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0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08화(108/439)
108―――――
어셈블!
“콜록!
콜록!”
땅바닥을 구르며 먼지투성이가 된 트리샤가 신음을 내지른다.
복부를 움켜쥔 채 부들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꽤나 강하게 얻어맞은 모양.
예전이었다면 ‘아프다고!
이 빌어먹을 여자야!’ 라고 외쳤을 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트리샤는 이를 악문 채 비틀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바닥에서 나뒹굴던 방패를 집어 들고는 애써 자리를 지켰다.
“···여기까지 하겠다.”
그녀의 배를 강하게 올려쳤던 리시키다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트리샤는 후우, 하고 숨을 고르더니 복부에 받았던 충격이 꽤나 심했던 듯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리시키다는 여전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가 전장이었다면 살가죽이 뚫리고 내장들이 조각나서 눈앞에 뒹굴고 있을 거다.”
“···.”
“다크드래곤인지 뭔지가 거기서도 지켜줄지 모르겠군.”
목소리에 높낮이는 없지만, 확실히 트리샤를 도발하는 내용이었다.
그에 트리샤는 주먹을 강하게 쥐며 이를 악물었지만, 이전처럼 그것을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그 어떤 이득도 없다는 것을 이제 트리샤도 알고 있었다.
“···.”
불평불만 대신, 트리샤는 휙!
하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찌 보면 리시키다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 같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그냥 예의상 고개만 까딱인 것 같기도 했다.
트리샤가 휴식을 위해 걸음을 옮기는데, 반대편에서 다른 견습기사와 한 차례 대련을 펼치고 막 뒷정리를 하던 지미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
“···.”
지극히 사이가 좋았던 남매였지만, 그만큼 싸움으로 인한 반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록 둘은 대화 한 마디 없이 서로를 본 체 만 체 하며 지나칠 뿐이었다.
트리샤는 먼저 사과를 하자니 자존심이 걸려서 못 하는 중이었고, 지미는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라서 사과를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사실 이쯤 되면 트리샤가 먼저 사과를 하기도 했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을 받아주고 또 응원해주는 이는 오직 오빠 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이와 멀어지면 결국 손해를 보고, 외로워지는 쪽은 자신이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리시키다의 그 잘난 얼굴을 생각하며 검과 방패를 휘두르던 트리샤는 하루 일과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훈련 기구들을 정리하고는 정원으로 달려갔다.
“여어, 다크드래곤 아가씨.”
오늘도 정원 한 구석에서 자신일 기다리고 있는 시온이었다.
트리샤는 피어오르는 미소를 애써 숨긴 채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음을 늦추고는 시온이 가져온 의자에 앉았다.
“오늘도 영 엉망이네.
네 안의 다크드래곤이 오늘은 울부짖지 않디?”
“어쩌겠어요.
정말 울부짖었다가는 큰일 날 걸요?
그리고 그 잘난 여기사가 나를 엄청나게 굴리는데 일일이 반응하기도 지친다고요.”
“아아, 그러셔요?”
시온이 킥킥 거리며 대놓고 웃어댄다.
원래 상대가 그런 반응을 보이면 기분이 나빠야 정상이지만, 트리샤는 그냥 같이 웃을 뿐 딱히 기분이 나쁘다는 반응은 없었다.
시온을 처음 만나고서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남자가 자신을 놀리기 위한 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을 풀어주기 위해 장난을 치는 것임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쉽지, 쉬워.’
중2병, 내지는 흑염룡 따위의 것들은 결국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에서 발현된다.
하나는 정말 애새끼가 그냥 미쳐서 현실과 환상을 구분치 못하는 경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다는 욕구가 발현되며, 동시에 타인의 관심과 집중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다행히도 면밀히 살핀 결과, 트리샤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경우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녀석의 다크드래곤 어쩌고를 그저 철없는 숙녀의 장난질로 봤겠지.
하지만 중2병이야 말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데에 있어서 누구나 거쳐 가는 시기이거든.’
모두가 한 번씩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펼치기 마련이다.
그걸 어떤 이는 빨리 깨닫고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몇몇 이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믿으며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낸다고 믿는 관심과 집중에 어떤 이유를 만들고자 자신만의 흑염룡을 만들기 마련이다.
원래라면 너 또한 지극히 평범한 이라고 천천히 일깨워주며 스스로가 탈출하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다.
하지만 시온은, 트리샤를 굳이 그렇게 바꿀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은 보통 인간의 정신머리로는 절대 못 버티는 일이거든.’
소설 속 사익이었던 트리샤가 지미의 죽음과 세상에 대한 증오로 눈깔이 돌아가서 흑염룡마냥 세상을 불태웠다지만 여기서는 그녀의 눈을 가릴만한 그 어떤 장치도 없다.
