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my Fiancè with Money RAW novel - Chapter (70)
일리아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차분하다 못해서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허공을 응시했다. 드디어 이 모든 일의 원흉을 처리할 때가 온 것이다.
***
에반테온 공작저 만찬장에는 단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왔다가 흩어졌다.
레베타는 고개를 들어 제 오른편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불쑥 나타난 블레어드가 앉아서 식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블레어드가 돌아왔던 날을 떠올렸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어머니.
블레어드가 불쑥 찾아온 날, 레베타는 몹시 당황했다. 최근에 서신을 받았지만, 돌아온다는 언질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감한 상황이었으나 이미 돌아온 아들을 되돌려 보낼 수도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 이렇게 될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서 오너라.
레베타는 아들을 꽉 안아주었다. 사람이 그리웠던 그녀는 다른 걸 다 떠나서 블레어드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아직 백작과 합의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게 좋겠구나.
레베타는 언행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블레어드가 실수로 죽여 버린 영식의 부친인 백작이 여전히 벼르는 중이었다. 합의금이 마련될 때까지는 최대한 조용히 있는 편이 좋을 듯했다.
-그래도 합의금은 얼추 맞춰져 가니…….
남은 금액은 블로든 가문을 통해서 조달 받을 생각이었다. 일리아 블로든이 리하트 테르시안에게 파혼 소송을 냈다 들었으니, 두 사람이 파혼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제가 없던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더군요.
블레어드의 말에 레베타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이번 검술 대회에서…… 카르한이 우승했단다. 전부 내 잘못이야.
-어머니 잘못이 아닙니다.
블레어드가 레베타를 위로하듯 속삭였다.
-저는 개의치 않으니 미안해하지 마세요.
-…….
-그저 카르한이 어머니 몰래 행동하는 게 문제지요.
달그락, 식기 부딪히는 소리에 레베타는 회상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렸다. 블레어드에게서 시선을 뗀 레베타가 왼편을 응시했다. 테이블 쪽으로 바짝 당겨진 의자가 보였다. 카르한의 자리는 오랫동안 공석이었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말이다.
검술 대회가 끝나고, 카르한은 공작저로 돌아오지 않았다. 감시인을 통해서 카르한이 블로든 저택에 머무르고 있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어떻게 할지 아직 고민 중이라, 일단 내버려두고 있긴 했다.
상석에서 식사하던 공작이 식기를 내려놓았다. 뒤에 서있던 고용인이 빈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공작이 블레어드를 바라보았다. 블레어드가 공작저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공작과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완전히 돌아온 것이냐.”
공작의 물음에 블레어드는 식기를 내려놓고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괜찮으시다면 그럴 예정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닮은 듯 닮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히려 공작을 더 닮은 쪽은 카르한이었다.
“그 일은 사고라고 생각해서 넘어갔지만…….”
공작이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알아서 처신 잘 하거라.”
출렁, 와인이 잔 안에서 흔들렸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방금 마시던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공작은 다른 와인을 마셨다. 그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만찬장을 빠져나갔다.
블레어드는 공작이 앉았던 자리에 놓인 두 와인 잔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마치 자신과 카르한 같았다. 언뜻 보기엔 비슷한 성질을 지녔지만, 질이 달랐다. 같은 와인이라도 값어치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공작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블레어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식기를 들었다. 동요를 숨길 수는 없었는지, 포크 끝이 떨려왔다. 장남이라는 명분도 있었고, 아직까지 많은 원로들의 지지를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후계자로 낙점되어 수업을 받아왔으니,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당장만 보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무능하다고 알려진 카르한이 조금씩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공작 부부는 지금껏 카르한의 재능을 몰랐다. 카르한의 천재성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블레어드였다. 그때부터 블레어드는 카르한을 누르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공작은 현재 원로들이 블레어드를 지지하고 있고, 레베타 또한 블레어드가 후계자이길 원하니 그를 밀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집안이 소란스러워지는 게 귀찮아서 블레어드를 후계자로 밀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소란을 감안하고서라도 카르한을 후계자로 미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블레어드는 끝이 휘어진 포크를 내려놓았다. 역시 공작은 확실하지 않은 패였다. 지금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블레어드? 입맛이 없니?”
레베타가 걱정스레 물었다. 블레어드는 능숙하게 감정을 숨기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확실하게 제 편이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인 레베타뿐이었다.
“네 아버지 말은 신경 쓰지 말거라.”
레베타는 다 안다는 듯 블레어드를 위로해주었다.
“아닙니다. 제 잘못이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도 그 일만 떠올리면 이가 갈렸다. 과거에 저지른 멍청한 실수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너무 걱정하지 말렴. 어차피 카르한은 곧 떠날 테니.”
블레어드가 멈칫했다.
“어디로요?”
“분쟁 지역으로 간다더구나.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레베타의 말에 블레어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느덧 그의 표정이 개운해졌다.
