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my Fiancè with Money RAW novel - Chapter (83)
어제 했던 말을 떠올린 일리아가 카르한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카르한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언제 일어났어요?”
“……제대로 못 잤습니다.”
자버리면 전부 꿈일 것 같았다고, 카르한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가만히 보기만 해도 좋았습니다.”
카르한의 말에 일리아의 귓불이 조금 붉어졌다. 다른 건 부끄러워하면서 좋다는 말은 왜 저렇게 쉽게 내뱉는지.
두 사람은 일어나기 싫어서 한참 침대에 누워 있다가 꾸물꾸물 일어났다. 언젠가 이 풍경이 매일 지속될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침실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은 후,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일리아가 냉큼 카르한의 팔을 붙들었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자, 카르한이 잠시 멈칫했다. 이내 카르한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잠깐 팔짱을 풀어도 되겠습니까.”
“왜요? 불편해요?”
“아침이라 추울 겁니다. 이곳 바람은 매서우니까요.”
일리아는 눈을 깜빡이며 팔을 거두었다. 카르한이 가방을 뒤져, 외투부터 목도리까지 전부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전부 입혀주고 씌워주었다. 그제야 카르한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 됐습니다.”
너무 많이 겹쳐 입어서 갑갑했지만, 카르한의 표정을 본 일리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나라도 벗겠다고 하면 걱정할 것이 눈에 선했다.
“당신도 장갑 껴요.”
일리아는 가죽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워주었다. 팔짱을 끼는 대신 손을 맞잡은 채 두 사람은 저택을 나섰다.
아침 햇살이 반짝거리며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카르한과 발맞추어 걷던 일리아의 입술이 점점 크게 벌어졌다.
‘……맙소사. 진짜 굴러다니잖아?’
금보다 비싼 원석이 발에 챌 정도로 많았다. 이 정도면 공예고 뭐고, 원석만 팔아도 마을 전체가 호의호식할 터였다.
일리아가 돌멩이만 바라보자, 카르한이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그의 한 손에 돌멩이가 쌓여가자, 일리아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카르한.”
카르한이 고개를 들었다. 일리아는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나직하게 말했다.
“그거 금보다 비싼 원석이에요.”
그 말에 카르한은 들고 있던 돌멩이를 전부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내 카르한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이 떨어뜨린 돌멩이를 살폈다.
“……제가 몇 개 부순 것 같습니다. 어쩌죠?”
안절부절못하는 카르한과 달리, 일리아는 차분하게 말해주었다.
“괜찮아요. 사방에 널려 있으니까요.”
카르한은 많이 놀랐는지 심호흡을 내뱉은 후 돌멩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냥 말하지 말 걸 그랬나.’
처음에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역시 카르한에게는 작은 것도 비밀로 하고 싶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일리아가 카르한에게 말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눈치니까 비밀로 해요.”
카르한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두 사람은 마을 어귀까지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그때 보내준 돌멩이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감정을 맡겨봤어요.”
“…….”
“고급 안료에 쓰이는 재료인데, 전문가들이나 알아볼 수 있는 희귀한 원석이라 지금껏 몰랐나 봐요.”
그걸 알게 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 마을은 공작의 소유였다. 분쟁 지역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 민간인에게는 토지를 매매하지 않았다.
“분쟁 지역 건을 매듭짓고, 이 땅을 직접 관리하겠다고 해요.”
수익도 나지 않는 척박한 땅이니, 공작은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카르한이 야만족과 화친을 맺으며 관리하는 쪽이 나았다. 완전히 카르한의 소유로 넘어오고 나면 그때 공개해도 늦지 않았다.
뒤늦게 알게 된 공작은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공작은 평생 몰랐을 일이었다.
일리아의 말에 카르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당신의 재물운이 옮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럼 좋죠. 두 배가 되는 거잖아요.”
