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21)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21화(121/439)
121―――――
강해져서 돌아와라···
원래라면 지금은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모티브로 하는 종족답게, 야행성이라는 특성을 지닌 그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저녁 시간대가 곧 낮과 마찬가지였다.
대충 짐만 좀 챙겨서 내려오겠다는 리아를 먼저 보낸 시온은, 그런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거스 대왕에게 말했다.
“그런데 대왕님.”
“장인어른이라고 불러야지.”
“···예의 지킬 겸 그냥 대왕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에잉.
딱딱하기는.”
대놓고 장인어른, 장인어른 하다가 릴리트나 루시아, 트리샤가 들으면 상당히 골 때려서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시온은 묻고 싶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리아가 성체가 되고, 또 번개의 선택을 받았다는 그 힘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어찌 됩니까?”
“나도 직접 본 적은 없으니 정확하게 말을 해줄 수가 없어.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말일세.”
뭔가 엄청나게 진지한 분위기를 띤 채 다가오는 거스 대왕.
시온은 저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심취하여 조심스레 귀를 가져다 대는데 그 다음 나온 말은 그런 진지함을 한 번에 박살내버렸다.
“녀석이 그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되면, 우리 사위님이 앞으로 딸내미 대하는 것이 몇 배는 더 피곤해지겠지.”
“에?”
“지금도 왈가닥인 녀석이 더 빠르고, 더 강해지고, 거기에 막 파지직!
하면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가!
어우, 난 진짜 자네가 적당하게 딸아이를 데려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
“아까 내가 기절초풍 한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일세.
딸아이가 다른 이의 무릎 위에 올라가서 그렇게 얌전히 있을 줄이야.
내가 어릴 적부터 무릎에 앉히려고 하면 얼마나 하악질을 해대면서 손톱을 세우는지 원!
그리고 말이야!
더 기가 막힌게···.”
뭔가 상당히 힘들었던 묘생이었던 모양이다.
시온은 이해한다는 듯 추임새를 넣으며 제발 그의 만담이 빠르게 끝나기를 빌었다.
결국 다시 응접실로 돌아온 리아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라고 빼액!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장인어른의 만담은 끝을 맺게 되었다.
“아, 알았다.
녀석아!
사위님이랑 대화도 못 나누게 하는 거냐!”
“아빠가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죠!”
“하하!
녀석, 내가 또 부끄러운 이야기를 할까봐 겁나는 거냐!
저 남자가 그리도 좋은 모양이구나!
이거 마누라가 들으면 엄청 좋아하겠어!
그 계집애가 남자한테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 한다고 한다면 말이야!”
“엄마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마요!”
그렇게 외치며 거스 대왕을 질질 끌고 나가는 리아였다.
“하하하!
녀석, 부끄러워하기는!
이보게, 시온 공자!
아니, 사위님!
만나서 반가웠네.
내 나중에 또 보러감세!”
“뭘 또 보러 온다고 그래요!
나랑 영원히 잘 살면 되니까 아빠는 엄마랑 같이 지내기만 해요!
이렇게 막 가출하지 말고요!”
“예끼!
그런 끔찍한 소리 마라!
영원히 마누라랑 집에서 시간 보내는 게 얼마나 끔찍한 줄 아느냐!
하하!
아, 뾰족귀 여인!
데려다줘서 고맙네.
딸이랑 먼저 나가서 기다릴 테니 이야기 마저 하고 나오시게나!
하하하!”
덜컥, 쾅―.
“···.”
뭔가 한 줄기 회오리바람이 일대를 쓸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시온은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앉아서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아이고.’
리아가 스펙업을 한다면 시온이야 반가운 일, 땡큐!
아 땡큐!
가 확실하다.
하지만 뭔가 원치 않는 사이에 시끄러운 장인 장모가 생긴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라이도가 알면 한 번 더 모가지를 꺾으려고 들지 모르겠는데.’
제 딸 두고 벌써 여자만 셋에, 이제는 두 번 째 장인어른까지 있단다.
아마 라이도 입장에서는 썩 달가운 일이 아니 것이 확실한 상황.
“프흣.”
그 때,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던 헬렌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술 사이로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시온이 왜 그러냐는 뜻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헬렌은 다급히 표정을 수습하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왜 웃었는데.”
“별 거 아닙니다.
공자님께 무례를 범한 것이라면···.”
“내가 언제 너한테 귀족놀음이라도 한 적 있어?
걱정 말고 대답이나 제대로 해.”
웃었다고 화를 내는 게 아니니 그냥 이유나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헬렌도 시온의 말뜻을 알아차렸는지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냥··· 좋아보여서요.
공자님도 그렇고, 위니.
아니, 이제는 리아라고 불러야겠군요.
그 묘은족 여인도 참 좋아보여서요.”
그렇게 말하는 헬렌의 얼굴에는 왠지 모르게 짙은 슬픔이 배어있었다.
