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11)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11화(111/439)
111―――――
어셈블!
뭔가 길고 길었던 악몽을 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게 악몽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행복했던 꿈같기도 하다.
사방이 나를 경계하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길이었는데, 한 명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문득 눈꺼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트리샤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에 억지로 힘을 줘서 일어서려고 애썼다.
하지만 다리에도, 팔에도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에 물에서 놀다가 빠져 죽을 뻔 했을 때, 그리고 지미가 구해주었을 때.
그 때도 이런 반응이었다.
축 늘어져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순간이.
“흐으으···.”
뭔가 말을 해보고 싶은데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조차, 심지어 혀조차도 움직일 수가 없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내가 왜 이러는 거지?
도대체, 왜, 무슨···.
“일어났냐.
다크드래곤?”
자신의 오빠, 지미인가?
아니,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장난스러운 목소리다.
낯선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생각해보면 익숙한 것 같기도 하다.
트리샤는 데구르르 하고 눈동자를 굴려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곧, 자신의 옆에 앉아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온님.”
“이제 정신이 좀 드나 보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뭐긴 뭐겠어.
네 안의 다크드래곤이 크와아!
하고 울부짖은 거지.
네가 저번에 나한테 말하던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장난스레 말하고는 있지만, 정작 입이나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다른 건 몰라도 상대의 감정을 읽는 건 꽤나 자신이 있었든 트리샤답게 곧 그녀는 시온의 본심이 장난질이나 치려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뭔가가 찌릿 하고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엄청난 격통이 몰려와서 얼굴을 찡그린 트리샤.
하지만 그녀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떠올리려 애썼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자신은 침대 위에 누워있고 시온이 옆에 앉아있는 것인지.
“···하하하.”
그리고 모든 것을 기억해낸 듯, 잠시 후 트리샤는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힘없이 웃어대던 그녀는 숨을 가다듬고는 슬며시 입을 열었다.
“진짜였네요.”
“뭐가.”
“내 안의 다크드래곤.
그냥 헛소리 좀 한 거였는데, 진짜였어.”
“내가 말하지 않았나?
다들 가슴 속에 다크드래곤 하나쯤은···.”
“아뇨.
그런 거 말고요.
내 안에 있는 괴물 말이에요.”
이성이 날아가기는 했었지만, 아예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 트리샤가 기억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트리샤의 반응에 시온은 가벼운 한숨을 내뱉었다.
“그, 그 여기사는 어떻게 되었어요?”
“리시?”
“리시, 리시키다 암셸.
그 사람이요.
그 사람은···.”
“죽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래?”
“네?”
“네 것을 빼앗았다고 했잖아.
그래서 네가 죽였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냐고.”
시온의 질문에 트리샤는 가슴이 철렁했다.
여태 자신이 이상한 언행을 하기는 했었지만, 누군가를 정말 죽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이 누군가를 해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점은, 시온의 입에서 리시키다라는 그 여기사가 ‘죽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잠깐이었지만 스스로가 즐겁다고 느낀 것이었다.
자신의 것을 욕심내고 빼앗으려하던 존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정말 내가 사람을 해쳤나요?”
“다행히도 그건 아니야.
네가 너 스스로를 괴물이라 하던 것처럼, 내 주변에도 그만한 괴물 같은 이가 여럿 있거든.
쉽게 죽어줄 이들은 결코 아니지.”
“다행, 정말 다행이네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시온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트리샤는 화들짝 놀라서는 그를 바라보았다.
“네게서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으려고 하는 놈들.
아니, 빼앗아서 차라리 가지고 있으면 다행이지.
뭐 좋다고 그것들을 전부 불길에 내던지려고 하는 것일까.
아아, 혹시 네가 아예 가지지 못 하게 영원히 없애려는 것일 수도 있겠어.
그래, 그게 확실해.”
“그, 그게 무슨 말···.”
“트리샤.
나와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랑, 나를 죽여서 아예 불태우려고 하는 자.
둘 중 누가 더 나쁜 놈일까?”
“누, 누가 시온님을 누가 죽인다고 그래요!
어떤 인간이···.”
“대답해.
누가 더 나쁜 놈이지?”
그야 당연한 대답이었다.
인형을 빼앗아서 자기가 가지고 노는 놈도 나쁘지만, 그보다 더 나쁜 놈은 그 인형을 불에 집어던지고 낄낄대는 병신들이었다.
“그야 당연히, 당연히 내게 소중한 것들을 전부 불태우려는 놈들···.”
“만약에 말이야.
