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05)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05화(105/439)
105―――――
흑염룡과 흑화, 그 사이의 어딘가
철컥, 철컥―.
리시키다의 칼집에서 검이 살짝 뽑혀졌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뭔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들고, 당장이라도 처벌하고 싶은데 바로 옆에 시온이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다는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흥.
인간 주제에 너무 시끄러워.”
너도 인간이야.
이 중2병 환자야.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은 아주 완벽하게 인간이라고.
시온은 절로 한숨이 푹푹 흘러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한편, 다칭 다크드래곤 트리샤에게 ‘시끄럽다.’ 라는 평을 들은 리시키다는 더더욱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쩍 시온을 바라보았다.
허락만 해주시면 저 건방진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모양.
하지만 시온은 고개를 저었다.
‘저거 중증이야.
중2병 초기 증세도 아니고 거의 말기 증세라고.’
진짜 자신이 무슨 흑염룡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
물론 트리샤가 무슨 정신 착란이나, 환상 따위에 빠진 것은 결코 아니다.
정신세계가 조금 특이한 것 일뿐, 스스로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다.
‘다만 그 컨셉질이 너무 과하다는 거지.’
정리하자면, 컨셉과 망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고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
한편, 드디오 마부석에 내려서서 마을로 들어섰던 김유현은 트리샤를 바라보며 이 녀석은 틀렸어, 라는 듯 고개를 휘휘 젓고 있었다.
그 역시 중2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대한민국의 청년이었다.
자신 앞에서 다크드래곤 어쩌고!
하는 트리샤를 보면서 그는 이건 상상 그 이상인데,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공자님.”
그리고 한편에서는 지미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서 사죄를 하는 중이었다.
“지미 페이커.”
“네, 넵!”
“네 동생이 정말 착하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 그랬던 것 같습니다.”
“네 눈에 보기에는 저게 착한 거냐?”
시온이 턱 끝으로 트리샤를 가리키자 자칭 다크드래곤이라는 여인은 바로 버럭 화를 내면서 아무리 귀족이라지만 예의가 없구나!
라고 헛소리를 하는 중이었다.
남작이나 자작도 아니고, 자그마치 변경백령의 후계자를 대하는데 전혀 두려움이 없는 모습.
리시키다는 물론이고 기사들의 표정도 점점 굳어가는 게 명확히 드러났다.
덕분에 지미는 다급하게 제 동생의 머리를 푹!
숙이며 입을 열었다.
“원래는 정말 착한 아이입니다!
그, 그냥 이런 놀이에 너무 심취하여 그런 것이니 공자님께서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딱 한 번만 넘어가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뭐, 뭐 하는 거야, 이 바보가!
놔!”
그 바보가 지금 네 목숨 구하고 있는 중이란다.
트리샤가 정확히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충 캐릭터를 보아하니 유일한 자신의 편이자 보호막인 지미가 사망한 후.
그리고 클라우젠 변경백령이라는 마지막 방패마저 불타 사라지고 무법지대가 된 이곳에서 어떤 고생을 했을 까 생각해보면 그녀가 그렇게 엄청난 증오심을 가지며 모든 것을 불태우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중2병 환자를 곁에 두고 싶지는 않아.
개쌉 에바라고.’
시온이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뱉는데, 옆에 후드를 뒤집어쓴 채 가만히 서서 트리샤를 응시하는 릴리트의 시선이 조금 묘했다.
마치 ‘내가 잘못 봤나?’ 싶은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릴리트의 반응을 시온도 눈치 챘는지 그는 잠깐 머리나 좀 식히겠다는 듯 집 밖으로 나섰다.
그 뒤로 릴리트가 조심스레 따라 나섰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시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평소의 그 야릇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낮게 가라앉은 릴리트의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것.
시온은 그런 여인의 반응에 장난기를 거두고는 듣고 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
부디 솔직히 대답해줘.
중요한 문제니까.
혹시 이곳 마을로 온 이유가 저 인간 남자의 여동생 때문이었던 거야?”
“···.”
그 순간, 시온은 자신이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단순히 여인의 질투만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것은 마치 선택지에 따라서 결말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상황과 같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한다면 당연히 네, 라고 대답해야겠지만···.’
때로는 진실보다는 거짓말이 훨씬 더 유용하기도 하다.
특히나 지금처럼 솔직히 말할 때 어떤 후폭풍이 몰아닥칠지 뻔히 보인다면 더더욱.
‘릴리트님이 트리샤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지.
그렇다는 건 내가 눈치 채지 못 한, 소설에서는 묘사되지 않던 뭔가가 있는 거라는 소리다.
그런데 그걸 지극히 평범한 내가 눈치 채는 건 상당히 어폐가 있지.
괜히 솔직하게 말했다가는 더 큰 의심을 받을 확률이 아주 높아.’