“그럼 카르한이 떠나기 전에 후계자 자리를 받아내야겠군요.”
***
일리아에게 고백한 지 벌써 닷새가 지났다. 카르한은 일리아를 따라 다시 블로든 저택으로 돌아왔다.
고백까지 했으나, 분쟁 지역 건으로 일리아와 사이가 약간 서먹해졌다. 특히 일리아를 울린 것이 미안해서, 카르한은 일리아의 주변만 맴돌며 졸졸 따라다녔다.
하지만 일리아가 워낙 바빠서 그 후로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리하트 일도 그렇고, 카르한을 분쟁 지역에 보내지 않기 위해 해결 방법을 찾아보는 듯했다.
그리고 어제, 블로든 가문 사람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열었다. 회의 주제는 카르한이 앞으로 지낼 곳이었다.
-방도 많은데, 그냥 우리 집에서 삽시다!
-맞아요. 굳이 공작저에서 지낼 필요가 있나요?
백작 부부는 먼저 나서서 카르한에게 제안했다. 뒤이어 헤인리가 무척 잘됐다는 얼굴로 말했다.
-함께 살면 수업 시간을 늘릴 수 있겠군요.
카르한은 헤인리에게 특별 수업을 받는 중이었다. 서류 보는 법과 행정 관련 업무를 배우고 있었다. 만약 카르한이 블로든 저택에 머무른다면 헤인리가 퇴근한 후로 수업을 봐줄 수 있었다.
카르한은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일리아를 바라보았다. 맑은 보라색 눈동자가 카르한에게 향했다.
-같이 지내요.
결국 카르한이 블로든 저택에서 지내자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카르한은 왠지 벅찼다. ‘가족회의’에 자신이 참석한 것도, 앞으로 이들과 한 지붕에서 지내게 되는 것도…….
무엇보다 일리아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카르한은 저를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 짐을 챙겨 오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전부 사면 되니까!
클리프가 테이블을 탁, 치더니 어깨를 폈다. 왠지 그의 등 뒤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그 뒤로 다시 토론이 펼쳐졌다. 카르한은 당장 필요한 것만 사려 했으나, 블로든 가문 사람들은 가만두질 않았다.
-옷은 적어도 세 달 내내 겹치지 않을 정도로 구비해둬야지요.
-차라리 가게를 하나 사서 통째로 옮겨오는 건 어떻습니까.
-소공자, 가지고 싶은 걸 말하세요!
비올레와 헤인리, 클리프가 연달아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있던 일리아가 종이를 카르한에게 건넸다. 어마어마하게 긴 종이가 바닥까지 내려왔다. 카르한은 혹시 살 목록을 적은 건가 싶어서 눈만 깜빡였다.
-영수증이에요.
이미 구입하고 통보한 것이었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보니, 카르한의 방은 온갖 물건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린 카르한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매일 이런 날만 있으면 참 좋을 듯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이 가시질 않았다. 매번 받기만 했으니, 앞으로는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카르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일리아가 다져준 기반을 밟고 서는 것이 고작일 터였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계속 일방적으로 도움 받는 처지인 거다.
카르한은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었다. 일리아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란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무엇보다 제 힘으로 일리아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려면 역시…… 자신이 이곳을 떠나는 것이 맞았다. 분쟁 지역에 가서 세력을 쌓고, 자신의 능력으로 정당하게 후계자가 된다면…… 그때는 아무도 저를 얕보지 못할 것이다.
“카르한 님, 도착했습니다.”
창밖을 확인한 테시온이 말했다. 상념에서 벗어난 카르한은 마차에서 내려,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조용한 거리에는 공방과 아틀리에가 드문드문 있었다.
쭉 걸어가던 카르한은 나무 간판을 확인했다. 약속 장소인 작은 갤러리였다. 카르한은 짧게 심호흡한 후에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카르한이 문을 열었다. 걸음을 내딛자 그림으로 채워진 작은 공간이 카르한을 둘러쌌다. 카르한은 문을 등진 채 그림을 보고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그가 서서히 몸을 틀었다. 남자는 에반테온 가문의 원로였다.
어제 가족회의가 끝났을 때, 클리프는 카르한을 따로 불렀다.
-소공자를 꼭 뵙고 싶다 하셔서…….
예술을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인 에반테온 원로가 카르한을 만나고 싶다고 클리프를 통해 부탁한 것이었다. 바네사의 전시회 때 독대한 적이 있긴 하나, 그 후로 엮일 일이 없었다. 카르한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건, 전시회 이후로 처음이군요.”
원로는 카르한 쪽으로 걸어와 멈춰 섰다.
“이번 대회에 참관했는데, 우승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때 카르한은 일리아 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관객석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감사합니다.”