그런 놈들이 나를 불태우려 한다면 어떻게 할래?”
순간, 시온은 바로 앞에 찬란하게 타오르는 유성이 떨어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바로 직전까지도 자신이 벌였던 일, 그리고 도대체 자신은 무엇인지 고민에 빠져서 흔들리던 주황빛의 눈동자가 거세게 일렁이고 있었다.
“···죽일 거야.”
와, 시펄.
존나 살벌하네.
남자의 자존심을 와작 하고 갉아먹는 말이긴 했지만, 진짜 지릴 뻔 했다.
천족들이 이 땅에 등장해야 비로소 제대로 운용할 수 있다는 성흔.
그게 현재는 트리샤의 감정 변화에 따라 마구 소용돌이치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지미가 죽고 혼자 남아서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비뚤어진 마음에 천족의 재림으로 인해 성흔이 완전 발동되면서 그야말로 흑화한 흑염룡이 탄생한 꼴이 되었던 건가.’
정확히 그녀가 어떻게 그런 똘끼 충만한 사익이 되었는지, 자세한 건 알 수가 없었다.
소설 중반부에서 튀어나온 이들이라면 또 모를까, 칠익은 자신이 읽던 소설이 내리막길을 걸을 때 갑작스레 튀어나온 캐릭터들이었다.
빌드업도, 짜임새 있는 설정도 없는 녀석들.
그래서 더더욱 문제였다.
이렇게 아주 조그마한 틈을 헤집고 들어가서 단 몇 번의 행동으로도 뒤틀린 결과를 만들 수도 있고, 그 어떤 방법을 써도 바꿀 수 없는 이들일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트리샤.
진정해.”
시온의 말에 갑자기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여인이 휙!
하고 고개를 돌린다.
당장 두 눈에서 레이저 빔이라도 쏠 것 같은 분위기에 시온은 ‘김유현을 또 불러야 하는 건 아니겠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트리샤의 행동을 예의주시했다.
“절대 안 뺏길 거야.”
“그래,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하자.”
“지미 오빠는 그래, 가족이니까 이해할 수 있어요.
오빠도 오빠의 삶을 찾아야죠.
이미 알고 있었어요.
언젠가는 그리 해야 한다는 걸.
인간으로써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선이니까.”
덥석―.
갑자기 트리샤가 자신의 손을 낚아채자 시온은 뭐하냐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시온은 트리샤의 변화를 눈치 챌 수 있었다.
여인의 몸에 새겨져 있던 가시덩굴 문양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린다.
더 소름 끼치는 건, 그 덩굴들이 점점 움직여서는 팔뚝에서 손등으로, 다시 손가락을 거쳐서는 기어코 자신의 손목에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온님은 다르잖아요.
내 것이, 오직 나만의 것이 될 수 있잖아요?
완벽하게, 아주 완벽하게.
영원히 나만 바라봐주고, 영원히 나만 응원해주고, 영원히 나만 칭찬해주며 세상이 끝나는 그 날 까지 나만을 위해서 옆에 있을 수 있어요.”
“트, 트리샤?
일단 조금 진정하는 편이···.”
“말했잖아요.
끝에 이르면 시온님을 가질 수 있다고.
정말 그렇다면, 그냥 지금부터 가질래.
누구에게도 빼앗길 걱정 없이, 지금부터 내가 가지고서 꽉 껴안고 있으면 되잖아.”
고작 해봐야 18살한테 손목을 붙잡힌 수준이다.
원래라면 아무 어려움 없이 뿌리칠 수 있어야 정상이다.
마나가 없다고 해도 그 정도의 완력까지 없는 한심한 몸뚱이는 아니니까.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놈은 검이라도 좀 다뤄보겠다고 나름 노력했던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런 우라질?’
트리샤의 마음을 완벽하게 박살낸 후 역으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가장 소중히 여길 만한 꽃이 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문제는, 다른 이들은 그 꽃을 소중히 여기는 수준에서 그쳤다면 그녀는 더 나아가서 집착과 소유욕에 엄청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만져보지도, 향기를 맡지도, 하다못해 구경도 못 하게 꼭꼭 숨겨두고는 오직 자신만이 만져보고 향기를 맡으며 뚫어지도록 쳐다본다.
‘이건 조금 위험해.
조금··· 아니, 조금이 아니지.
일단 존나 위험하다고!’