생각해보니 요즘 들어서 너무 솔직한 시온 클라우젠이었다.
악역이란 모름지기 구라와 구라로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가고 남에게 덤터기를 씌우며 자기 자신은 그 어떤 리스크도 짊어지지 않는 것인데 말이다.
결론을 내리자 시온은 바로 행동 개시에 들어갔다.
한숨을 내뱉고는, 짐짓 괴롭다는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연 것이다.
“릴리트님.”
“응?”
“제가 요즘 들어서 릴리트님께 소홀했고, 리아까지 들이면서 릴리트님한테 정말 죄송하다는 생각 많이 하고 있어요.
저를 그런 눈길로 봐도 싸다고 생각하고요.”
“어, 어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에요.
여자 관련 문제가 아니라, 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제가 구한 목숨이니 집까지 안전하게 바래다주는 것이 클라우젠의 후계자로써 응당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니까 너는 지금 생사람 잡고 있는 거다!
라는 말.
물론 시온도 릴리트가 이런 의심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은 추호도 안 한다.
분명 정말 진지하고 또 중요한 뭔가가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묻는 이유겠지.
하지만 원래 진지함을 박살내는 건 더 한 진지함이 아니라 예상치 못 한 사소함이다.
왜 부모님들한테 비오는 날 먼지가 날리도록 혼나는데 뭔가 묘한 부분에서 웃음이 터지면 혼이 나던 사람도, 혼을 내던 사람도 결국 풀어지지 않는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이 멍청이가!
내가 언제 질투했어?
네가 여자를 몇 명이나 곁에 두든 어차피 처음은 나고!
제일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는데!”
“그래도 릴리트님이 이렇게 의심하시고···.”
“아니야!
그런 이유 아니라고!
이 등신아!”
기껏 릴리트가 잡아둔 진지한 분위기는 다 흐트러졌다.
동시에 이쪽의 대답이 거짓말이라는 것도 완벽하게 가려졌으니, 이제 의심을 받을 이유도 없어졌다.
“하아.
진짜 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온을 흘긋거리는 릴리트가 ‘정말 모르는 모양이네.’ 라고 중얼거리자 시온은 속으로 야쓰!를 외치며 주먹을 쥐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거짓말은 나쁜 것이 아니다.
누가 봐도 뻔해보이는 거짓말, 성의없이 바로 들키는 거짓말이 나쁜 것이지.
“그런 거 아니야.
네가 그런 바보 같은 이유로 굳이 이런 곳에 왔다고 내가 생각했겠어?”
“저는 당연히 릴리트님이 여동생 이야기를 하기에 그런 이유인 줄 알았죠.”
“뭐라는 거야.
그거 때문이 아니야.
내가 저 인간 여자의 이야기를 한 이유는···.”
슬쩍 주변을 둘러본 릴리트는 혹 다른 누군가가 듣고 있지는 않을까 잔뜩 경계하며 슬쩍 시온의 옆으로 다가와서는 속삭였다.
“저 이상한 인간 말이야.
아무래도 ‘성흔’ 보유자 같아.”
성흔?
시온은 듣도보도 못한 전개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그런 단어가 소설에서 설명되었던 적이 없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비슷한 것조차 없는 것이 확실했다.
“성흔이라뇨?
그게 무슨···.”
“리아를 봐.
묘은족의 공주라고 하지만 그보다도 더 특이한 뭔가가 있잖아?”
“···번개의 선택을 받은 자.”
“그래.
그 잘난 천족들이 말하는, ‘신’ 이 존재했다는 증거 중 하나지.
그러면 그 증거들이 과연 수인들한테만 있을까?
당연히 다른 종족들에게도, 인간들에게도 있지 않겠어?”
그 말에 시온은 릴리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성흔이라고 하니 왜 다른 이도 아닌 ‘트리샤 페이커’ 가 칠익의 일원이 되었는지, 독자로써 이제야 얼추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시발!
작가 놈!
이런 설정을 짜놓고 있던 거였어?
성흔이라는 걸 박아두고서 그 보유자가 나중에 칠익이 되는 거였냐고!
염병, 이런 설정은 소설 중반부에서라도 좀 풀어야 할 거 아냐!
후반부까지 칠익들 등장 배경 하나 설명 안 해주고 부와와왘!
얘네 존나 셈!
김유현과도 한 따까리 쌉가능!
만 강조하고 앉아 있었냐고!
이런 우라질!’
다른 이도 아니고 트리샤 페이커에게 ‘성흔’ 이라는, 릴리트조차 저렇게 놀랄 뭔가가 떡하니 들어가서 자리하고 있다.
이 정도면 제아무리 눈치 제로, 어떤 머저리라도 눈치를 깔 만 하다.
