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17)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17화(117/439)
117―――――
북부, 야만족의 땅
성흔이 발동되기 전의 트리샤는 그냥 철없는 18살 소녀에 불과했다.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며 주목 받고 싶어 하고, 동시에 상처받기 싫어서 흑염룡 캐릭터로 무장하고서는 자신을 똘똘 싸매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의 트리샤는, 전과는 달랐다.
불꽃과 벼락이 그녀에게로 흘러들어갔고, 이제 트리샤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소설에서 묘사되던 사익의 힘과 성격을 어느 정도 닮게 되었다.
수틀리면 일단 부수고, 태우고, 내 거에 손대는 놈들은 다 죽이겠다는 마인드로 변질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전히 트리샤라는 본체는 변하지 않았으니 결국 관심과 애정을 주는 이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전에는 오빠인 지미 페이커, 그리고 지금은 시온 자신.
성흔으로 인해 살짝 성격이 바뀌면서 트리샤는 ‘지미는 어차피 언젠가는 자신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인물, 하지만 시온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무조건 내 거 하자.’ 라는 생각으로 무장하고 그의 곁을 서성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혹 다른 여인들이 자신의 것을 빼앗아가지는 않을까 감시하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앉아봐.”
시온은 의자를 하나 가져와서는 자신의 앞에 앉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트리샤는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더니.
털썩!
“···?”
아주 당당히 시온의 무릎 위에 앉아버렸다.
여자라고는 하지만 아이도 아니고, 18살의 다 큰 처자다.
당연히 무게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뭐하냐?”
시온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트리샤는 일단 흥!
하고 콧방귀를 한 번 낀 후 입을 열었다.
“앉으라면서요.
그래서 앉은 건데요.”
“내가 앉으라고 한 곳은 저기야.”
“앉으라고 한 말 들었으니, 어디 앉을지 정도는 내가 정할래요.”
말을 듣겠다는 건지, 아니면 듣지 않겠다는 건지 심히 헛갈리게 하는 말이었다.
이 여자를 어찌 해야 할까 잠시 고민이 든 시온이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트리샤를 이렇게 만든 건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니 이 정도는 부드럽게 넘어가주는 것이 옳았다.
‘사실 내가 한 짓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한 투정도 들어줘야지.’
트리샤 본인의 힘도 힘이지만, 얌전히 잘 지내던 평범한 여인을 반 강제로 각성시켰으니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요.”
당당히 시온의 무릎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트리샤는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하면서 물었다.
패기 넘치던 행동과는 달리 이제 와서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흠.’
잠시 고민하던 시온은 일단 박살났다가 간신히 붙은 그녀의 마음부터 좀 다독이기로 했다.
슬쩍 몸을 등받이에 기대고, 트리샤가 떨어지지 않도록 무릎을 살짝 든 후에 슬그머니 그녀의 허리를 양 팔로 둘러 안았다.
“···뭐하는 거죠?”
“안아주고 있는데?”
“내가 무슨 5살 먹은 당신 동생인 줄 알아요?”
“아니지.
다 큰 여자인 거 다 알아.”
“그러면서···.”
“내가 좀 안고 싶어서 그러는데.
그것도 안 되는 건가?”
시온의 말에 트리샤가 움찔 몸을 떨더니 애써 남자의 시선을 외면하려 고개를 돌린다.
그러면서도 슬금슬금 손을 옮겨서는 시온의 손등을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힘들었지?”
“뭐가요.”
“스콰이어 훈련 말이야.”
“···흥!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오히려 너무 쉬었다고 몇 번을 말해요?
거기에 지금이라면 그 리시키다라는 여기사도 당장 쓰러트릴 수 있다고요.”
“네가 만약 리시를 다치게 한다면, 난 굉장히 곤란할 것 같은데.”
돌려 말하고는 있지만 리시키다를 다치게 만든다면 너를 이렇게는 더 안아줄 수 없는 말.
트리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해서 하는 말인데.
계속 리시의 스콰이어로 활동했으면 해.
트리샤.”
“···그거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트리샤의 두 눈이 짜증과 분노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애초에 리시키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은 채로 각성을 했는데, 결국 또 다시 그녀의 밑으로 들어가라 하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들으면 이해가 갈 텐데?”
“말해봐요.”
“그래야 네가 내 곁에 있을 수 있거든.”
시온의 말에 타오르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륵, 하고 잦아든다.
잠시 두 눈을 깜빡이던 여인은 고개를 돌리면서도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세히요.”
“지금 내 곁에 호위가 너무 많아.
