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12)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12화(112/439)
112―――――
어셈블!
달칵―.
시온을 내보낸 후, 트리샤의 표정이 순식간에 괴기스럽게 변했다.
당장이라도 방 밖으로 나간 남자를 따라가고 싶어 안달이 나서 죽을 것 같은데, 이상한 여인들이 모여들어서는 자신을 붙잡고 있으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죽일까?’
성흔이 보유하고 있던 그 불꽃이 트리샤의 인격에 옮겨 붙으니 더더욱 거대한 화마가 되었다.
활활 타오르는 것이 당장이라도 그녀 자체가 불벼락이 되어서는 온 세상으로 번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집단의 수장은 서큐버스 퀸.
이성을 가지고 노는 것만큼이나,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도 일가견이 있는 존재였다.
“지금 여기서 난리를 치면,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겠지.
그런데 만약 그 죽는 쪽에 시온이 들어간다면 너는 어떻게 할래?”
릴리트의 말에 트리샤의 몸이 움찔, 하고 떨렸다.
자신에게서 시온을 빼앗아 가려는 그 어떤 것도 죽일 수 있는 그녀였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가 시온을 죽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으니까, 애초에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자신은 그를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지 부숴버리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말이다.
“개소리 말아, 마족.”
“시온이 마나를 다루지 못 한다는 건 너도 어렴풋이 느꼈을 거 아니야.
미약하지만 성흔을 다루는 인간의 아이야.”
“···.”
“그 남자 앞에서 힘자랑 하는 건 네 자유인데, 그러다가 그 남자 털끝 하나라도 다치게 만든다면 그 때는 이 언니, 정말 미쳐서 꼭지가 돌아버릴 수도 있거든?”
그 말에 트리샤는 살짝 긴장한 기색을 드러냈다.
상급 기사, 리시키다.
강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대적 가능한 상대다.
그 옆에 서있는 마법사 여인.
마나는 분명 강렬하지만 신체적 능력이 별로이니 조금만 상대해주면 알아서 요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 고양이는 조금 껄끄럽겠지만 그래도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앞에 서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저 마족 여인은 달랐다.
‘강해.’
제 안에 잠들어있는 성흔이 섬뜩한 경고를 보내왔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저 여인과 다시 맞붙는다면, 그 때는 정말 목이 잘릴 것이라고.
정말 승부를 보고 싶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트리샤는 성흔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녀와 잠깐이지만 하나가 되는 순간, 천족들이 이 땅에 내려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단편적으로나마 두 눈으로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닥쳐.
넌 나와 원하는 바가 다르잖아?
너는 새로운 세상을 원하지만 난 이 세상을 원해.
시온님이 없는 새롭고 희망찬 세상 따위는 관심 없어.
시온님이 있다면 그 어떤 절망스럽고 더러운 세상이라도 좋아.
그걸 기어코 너희들이 불태우겠다고 지껄인다면, 나는 이 힘으로 그 불에 미친놈들을 모조리 태워 죽일 거야.’
화르륵―.
트리샤의 속마음에 불꽃과 벼락이 답한다.
자신들이 그들의 나팔이자 선봉임은 분명하다.
그래, 그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우리들은 기생하는 쓰레기 따위가 아닌, 서로 존중하며 공생하는 존재.
네가 원한다면 불태우고, 원하지 않는다면 다만 지켜볼 뿐이다.
‘안 믿어.
너희는 내 세상을, 시온님와 오빠가 있는 이 세상을 불태울 생각이잖아.
그 전에 잘나신 천족년놈들을 내가 먼저 다 불태워줄게.’
그에 다시금 불꽃과 벼락이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그리 하라고.
그것이 천족들의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뭐하니?
너 엄청 기분 나쁘게 노려보는 것 같다?”
릴리트의 가느다랗고 매끄러운 손가락이 트리샤의 이마를 쿡쿡 찔러온다.
그에 트리샤는 주황빛 눈동자에 살기를 번들거리며 릴리트를 노려보았지만, 딱히 무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머.
이 녀석 겁먹었네?
우후후!
그래, 아무리 성흔이 있다고 해도 결국 인간 몸에 깃든 증표 수준인데 말해 무엇 하겠니.”
“···시끄러워.
그리고 당신 사정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는데.”
“뭐?”
“마나.
거의 없잖아?”
날카로운 경고에 릴리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애써 여유로운 척 하고 있었는데, 단박에 비밀이 드러나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피차일반인데 자극하는 건 그만 둬.
나도 시온님 얼굴을 봐서라도 일단은 참을 테니까.”
“···아하하.
우리 꼬맹이가 너무 나대는데.
그냥 지금 여기서 끝장을 볼까?”
시온 옆에 수많은 여인이 있음에도 릴리트가 딱히 크게 반발심을 가지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다른 여인들이 릴리트를 존중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시온과 가까운 사이이고,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만 독점한다거나 먼저 곁에 있던 여인들을 무시하지는 않겠다.
