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0)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0화(10/439)
<―>
라이도의 질문은 갑작스럽기 그지없었다.
제 아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니.
리히텐 변경백은 상대가 질문하는 그 의도를 살피기 위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원래의 그였다면 그냥 약간의 이야기 이후 다른 주제로 자연스레 넘어갔을 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역시 갑작스레 변화한 시온의 모습을 오늘 눈으로 확인한 참이었으니 말이다.
“혹시 시온을 만나신 겁니까?”
“조금 전에 얼굴 맞대고 이빨 좀 털다가 오는 길이다.”
“갑자기 어쩐 이유로 그런···.”
“제자로 들여 볼까 했다.”
“예?”
리히텐 변경백은 자신이 헛것이라도 듣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가 알고 있는, 아주 오래 전부터 겪어왔던 라이도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곁에 두지 않는 이였다.
전 궁정 마법사, 전설적인 무투가, 그 외에도 많은 호칭을 달고 있으면서도 정작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자신을 합쳐서 열 명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라이도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여태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자신의 큰아들에게 제자를 제안했다니?
“혹시 또 할 일이 없다고 하셔서 장난이라도 치시는 겁니까?”
“새끼.
내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닌 놈이어도 이런 걸로 장난은 안친다.”
“정말 시온에게 제자 자리를 제안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이유가 뭡니까?
라이도님이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 말입니다.”
“그걸 네 녀석도 알고 있나, 해서 이렇게 불쑥 찾아온 거 아니겠냐.”
“아아···.”
“헌데 더 웃긴 일이 하나 있다.
그게 뭔지 아냐?”
리히텐 변경백은 당연히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라이도는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댄 채 말을 이었다.
“녀석이 그 제안을 거절했다.”
“예?”
“내 제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는 말이다.
나는 말이야, 네 아들이 소문의 그 멍청이, 애송이 인줄 알았다.
그저 아비 후광으로 먹고 사는 인간쓰레기라고 생각했지.
아, 표현이 너무 거칠었나?”
“아닙니다.
그게 세간에 나도는 소문이었으니까요.
저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말이다.
오늘 내가 마주한 네 아들놈은 소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놈이었다.”
“소문과 달랐다니···.”
“이제껏 자신을 숨기고 또 숨기고, 남들을 속이고 또 속이고.
놈은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던 거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게, 설사 백작가의 가신들이나 가족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 말에 리히텐은 아까 있었던 시온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태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당당함을, 그리고 후계자로써의 모습을 보이던 큰아들.
묘하게 달라진 것 같은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심 안도하지 않았던가.
그저 뒤늦게 철이 든 줄 알았는데, 자신이 상상하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니?
“네 면상을 보아하니 너도 몰랐던 모양이구나.”
“시온이 자신을 여태 숨겨왔다는 말씀입니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래.
내 눈깔이 삐꾸가 아니라면 말이야.”
“녀석이 왜 그런 짓을···.”
“저마다의 사정이 있겠지.
굳이 예상을 해보자면 놈은 제 약점을 드러내기 싫어서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두마.”
“약점이라뇨.
그 아이에게 무슨 약점이 있다는 겁니까?”
잠시 리히텐 변경백을 바라보던 라이도는 자신이 말할 사항은 아니라고 판단한 듯 다만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아무튼 일전에 네 녀석이 말하곤 했던 그 걱정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나조차 속이려고 했고, 거의 성공했던 놈이다.
잘나면 잘났지, 못난 놈은 결코 아니야.”
“하지만···.”
“잘 된 일이지.
지금처럼 세상이 뒤숭숭한 이때에 후계자 자리로 변경백령이 흔들리면 애먼 놈들만 이득이잖냐.
후계자 놈이 그리 든든하다면 너도, 왕궁도 한시름 놓는 일이지.”
그렇게 말한 라이도는 기지개를 켜며 온 몸이 찌뿌둥하다는 듯 어깨를 연신 돌렸다.
리히텐 변경백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 일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지지부진하다.
꼭 왕성의 머머리 대신들이 국정을 논하는 것처럼 말이지.
진척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빌어처먹을.”
