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1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19화(119/439)
119―――――
북부, 야만족의 땅
바네사 왕녀를 만나기 위해 왕성으로 가는 길.
원래라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어야 할 길이었는데, 왕성으로 향하는 내내 시온은 정말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
“···.”
“···.”
원래라면 남녀가 아주 신명나게 뒹굴어도 모자를 마차 안이 지금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했다.
인원도 인원이지만, 각각의 인원이 내뿜고 있는 검은 아우라가 정말이지 사납기 짝이 없어서였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나서서 어떻게 말리고 싶은데.’
이건 체급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상황이었다.
마차 한 구석에 시온 자신이 얌전히 찌그러져 있고, 그 옆은 빈자리를 유지한 채 그 옆에 트리샤가 굉장히 싸늘한 눈빛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으로 릴리트와 리시키다, 루시아, 리아까지 앉아있는 상황.
“흐아암.”
물론 릴리트는 항상 그래왔듯이 딱히 별 관심 없다는 반응.
리시키다는 어찌 되었든 시온의 명령으로 그런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본심이 일말이라도 없었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조금은 양심에 찔리는 상태로 흘끗거리고 있고.
루시아와 리아는 대놓고 시온을 독점하겠다는 새로운 여인의 등장에 잔뜩 경계심을 표출하는 중이었다.
“다들 적당히 좀 하지.”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의외로 트리샤였다.
그녀는 한 줄기 불꽃같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말을 이었다.
“휴전하기로 하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다들 싸우자고 아주 들이대는 것 같은데.”
“하아악!”
“퍼런 고양이.
얌전히 있어 네 털 다 태워서 고양이 구이를 만들기 전에.”
“그, 그렇기 심한 말을!”
“마법사 여자, 당신도 마찬가지야.
싸울 생각 없어.
‘지금’은 말이야.”
그렇게 말한 트리샤는 이번에는 리시키다를 바라보았다.
트리샤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 역시 상대를 마주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는 말없이 트리샤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에 트리샤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당신한테 개인감정 없어.
어차피 오빠는 좋은 언니를 만나서 결혼해야 하는 남자였으니까.
당신이 나를 괴롭게 한 거?
견습 기사가 뭐 쉬운 일이야?
구르고 또 굴러야 좀 쓸 만해지는 거 다 알아.
뭐, 자비로우신 내가 다, 전부 다―참아드려야지.”
“···그렇게 생각해주니 감사하군요.”
“그냥 그 때 우리 오빠랑 눈이 맞지 그랬어.
시온님 말고 우리 오빠도 좋은 사람인데.”
“죄송하지만, 저는 주인님의 기사일 뿐 다른 남자에게는 관심 없습니다.”
“어머, 아쉬워라.”
킥킥거리던 트리샤는 그 옆에 앉아있던 릴리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그녀도 알고 있다, 눈치 채고 있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리시키다라는 저 여기사도, 마법사인 루시아도, 묘은족이라는 리아도 중심이 아니다.
저들의 중심은 바로 저 마족 여인, 서큐버스 퀸 ‘릴리트’ 다.
그녀를 주축으로 하여 서로가 합의를 보고, 양보하여 뒤로 물러서다가 때로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서 상대가 양보하면 마음 놓고 한 남자를 품에 안는다.
시온이 자신 곁의 어느 누구도 서로 싸우는 것을 원치 않으니, 나름 현명한 방법을 내놓은 것이다.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산해진미는 매 끼니 먹어도 또 먹고 싶고, 반짝이는 보석은 언제 꺼내 봐도 또 보고 싶으며 사랑하는 이는 지금 당장 품에 안고 있어도 언제고 계속 안고 싶을 뿐이다.
언제까지고 저런 얕은 수가 통할 것 싶은가.
지금이야 시온에게 많은 이들이 필요한 상황이고, 때문에 그가 전력 낭비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결국 모든 것에 순번이 매겨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매겨지는 순번에는 여인들도 들어갈 것이다.
‘지금부터 싸워서 우수성을 증명해 놓아야 해.
저런 것에 안도해서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고.’
릴리트야 애초에 서큐버스이고, 그 자체로 매력적인 마족이니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리시키다나 루시아, 리아는 그녀에 비하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이대로 가면 릴리트의 독식이다.
이건 저 여인들도 무의식적으로 인정할 것이다.
그 때문에 아무래도 저들이 경쟁 대신 조화를 선택한 모양인데, 자신은 그러지 않다.
넘을 수 없는 산을 뛰어넘고 그 정상에 올랐을 때 쾌감도 쾌감이지만, 무엇보다 시온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트리샤는 확인했다.
‘다른 여인들보다 내가 더 낫다고 증명해야 해.
내가 시온님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시온님이 내게 매달리게 만드는 방법이 최고의 수야.’
화르륵―.
그녀 안의 불꽃과 벼락도 그게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트리샤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리는 때였다.
“하암···.
시온이랑 섹스도 못 해본 여자가 참 말 많아.
그렇지, 얘들아?”
“엑?”
“리, 릴리트님?”
“···뭐라고?”