그 부분을 놓치지 않은 시온은 입을 다물고는 다만 그녀를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저는 저 당시에 저러지 못 했으니까요.
리아처럼 사랑하는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서 더 귀여워해달라고 애교를 부리지도 못 했고, 더 사랑해달라고 투정을 부리지도 못 했으니까요.
그저 몸뚱이 뿐인 노예가 되어서 그 남자가 원하는 대로 더럽혀지기만 했을 뿐이죠.”
헬렌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
자신도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미처 자각하지 못 한 모양.
그러다가 시온의 침묵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 하고 탄식을 내뱉더니 애써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손을 내저었다.
“제가 또 옛 일을 들추어내면서 잡생각을 했네요.
부디 이 이야기는 잊어주세요.”
“아직도 악몽을 꾸나 보네.”
그 말에 헬렌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는 끝났고, 원수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에 빠져 죽을 때까지 고통 받게 되었다.
그녀와 또 다른 수많은 여인들의 눈물과 한으로 얼룩진 귀족 가문은 공중 분해되어 왕국에 흡수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때 일만 생각하면 몸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차오른다.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앗아간 자들, 그리고 낄낄거리면서 온몸 구석구석을 범하던 자들까지.
항상 일에 집중하여 잊으려고 해도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으면 그들의 시선이, 손길이, 숨결이 느껴지는 듯 했다.
벌써 약에 기대어서 잠을 청한지도 7년이 넘어간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 여인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부탁인 건가?”
“음··· 일종의 거래라고 해둘게요.
곁의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시면 저도 조금은 싼 값에 정보를 구해다 드릴 수 있답니다?”
“좋은 거래네.”
시온은 급하게 나서지 않기로 했다.
이 여인은 남자에게 여전히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괜히 들이대 봤자 반감만 더 살 뿐이다.
“아?”
시온이 슬며시 손을 내밀어서 헬렌의 손을 잡자, 여인이 당황해서는 그를 바라본다.
무슨 뜻이냐는 두려움, 그리고 공포감이 언뜻 눈동자에 비치다가 사라졌다.
“너무 겁먹지 마.
세페르 놈은 이제 결코 빛을 볼 수 없고, 널 그렇게 만든 노예상인들도 조만간 찾아내서 제대로 잡아 족칠 생각이거든.”
“어, 어째서···.”
“이종족들의 반감을 사는 짓은 이제 그만 둬야 해.
그들을 위해서도, 왕국을 위해서도, 그리고 너와 같은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인들을 위해서라도.”
이건 헬렌이 호감도를 높이기 위한 말장난이 아니다.
진심으로, 시온은 노예상인들을 조질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묘은족과의 접점을 만든 상황에서 이종족들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인간 새끼들이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요정들이야 천족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따를 테니 어쩔 수 없다 쳐도 수인들이나 난쟁이들은 잘만 설득하면 최소한 마족을 향해 날아가는 창끝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 놈들이 이종족 조진다고 설레발치지를 않아야 백사병도 만날 수 있어.’
칸과 함께 최고의 악역으로 대우받던 존재다.
백사병을 만나기 위해서는 일단 인간과 이종족 간에 쓸 데 없는 전쟁이나 대립을 최대한 자제해야만 했다.
“···위로라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내가 상인 앞에서 입만 놀리는 병신인 줄 아나보네?”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상인들 앞에서 내뱉는 말이 신뢰에 영향을 주는 건 다 알고 있어.
그래서 하는 말이야.
난 정말 그럴 생각이거든.
이번에 북부 일과 다른 일도 마무리가 되면 바로 그 새끼들도 조질 거야.
말이 너무 과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딱 이 느낌 그대로 정말 씨를 말려버릴 생각이거든.”
방법이라도 있냐고?
그런 건 이제 자신이 팍팍 밀어주고 있는 차기 여왕님이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은 바람만 불어넣고 나머지는 바네사 왕녀가 분노해서 칼을 휘두르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귀족 나부랭이의 칼보다는 차기 지도자가 뽑는 칼이 더 무섭고 더 잘 들지 않겠는가!
“공자님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분입니다.”
헬렌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시온이 잡은 자신의 손을, 빼내지 않은 채로 말이다.
―
이튿날 아침, 시온이 왕궁으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흐음, 시온.
혹시 리아 봤니?”
“어제 밤에 자기 아버지랑 같이 수련 좀 하러 갔어요.”
“에엑?
뭐야.
그러면 나 오늘 누구랑 같이 있어!”
“글쎄요.
김유현?
아니면 트리샤?”
“시온!”
걔네들 둘 다 더럽게 재미없잖아!
라고 외치는 릴리트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리시키다는 호위 기사이니 무조건 붙어야 하고, 루시아는 반드시 데리고 가야 할 이유가 있어서 동행해야 하니까.