카르한이 짤막한 인사를 건네자, 원로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카르한을 살피는 듯한 눈이었다. 한참 말이 없던 원로가 물었다.
“자리가 버겁지는 않습니까?”
“후계자 자리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질문 속에 담긴 원로의 의중이 궁금했다. 본심을 숨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카르한은 망설임 끝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버겁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서 벅찼다.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일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습니다.”
흔들림 없는 단단한 대답에 원로의 눈꺼풀이 조금 떨렸다. 그는 더듬듯이 첫 만남을 회상했다. 지금 카르한에게서 그때의 어리숙함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새파란 두 눈동자에 욕심이 서려 있었다. 탐욕이 아닌, 순수하게 자기 것을 지키겠다는 욕심이었다. 고작 몇 달 사이, 무뎌서 쓸모없다 생각한 검은 날을 잘 벼린 명검이 되어 있었다. 분명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한참 말이 없던 원로가 중얼거렸다. 그는 발걸음을 돌려, 갤러리를 천천히 돌았다. 발걸음 소리가 규칙적으로 공간을 채웠다. 한 바퀴를 전부 채운 후 그의 걸음이 멈추었다.
“소공자.”
원로는 카르한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는 소공자를 지지하고 싶습니다.”
***
여름 끝자락이 찾아오고, 미처 떠나지 못한 열기가 대지에 머물렀다. 후원에는 이른 오전부터 차를 마시는 두 사람이 있었다. 찻잔을 든 비올레가 먼저 물었다.
“온천 사업 때문에 어려운 문제는 없고?”
일리아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공사는 순조롭고요.”
대형 복합 시설인 만큼 공사는 오래 걸릴 터였다. 돈과 인력을 갈아 넣었으니 몇 년 안에 완공되겠지만, 안전이 우선이었다.
“반 정도는 우리 가문 가게를 넣고, 나머지는 입찰 공고를 낼까 싶어요.”
“그것도 괜찮겠지.”
블로든 가문이 전부 독점하면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입점 시켜 거기에 집중할까 싶었다. 한창 사업 이야기가 오가고 비올레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고백은 받았니?”
일리아는 너무 놀라서 마시고 있던 차를 그대로 뱉고 말았다.
“뭘 그렇게 놀라니. 소공자가 고백했냐는 질문이었어.”
일리아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비올레는 지금껏 일리아와 카르한이 교제하는 척해왔다는 걸 알게 된 모양이었다.
어떻게 아셨지? 혹시 카르한이 말했을까. 아니면 눈치 빠른 비올레가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걸지도 몰랐다.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던 일리아는 결국 숨겨 왔던 사실을 실토했다. 카르한을 만나게 된 계기와 계약 연애를 하게 된 것, 납치당했던 날 저녁에 고백 받았던 것까지…….
그때의 일리아는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본인이 전부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리하트 일로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몰래 카르한에게 계약 연애를 제안했다.
“혼자 마음고생 많았겠구나.”
“…….”
“앞으로는 우리에게 기대주렴.”
비올레가 팔을 뻗어 일리아의 손등을 감쌌다. 가슴이 뭉클해진 일리아는 자그맣게 알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참 다행이지.”
카르한을 떠올렸는지, 비올레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요즘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단다. 물론 네 아버지는 제외하고.”
팔불출 같은 말에 일리아는 작게 웃었다. 두 사람은 마을 축제에서 첫눈에 반했지만, 비올레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클리프의 성격 때문이었다.
클리프는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났음에도 잘난 체하지 않고 베푸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비올레는 늘 클리프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일리아와 헤인리에게 말해왔다. 그만큼 카르한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비올레였다.
“리하트 테르시안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어차피 귀족이니 큰 처벌은 피하겠죠. 거기다 미수에 그쳤으니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러니 발붙일 곳 없도록 만들어줄까 싶어요.”
납치에 실패한 리하트는 지금 감옥에 수감 중이었다. 어찌 되었든 귀족이니 그리 박한 대우를 받진 않을 터였다. 그러니 일단 리하트의 수감 생활을 지옥으로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간수에게 돈을 쥐여 주면 알아서 굴려줄 것이다. 재판이 열리면 일리아는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리하트를 평생 감옥에서 썩도록 할 계획이었다.
“먹기 위해선 일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줘야죠.”
지금까지 평생 놀고먹기만 했던 놈이니, 손이 부르트도록 노동을 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리하트의 가족들은 보석금으로 리하트를 빼줄 능력이 되지 않았다.
후작은 꾸역꾸역 황궁에 출근하는 모양이지만, 늘어나는 빚 때문에 무척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들었다. 매일같이 빚쟁이들이 집을 찾아오니, 제정신이 아닐 터였다.
불쌍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헤인리에게 보복하려 했던 테르시안 후작, 저를 부려먹으며 협박을 일삼던 시오나, 블로든 가문을 돈줄로 보던 후작부인……. 전부 업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