여전히 중2병 환자, 철없는 여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해서 시온은 그 이유가 자신이 되기로 결정했다.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여인이니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감정을 이쪽이 완벽하게 잡아서 쥐고 있는 방법뿐이었다.
시온은 얌전히 리시키다의 온갖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척 하면서.
동시에 가끔 가다가 의미 없는 추임새나 맞장구도 쳐주면서 자신이 그녀에게 무척이나 집중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확실히 취해 보였다.
동시에 그녀가 제 오빠에게 가장 받고 싶었을 위로와 응원을 간간이 섞어서 내보냈다.
“리시키다 경이 매서운 면이 있기는 하지.”
“매서운 정도가 아니라고요.”
“그러면 불러서 혼이라도 내줘?
내 호위 기사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시온의 말에 트리샤는 반사적으로 ‘네!’ 라고 대답하려고 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조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됐어요.
자존심 상하게.
내가 버티고 말지, 뭐.”
“기사 다 됐네.
당장 내 호위 기사로도 써도 무방하겠는데?”
여전히 놀리는 것 같은 말이었지만, 실상은 그녀를 인정한다는 내용의 말이었다.
그걸 눈치 챈 트리샤는 살짝 놀란 눈으로 시온을 바라보았다.
여태 자신의 오빠인 지미를 빼고는 이렇게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는 드물었다.
마을 사람들도 애써 웃곤 했지만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본심이 다 드러났었으니까.
그런데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이 귀족은 딱히 그러는 모습이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의 흑역사를 조금씩이나마 말해주면서 ‘나도 한 때는 다크드래곤 수십 마리 가슴 속에 품고 다녔다.’ 라는 말로 우울해져 있던 자신에게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딱히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 하지만 그 평범한 대화에서 그녀는 비로소 다크드래곤이 아닌 진짜 트리샤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트리샤는 훈련이 끝나면 매일 같이 정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또 가끔씩 위로와 응원을 해주는 아름답고 멋진 귀족 청년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어쩌면 이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상상도 품으면서 말이다.
천천히, 조금씩 호감과 집착의 대상이 옮겨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스콰이어 훈련을 받기 시작한 지 정확히 한 달이 되던 시점.
즉 시온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2주가 지난 때에, 그녀는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장면을 목도하고 말았다.
원래는 자신이 앉아있어야 할 자리에는 그렇게도 싫어하던 여기사, 리시키다가 앉아있었고 그 옆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시온이 자리하고 있었다.
“··· ···.”
“··· ···.”
먼발치에서 보기만 했기에,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리시키다와 시온이 개인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장면을 눈에 담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트리샤는 그대로 제 방으로 돌아가서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느라 고생했다.
자신에게서 오빠를 빼앗아가고 온갖 모멸감을 들게 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새로 얻은 인연까지 저 여기사가 탐내고 있다.
가족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자신에게 호감을 드러내준 이를, 또 빼앗아가려고 한다!
‘아니야.
아닐 거야.’
간신히 얻은 또 다른 도피처이자, 위로해주는 이였고 응원의 장소였다.
오직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던 성역.
그곳이 또 침범 당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살심이 미친 듯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그 격렬한 감정에 등판이 간질거리고, 분노로 온 몸이 떨려왔다.
‘···아니, 아니야.
그냥, 그냥 잠깐 이야기만 나눈 것일 수도 있잖아?’
생각해보면 리시키다라는 그 여기사는 시온의 호위 기사라고 했다.
그러니까 둘이 같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더해서, 자신은 그 귀족 청년과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
아무 일도 아닐 거야.
트리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구 뒤집히고 있던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러자 그녀가 미처 느끼지 못 한 사이에 등에서 붉은 빛이 몇 번 더 번뜩이다가 사라졌다.
다음 날.
훈련을 마친 트리샤는 다시 정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항상 그러했듯, 시온 클라우젠을 기다렸다.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취침 시간이 다 되도록 트리샤는 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그를 기다렸지만, 결국 그녀가 기다리던 상대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트리샤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으며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여태 자신의 편이었던 가족을 빼앗아간 것도 모자라서, 그 어떤 관계가 아님에도 자신을 믿어주고 응원해주며 조금씩이나마 세상으로 데리고 나오던 이마저 빼앗았다.
마침내 더는 기다려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트리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거친 걸음걸이로 제 방을 향해 돌아갔다.
―
쿵!
쿠당탕!―
리시키다의 쉴드 차징에 트리샤는 그대로 붕 떠서는 몇 미터 뒤로 날아가 엎어졌다.
또 다시 먼지투성이가 될 정도로 꼴사나운 상태가 되었지만, 그녀는 이전처럼 불평이나 불만을 내뱉지 않았다.