리시는 일단 상급 기사, 거기에 김유현도 거의 내 호위 기사 급으로 활동 중이지.
거기에 마법사로 위장하고 있는 릴리트님과 진짜 마법사인 루시아, 거기에 묘은족인 리아까지.
아무리 변경백령의 후계자라고는 하지만 너무 수가 많아.”
“그래서요?”
“해서 너를 공식적으로는 내 사람이 아니라 리시의 견습기사로 두는 거지.
그러면 리시의 수행이라는 명목 하에 나를 따라다닐 수 있어.”
그에 트리샤는 가만히 시온의 손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잠겼다.
리시키다라는 여인과는 이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지미를 빼앗았다는 생각은 더는 하지 않았지만, 스콰이어 훈련 때 혹독하게 대했던 모습이나 시온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던 모습을 떠올리면 분노가 치밀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 곁에 있어야 동시에 시온님 옆에 있을 수 있다니.’
이렇게 되면 트리샤 입장에서는 고민할 부분이 많았다.
자존심을 세우고 다른 방책을 강구하느냐, 아니면 자존심을 접고 리시키다 밑으로 들어가느냐.
화르륵―.
‘···그냥 절대 싫다고 난리를 피우고 떼라도 쓰라고?’
나름 괜찮은 계획이었다.
눈치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트리샤는 시온이 자신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굳이 살린 것이고, 이렇게 품에도 안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자신이 절대 못 하겠다고, 차라리 죽이라고 투정이라도 부린다면 그라도 어떻게 하지 못 하고 다른 방책을 강구···.
“만약에 과하게 투정이라도 부린다면, 그 때는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여인의 앙탈도 매력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과하면 남자 입장에서는 짜증만 나거든.”
“···.”
“네가 특별한 건 사실이지만, 내 옆에는 그만큼 특별한 다른 이들도 많잖아?
그러니까 트리샤, 네가 그들 사이에서 더더욱 빛날 수 있게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역시나 좋게 말해서 그 정도지, 실상은 ‘말 안 들으면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너를 제거하겠다.’ 라는 말이었다.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너를 대체할 인원은 여기 많다, 라는 말.
‘···너무해.’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자신은 그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자신만을 바라봐주지 않는다.
그를 위해 그 어떤 존재라도 치워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설사 그 상대가 이 힘의 원천인 천족들조차 불사르겠다고 맹세했는데···.
“그러니까.”
“아?”
아이를 안 듯 그저 가볍게 앉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연인을 대하듯 트리샤를 강하게 끌어안는다.
그 변화를 감지한 여인이 당황해서는 어쩔 줄 몰라 하자 시온은 그 여인의 턱을 붙잡아서 제게로 돌리고는 자신을 억지로라도 바라보게 만들었다.
“놔, 놔요!
이, 이게 무슨 짓···.”
“싫은데.”
“놓으라고 했어요!
놓지 않으면···.”
“놓지 않으면, 나도 불태울 생각이야?”
트리샤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왜 당신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을 내가 왜?
그런 짓을 할 수가,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다 보인다, 보여.’
다행히도 아직 ‘가지지 못 하면 부숴버리겠어’ 라는 중증까지 간 모양은 아닌 듯 했다.
혹시나 트리샤가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네, 좋아요.
시온님이라도 날 아프게 하면 전부 불태우겠어요!’ 라고 말했다면 정말 뼈도 못 추릴 뻔 했다.
“···그런 말 하지 마요.”
“무슨 말.”
“시온님을 해친다는 이야기.
난 안 그래요.
절대 안 그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시온님은 내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내가 해친다고요?”
아닌 척은 하고 있지만, 한 눈에 봐도 정말 토라진 모습이 역력했다.
마치 자신을 그런 여인이라고 생각했냐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놓아달라고 버둥거리기까지 한다.
여기서 정말 놓아달라고 놓는 놈은 희대의 병신인 거다.
설사 김유현이라고 해도 놓아줄 리가··· 놓아주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트리샤, 내가 널 다른 이들처럼 소중하게 대할 수 있게 해줘.
조금만 참고, 조금만 덜 투정부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줘.”
“···언제까지요.”
“너 스스로가 비로소 당당히 ‘오직 나만이 내 옆에 있을 자격이 있는 여자’ 라고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말한 시온이 다시 여인의 턱을 살며시 붙잡는다.
이번에는 거친 저항 없이, 트리샤가 다시금 그와 눈을 마주하는 순간.
···화륵―.
불꽃이 작게 일렁이며 트리샤에게 속삭였다.
저 남자, 잘 생겼어.
‘나도 알아.
그러니까 좀 닥쳐.’