시온은 펄쩍 뛰면서 당황하는 눈치였고, 리시키다나 루시아, 리아는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야?’ 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릴리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트리샤만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시작으로 가랑이, 그리고 배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침실에서 네 오빠랑 소꿉장난 하는 동안 나랑 시온은 뭐했을까?
흐응응―맞춰보렴.
아가야.
아아, 이번에는 시온이 얼마나 나를 맛있게 먹어주는지.”
“무, 무슨 소리를···.”
아니, 이 여왕님이 갑자기 왜 이래?
하는 눈빛으로 릴리트를 바라보는 시온이었다.
지금 트리샤가 애써 제 불꽃과 벼락을 억누르며 한동안은 조용히 지내겠다고 말하는 중인데 갑자기 거기에 대놓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쏴버렸다.
“릴리트님.
주인님이 어떻게 맛있게 드셨다는 거죠?”
“우후후.
궁금하니?
리시, 궁금해?”
“마, 말해줘!
냐앙!
나, 나도 시온한테 먹힐래!”
리시키다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고, 리아는 애초 더 듣고 싶다는 듯 냥냥거렸으며 루시아는 침을 꼴깍!
이면서 릴리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이 여편네들이 지금 뭐하는 짓이야!’
시온이 다급히 릴리트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내 릴리트의 발끝이 시온의 무릎을 막고는 마치 가만히 있으라는 듯 힘을 주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서면 일이 더 꼬인다는 듯이 말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냐고!’
라는 비명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릴리트가 저런 자극적인 내용의 말을 아무렇게나 내던질 인물은 결코 아니다.
아무래도 뭔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 그러는 모양인데···.
“얘들아, 나 아주 색다른 곳에서 했다?
우후후!
평소 하던 방이 아니라 밖에서 했다 이거야!”
“저, 정말이십니까?”
“냐앙!
나도 밖에서 하고 싶어!”
“계, 계속 말해주세요.”
“일단 밤바람이 너무 좋더라고!
거기에다가 시온이 외식이라고 하면서 막 발부터 아주 정성스레 핥아주는 거 있지?
그리고···.”
본격적인 릴리트의 섹스 탐방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기가 막힌 시온이 애써 귀를 막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트리샤 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 맞다!
트리샤!
저 여자가 이 이야기 듣고 가만히 있으려나?
시펄, 갑자기 열폭해서는 마차고 뭐고 다 태워버리고 릴리트님이랑 한 판 거하게 붙는 건···.’
순간 시온은 ‘어?’ 하고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그의 예상대로 트리샤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물들어 있기는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것이라면, 그 표정에 서려있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어쩔 줄 몰라 하는 부끄러움이라는 것이었다.
‘···뭐야?’
릴리트의 이야기를 또 안 들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귀동냥으로 자신과 릴리트의 진했던 외식 이야기를 경청하는데, 얼굴은 새빨갛게 변해서는 몸을 배배 꼬고 앉아있다.
마치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 그런데 더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듯이 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릴리트라고 해도 활활 불태워주겠다는 듯 타오르던 여인이 갑자기 저런 모습을 보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해서 슬쩍 릴리트를 바라본 시온은 곧 그녀가 자신을 흘끗거리며 눈웃음을 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여왕님이 최고시다.’
그 짧은 사이에 트리샤의 약점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
왕성에 도착한 건 며칠이 지난 후였다.
여유롭게 검문까지 모두 마친 후, 왕성 안으로 들어선 시온은 일단 일행들을 쉬게 할 목적으로 클라우젠 백작가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마차를 달리게 했다.
원래는 바로 왕궁으로 들어가야 하는 법이었지만 시간이 이제 저녁이 다 되어가는 지라 자신 입장에서도, 그리고 왕궁 입장에서도 다음날 오전에 만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할 것이다.
“으으응!
아아, 온 몸이 뻐근하네!”
“일단 들어가면 좀 씻고 싶네요.”
“냐앙!”
기지개를 켜는 릴리트,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나오는 루시아와 리아.
리시키다는 호위 기사이니 마차 안보다는 말 안장 위가 낫다고 주장하여 어제부터 위치를 옮긴 이후였다.
그렇게 여인들이 차례로 기분 좋게 마차 밖을 나오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나오는 붉은 머리의 여인은 영 아닌 모양이었다.
“으으···.”
마치 멀미라도 한 듯 축 늘어져서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는 트리샤.
물론, 진짜 멀미를 한 게 아니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차라리 멀미를 했다면 저리도 부끄럽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저런 모습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흑염룡 광신도에 방화광 성흔까지 겹친 관계로 성격이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마냥 강렬하기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마차에 타서 왕성으로 오는 내내 릴리트의 청소년이용불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끄러움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아주 원 없이 보여준 것이었다.
성흔을 일부 받아들인 이후로 급격히 성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역시나 어딘가에 아직 소녀 감성이, 그것도 아주 짙게 남아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릴리트님이 아주 좋은 걸 가르쳐주셨어.’
앞으로 트리샤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큰 힌트를 얻은 셈이었다.
아무튼 공식적인 일정은 내일 소화하기로 하고 모두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일러둔 시온은 며칠간의 이동으로 노곤해진 몸을 얼른 침대 위에 뉘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주인님!”
