 상태도 좀 이상하지 않던가.
카르한 이야기만 꺼내면 화들짝 놀라거나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이건 분명 가능성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대로 계속 마음을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일리아가 부담스러워할까 싶어서…….”
“소공자.”
“예.”
“포기하지 말아요. 알았죠?”
카르한은 멀뚱멀뚱 서 있다가 예, 하고 대답했다. 그런 카르한을 보며 비올레는 생각했다. 이 귀여운 연인을 위해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말이다.
***
다음 날 오후, 지난 몇 달 동안 열리지 않던 회의장에 세 사람이 모였다. 비올레는 양옆에 앉은 클리프와 헤인리를 바라보았다.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분명 몇 달 전에 이곳에서 일리아의 새로운 남자친구를 어떻게 퇴치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들 제가 왜 모이라고 했는지 알지요?”
헤인리는 안경만 추어올렸고, 클리프는 눈을 깜빡였다. 아무래도 모르는 눈치였다. 가벼운 한숨을 내쉰 비올레가 말했다.
“요즘 일리아랑 소공자 사이가 서먹해 보이는 거 다들 느꼈죠? 우리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발언권을 얻기 위해 클리프가 손을 들었다. 비올레가 대답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혹시 싸운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뒤이어 헤인리가 손을 들었다.
“어차피 둘이 교제하는 사이인데, 굳이 저희가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요.”
생각해보니 클리프와 헤인리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깨닫기 전에 교제를 시작했다는 것을. 비올레 또한 자세한 사정은 몰랐기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둘이 벌써 열흘 넘게 서로를 피하는데, 이러다가 헤어질까 싶어서 그래요.”
“안 돼!”
클리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클리프의 꿈은 카르한이랑 제국의 모든 미술관을 순회하는 것이었다.
“당장 두 사람을 불러서 물어봅시다.”
“그건 취조하는 것 같지 않을까요.”
헤인리가 곧바로 클리프를 진정시켰다. 덩달아 심각해진 헤인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예전 같았으면 이참에 헤어지게 두자며 웃었을 헤인리였지만, 그 또한 카르한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클리프와 헤인리가 끙끙대자 비올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두 사람을 만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일리아는 바쁘다는 핑계로 카르한을 피해 다녔고, 순진한 카르한은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러니 둘을 자연스럽게 한자리에 부를 생각이었다.
비올레와 클리프가 동시에 헤인리를 바라보았다. 다시 안경을 추어올린 헤인리가 입을 열었다.
“제가 소공자를 맡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새로운 임무를 맡은 헤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
헤인리는 반차까지 써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카르한이 블로든 저택에 왔다는 소식까지 입수한 후였다. 별관 앞에 마차를 세운 헤인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운 좋게도 막 방에서 나오는 카르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공자.”
목소리가 들려오자 카르한이 반사적으로 움찔하며 돌아보았다. 한때 헤인리를 피해 도망 다닌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르한이 조금 긴장한 채 헤인리를 바라보았다. 헤인리가 카르한의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혹시 지금부터 시간 있으십니까?”
“예. 괜찮습니다.”
“우연히 표가 생겼는데, 오페라를 보러 가지 않겠습니까.”
카르한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평소에 두 사람은 사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왜 하필 제게 같이 오페라를 보자고 제안하는지, 카르한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싫으십니까?”
“그게 아니라…….”
“그럼 바로 출발하지요.”
카르한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헤인리는 그를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혹시 몰라 같은 마차에 올라타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헤인리가 작정하고 밀어붙이자, 카르한은 순식간에 휘말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았다. 도망갈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마차가 곧바로 출발했다.
헤인리는 구석에 구겨 앉은 카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덩치는 산만 한 사람이, 저만 보면 초식동물에게 겁먹은 곰처럼 굴었다.
헤인리는 속으로 반성했다. 카르한이 저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전부 제 잘못이었다. 예전보다 사이가 가까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헤인리는 망설이다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계속 제대로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지난번에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반듯하나 진심을 담은 인사에 카르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헤인리는 테르시안 후작의 횡포에 사표를 쓰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카르한이 에반테온 공작에게 이야기해주어, 일이 잘 풀렸다. 내내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카르한이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듯 겸손한 태도였다. 예전 같았으면 연기하는 거라고 의심했을 테지만, 헤인리는 이제 카르한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리하트 그놈과는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편견에 휩싸여서 카르한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헤인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안했습니다. 제 태도 때문에 소공자께서 많이 불편하셨을 겁니다.”
“……오히려 저를 배려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계속 저택에 들락날락했는데도, 이해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투였기에 헤인리는 입술만 달싹였다. 일리아가 에반테온 공작저로 가는 꼴은 볼 수 없어서 내버려둔 것일 뿐이었다.
계속 호시탐탐 쫓아낼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그걸 배려라고 말하다니. 양심의 가책이 더욱 깊어져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마차 안에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헤인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일리아가 소공자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름만 꺼냈을 뿐인데, 카르한의 얼굴에 봄바람이 불어왔다. 그 표정 하나로 카르한이 일리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리아를 잘 부탁드립니다.”