속삭이는 불꽃을 억지로 쑤셔 넣으며 트리샤는 눈앞의 남자에게 집중했다.
비록 그 때가 언제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지만, 그는 분명 자신에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그 날’ 이 비로소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남자를 독점할 수 있는 때라고 말해주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 세상을 위협하는 천족들을 전부 치워낸 이후가 될 것이다.
“정말이죠?
정말 내가 그럴 만한 요구를 할 자격이 생기면, 그 때는 다른 것들 다 버리고 나만의 것이 되어줄 수 있는 거죠?”
“당연하지.”
과연 정말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온은 그 뒷말은 입 바깥으로 꺼내놓지 않았다.
사익도 사익이지만, 서큐버스 퀸도 엄청나게 강력한 여인이었으니까 말이다.
똑똑똑―.
갑자기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시온이 누구냐고 입을 열자, 성 내부에서 근무하는 시녀가 입을 열었다.
“공자님, 방금 전에 하이네스 상단이 성문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알겠어요.
소식 전해줘서 고마워요.”
한 달 만에 다시금 하이네스 상단이 거래 물품을 싣고 변경백령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헬렌이 동행하지 않았을 테지만, 분명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어떤 소식을 전했을 것이 확실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만나보려고 하는데, 무릎 위에 앉아있던 트리샤가 일부러 무게를 더하면서 시온이 일어나지 못 하도록 만든다.
그에 밑에 깔려있던 남자가 뭐하냐고 묻듯 바라보자, 새빨간 불꽃을 연상시키는 여인이 또 한 번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꺼내놓았다.
“비, 비켜줄 테니 뽀뽀 한 번만요.”
“···뽀뽀?”
이건 이거대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인데.
그러니까 키스가 아니고, 뽀뽀라고?
“그냥.”
“그냥 볼에 가볍게 해줘요.
이, 입술에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무···.”
쪽―.
입술도 그리 어렵지 않은데, 라고 중얼거리며 가볍게 트리샤의 붉은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맞춰주는 시온이었다.
키스도 아니고 이 정도의 가벼운 입맞춤으로 이 여인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다면 백만 번 해줘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으으으?”
한편,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어쩔 줄 몰라 하던 트리샤가 입술을 매만진다.
딱 봐도 ‘으아!
으아아아!’ 하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간신히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하는 것도 들어줬는데 이제 그만 비켜주지 그래, 트리샤?”
시온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트리샤는 끼잉, 하고 침음만 내뱉다가 말없이 무릎에서 일어서서는 얌전히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거기에 풀썩!
하고 소리가 나도록 엎드리더니 잠깐 동안 멍하니 있다가 잠시 후에는 정신 사나울 정도로 팔을 휘두르고, 또 팡팡!
소리가 나도록 발길질까지 해댄다.
“···.”
그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던 시온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곤 몸을 일으켜서는 셔츠 위에 입을 정복을 걸치고는 입을 열었다.
“나 갈 테니까 팡팡 다하면 얌전히 문 닫고 나가라.
또 어딘가에 숨어서 엿볼 생각 말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어서 제발 꺼져달라는 듯 트리샤의 손이 거칠게 이리저리 휘둘러졌다.
휙휙―.
시온은 킥, 하고 미소를 흘린 후 집무실을 나서 하이네스 상단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떠올리며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시온의 예상대로, 영주성 안으로 들어선 상단 일행 중 한 명이 개인적인 용무가 있다며 응접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시온이 안으로 들어서자 젊은 남성이 예의 바른 몸짓으로 인사를 해보였다.
언뜻 보면 어리바리 한 느낌이 드는 청년 같아보였지만, 눈동자에서 날카로운 빛이 감도는 걸 보니 아무래도 헬렌의 몇 안 되는 수하인 모양이었다.
“히스파냐의 전쟁영웅을 직접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낯 뜨거운 인사를 그 정도로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하는데.”
“역시 허례허식은 좋아하시지 않는군요.
다른 귀족들과는 다르십니다.”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한 청년은 조심스레 품에서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시온은 그것을 받은 후에 바로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원래라면 지극히 의례적인 인사나 뭐 서두라도 있을 만한데.’
효율적인 것을 선호하는 상인답게, 헬렌은 아주 간단히 내용을 적어두었다
―공자님의 말씀대로 정세 확인 결과, 얼마 전부터 북쪽 국경이 심상치 않음.
―야만부족 준동.
―
“···.”
아무래도 이번 행선지는, 왕성보다도 더 먼 곳이 될 모양이었다.
―――――――작품 후기―――――――
7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