소설 후반부의 난리통을 100퍼센트, 아니 1000퍼센트 책임지는 적들인 칠익.
그들의 초반부 등장 배경은 바로 저 성흔 보유의 유무라는 사실 말이다.
‘심지어 성흔.
이름부터 존나 불길해!’
속으로 그렇게 외치면서도 시온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여기서 흥분하면 기껏 거짓말을 친 자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성흔이 뭡니까?
저는 처음 듣는데.”
“당연히 처음 듣겠지.
인간들 입장에서는 처음 듣는 게 좋은 거야.
저게 인간들 몸에 드러난다는 건 천족의 재림이 머지않았다는 소리니까.”
“···천족이 재림하면 성흔 보유자들은 어떻게 되는데요?”
“나도 정확히는 알지 못 해.
왜냐하면 천족들이 진짜 재림했던 적은 없으니까.
성흔 보유자들이 나타나도 천족이 완벽히 재림하지 못 하면 결국 그저 흉한 상처밖에 되지 않아.”
“그래도 뭔가 아시는 게 있는 거 같은데요.”
시온의 계속되는 질문에 릴리트는 침음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마족들의 옛 고대 문헌에 따르면, 정말 천족 녀석들이 대륙에 나타나는 순간 성흔 보유자들 전원이 눈을 뜨고 나팔수가 된다고 적혀있어.
‘일곱 번의 뿔피리’ 기억하지?”
일곱 번의 뿔피리.
정신 나간 천족 놈들의 세계 정화 프로토콜 이름이었다.
“아무래도 그 뿔피리를 부는 선봉이 되는 것 같아.
정리하자면, 천족들과 요정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세상의 정화 작업을 앞장서서 하는 존재들이 되는 거지.
천족들은 그런 성흔 보유자들을 일곱 날개라고 부른다고 했어.”
“···.”
“물론 나도 모든 것을 확신할 수는 없어.
어찌 되었든 여태까지 그 뿔피리가 진짜로 울렸던 적은 없고, 천족들이 그렇게나 기다리는 진정한 의미의 일곱 날개가 등장하지도 않았으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고.”
아니, 확신할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트리샤를 포함한 성흔 보유자들이 천족들이 마침내 이 땅에 재림한 후, 멸망을 알리는 뿔피리를 불며 그 어떤 존재도 모두 공평하게 불태운다는 것.
시온은 이미 그 부분의 거의 대부분을 소설에서 똑똑히 봤고,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릴리트님은 그 성흔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죠?”
“다른 종족들은 몰라도 우리 마족들은 천족들의 냄새나 기운에 민감하잖아.
구역질 날 정도로 비리고 역한 냄새가 나는 그 비둘기 놈들.”
“···.”
“거기에 성흔은 천족의 재림 전까지는 단순한 증표에 불과해.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인간이, 나중에는 그 어떤 강자와도 능히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거야.”
리시키다와 기사들이 왜 트리샤를 보고도 강자라고 생각지 못 했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다.
성흔을 보유하고 있으나 천족의 재림 전까지는 극히 평범한 증표일 뿐.
결국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칠익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제거할까?
리시를 시키면 바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순간 고민한 시온이었지만,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만약 트리샤를 죽였는데 성흔이 없어지기는커녕 그대로 트리샤의 몸을 장악한다면?
무척이나 극적인 전개였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에 더해서, 그게 아니더라도 성흔이 다른 누군가에게 생겨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성흔이 애먼 놈한테로 옮겨간다면 지금처럼 가까이에서 살필 수도 없을 거야.
여차하면 다 잡은 원딜을 방생하는 선고충이 될 수도 있어.’
생각하자.
생각, 생각.
어떻게 해야 지금의 이 상황을 보다 더 이로운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
내게 이득이 되는 길은, 과연 어느 방향인가.
‘칠익들이 나타난 건 천족의 등장 이후.
전부가 천족들의 뜻에 따라 세상을 박살내겠다고 지랄들이었지.
특히 사익인 트리샤가 가장 심했고.
제 오빠를 죽인, 자신에게 비참한 삶을 선사한 이 빌어먹을 나라를 깨끗하게 태워버리겠다고···.’
···잠깐만.
시온의 머릿속에 뭔가가 섬전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성흔 보유자들은 천족이 나타나고 나서 그들의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어찌 되었든 인간일 때의 기억은 잘만 가지고 있고, 이후 각성하여 천족들의 진정한 일곱 날개가 되어서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행동한다.
시온은 증오스러운 것들, 미워하는 것들 모두를 싸그리 없애버리려고 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거 잘만 하면···.
킹갓제이 각인데?’
이이제이.
오랑캐는 오랑캐로 잡고, 불은 맞불로 잡으며.
닭둘기들은 흑화하지 않은 흑염룡으로 잡으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