이러한 암묵적인 룰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여태까지 평화가 지켜질 수 있었다.
리시키다, 루시아, 그리고 리아까지.
전부가 시온을 위해 그렇게 선택을 했다.
그런데 트리샤는 다르다.
대놓고 내 것이라고, 독점하겠다고, 다른 여인들을 경계하며 이빨을 드러낸다.
당장 다른 여인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시온을 향해 엄청난 소유욕을 보이지 않았는가.
‘이건 선전포고지.
아니야.
선전포고도 없이 바로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라고 해야겠지.’
덕분에 릴리트는 물론이고 다른 여인들도 심히 심기가 불편했다.
자신들이라고 혼자서 연심을 품은 남자를 독점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저 다른 여인들과 싸우기 싫어서, 다투다가 자칫 시온의 마음이 떠날까봐 애써 혼자만 사랑 받고 싶다는 당연한 욕구를 억누르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민감하기 짝이 없는 방아쇠를, 트리샤가 노빠꾸로 아주 세게 당겨버린 것이었다.
“주인님을 마음에 품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습니다.
그 분과 시간을 보내시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독점하시는 건 결코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하.
스콰이어 어쩌고 하면서 나를 그렇게 몰아붙일 때는 언제고 갑자기 존대야?
혹시 너도 가슴속에 뭐 다크드래곤 하나 키우고 있는 거야?”
“저, 저는 그저 맡은 임무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너부터 찢어죽일까 했는데, 생각이 바뀌어서 다행인 줄 알아.
생각해보면 너 덕분에 오빠와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동시에 시온님과도 이어질 수 있었거든.”
그렇게 말한 트리샤는 리시키다를 바라보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렇게 나를 막 대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그, 그건!”
리시키다는 반사적으로 시온과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을 언급할 뻔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입이 가벼운 여인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다른 이들의 입에서 시온에 대한 뒷담이나 이상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욕을 먹고, 오해를 받는 이는 자신이면 족했다.
고작 그 따위 것들로 사랑해 마지않는 주인을 잃을 수는 없었다.
“말씀이 너무 과하시네요.
당신이 리시를 해하려고 한다면 저희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나요?”
“냐앙!
맞아!
건드렸다가는 우리한테 아주 크게 혼나는 거야!
하아악!”
“하.
저 마족 여자를 빼면 딱히 전투에는 도움도 되지 않았던 것들이 말이 많네.”
“그 말이 많은 여자들이 전부 시온에게 예쁨 받고 귀여움 받는 이들이야.
만약 네가 시온을 독점하겠다고 지랄발광을 하다가 그녀들을 다치게 하면, 시온이 어떻게 반응할지 참 궁금하네.”
“···.”
릴리트의 말에 트리샤는 침음을 내뱉었다.
시온은 무조건 자신의 남자였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리 할 생각이었다.
누구한테도 안 준다.
오직 자신만이 그를 품에 안고서 온기를 느끼며 품을 독차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처럼 그걸 원하는 이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 중 하나는 지금의 자신보다도 강하며, 그 하나가 나머지를 감싸고 있다.
무엇보다 저들 중 하나라도 다친다면 시온의 반응이 어떨지 참으로 궁금하다는 말이 트리샤의 살심을 순식간에 잦아들게 만들었다.
‘저것들을 이대로 두고 봐야 한다고?’
속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다.
혼자서 산해진미를 맛보는 것 마냥 아껴두고 조금씩 먹어도 모자를 판국에 나눠야 한다니.
이건 결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때, 트리샤의 속에서 성흔이 조그마한 불꽃을 내뿜었다.
‘···뭐?’
화르륵―.
‘그렇게 하라고?
저들이 말하는 대로 따르라?
하, 무슨 헛소리를···.’
하지만 다음 이어진 불꽃과 벼락의 조언에 트리샤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너는 그 인간 남자를 원하고, 그 인간 남자에게서 호감을 얻고 싶어 하니 지금은 한 발 물러설 때라고.
그러나 결코 저들처럼 무른 생각을 가지지는 말라고 한다.
‘···시온님이 스스로 내게만 붙어있게 만들면 된다?’
화르륵, 파지직―.
그렇다, 라고 불꽃과 벼락이 동시에 대답한다.
트리샤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마족 여인과 수인은 제외하고, 가장 만만해보이는 두 인간 여자부터.
‘···기사, 마법사.
둘 모두 재능이 뛰어나긴 하지만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아.’
그 어떤 천재라도 결국 한계가 있는 법이다.
트리샤가, 그리고 그 안의 성흔이 보기에 저 둘은 더 성장한다고 쳐도 얼마 가지 못 해 한계에 부딪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둘에 대한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다음은 수인.
정확히는··· 그래, 묘은족.’
역시나 가지고 있는 무력은 크게 돋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불꽃과 벼락이 움찔하며 뭔가를 가리켜 보였다.