카르한의 눈동자가 아까보다 더 많이 흔들렸다. 천천히 눈을 내리깐 카르한이 작게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두 사람은 미숙하지만 대화를 시도했다. 금방 화제가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끊이지 않고 잘 이어졌다.
두 사람은 반대의 삶을 살아왔다. 아카데미 수석에 공직자가 된 헤인리는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고, 카르한은 오랫동안 전장을 구르며 귀족치고 험난하게 살아왔다.
각자 살아온 이야기도 흥미로운 데다, 카르한이 헤인리의 전공 분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서 잘 통했다.
카르한은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헤인리는 클리프가 그토록 소공자, 소공자,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한창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덜컹, 하고 마차가 크게 흔들리더니 멈추고 말았다. 헤인리는 창문을 열고 마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죄송합니다. 새벽에 비가 왔는지, 마차 바퀴가 진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부의 대답에 헤인리가 곧장 마차에서 내렸다. 뒤이어 카르한이 내리고, 세 사람이 마차 바퀴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깊은걸.”
마차 바퀴 반절이 구덩이에 파묻힌 상태였다. 헤인리는 어떻게 해야 마차를 빼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마차의 무게와 구덩이의 깊이를 생각하면 고작 세 사람 힘으로는 절대 빼낼 수 없었다.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은데. 하필이면 인적이 드문 곳이라 지나가는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헤인리가 팔짱을 낀 채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데, 카르한이 마차 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두 팔로 마차를 힘껏 밀기 시작했다.
“……헉.”
마부가 숨을 삼켰다. 마차 바퀴가 조금씩 진창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헤인리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마지막에는 마차가 살짝 들리는가 싶더니 이윽고 진흙 구덩이를 완전히 빠져나왔다. 쿵, 하고 마른 땅에 마차가 놓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출발해도 될 것 같습니다.”
카르한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말했다. 헤인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걸.
***
일리아는 아침 일찍 저택을 나왔다. 사실 이렇게 일찍 나올 이유는 없었는데, 카르한이 저택에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나오고 말았다.
언제까지고 만남을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로 그를 볼 자신이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한 가지 일로 이렇게까지 고민한 적이 드물어서 더더욱 그랬다.
한참 고민하며 가게 순회를 돌고 온천 부지로 향하니, 그곳에 비올레와 클리프가 있었다.
“어쩐 일이세요?”
“오페라를 보러 갈까 하는데, 함께 가지 않으련?”
“지금요?”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에 일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가족끼리 시간을 보낸 지 오래되었잖니.”
“……그건 그렇죠.”
일리아의 생일 이후로 다들 너무 바빠서 저녁 식사나 가끔 하는 정도였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서 일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비올레와 클리프는 일리아를 마차에 태웠다. 어느새 마차는 오페라 극장 앞에서 멈추었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마차에 찍힌 가문 인장과 환한 금발을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뭐지? 블로든 가문 사람들이잖아.”
“혹시 극장을 사러 온 거 아냐?”
“그럴 듯한데.”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일리아는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다른 마차 한 대가 달려왔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보니, 마차 안에서 헤인리와 카르한이 내렸다. 당황한 일리아가 그대로 굳어졌다.
“오, 딱 맞춰 왔구나.”
클리프가 냉큼 그쪽으로 다가갔다.
“소공자, 간만에 보는 거지요!”
격한 환영을 받은 카르한은 얼떨떨해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일리아와 카르한의 눈이 마주쳤다. 내내 잠잠하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목덜미까지 열이 확 오르더니, 건조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목이 말랐다. 그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말이다.
당황한 일리아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비올레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눈빛을 보냈다.
“표가 다섯 장이어서 소공자를 초대했단다.”
비올레의 느긋한 대답에 일리아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가족들은 카르한을 제 연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를 초대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이 지금 카르한을 피하고 있다는 것뿐.
“일리아, 오랜만입니다.”
일리아의 눈치를 보던 카르한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게요. 요즘 바빠서 연락을 못 했어요.”
저도 모르게 변명이 튀어나왔다. 사실 연락하려면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잠시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러자 비올레가 일리아와 카르한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자, 시간이 다 되었으니 들어가요.”
일리아는 얼떨결에 극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극장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1층은 반원형으로 좌석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는데, 비올레가 향한 곳은 2층 박스석이었다. 표 값이 가장 비싸고 외부와 분리되어 있었다.
“두 곳을 예약했는데…….”
비올레가 일리아와 카르한을 힐끗 보았다. 한 곳은 세 자리였고 다른 한 곳은 두 자리뿐이었다.
“우리끼리 여길 쓸게요.”
비올레가 클리프와 헤인리의 양 어깨를 잡고 말했다. 순식간에 그들이 박스석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일리아는 눈만 깜빡였다.
‘물론 이게 제일 낫긴 한데…….’
자신이 카르한과 같이 앉지 않으면 그림이 이상해지긴 했다. 일리아는 카르한을 힐끗 본 후에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