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2)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2화(12/439)
<누님은 이제 제 겁니다>
―시온 클라우젠은 저주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를, 이렇게 낳아준 어머니를, 그리고 세상 전부를.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서 그는 그렇게 썩어 문드러져갔다.
―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하고 찾아봤지만 역시나였다.
마나 감응력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이가 노력에 노력을 기울여 감응력을 올린 케이스는 있어도 아예 감응력이 없던 이가 감응력이 생기는 경우는 전무했다.
당연한 것이, 애초에 마나 감응력에 제로인 건 불치병과 비슷한 경우였기에 고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좆같네···.”
책상 위에 엎어진 시온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마나에 관련된 책들은 전부, 하다못해 대륙의 역사서까지 전부 뒤져가며 마나 감응력이 없던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았지만 그런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에서 보던 것처럼, 그리고 작가가 말하던 것처럼.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이들은 죽을 때까지 안고 사는 불치병처럼 그렇게 살아가야했다.
‘앞으로 최소한 세바스찬이나 라이도급의 괴물들을 더 마주해야 하는데 마나조차 못 쓰는 병신 새끼라니.
이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팬티 한 장 입고 뛰어다니는 꼴이야.’
총을 못 쏘면 하다못해 방탄복이라도 입고, 방탄모도 잘 쓰고 해야 하는데 이건 뭐 스치기만 해도 영원히 안녕이다.
도저히 나오지 않는 해답을 찾아 낑낑대던 시온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했으니 뇌에 과부하가 오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돌겠네.
마나를 다루지 못 한다는 것이 이렇게 쥐약이 될 줄이야.’
노오오오력만 한다면 김유현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김유현은 그냥 규격 외의 존재, 거기에 주인공 보정까지 받는 진정한 사기캐였고 자신은 어디 쓰레기 매립지에서도 안 받아줄 정도의, 그야말로 굴러다니는 쓰레기 봉지였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노오오오력으로는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다.
시벌,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었다.
그 후 서재를 나선 시온은 원래의 몸뚱이 주인이 하던 것처럼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물론 속으로는 계속해서 ‘강해지고 싶다, 강해지고 싶다, 강해지고 싶다.’ 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이건 크리스마스를 5초 남겨두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친이 생기게 해주세요.’ 라고 빌고 앉아있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실현 가능성이 그냥 없다고 보면 된다는 소리였다.
‘강해지고 싶다, 강해지고 싶다.’
오후 내내 방에 틀어박혀서.
‘마나, 마나, 마나, 마나.’
저녁을 먹을 때에도.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샤워를 하면서도.
‘힘, 힘, 힘, 힘, 힘!
히이이이이임!’
하루를 다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시온은 그 생각 하나로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면 다른 뭔가로 그 마나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일까.
혹시 마나 고자가 불치병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증표 같은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 때문에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이미 몸은 오전의 지옥 공놀이로 인해 늘어질 대로 늘어진 상태였지만, 시온은 쉽사리 잠에 들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어딘가에서 깩 소리도 못 내고 비명횡사하게 생겼단 말이다.
―강해지고 싶니?
―
‘시바!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응, 알겠어.
거기 딱 기다려.
―
···어?
순간 이상함을 깨달은 시온이 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방금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혹시 또 다른 자아의 목소리··· 일 리는 없고.
설마 오늘 오전부터 힘을 너무 써서 헛것이 들리는 건 아닐까 싶은 순간이었다.
―어서 오렴, 나만의 밤에.
―
갑자기 몸이 휘청거린다.
지쳐서, 혹은 뭔가에 걸려서가 아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온갖 고민으로 정신 사납던 머리가 일순간에 흐릿해져가는 중이었다.
마치 안개가 잔뜩 끼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며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운 것처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수마가 시온을 덮쳐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쿵!
털썩!
그 자리에 쓰러진 시온은 ‘어으으.’ 하고 마지막 대사를 내뱉고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애.”
“어으으으···.”
“그만 일어나렴.”
그 말에 시온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정확히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강제로 뜨여진 것이었다.
허둥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시온은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 했다.
‘뭐, 뭐야?’
분명 자신이 있던 곳은 시온 클라우젠의 방이었을 텐데, 지금 자신이 서있는 곳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 심지어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이질적인 기운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여기.”
무척이나 야릇하면서도 간드러진 여인의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린 시온은 세 번 놀라고 말았다.
처음은 그녀의 외모 때문에, 다음은 어디 야겜에서나 나올 법한 노출도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은 그녀가 누구인지 눈치 채서였다.