“얌전히 집 지키고 계세요.”
“우우!
이렇게 버리는 거야?”
“뭔 소리에요.
원래 남편이 일 나가면 집 지키는게 누구죠?”
“그거야···.
어, 어어···.
부, 부인이지?”
“그렇죠.”
시온은 예복 상의를 걸치고는 릴리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안은 채 가볍게 키스를 해주었다.
“다녀올게요.
그 때까지 집 잘 지키고 있어요.”
“으으··· 진짜 너무 능글맞아.”
“싫어요?”
“키스 한 번만 더 해줘.”
릴리트의 부탁대로 한 번의 키스를 더 해준 시온은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마차에는 루시아가 타있었고, 주변에 호위를 할 리시키다와 몇몇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출발하자, 리시.”
“네, 주인님.”
출발 명령이 떨어지자 마차가 왕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왕궁 습격 사건이 있은 후로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계 태세는 날카로웠다.
이런저런 조사를 다 받은 후에야 시온은 비소로 정식으로 왕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시온.
이후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일단 국왕 전하부터 뵈어야 할 겁니다.
오자마자 왕녀님께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걱정이네요.
북부에서 야만족이 준동한다니.”
“부디 잘 처리되기를 바라야죠.”
시온와 루시아, 그리고 리시키다가 대전으로 향하는데, 앞쪽에서 꽤나 익숙한 이가 서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버지?”
“오랜만이다, 루시아.
그리고 너도.”
이런저런 일로 궁을 떠났던 라이도가 자리하고 있던 것이었다.
원래 이 때쯤 왕국을 유랑하고 있을 그가 왜 여기 온 건지, 시온도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에 라이도는 킥!
하고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표정 하고는.
그냥 어쩌다보니 왕궁에 오게 된 거다.
후배라는 녀석이 자꾸 도와달라고 징징대서 무시를 할 수가 있어야지.”
“후배라고 하시면···.”
“현 궁정 마법사다.
나는 그냥 미친년이라고 부르고 있지.”
궁정 마법사라면 왕국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뛰어난 마법사라고 인식된다.
그런 존재를 대놓고 ‘미친년’ 이라고 부르는 저 남자의 패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보다 제자 놈이 보이지 않는군.”
“좀 쉬고 싶다고 해서 말입니다.”
“딸내미 부탁한다고 맡겼더니 네가 채가서는 제자 놈이 실직을 한 모양이구나.
하긴, 내가 봐도 제자 녀석이 숫기가 없었어.
이런 아리따운 여인을 두고 어떻게 작업 한 번도 안 할 수가···.”
“아버지!”
어제 있었던 거스 대왕과 리아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분위기였다.
시온은 ‘여기 궁입니다.
정숙하세요, 정숙.’ 이라고 부녀를 말렸다.
“아무튼 볼일들 보고 가라.
혹시나 내가 얼굴 안 비치면 후배년 교육하느라 좀 바쁘다고 여기고.”
“아, 라이도님.”
시온이 자신을 부르자 노년의 마법사가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돌린다.
“가능하시다면 오늘 저녁에 클라우젠 별장으로 한 번 와주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될지 모르겠는데.”
“중요한 일입니다.”
루시아와 관련된 이야기죠.
라는 뜻으로 시온이 눈짓으로 옆의 여인을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그걸 바로 캐치해낸 라이도는 날카로운 눈빛을 띠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도와 헤어진 후, 대전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 시온과 그 일행들.
곧 왕좌 위에 앉아있는 에드가 4세를 만날 수 있었다.
“국왕 전하.”
“어서 오거라.”
짧은 대답이었음에도 한 나라의 절대자라는 존재답게 위엄이 넘치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기를 띤 채로 시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꽤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지.”
“그렇습니다.”
“원래 영웅이 항상 다사다난하다고는 하지만 그대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한 것 같구나.”
그렇죠, 내가 이래서 영웅 따위는 하고 싶지 않은 건데.
라고 중얼거린 시온은 그냥 웃으면서 에드가 4세의 말을 흘려보냈다.
“흠.”
에드가 4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옆에 무릎을 꿇고 있던 루시아와 리시키다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할 텐데, 시온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들어도 될까 고민하는 눈치.
루시아는 전 궁정 마법사였던 라이도의 외동딸이니 그렇다 쳐도 리시키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국의 기사였던 몸이다.
에드가 4세가 살짝 망설여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서야 하나?’
시온이 고민에 빠지는 찰나, 국왕의 옆에서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지 않게 도착했구나, 시온 클라우젠 공자.”
여인은 웃는 낯으로 걸어와서는, 일단 에드가 4세에게 먼저 예를 취해보였다.
“부왕 전하.”
“어서 오거라, 내 딸.”
에드가 4세는 이제부터 네가 맡으라는 듯 손짓을 해보였다.
그러자 바네사 왕녀는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이곤 시온을 향해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