리아의 이마에 작지만 푸른빛을 내뿜으며 반짝이는 흉터.
원래의 트리샤였다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을 테지만, 성흔을 일부 받아들인 지금의 상태에서는 저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차후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알 수 있었다.
‘너희와 다를 게 뭐야?
둘 모두 번개가 아닌가?’
화르륵―.
파직!
불꽃과 벼락이 번갈아가면서 대답했다.
이쪽이 화염과 거기에서 나오는 불똥들로 점철된 붉은 번개라면, 저 묘은족이 가지고 있는 증표는 순수하게 굉음을 내뿜으며 시퍼런 빛을 토해내는 전격이라고 말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는 한다는 소리지?’
그렇게 중얼거린 트리샤는 마지막으로 마족 여인, 릴리트를 바라보았다.
리아까지는 어떻게 제끼고 시온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저 여자를 보고 있자니 방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자신감이 정말 봄볕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서큐버스는 반칙이잖아.’
속으로 쯧, 하고 혀를 차는 트리샤였다.
애초에 이성의 귓가에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홀리게 만드는 것이 서큐버스다.
그런 존재들을 상대로 최후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솔직히 말해서 트리샤는 쉽사리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화르륵―.
불꽃이 물어온다.
그래서 포기할 생각이냐고.
‘무슨 소리를.
시온님은 내 거야.
절대 포기 못 해.
아니 죽어도 안 해.’
최후의 승자는 반드시 자신이 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승부를 낼 수가 없는 상황이니 쓸데없는 싸움으로 힘을 빼거나 점수를 잃는 멍청한 짓은 지양해야 하는 때였다.
“···.”
트리샤가 릴리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에 서큐버스 퀸이 무슨 짓이냐고 눈빛으로 묻자, 사익이 답했다.
“휴전 제의다.
일단 시온님이 그 어떤 일에도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우리들에게만 집중해서 선택을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그 때까지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흐음?”
갑작스러운 휴전 제의에 릴리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미친 여자가 갑자기 저렇게 순순히 손을 내미는 것이 퍽 수상했다.
당장 자신이고 다른 여인들이고 모조리 불태울 것 같던 여자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뭔가 꿍꿍이가 있구만?’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라면 또 모를까, 이쪽은 마족이다.
그것도 최고위 마족, 서큐버스들의 여왕인 릴리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눈빛만 봐도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분명 강하기는 한데, 경험이 적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
원래라면 꿍꿍이가 있다는 걸 안 즉시 헛짓거리는 하지 말라며 압박했을 것이다.
무슨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누다보면 알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보통의 인간 여자가 아니라, 성흔과 일부 동기화된 존재다.
너무 압박하면 제대로 정신머리가 돌아버려서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들 말이다.
‘거기에 조용히 지내주겠다고 한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감사, 그 자체지.’
마나가 거의 바닥난 상태라, 이제는 이렇게 무게를 잡고 있는 것조차 어려운 형국이었다.
얼른 시온에게 가서 앙탈을 부리고 아양을 떨어야 하는데, 말도 안 통하는 미친년이 적으로 버티고 있으면 그마저도 마음 놓고 못 할 판이었다.
“···시온의 적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고 있고?”
릴리트가 슬쩍 돌려서 질문을 던졌다.
아마도 트리샤 역시 성흔을 통해서 일부나마 확인했을 것이다.
대륙을 불태우려는, 시온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지워버리려는 존재들이 누구인지.
자신들의 적이 과연 누구인지 말이다.
“모른다면 이런 멍청한 짓을 할까.”
트리샤의 대답에 릴리트는 피식, 미소를 내짓고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딱히 크게 믿음이 가지는 않는 여인이었지만, 일단 두 가지는 확실했다.
하나는 시온에 대한 마음만큼은 진짜이며.
또 다른 하나는 천족들이 후일 이 여자가 자신들의 적이 되어 있는 상황을 마주하곤 절망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지를 지도 모른다는 일이었다.
“트, 트리샤!”
방문이 열리며 지미 페이커가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제 동생을 살피며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없나 살피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들었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버티고 버티다가 기절했었다고···.”
“내가 누구인데 그런 걱정이야?
당연히 통과했다고!
이 트리샤··· 크흠!
다, 다크드래곤이 말이야!”
성흔과 동기화가 되니 이제야 자신이 보였던 흑염룡이 조금은 부끄러워진 모양.
하지만 지미 앞에서 갑작스레 변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에 트리샤는 애써 예전의 모습을 연기하며 제 오빠를 진정시켰다.
“···.”
그 모습을 바라보며, 릴리트는 생각에 잠겼다.
‘시온을 암살하려고 했던 놈들이 또 언제 올지 몰라.’
그래, 놈들이 또 언제 방문을 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시온을 지키는 방패가 많을수록 좋다.
왜냐고?
누군가가 방패를 들고 그들의 공격을 막는동안 자신은 그 뒤에 숨어서 시온과 진하게 사랑을 나눌 생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