작게 웃던 일리아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언제까지고 원석에 기댈 수는 없으니, 공예품을 수출하는 쪽이 좋을 것 같아요.”
카르한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사실 금보다 비싼 이유가, 무척 희귀해서 그런 거였거든요.”
광산에서도 소량만 나오는 희귀한 원석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원석이 길바닥에 널려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양이 한꺼번에 시중에 풀리면 가격이 폭락할 것이 뻔했다.
금은 꾸준히 수요가 많고 널리 쓰이지만, 이 원석은 쓰이는 곳이나 수요가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조금씩만 판매하면 수익이 크지 않을 테니…….
“마을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원석에 너무 기대는 건 좋지 않을 듯해요.”
“사람들과 한번 이야기해봐야겠습니다.”
“그건 제게 맡겨요. 전문이잖아요.”
일리아가 양어깨를 펴고 말하자, 카르한은 나직하게 웃었다. 아침 산책 겸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왠지 저택이 소란스러웠다. 그때 루벤투스가 다급한 얼굴로 카르한에게 다가왔다.
“소공자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루벤투스가 창백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야만족들이 평화 협정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해왔습니다.”
“!”
일리아와 카르한은 놀라서 굳어졌다. 먼저 정신 차린 카르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어젯밤에 저희 쪽 병사가 야만족 병사를 공격한 모양입니다.”
카르한의 표정이 무섭도록 가라앉았다. 그는 야만족과 협상 자리를 가진 후, 군 전체에 평화 협정에 대해 알려두었다. 휴전할지도 모르니, 당분간 진영을 떠나지도 말고 적군을 만나더라도 그냥 보내주라고 명령해두었다. 그런데 누가 명을 어겼단 말인가.
“……경계선을 넘어갔나.”
두 진영 사이엔 경계가 있었다. 거리도 제법 있었기에 일부러 거기까지 가지 않는 이상 충돌할 일은 없었다. 한밤중에 진영을 빠져나갔다는 것도 그렇고, 뭔가 꺼림칙했다.
“일리아, 미안하지만 잠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갔다 와요.”
일리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침실로 돌아온 카르한은 곧장 짐을 꾸린 후, 말을 타고 분쟁지로 향했다. 도착할 즈음, 카르한은 야만족 진영에 올라간 깃발을 확인했다. 전쟁을 알리는 깃발이었다.
진영에 도착한 카르한이 말에서 내렸다. 막사 앞에 병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카르한은 곧장 테시온을 찾았다.
“테시온.”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얼굴이 해쓱해진 테시온이 나타났다. 카르한이 자리를 비운 동안 테시온이 대리인으로 이곳을 지켰는데, 밤을 꼴딱 새운 듯했다. 카르한과 테시온은 곧장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아침에 우르시오가 찾아왔습니다.”
카르한은 테시온에게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았다. 루벤투스가 해준 말과 비슷했지만, 조금 더 상세했다. 새벽 무렵 카르한 쪽 병사가 경계를 넘어가, 야만족 병사를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갑옷까지 갖춰 입었던 모양입니다.”
“습격당한 병사는?”
카르한은 먼저 야만족 병사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부상을 크게 입은 모양입니다. 사실 그쪽 말을 제가 잘 몰라서 제국어만 드문드문 알아들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상대 쪽 병사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크게 다쳤다니…….
“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당장 알아내도록.”
카르한의 얼굴을 본 테시온이 순간 숨을 들이켰다. 이렇게나 무시무시한 표정은 처음 보는 걸지도 몰랐다. 테시온은 카르한의 눈치를 보다가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공작저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카르한이 봉투를 받자, 테시온은 곧장 막사를 나가버렸다. 혼자 막사에 남게 된 카르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상한 일이었다. 굳이 새벽에 경계선을 밟고 넘어가 야만족 병사를 공격하다니. 누가 위험하게 그런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뭔가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순간 뒷목이 서늘해졌다. 혹시나 하는 의심이 금방 뿌리를 내렸다. 못 박힌 듯 서 있던 카르한은 테시온이 두고 간 봉투를 열어보았다. 공작이 보낸 서신이 들어있었다.