그저 무미건조한 눈동자로 리시키다를 응시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설 뿐이었다.
“이제야 조금은 견습기사답군.
전장에서 굴러도 한 10분은 살아남을 수 있겠어.”
리시키다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트리샤를 향한 인정의 말.
하지만 트리샤는 그저 고개만 까딱일 뿐 딱히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초 군사훈련이 마무리되기 까지 하루만을 남긴 상황에서, 트리샤는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그렇게나 의지했던 지미 페이커가 제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음에도, 그녀는 애써 못 들은 척 지나치고 말았다.
트리샤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하겠지만, 은연중에 자신의 오빠가 자신을 배신하고 그 여기사한테 빠졌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정말 힘들 때 오빠는 내 곁에 없었잖아.
그 여기사의 편을 들고 있었을 뿐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트리샤는 정원에 또 와있었다.
항상 시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정원의 그 구석으로,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왜 이리 힘이 없어.
또 대차게 혼났구만?”
평소와 다름없는, 지극히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트리샤는 허둥지둥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전과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 시온님.”
“뭐야.
갑자기 왜 그런 반응이냐?
오늘은 감성이 풍부해진 다크드래곤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온의 표정에는 트리샤를 걱정하는 기운이 가득했다.
트리샤는 저도 모르게 어제 왜 나오지 않았냐는 말을 하려고 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유를 물었다가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대답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대신 트리샤는 애써 다른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일부러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 말이다.
“내일이 마지막이에요.
기초 군사훈련이 마무리되는 날.
그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견습기사가 갖춰야 할 덕목에 배운다나.
하, 하하.
그 정도 예절이나 승마술 따위 단박에···.”
말을 하다 말고 트리샤가 입을 다물었다.
항상 자신의 말을 경청하며 이따금 맞장구를 쳐주던 시온이 오늘따라 유독 조용함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트리샤.”
“나 무조건 기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그 여기사의 콧대를 눌러주는 게···.”
“트리샤 페이커.”
시온의 부름에 트리샤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두 눈을 감았다.
뻔하다.
너무 뻔하다.
무슨 말이 나올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한동안은 나 이제 여기 못 온다.”
“···왜요?”
꽉 막힌 목소리로 트리샤가 그렇게 질문하자 시온은 가벼운 한숨을 내뱉고는 애써 뭔가를 숨기려는 기색이 확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일이 좀 있어.
아무튼 내가 혹 네 훈련에 방해가 되었다면 미안했다.
네가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견습기사가 될 때까지 나도 뒤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건 잊지 말고.”
트리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했다.
그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시온을 바라볼 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시온이 먼저 자리를 나섰음에도 그녀는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네 훈련에 방해가 되었다면 미안했다.’
시온이 한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자신이 그에게 훈련이 방해된다고 장난삼아 말이라도 한 적이 있나?
아니다.
결코 아니다.
역으로 시온이 트리샤 자신에게 ‘내가 네 훈련 방해하고 있는 거 아니냐?’ 라는 투의 질문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남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건 하나를 의미했다.
‘누군가가, 누군가가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거야.’
그런 생각이 든 시점에서, 트리샤는 이미 한 여인을 낙점하고 있었다.
리시키다 암셸, 그래.
그녀가 확실하다.
그녀가 또 자신에게서 뭔가를 빼앗아 간 것이다.
트리샤는 타오르는 분노를 어떻게든 숨기려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자신은 어느새 기초 군사훈련 마지막의 일환으로 성 외부의 너른 평야에 무장을 한 채 서있었다.
“정신을 놓은 건가, 트리샤?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긴장이 풀린 건 아니리라 믿겠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몸으로 부딪쳤다.
훈련용 검을 휘두르고, 방패로 내려치고, 모든 수를 동원했다.
리시키다 암셸.
저 여기사를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때리기 위해서.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저 여자도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두 여인 사이의 실력 차는 너무나도 컸고, 그건 고작 한 달의 기간으로 줄일 수 있는 간단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일곱 번째로 바닥에 나가떨어진 트리샤.
그럼에도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한 건가?
아니면 내게 할 말이 있는 건가.”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왜 내게서 빼앗아 가는 거야?”
“뭐라?”
“내겐 그게 전부인데.
아무것도 없는 내게 그나마 있던 것이었는데.
당신이 전부 빼앗아갔어.
고작 말 몇 번으로, 행동 몇 번으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리시키다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무엇을 빼앗았다는 것인가.
자신은 그저 명령대로 따랐을 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다면, 리시키다는 이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하나 말해주마.
내가 빼앗은 것이 아니라 네가 빼앗긴 거다.
힘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아무 것도 없어서 당연히 빼앗긴 것이지.
그게 이 세상의 법칙이야.