갑자기 리시키다가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면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숨을 고르면서 자세를 다잡고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좀 피곤한데.”
“예?
아, 아닙니다!
그런 목적이 아닙니다, 주인님.”
“···아니야?”
다행이면서도 조금은 아쉬운 시온이었다.
리시키다의 그 탄탄한 몸 곳곳을 또 탐방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말이다.
“하이네스 상단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벌써?”
“예.
아무래도 주인님이 왕성에 들어섰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달려온 모양입니다.”
“···응접실로 데리고 와.
거기서 이렇게 급하게 움직였다면 이유가 있겠지.”
“알겠습니다.”
리시키다가 다시 몸을 돌려 어딘가로 사라지고, 시온은 팔짱을 낀 상태로 응접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상하네.
헬렌 정도 되는 여인이라면 이쪽이 긴 거리의 이동을 해서 상당히 피곤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바로 이렇게 사람을 보냈다고?’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심지어 자신은 왕성조차 다음날 아침에 찾아가기로 하고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도 이렇게 만남을 원한다는 건, 오직 한 가지를 의미했다.
‘뭔가 매우 급박한 일이 생겼다는 거다.’
혹시 급진파 요정놈들이 헬렌 하이네스를 인질로 잡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상단에 다시금 침투하여 협조하라고 협박이라고 하는 중인가?
그도 아니라면 왕국의 다른 곳에서 뭔가 위험이 될 만한 소식이라도 들어온 건가?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시온이었다.
그렇게 응접실에서 하이네스 상단의 사람을 기다리는데, 잠시 후 리시키다가 노크를 한 후에 고개를 빼꼼 하고 들이밀었다.
“주인님.
안으로 모실까요?”
“그래.”
시온의 대답에 리시키다는 누군가를 향해 들어가 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후드를 뒤집어쓴 여인이 조심스레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헬렌.”
“공자님.”
보통의 인간과는 달리 뾰족한 귀 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름다움을 지닌 요정족 여인.
하이네스 상단의 주인인 헬렌이었다.
“무탈하셨군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
두 달 조금 안 되어서 보는 거 아닌가?”
“그건 그렇군요.”
입을 가리고 웃는 여인의 모습이 꽤나 아름다웠다.
한창 무르익은 묘령의 엘프족 여인, 하지만 인간에게 사납게 짓밟힌 꽃을 바라보며 시온은 그녀가 복수에 대해서 정말 미련을 버린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렇게 웃는 모습도 볼 수 없었을 테니까.
“그보다 상단주가 또 상단을 비우고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내가 다음날이 되면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올 정도로 급했던 일이라도 있나?”
“···맞습니다.”
헬렌은 상인이다.
비록 상단을 꾸린 이유가 복수를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어찌 되었든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 거대한 상단의 주인이 된 것이리라.
그리고 상인은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을 극도로 지양하기에 한 일에 대해서 과하게 반응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반응을 아예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즉, 그녀가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였다.
“시온 공자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일행 분들에 대해서 좀 여쭤도 될 런지요?”
“내 일행들?”
시온은 잠시 헬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헬렌의 입에서 전혀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위니··· 라는 묘은족 여성분이라고, 이전에 공자님이 노예시장에서 구출했다는 분입니다.”
“위니?
아, 리아?”
“이름이 틀린 겁니까?
그쪽에서는 분명 위니님이라고 했는데 말이죠.”
“사정이 좀 있어.
그보다··· 그쪽?
위니님?”
뭔가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시온이 혹시?
하는 표정으로 헬렌을 바라보자 그녀는 그 예상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수인, 그 중에서 묘은족의 남녀 몇이 저희 상단으로 찾아왔습니다.
하이네스 상단이 클라우젠 변경백령과 교류한다는 것을 듣고서는 자신들을 거기까지 데려다 줄 수 없냐고 해서 말이죠.”
“···그래서?”
“일단 클라우젠의 공자님이 왕성으로 오실 테니 여기서 기다리시는 게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호위 명목으로 은밀하게 감시 중이었고 말이죠.”
“제법이네.”
역시 눈치도 좋고, 머리 회전이 빠른 여인다웠다.
괜히 그들을 보내서 클라우젠 변경백령에 혼란을 주는 것보다 자신이 데리고 있으면서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시온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헬렌이 유능하기는 해.
더 탐이 나는데?’
물론 그녀의 재능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여인을 강제로 아래에 두는 일은 이제 더는 달갑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들 정체가 뭐였는데.”
그에 헬렌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검지로 제 입술에 손을 대보였다.
이 이상은 값을 치르셔야 한다는 상인의 귀여운 애교라고 해야 할까.
다른 귀족들이라면 무엄하다며 소리라도 꽥꽥 질렀을 테지만 시온은 오히려 더더욱 만족스러웠다.
‘랄부 프렌드라고 해도 일단 거래는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이지.
그게 서로간의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야.’
직장 동료나 친구, 심지어 가족 간에도 거래는 확실해야 한다고 믿는 시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헬렌 하이네스는 시온의 합격점에 딱 맞는 여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