‘누나는 왜 또 여기서 나와?’
사르륵―.
소리 소문 없이 여인이 바로 시온의 앞까지 다가왔다.
여인의 몸에서 나는 감미로운 향과 이성을 잡아끄는 페르몬 냄새가 확 와 닿는다.
겨우 중요부위만 가린 채 뽀얀 살결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여인은 백만 송이 꽃이 만개하는 듯 한 미소를 지은 채로 입을 열었다.
“후후후, 안녕?
내 이름은 말이야···.”
“릴리트님.”
“응, 응.
그래.
내가 릴리트··· 어?
잠깐, 뭐라고?”
릴리트(Lilith).
최고위 마족, 서큐버스들의 여왕이자 거의 반신에 가까운 여인.
소설에서는 시온 클라우젠의 병신 짓으로 변경백령이 무너진 이후 누디아 왕국이 그 영지를 차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디아의 한 이름 있는 검사가 이 여인의 노예가 되는 것으로 그 등장을 알리게 된다.
특히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히로인 취급을 받기도 했는데, 누디아 왕국과의 전투 도중에 마주친 김유현에게 호감을 가지곤 그를 제 것으로 만들겠다고 정말 별 짓을 다 한 것이 그 이유였다.
“너 뭐야?
어떻게 내 이름을 알지?
너 혹시 마족이야?”
“보다시피 순도 100퍼센트의 인간입니다만.”
“그런데 어떻게 내 정체를 이렇게 간단히···?”
아무래도 되었다는 듯 고개를 젓는 릴리트.
그녀는 서로의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붙어서는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 상관없어.
어차피 네가 인간이든, 마족이든.
나에 대해서 알던, 모르던 넌 이제 내 거니까.”
“아, 저기요.
릴리트님.
그건 조금 문제가 있으실 텐데···.”
“쉿.
조용히.
여왕님이 식사하시려는데 노예가 시끄럽게 굴면 안 되지?
너는 그냥 네 물건을 꼿꼿하게 세우고 나를 받아들이면 되는 거란다.
걱정 마.
아프지 않아.
오히려 아주 기분이 좋을 걸?”
“그러니까 다 좋은데 일단 가장 큰 문제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아무 생각도 품지 말라는 듯 릴리트가 시온을 와락 끌어안았다.
말캉한 가슴의 감촉이 전해지고,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여인의 향이 코를 찌르고 뇌를 점거하며 이성이 날아가게 만든다.
‘누님 후회하실 텐데요···.’
그 말을 생각으로만 해야 했던 이유는, 릴리트가 마치 사탕을 먹듯 시온의 입술을 무척이나 달콤하고 노골적으로 빨아대며 마음껏 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루비를 박아놓은 것처럼 붉게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시온은 그냥 생각하는 것을 관두기로 했다.
여자가 이렇게 들이대는데 남자가 뺀다는 건 다 차려준 밥상에서 숟갈 위에 밥이랑 반찬까지 얹어서 먹여준다는 걸 냅다 걷어차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
“···아.”
문득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 때문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시온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곳이 자신의 방임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다가 팬티 안쪽을 슬쩍 살펴보았다.
“···역시.”
역시나, 몽정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릴리트는 서큐버스, 그리고 서큐버스는 몽마들 중에서 남성의 정기를 빨아먹고 사는 존재들.
서큐버스가 꿈에 찾아오면 남자는 힘을 탈취당하며 그 흔적으로 몽정을 하게 된다.
원래는 그게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당연하다고 여긴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케이스가 바로 시온 클라우젠이었다.
탈취당하고 싶어도 내어줄 마나가 없는 이 빌어먹을 몸뚱이 말이다.
―흑··· 흑···―
‘릴리트님.’
―어, 일어났어?
일어난 거지?
―
‘네, 일단 일어는 났습니다만.’
―이 나쁜 새끼야!
사기꾼 자식아!
―
분명 소설 속 악역은 릴리트인데, 어째서 그녀가 마치 순결을 강제로 빼앗긴 여인처럼 울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간절하게 힘을 원하기에 꽤나 괜찮은 마나를 품고 있는 줄 알고 힘들게 찾아왔는데···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배를 불릴 마나는커녕 돌아갈 때 필요한 마나 한 톨도 없잖아···.
―
이성을 갖춘 존재의 꿈에 침입하는 건 꽤나 많은 마나를 소모하는 일이다.
특히나 릴리트처럼 봉인되어 있다가 가까스로 탈출해서 가진 마나가 정말 간당간당 할 때는 더더욱 위험천만한 일.