아마 이 자리가 백작가의 성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면 라이도는 진작 침을 뱉고는 발로 그걸 슥슥 문질렀을 것이다.
성질을 내며 머리를 벅벅 긁던 라이도는 침음을 내뱉곤 말을 이었다.
“그나마 요즘 들어서 쓸 만 한 놈 하나가 날 도와주고 있긴 하다만, 또 다른 신전을 찾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서 말이다.
도대체가 그 마족 양아치 놈들은 이해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단 말이야.
썩을 놈의 새끼들.”
“진척이 없다니 조금은 걱정이군요.”
“걱정마라.
그래도 영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방벽은 제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라이도님의 은혜는 항상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됐다.
나도 흥미가 생겨서 궁정 마법사 때려치우고 여기로 온 거니까.
모처럼 눈치 안 보고 주먹을 쓰는데 십 년은 젊어진 것 같아서 오히려 기분이 좋더라고.”
농담이 아니라 진짜라는 듯 라이도의 얼굴에는 미소가 한 가득이었다.
나이로만 보면 예순에 다다른 노인이었지만 성질머리나 몸놀림은 웬만한 청년보다도 더 불같이 뜨거웠다.
“내 일은 그렇다 치고, 너는 괜찮냐?”
“무슨 말씀이신지.”
“숨기려고 하는 거냐?
요 근래 누디아 왕국과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그 말에 리히텐 변경백은 입술을 깨물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레 변경백령으로 통하는 수원(水源)을 막아버리고는 계속되는 회담 요청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 중인 누디아의 이웃 영지.
곡식이 여물어가는 시기에 수원을 막아버렸다는 건 당장 전쟁을 불사하자는 의미나 다름없었기에 최근 들어 리히텐 변경백은 비밀리에 첩자들을 풀어 누디아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라이도님도 그 부분을 알고 계셨군요.”
“난 딸에게 들었지.”
“아, 루시아 양이···.”
“그리고 내 딸은, 네 아들놈에게 이 사실을 들었고 말이다.”
“시온에게서 말입니까?”
“그래.”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리히텐 변경백은 놀라움을 떠나서 이제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자신조차 여러 정황과 보고들을 받은 후에 조심스레 내놓은 결론이다.
당연히 그 보고는 오직 자신에게만 닿을 수 있는 비밀 접선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말이다.
그런데 시온 클라우젠은 여태 영지의 일에는 단 한 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당연히 누디아의 분위기도, 그리고 수원이 막혔다는 것도 알 턱이 없는 상황.
헌데 그런 정보는 또 어디서 입수했고 그럼으로 인해 차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이며 그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더 웃긴 걸 알려줄까?
네 아들 놈, 진작 내 정체를 알고 있더구나.”
“라이도님께서 백작령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까?”
“그래.
아주 조그마한 단서들로 정확하게 유추를 해서는 감히 상대가 아니라고 부정조차 못 하게 아주 확실한 기세로 입을 털더라고.
마치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있는 놈처럼 말이다.
얼마나 당당하던지 나는 거짓말조차 해보지도 못 하고 병신새끼 마냥 어버버거리고 말았어.”
맞는 말이긴 하다.
실제로 시온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소설 애독자이니까.
물론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라이도와 리히텐 변경백은 서로 감탄하고 또 놀라워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그 아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일단 동쪽 숲에 대한 부분까지는 모르는 듯 하다.
만약 알았다면 내게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냐고 물어봤을 테지.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모르겠군.”
변경백령 동쪽에 위치한 거대한 숲.
거기서 정체불명의 신전이 발견된 것이 라이도가 이곳으로 향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조사에 조사를 거듭한 결과, 그 신전은 마족들이 자신들의 신를 위해서 지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간간이 영지에 모습을 보이는 몬스터들은 그 신전의 영향으로 그런 것이 아닐까 예상 중이었다.
‘하지만 막상 계속 조사해보니 그럴 만한 이유는 발견되지 않았다.’
신전과 몬스터의 잦은 출몰에 접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혹 또 다른 신전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김유현과 함께 숲을 샅샅이 훑고 있었지만 다른 흔적은 눈을 씻고 쳐다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인데, 아직까지 그 다른 무언가를 찾지 못 한 라이도였다.
