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07)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07화(107/439)
107―――――
흑염룡과 흑화, 그 사이의 어딘가
견습기사, 혹은 종자라고도 불리는 스콰이어의 임무는 아주 다양하다.
자신이 모시는 기사의 갑옷과 무기를 손질하는 것부터 스스로가 견습기사 직을 수행하기 위해 각종 무술과 승마술을 배워야 했으며 말을 챙기는 잡일까지도 맡아야 했다.
원래라면 기사들끼리 제 아이를 맡아주는 것이 보통의 관례였지만, 리시키다는 누디아에서 투항한 기사라서 딱히 클라우젠 소속의 기사들과 그 정도의 유대감을 가지지는 못 했다.
그런 이유로 두 남매가 스콰이어가 되었다고는 해도 어린 소년 소녀가 아니라 다 큰 이들이, 그것도 일반 영지민이 스콰이어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니 지미와 트리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천운이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라는 것이 대부분의 성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었다.
‘으아아아아아!’
하지만, 트리샤는 이게 행운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기상!”
꿈만 같던 클라우젠 변경백의 성에 들어가고 정확히 사흘 후.
트리샤는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고함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단출한 복장에 허리에는 검을 차고 있는 여기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가, 갑자기 왜···.”
“해가 중천에 떴는데 뭐 하고 있지?
당장 훈련 준비 안 해?”
해가 중천에 떴다고?
트리샤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분명 해가 뜨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반의 반도 올라오지 않아서 어둑한 기운이 남아있는 새벽 시간.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하고 트리샤가 늦장을 부리는데 리시키다가 이마에 혈관 마크를 띄우고는 그대로 침대를 뒤집어엎었다.
“으아악?”
“기상이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무, 무슨 짓이야!
나는···.”
“첫 번째.
네 이름은 트리샤 페이커지 다크드래곤 따위가 아니다.
두 번째.
공자님께서 너를 내 스콰이어로 임명하셨으니 이제부터 너는 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내가 왜 당신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건데!”
“따르지 않는다면, 처벌할 수도 있으니까.”
스르릉―.
리시키다의 허리춤에서 섬뜩한 기운을 내뿜는 검이 반쯤 뽑혀져 나왔다.
그에 더해서 그녀가 슬쩍 기세를 내보이자 트리샤는 움찔 하고는 몸을 움츠렸다.
아무리 중2병, 흑염룡 신봉자라고 해도 칼에 찔리면 뒈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5분 주겠다.
연병장으로 집합해.
늦으면, 그 때는 네 그 다크드래곤이 강한지, 내 검이 강한지 몸소 알게 될 거야.”
최대한 트리샤에게는 지랄맞게 대하라는 시온의 명령을 차질 없이, 200퍼센트로 수행하고 있는 리시키다였다.
역시 참 기사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첫날부터 트리샤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원래라면 기본 훈련을 거치면서 체력을 기르고 이후 집중 훈련으로 들어가는 법인데, 리시키다는 의도적으로 트리샤에게만 시작부터 집중 훈련을 강요하며 그녀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거기에 남성 스콰이어와 여성 스콰이어의 임무가 조금 다르다는 핑계를 붙이며 두 남매를 떼어놓고는 지미에게는 상냥하게, 트리샤에게는 악랄하게 대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에 지쳐서야 되겠어?
다크드래곤이라는 별칭이 아깝구나!”
트리샤의 흑염룡을 잘근잘근 밟아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이딴 수준과 나약한 정신으로 오빠한테 빌붙어 있던 거냐!
나약한 쓰레기!”
인격 모독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망할 인간 여자!’
처음 며칠은 억울하고, 또 화가 나서 오기와 독기로 어떻게 버텨보려고 했다.
지금은 처음이니까 좀 헤매고 있지만 다크드래곤의 피를 이은 자신이라면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저 시끄러운 여기사의 콧대를 눌러줄 수 있을 거라고 여기면서.
하지만 리시키다는 그렇게 만만한 여인이 아니었다.
트리샤가 조금이라도 버티고, 또 성장하는 것 같으면 바로 엄청난 난관으로 내동댕이쳐서 자존심을 깡그리 짓뭉개버렸다.