카르한은 빠르게 서신을 훑었다. 휴전 협정에 승인한다는 말뿐이었다. 적어도 공작이 꾸민 일은 아닌 듯했다. 굳이 번거롭게 그런 일을 벌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신으로 허가하지 않겠다는 말만 적어 보내도, 이 협정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블레어드…….”
이런 짓을 벌일 사람은 블레어드뿐이었다. 분명 이쪽에도 감시자를 보내왔을 터였다. 상황이 제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니 훼방을 놓았을 확률이 높았다.
어찌 되었든 이번 일은 카르한이 수습해야 했다. 변명 같은 것은 통하지 않을 테고,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카르한은 블레어드를 떠올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많은 사람들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사람이었다.
카르한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막사에서 빠져나왔다. 이리저리 바쁘게 명령을 내리던 테시온이 곧장 카르한에게 다가왔다.
“부대를 샅샅이 뒤져 범인을 색출 중입니다. 혹시 진영을 빠져나갔을지도 모르니, 인근 마을까지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래, 잘했다.”
“카르한 님께서는…….”
카르한의 얼굴을 본 테시온이 잠시 말을 흐렸다. 카르한은 덤덤히 입을 열었다.
“재협상을 하러 간다.”
“위험합니다!”
테시온이 곧바로 만류했다. 이번 일로 야만족들이 잔뜩 흥분해서 공격해올지도 그가 설득했다.
“우르시오 그 녀석도…… 표정이 무척 좋지 않았고요.”
“그러니 내가 수습해야지.”
만약 블레어드가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결국 카르한이 해결해야 했다. 카르한이 이 진영의 우두머리이니 말이다. 해명하고 진상을 밝히는 것은 나중에 할 일이었다.
“보라색 깃발을 올리도록.”
“……알겠습니다.”
결국 카르한을 말리지 못한 테시온은 터덜터덜 걸어가, 보라색 깃발을 올렸다. 보라색 깃발은 두 진영의 중앙에 있는 막사에서 대화를 하자는 표시였다.
깃발이 올라가고, 야만족 진영 쪽에서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르한은 협상 자리에 나가기 위해 옷을 갖춰 입고 나왔다.
“지휘관님…….”
다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카르한을 바라보았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휴전한다는 소식에 얼싸안고 기뻐하던 병사들이었다. 고향에 돌아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즐겁게 대화하곤 했다. 그런 그들은 다시 전쟁이 발발할까 싶어 불안해하고 있었다.
카르한은 그들을 바라보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확답을 줄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오겠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병사들이 예를 갖춰 카르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카르한은 테시온을 대동한 채, 진영 중앙에 위치한 막사로 향했다.
반대쪽에서 우르시오와 야만족 지휘관 그리고 병사 두 명이 걸어왔다. 머릿수가 다르긴 했지만, 경계할 만한 상황인지라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가 막사 안으로 들어갔을 때, 첫 협상 자리와 달리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였다. 굳어진 얼굴로 서 있던 우르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믿었다! 카르한, 우리 배신.”
먼저 휴전 협정을 제안한 쪽이 공격을 가했으니, 화가 날 만했다. 카르한은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야만족 언어를 최대한 섞어서 사과했다.
“우리 쪽 잘못입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전부 제 책임입니다.”
카르한의 사과에 우르시오는 멈칫했다가 짧은 제국어로 항의했다.
“우리 부족 전사, 다쳤다!”
“다친 병사를 위해 보상하겠습니다. 그리고 범인이 잡히는 즉시 조사하고…….”
카르한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지휘관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처분은 당신들께 맡기겠습니다.”
그제야 씩씩거리던 우르시오가 조용해졌다. 카르한이라면 자기 쪽 병사를 두둔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사실 이 정도가 카르한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만약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것이 블레어드가 바라는 일일 테고 말이다.