“어찌 되었든 네 아들 녀석 걱정은 그만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러 왔다.
그리 잘난 놈이 도대체 뭐가 마음에 걸려서 스스로를 낮추고 있던 건지 의문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라이도는 전보다는 조금 더 긴 수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귀환 마법진.
그러다 말고 아, 하고 탄식을 내뱉은 라이도는 슬쩍 리히텐 변경백을 바라보았다.
“뭐 하나만 묻자, 리히텐.”
“듣고 있습니다.”
“너, 내 딸 어떻게 생각하냐?”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연히 바로 대답을 하지 못 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라이도는 ‘시발!
부전자전이라고, 어떻게 하는 짓이 그리도 똑같아?’ 라고 투덜거리면서 빨리 대답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렸다.
덕분에 리히텐 변경백은 기가 막힌 웃음만을 내뱉어야만 했다.
“대체 그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시바!
그러니까!
흠흠!
자식을 둔 아비로써, 물론 넌 아들이긴 하지만!
아무튼 ‘어른’ 의 눈으로 보기에 내 딸이 어떠냐는 거지!
뭐 참하다거나, 아주 훌륭한 아가씨라던가!
뭐 그런 거 말이다!”
아아, 뭘 묻고 싶으신지 이제야 알았다.
리히텐 변경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확실히 라이도님의 딸이어서 그런지 영특하고 지혜로운 아가씨죠.
이런 말 하기는 좀 죄송하지만 다행히도 생긴 건 라이도님을 안 닮아서 더더욱 다행이고 말입니다.”
“어쭈?
이 새끼가?”
“라이도님도 그건 인정하는 부분이지 않습니까?”
“흠흠··· 그래, 시바.
딸아이가 죽은 마누라 얼굴 닮은 게 정말 다행이지.”
차마 외모 부분에서 고집은 더 부리지 못 하겠는지 바로 수긍하고 마는 라이도였다.
“아무튼 어떤 남자를 만나던 상대에게는 과분한 여인이라고 해두겠습니다.”
“그러냐?
그러면 바로 혼사 진행해도 별 문제 없다는 소리지?”
“그렇습니다.
헌데 어디서 혼인을 하자는 이가 나타났습니까?
라이도님께서는 현재 정체를 숨기고 있는데 어떻게··· 아, 혹시 라이도님께서 점찍어둔 이가 있기라도 한 겁니까?”
“···.”
저 새끼 일부러 저러나?
빠가사리인가?
내가 분명 눈치란 눈치는 다 준 것 같은데 왜 자꾸 딴 소리지?
머리통을 한 대 후려갈기면 아마 자신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눈치 채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라이도였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 했다.
그래도 리히텐 변경백은 몇 없는 라이도의 지인이고, 조만간 ‘사돈’ 이 될 사이지 않은가.
“아무튼 애비고 새끼고 눈치 없는 건 똑 닮았구나.”
“예, 예?”
“후우··· 저런 걸 사돈이라고 불러야 하고, 그런 놈을 사위라고 불러야 한다니.
이런 시불탱탱탱, 내 팔자다, 내 팔자야.”
그렇게 중얼거린 라이도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아예 이 자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텅 빈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리히텐 변경백은 라이도가 남기고 간 말들을 찬찬히 떠올려보았다.
‘자신을 숨기고, 남을 속이고 있었다.
일부러 스스로를 낮추고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라이도가 저렇게 말할 정도로 자신의 아들 녀석이 뛰어난 녀석이었다는 것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돈이니, 사위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설마?’
설마,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품으며 다시 업무에 집중하려던 참이었다.
똑똑똑―.
“백작 각하.
세바스찬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리히텐 변경백이 수락하자 천천히 문이 열리고, 멋들어진 정장을 차려 입은 세련된 분위기의 노신사가 안으로 들어섰다.
우아한 동작으로 인사를 올린 세바스찬을 바라보던 리히텐 변경백은 그가 자신의 방을 찾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세바스찬은 슬쩍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자님, 그러니까 시온 클라우젠 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으음?”
라이도에 이어서 세바스찬도 시온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히텐 변경백은 생각했다.
아들 녀석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아무래도 시온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