동시에 지미의 훈련은 자신이 내는 테스트와 유사한 구조를 띄게 만들어서 상대적으로 지미가 트리샤보다 더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주인에, 그 기사다운 행동이라고 해야 할까.
‘끄으으윽!’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가 지나자 트리샤도 점점 지쳐갔다.
하루는 고사하고 한 시간, 아니 5분도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고 정말 미친 듯이 굴리는 여자.
여태 평범한 영지민으로 지내면서 오빠인 지미 페이커를 도와 집안일을 좀 하거나, 농지를 경작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 정도만 하던 그녀로써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훈련을 버틸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 훈련들과 리시키다보다도 트리샤를 더 괴롭게 만드는 것은, 쉬는 시간에 만나기만 하면 리시키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 지미 페이커.
바로 자신의 오빠라는 사람이었다.
“트리샤.
우리는 정말 엄청난 행운을 쥔 것 같아.
시온 공자님이 나를 구해주신 것만 해도 죽을 때까지 가지지 못할 행운이라고 여겼는데, 그런 훌륭한 기사님 밑에서 견습기사로서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니 말이야.”
“뭐?
훌륭하다고?”
“응.
리시키다 암셸 기사님.
아주 세세한 것부터 전체적인 것까지 어찌나 자세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는지, 나도 나중에 그런 기사가 되고 싶을 정도야.”
“···.”
자신이 가장 믿고 따르는 오빠가 그렇게 말을 하니 처음에는 내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 내지는 나중에는 나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단 버텨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리시키다는 트리샤를 미친 듯이 쪼아댔고 가차 없이 굴렸으며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강압적으로 대했다.
그런데 오빠라는 사람은 어떻게 된 것이 매일 볼 때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리시키다라는 악마 같은 여자를 칭찬만 하고 있으니 제아무리 오빠 제일이라는 트리샤라고 해도 반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리시키다님이랑 검술 훈련을 했는데 아직은 부족하다고 하지만 분명 성장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만!
이제 그만해!
지겨워!”
“어?”
“지겹다고!
그 여자 이야기, 그 잘난 여기사 이야기!
내 앞에서 그만 좀 하란 말이야!”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 찬 트리샤의 고성에 지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급히 입을 열었다.
“트리샤, 너 왜 그러는 거야?”
“훌륭해?
좋은 분?
나한테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아무 것도 모르고 어떻게 일주일이 훨씬 넘도록 그 여기사 칭찬만 하는데!
내 걱정은 안 되는 거야?
내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거냐고!”
지미는 당황한 시선으로 제 동생을 쳐다보다가 일단 사과의 말을 건넸다.
요즘 들어서 너무 기분 좋은 일만 생기다보니 아무래도 제 여동생의 기분을 미처 살피지 못 했던 것 같다.
미안하다고, 오빠가 잘못 했다고.
지미는 이유는 모른 채 일단 그렇게 사과를 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일이 리시키다와 제 동생 사이에 있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다음 날, 리시키다는 마치 둘의 상황을 뻔히 다 예상했다는 듯 갑자기 두 남매를 한 자리에 모아두고 훈련을 시작했다.
당연히 트리샤에게 쏟아지던 날 선 비난과 독설은 사라졌다.
대신 합당한 비판과 꾸지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누누이 경고했다, 트리샤!”
“으으윽!”
“네 오빠를 봐라.
여전히 안정적으로 방패를 들고 있다!
이건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싸워서 이길 의지, 내게 소중한 것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문제지!
방패 들어!”
트리샤는 전혀 알 수 없을 테지만, 그리고 지미도 모르겠지만.
리시키다는 의도적으로 트리샤에게는 어려운 길을 보여주고 지미에게는 쉬운 길을 알려주었다.
그런 이유로 학습 속도에서 차이가 나니 이렇게 둘이 모여서 같은 뭔가를 한다고 해도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지미 입장에서 보기에는 똑같은 스승을 두고도 영 따라오지 못 하는 제 못난 동생이 점점 부각되고 있는 중이었다.
“공자님께서는 특별히 너희 둘을 스콰이어로 받아주셨다.
이건 그 어떤 영지민도 누릴 수 없는 큰 혜택이자 선물이거늘!
왜 자꾸 늦장을 부리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그분께 누를 끼치려고 한단 말이더냐!”
거기에 은근슬쩍 시온의 이름을 넣으니 지미도 함부로 트리샤를 감쌀 수가 없었다.