침묵이 막사 안을 맴돌았다. 계속 조용하던 야만족 지휘관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우르시오에게 뭐라고 말했다. 우르시오는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던 카르한에게 말해주었다.
“우리 왕, 카르한, 만나길 원해.”
야만족 왕이 카르한을 찾는다는 말이었다.
***
카르한이 분쟁지로 떠나고, 일리아는 침실을 계속 서성였다. 야만족과 평화적으로 전쟁을 매듭지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는데……, 갑자기 일이 이렇게 되다니. 온갖 걱정이 밀려와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신발이 닳을 정도로 방을 빙글빙글 돌던 일리아는 멈춰 섰다.
“……그만 생각하자.”
카르한이라면 분명 잘 해낼 것이다. 그저 그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일리아는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제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생각이었다.
“프란체, 말렉. 나가자.”
문 밖에 서 있던 프란체와 말렉이 냉큼 일리아의 양옆에 섰다. 세 사람은 그 길로 곧장 저택을 나왔다. 아침에 카르한과 마을을 가볍게 둘러보긴 했지만, 이번엔 다른 목적이 있었다.
한적한 마을을 걷던 일리아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무리를 발견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뭔가를 만드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일리아가 먼저 인사하자,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일리아의 외관이 워낙 눈에 띄는지라 다들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누구십니까?”
일리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프란체가 척 하고 나서서 말했다.
“이분은 블로든 가문의 아가씨입니다.”
프란체의 말에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블로든 가문?”
“소공자님의 연인!”
다들 한마디씩 거들며 몸을 일으켰다. 언제 경계했냐는 듯 무척 호의적인 태도였다.
“감사합니다. 지금껏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귀하신 분께서 어찌 여기까지…….”
다들 일리아를 둘러싸고 감사 인사를 건네 왔다.
‘카르한이 나를 소개해줬구나.’
일리아는 왠지 가슴이 간질간질해졌다. 저를 연인이라 소개했을 카르한을 떠올리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일리아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방긋 웃어주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뭘 만들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여인 하나가 방금까지 뜨고 있던 목도리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뜨신 거예요? 정말 예뻐요.”
일리아는 감탄하며 목도리를 살폈다. 흔히 볼 수 없는 섬세한 목도리였다. 싸구려 털실을 사용해서 촉감은 거칠거칠해 보였지만, 정교한 무늬는 아무나 따라할 수 없었다.
일리아가 칭찬하자,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만들고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나무 조각을 깎아 만든 장식품, 끈을 엮어 만든 팔찌……. 하나하나가 예술품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자급자족하다 보니 한 가지 분야에 통달한 모양이었다.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괜찮은걸.’
수도에서도 이렇게 정교한 공예품은 흔히 볼 수 없었다. 재료를 좀 더 좋은 걸 쓴다면, 수요는 차고 넘칠 게 분명했다. 상품성을 알아본 일리아는 고민도 하지 않고 제안했다.
“제가 여러분의 작품을 전부 구입하고 싶어요.”
“예?”
다들 놀란 얼굴로 일리아를 바라보았다.
“수도에 가져가서 판매하고 싶어요. 이렇게 좋은 작품을 저만 알기 아쉬워서 그래요.”
“…….”
“물론 자재 공급은 저희 쪽에서 할 거고요.”
일리아가 의견을 내놓자,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중 누군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이런 게 정말 팔릴까요? 수도엔 더 좋은 것이 널려 있을 텐데…….”
“그럼 제가 쓰죠, 뭐.”
“이, 이걸 전부 다요?”
일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벌린 채 저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일리아는 수익 구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정좌해서 듣던 사람들은 공예품을 파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에 들뜨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 생산되지도 않는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비효율적으로 농사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저희는 좋습니다!”
모두의 동의에 일리아는 싱긋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