집착의 대상을 시온 자신에게로 옮겨오는 것은 처음부터 계획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성흔의 힘이 일정 부분 발휘되어 트리샤와 사익의 그 모호한 경계 부근에 걸친 여인이 집착을 한다고는 미처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가시덩굴의 문양이 점점 자신의 팔뚝에도 새겨진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날 것 같은데, 트리샤가 제 팔을 꽉 붙들고는 전혀 놓을 생각을 안 하니 시온으로써는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원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뚫어줄 인맥들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쯤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덥썩―.
찰랑거리는 은발과 함께, 한 여인의 손이 트리샤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고는 당장이라도 그 손목을 부러트릴 듯 강하게 옥죄면서 송곳니를 드러낸다.
“어디 비둘기 똥이나 치울 년이 자꾸만 내 남자를 탐내는 걸까.
듣는 것도 한계가 있고 장난을 받아주는 것도 끝이 있는 법이란다.”
“당신.”
파사사!
마치 꽃잎이 한 번에 떨어지는 듯 한 소리와 함께, 시온의 팔을 타고 올라오던 가시덩굴들이 트리샤의 몸으로 사라졌다.
릴리트는 눈앞의 한줄기 불꽃과도 같은 여인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까불지 마.
비록 마나가 없어서 끝을 내지는 못 했지만, 여전히 너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참수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마족 따위가 왜 인간 옆에 붙어있는 거지?”
트리샤는 분명 평범한 인간, 하지만 이제는 마족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성흔이 비록 불안정하게 발현되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그 흔적이 빛을 발하기는 했다.
본래의 트리샤라는 인격에 세상을 불태울 나팔수가 얹힌 격이니 뭔가 더더욱 불안정하게 짬뽕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뭐야, 그 짧은 사이에 성흔이랑 조금이나마 동기화가 된 거야?
이야, 무슨 이런 괴물이 다 있을까?
다크드래곤 하더니 정말 괴물이 되어 버렸네?”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선택한 거야.
내 건 아무한테도 안 줘.
절대 빼앗기지 않을 거야.”
“꾸엑.”
트리샤가 시온을 잡아당겨서는 제 품으로 끌어안으려고 한다.
하지만 곧 그녀의 행동은 뒤에서 시온을 잡아챈 리시키다에 의해 저지되었다.
“···너.”
“주인님은 독점할 수 없습니다.
그게 약속한 부분이에요.”
“무슨 헛소리를···.”
“놓아요, 이 팔!”
“냐앙!”
어느 틈에 전부 들이닥친 것인지, 루시아와 리아까지 합세해서 트리샤의 팔을 붙잡고는 시온을 떨어트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트리샤도 더는 버틸 수 없었는지 결국 시온의 손목을 놓고는 활활 불타오르는 눈길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천족이 대륙 위에 재림하지 않는 한 완벽하게 성흔의 힘을 다룰 수 없어 이들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장이라도 전부를 치워내고 시온을 독점하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시온.
넌 나가 있어.”
“예?
어, 하지만 릴리트님···.”
“뒈지기 싫으면.”
상당히 날이 선 목소리에 시온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혹 트리샤가 자신을 붙잡으면 어찌 할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달칵―.
“하이고.”
문을 닫고 한숨을 내뱉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나서 고개를 돌려본 시온.
그리고 곧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팔짱을 끼고 있는 김유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래의 세계관 최강자를 바라보던 시온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입을 열고 말았다.
“김유현.”
“네, 시온 공자.”
“···혹시 마나 고자도 강해질 수 있는 법 없냐?”
“예?”
“아니, 아니다.”
시온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마 김유현 성격상 바로 ‘네,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거나, 혹은 있다고 해도 ‘저와 같은 강자로 만들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라고 팩트로 뼈를 후려칠 놈이었다.
‘그리고 김유현은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을 싸워서 적을 쓰러트리는 방법으로 알아들을 확률이 높아.
저 놈은 이기면 된다는 마인드로 사는 놈이니까.’
시온 입장에서는 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았다.
오늘 일로 얻은 교훈인데, 공격은 몰라도 최소한의 방어 정도는 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나를 아예 다루지 못 하는 최악의 몸뚱이, 릴리트의 말을 빌리자면 말 그대로 마나 고자.
하지만 불치병에 걸렸다고 해서 그 다음 날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최소한으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치료법은 어디나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검을 쓸 수 없다면, 방패를 들면 그만이야.’
어차피 검으로 활약해줄 인물들은 많다.
그렇다면 그 자신은 방패가 되어서 일단 살 길부터 강구하면 될 것이다.
아무리 검이 좋다고 해도, 몸이 죽어버리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작품 후기―――――――
선작 만 건 기념 연참 버스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