자신과 동생을 생각해서 이렇게 특혜까지 누리게 해주었는데, 그만한 가치를 증명하지 못 한다면 당장 내쳐지는 것은 둘째 치고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심지어 기대를 걸고 있는 이가 다름 아닌 생명의 은인인데 말이다.
“봐.
봐!
오빠도 봤잖아.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거!
저 여자 이상해.
오빠한테만 잘 해주고!”
“···.”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어.
뭔가 치졸하고 더러운 생각을···.”
“트리샤.
그만해.”
그 모든 생각들이 합쳐져, 지미는 처음으로 제 동생에게 엄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뭐라고?”
“그만하라고 했어.
그만 칭얼대라고.
너도 나도 얘가 아니야.
난 성인이고, 너도 2년 후면 스무 살.
성인이라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언제까지 네 그 말도 안 되는 장단에 맞춰줄 수는 없다는 소리야.
우리는 누군가의 기대를 받았고, 그거에 부응해야 해.
불평불만으로 보낼 시간 따위는 없어.”
“내가 지금 아무 이유 없는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여?
그 여기사가···.”
“그만하라고 분명 말했어, 트리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지미가 소리쳤다.
난생 처음 보는 오빠의 날카로운 반응에 트리샤는 그저 ‘어?’ 하고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유 없는 불평불만.
그래, 그게 바로 이유 없는 불평불만이라는 거야.
오늘 네 모습을 봐.
기사님의 훈련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맞춰가지 못 했잖아.
2주가 훨씬 넘는 시간동안 한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그, 그건!”
“매번 기사님이 시키는 훈련이 힘들다, 고되다, 계속 뭐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더니 정작 네가 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거였니?
트리샤, 정신 차려.
언제까지고 네 장난을 받아줄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이 오빠는 전쟁에서 자칫하면 죽을 뻔 했어.
강해져야 해.
살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장난질을 한다고 나아지는 것이 없단 말이야!”
자신에게 잘 대해주고, 스스로도 잘 따르고 있던 이를 욕하는 동생에 대한 반감.
어릴 적부터 동생을 맡아서 키우고, 또 중2병 가득한 짓들을 감당하느라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
거기에 기대에 반드시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겹치니 지미도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심지어 단순히 화만 낸 것이 아니다.
여태까지 제 동생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감정들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분명 유일한 가족이고, 자신에게 소중하고, 또 전부를 내어줄 수도 있는 트리샤이지만.
영원히 함께 살 수는 없고, 언젠가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 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스스로가 강해지고, 또 말도 안 되는 장난은 이제 그만 둘 때니까.
“트리샤.
이 오빠도 사람이야.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어.
그리고 동시에 영원히 네 곁에 있을 수도 없어.
언제까지 그 장난을 받아줄 수 없다는 소리야.”
“그, 그런···.”
“나는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
공자님이 구해주신 이 목숨, 그 빚.
꼭 제대로 쓰이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 해.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분의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
너는 그럴 생각이 없다면, 지금 당장 그만 두도록 해.
그리고 앞으로 기사님 험담을 할 생각이라면, 더는 듣지 않을 거야.
네가 여태껏 얼마나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왔는지 내가 똑똑히 봤으니까.”
가장 믿고 의지했던 이가 갑작스레 자신을 밀쳐낸다.
여태 어떤 말을 해도, 무슨 장난을 쳐도 다 받아주었던 이가 더는 그런 일 없다고, 이제부터 달라져야만 한다고 스스로 거리를 둔다.
“···.”
어쩌면 트리샤 자신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다크드래곤 따위로 자신을 숨길 수는 없다고.
자신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제 오빠도 가정이라는 것을 꾸릴 테고, 그러면 자신은 지미의 곁을 떠나서 비로소 혼자가 되어 스스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다만, 그 때가 조금이라도 더 늦게 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더더욱 흑염룡을 외쳤던 것인데.
그러면서 조금씩 오빠와 멀어지기 위한 준비를 하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리시키다라는 이상한 여기사가 들러붙어서는 그런 시간조차 주지 않고 제 오빠를 빼앗아서는 멀리 떨어트렸다.
“···나빠.”