힘이 없으면 당해야 한다.”
“그래?
하, 하하.
하하하···.
그래, 힘이 없으면 전부 빼앗긴다.
빼앗긴다라···.”
질겅질겅―.
마차 안에 숨은 채로, 시온은 육포를 연신 질겅거리며 리시키다와 트리샤의 대혈전을 관람하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가는 중이었다.
트리샤에게서 지미를 빼앗고, 새로이 다가와준 자신도 빼앗아간 대악당.
리시키다 암셸.
그건 모두 자신이 준비하고 계획한 연극의 일부이자 배역일 뿐이었다.
‘물론 도중에 리시가 너무 험하게 굴려서 왜 그러나 싶긴 했지.’
아무튼 트리샤와 지미 남매 간의 사이를 뒤틀리게 하고 감정선이 마구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 사이에 자신이 끼어들어 그녀의 빈틈을 파고들었고 막 자리를 잡아가던 와중에 또 다시 누군가에게 강제로 빼앗기는 그림이 되게 만들었다.
자신에게서 오빠를 빼앗아간 리시키다가 이번에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그림말이다.
‘솔직히 양심이 찔리는 짓이긴 해서 가슴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뭐 어떻게 하냐.
이대로 영원히 중2병 캐릭터, 큭큭대기만 하는 흑염룡으로 남을 수는 없잖냐.
최소한 불꽃 정도는 뿜어대는 진짜 흑염룡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슬슬 자신이 나서는 타이밍을 잡으려던 시온이었다.
적당한 때에 나서서 리시키다를 말리고, 트리샤를 건지면 그녀에게서 시온을 되찾았다는 생각과 더불어 다시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강렬한 결심을 가질 테니까.
파스스스스!
우우웅!―
‘···그런데, 뭔가 이상하네?’
갑자기 트리샤의 등 뒤에서 붉은 빛무리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그 빛무리들이 점점 형태를 갖추며 그녀의 등 뒤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무슨 징그러운 촉수 괴물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아하니 초록색의 가지에 살벌한 가시가 돋친 형태, 거대한 가시덩굴이었다.
‘어?
어어?’
···시펄?
내 계획에 이런 그림은 없었는데?
시온이 어버버 거리는 사이, 가시덩굴의 형태를 지닌 채로 붉은 빛을 토해내던 빛무리가 다시금 트리샤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팔, 다리, 목, 얼굴까지 그 덩굴과 같은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힘으로 빼앗으라고.
응, 좋아.
그렇게 해줄게.
나도 다 빼앗아주겠어.”
여인의 두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진다.
흐릿하게 변한 두 눈에서는 섬뜩한 기운이 번뜩였고, 양 손에서는 시뻘건 불길과 보고만 있어도 소름이 절로 돋는 벼락이 뭉쳐들었다.
‘좆됐다.’
시온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불길과 벼락이 순식간에 리시키다에게로 짓이겨들었다.
제아무리 상급 기사라고 해도 저만한 일격을 상대로 아무런 피해 없이 방어를 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리시키다 역시 본능적으로 마나를 최대한으로 끌어내면서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임을, 트리샤의 돌변한 모습을 바라보며 직감했다.
아니, 역부족을 떠나서 이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녹아버릴 수도 있었다.
“아.”
리시키다의 입에서 좋지 않은 미래를 직감한 탄식이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피이이잉―.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화염구가 날아들어서는 트리샤가 쏘아보낸 불길과 벼락에 그대로 적중했다.
물론 그 힘이나 파괴력이 상당히 부족한 건 사실이었지만, 어느 정도 상쇄가 되긴 했고 그 틈을 타서 은빛 머리의 여인이 거대한 방벽을 둘러치고 그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동시에 타타탓!
소리를 내며 옅은 푸른 머리의 고양이 여인이 트리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옆구리를 시원하게 걷어차며, 이 이상의 공격을 더는 할 수 없도록 만드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아슬아슬했네.”
“리시!
괜찮나요?”
“냐오옹!”
지옥 한 가운데에서 구원의 빛줄기가 들이친다면 바로 이런 느낌일 것이다.
검은 뿔이 인상적인 무척이나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다급히 달려온 마법사 복장의 또 다른 여인이 리시키다의 상태를 살핀다.
그 옆으로 폴짝거리며 뛰어온 여인은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는 트리샤를 매서운 눈길로 살피며 ‘하아아악!’ 하고 경계심 가득한 하악질을 해 보인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시온은 마차 안에 숨어서 손을 번쩍 들며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여인네들!
어셈블!’
―――――――작품 후기―――――――
선작 만 건에 거의 다 왔네요···.!
추천 멈추지 말고 달려요, 달려!
어셈블!
구와아아앜RRRRRRRRRRR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