때문에 이성의 꿈에 침입해서 정기, 그러니까 그 몸에 깃들어있는 마나를 빼먹어야 하는데···.
―흐아아앙!
뭐야, 뭐냐고!
기껏 들어온 몸이 고자라니!
고자라니이이이!
―
남자의 자존심을 와락 구겨먹는 대사라 시온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나만 없는 거지 성기능은 아주 멀쩡합니다만.’
―내게는 그게 그거잖아!
이렇게 넓은 공간에 마나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분명 남들보다 배는 더 큰 공간을 지니고 있는데, 채우고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
말이 됩니다, 누님.
저도 이 마나 고자 몸 때문에 개고생 중이거든요.
‘저는 분명히 경고 드렸습니다.’
―닥쳐.
흐윽, 흐끅!
이제 정말 나 어떻게 해···.
신전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건데.
웬 미친놈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던 걸 뚫고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기껏 들어온 몸이 마나 고자여서 여기서 평생을 갇혀 지내야 한다니··· 내 팔자야, 내 팔자!
으아아아앙!
―
다른 곳도 아니고 머릿속에서 여인이 한껏 울어대고 있자 골이 다 징징징 울리는 듯 했다.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는지 바로 옆에서 애가 울고 있다고 해도 믿을 판국.
잠시 고민하던 시온은 의외로 해답이 간단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릴리트님.
사실 생각해보면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말이죠.’
―흑흑··· 뭐가.
―
‘예속의 계약.’
―···뭐, 뭐?
그 노예 계약?
―
‘가끔 가다가 오히려 남자한테 역으로 잡아먹힌 서큐버스들이 하는 계약 말입니다.
꿈에서 나가게 해주는 대신 본체와 맺는 계약으로 상대방에게 예속되는 것 말이죠.’
―너 미쳤어?
내가 무슨 일반 서큐버스인줄 알아?
그리고 내가 너한테 먹힌 거냐?
지금 마나 한 톨 없어서 나가지도 못 하고 이렇게 해매기만 하는 중인데!
절대 안 해!
아니, 못 해!
―
사실 릴리트도 억울하다고 할 만한 것이, 역으로 남자에게 함락 당해서는 인생 절반 손해 봐버렷!을 외친 것도 아니고 그냥 이 마나 고자 몸에서 빠져나갈 마나가 없어서 갇힌 것뿐이다.
그런데 그 탈출로로, 한심하게도 상대방에게 역으로 절정당한 서큐버스들이나 할 법한 예속의 계약을 내세우다니!
심지어 자신은 그 서큐버스들의 여왕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 수 외에는 없을 텐데요?
꿈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 말입니다.
제 안을 아무리 뒤져보셔도 나오는 마나는 단 한 톨도 없을 겁니다.
즉 릴리트님은 제가 죽을 때까지 그 안에서 나올 수 없다는 소리죠.
물론 제가 죽고 나서도 나가실 수 없겠지만.’
마나를 흡수하는 몽마들의 특성 상 이렇게 아무런 힘도 없이 상대방의 몸에 갇히게 되면 그냥 죽을 때까지 그 안에서 지내야 한다.
다른 몸으로 옮겨가고 싶어도 더는 마나가 없으니 탈출도 불가능.
현재 릴리트는 결코 탈출 할 수 없는 덫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 그래도··· 그래도···.
―
‘자꾸 고민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도와드리죠.’
―어, 엉?
―
‘이렇게 꿈에 찾아온 서큐버스가 무방비 상태일 때는 계약을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 주도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어어어어?
그, 그건 또 어떻게 알아?
아니, 잠깐만!
너 정말 인간 맞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어!
서큐버스들 만의 비밀 중에서도 극비인데!
―
소설에서 지나가는 말투로 언급되었던 설정들도 전부 기억하고 있는 진성 애독자다.
그 정도도 기억 못하면 애독자 칭호가 우는 법이다.
‘그러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야, 야!
잠깐, 잠깐만!
이건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니야!
아니라고오오오!
―
‘거 참, 반신이라는 분이 이런 격언도 못 들어보셨어요?’
―무슨 격언!
―
‘올마갈아.’
―그건 무슨 개소리인데!
―
올 때는 마음대로 왔어도, 갈 때는 아니란다.
우리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는, 이건 좀 아니라는 등의 말을 내뱉는 릴리트를 깔끔하게 무시하며, 시온은 꿈속에서 버티고 있던 여인을 바깥으로 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