리시키다, 그 여기사가 미웠고 그리 녹록치만은 않은 현실도 미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미운 것은, 1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자신에게 웃어주고 잘 대해 주던.
고작 십 여일 만에 변해서는 큰소리를 내고, 화를 내며 자신을 닦달하는 오빠였다.
“다 꺼져.
필요 없어.”
트리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제 오빠에게 등을 돌리고서는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지미 역시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쉴 뿐 예전처럼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거나, 제 동생을 달래려고 하지는 않았다.
자신도, 그리고 여동생도.
이제는 현실을 마주하고 환상에서 벗어날 때였다.
―
공식적으로는 클라우젠의 견습기사가 되었기에 트리샤는 제한적이지만 성 내부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현재 그녀는 정원에 처박혀서는 훌쩍이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고작 2주만에 그 여기사한테 빠진 거야?
그런 거냐고···.”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여태 자신을 돌봐준 오빠이지 않냐고 이성이 소리치고 있음에도.
트리샤는 자꾸만 북받쳐 오르는 서운함과 배신감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긴 세월동안 내 편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내 편일 줄 알았던 이가 갑자기 변해버리니 충격도 컸고, 감정도 격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트리샤는 그렇게 정원 한 구석에 처량하게 쪼그리고 앉아서는 몇 십 분을 훌쩍이고 있었다.
“위대하신 다크드래곤이 왜 구석에서 울고 있을까.”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트리샤가 화들짝 놀라서는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무척이나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한 미청년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 시온 공자, 님.”
“무슨 일 있어?”
털썩―.
귀족 가문의 자제, 이 거대한 변경백령의 후계자답지 않게 정원 구석에 철퍼덕 앉아버리는 시온.
그 털털한 모습에 트리샤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이내 눈물을 아무렇게나 대충 닦고서는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냥 훈련이 좀 힘들어서 그랬을 뿐이야.
아, 아니.
뿐이에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네.
요즘 들어서 몇 번 지켜봤는데 꽤나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시온의 말에 트리샤가 슬쩍 그를 쳐다본다.
자신을 지켜봤다니?
그런 시선은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는데?
“트리샤 페이커.”
“네.”
“힘들지?”
갑작스러운 시온의 말에 트리샤는 무례인 줄 알면서도 두 눈만 깜빡이고 말았다.
사실 타이밍이 너무 절묘한 것이, 가장 믿고 의지했던 이가 자신을 내치고 나서 그 충격에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다가온 것이었다.
“트리샤.
내가 재미있는 거 알려줄까?
세상 많은 사람들이, 다들 한 번씩은 가슴 속에 다크드래곤 한 마리 정도는 품고 산다는 거 알아?”
“무, 무슨 말을···.”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니까.
그런데 그걸 세상이 몰라주니까, 나라는 사람을 힘들게만 하니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거야.
나는 대단한 존재라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거지.”
“···.”
“거기서 성공하는 사람은, 진짜 드래곤이 되는 거고 끝내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 한 사람은 다크드래곤으로 남는 거야.”
그렇게 말한 시온은 킥킥거리며 자신을 가리켰다.
“나도 한 때는 다크드래곤 어쩌고 했었어.”
“···정말요?”
“그래.
대단한 놈이라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녀석이라고.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더라.
뭔가를 해야만 했고, 또 증명해야 했지.
장난으로만, 환상으로만 남을 수는 없으니까.
나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존재니까.”
“···.”
“난 이만 가봐야겠다.
잘 이겨내리라 믿고 간다.”
자리에서 일어선 시온이 막 걸음을 옮기려다가 아, 하고 탄식을 내뱉는다.
그리고는 정원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혹시 앞으로도 힘들면 여기로 와.
가끔 가다가 다크드래곤이 지쳐서 앉아있으면 힘내라고 응원 정도는 해주고 갈 수 있어.”
“···핏.
그런 거 필요 없어, 요.”
“안 와도 좋고.”
그 말을 끝으로, 시온은 정원을 나섰다.
트리샤는 아닌 척 하면서도 그런 시온의 뒷모습을 몰래 살피고 있었다.
모두가 철없는 자신의 장난이라고 여기던 흑염룡을 조금이나마 진실되게 바라봐 준 남자였다.
“···.”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시온과 트리샤가 꽤나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던 장면을 리시키다가 전부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빠득―.
연기가 진심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