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23)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23화(123/439)
123―――――
강해져서 돌아와라···
“그렇다면 정해진 것으로 알고, 나는 이만 일어나겠다.
아, 시온 클라우젠.”
“네, 전하.”
“극비에 행해지는 일은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조용히 진행하고 싶다는 점 알아두게.
너무 많은 관심이 쏠리면 또 북부의 야만족들이 기세등등해져서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대와 함께 할 인원들은 전부 내일 새벽에는 그대의 별장으로 향하게 할 터이니 잘 데리고 다녀오시게.
그럼···.”
에드가 4세는 결정 난 일에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듯 회의실을 벗어났다.
영지에서 데리고 온 기사들과 병사들은 긴 여정이 될 터이니 영지로 돌려보내거나 별장에서 머물게 하고, 북부로 향하는 길의 호위는 왕실이 맡을 것이라는 말을 남겨두고서.
“···.”
원래라면 에드가 4세의 뒤를 따라 같이 나섰어야 했지만, 바네사 왕녀는 자리에 앉아서 시온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시온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바네사는 여전히 힙을 다문 채로 눈앞에 앉은 남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이 많은데 뭐라고 입을 열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있을 것 같아, 시온은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치기로 결정했다.
“더 하실 말씀이 없다면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온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모션을 취해 보였다.
그러자 바네사는 놀라서는 반사적으로 ‘잠깐!’ 이라고 말을 내뱉고 말았다.
덕분에 시온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형국이 되자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 미···.”
“···.”
설마 또 저번처럼 하려던 말 대신 다른 이상한 말을 하는 건 아닐까.
그런 타당한 걱정이 드는 순간이었다.
“미, 미안하다.”
“···.”
“이럴 생각으로 그대를 부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이런 결과를 원하고 그대를 부른 건 결코 아니었다.
최소한 나는 그대가 거부라도 했으면 했다만···.”
“왕녀님.
그 사과, 취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으응?”
시온의 약간은 날카로운 목소리에 바네사는 당황해서는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왕녀님은 힘겨운 싸움이 될 수도 있지만 이 나라를 이끄는 국왕의 자리에 한 번 욕심을 내보겠다, 그렇게 뜻을 밝히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했다.”
“허면 사과하지 마세요.
왕이 되고자 하시는 분은 밑의 사람에게 함부로 사과를 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리 했다가는 밑의 것들이 깔보고 우습게 여기기 십상입니다.”
“하,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잘못한 것은 사과하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죄를 지은 것이 있다면 행동으로, 그리고 나라를 위한 공으로 잘못을 비는 법입니다.
그게 왕이라는 자리가 가진 저주이죠.”
민주주의 체제나 공화정 체제는 사과가 그리 무거운 곳이 아니다.
하지만 왕정 체제에서 왕실의 누군가가 ‘사과’ 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건 잘못을 빌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순간에 이용할 수 있는 무기다.
“또한 신하는 주군의 명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더해서, 제가 원해서 하게 맡게 된 일입니다.
설사 왕녀님이 말리셨다고 해도 저는 북쪽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위험한 길이다.”
“누디아와의 전쟁도 위험했습니다.”
“···.”
“전쟁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제가 더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위험한 일이 또 발생치 않도록 제가 자원한 겁니다.”
별 것 아니라는 시온의 반응에 바네사는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저 남자가 이런 반응, 그런 대답을 할 것이라고는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그저 그런 귀족이었다면 애초에 자신이 이리도 기대를 걸지도 않았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 남자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의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태 나 자신이 제법 괜찮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대 옆에만 서면 작아지는 구나.’
바네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회의실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대가 영지와 관련된 일을 이유로 이번 임무를 거절했으면 했다.”
“저를 부르면서도 왠지 모르게 소극적인 기운을 보이셨던 게 그거 때문이었군요.”
“북부 야만족들이 얼마나 흉포한지 그대도 잘 알지 않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흉포하지는 않다.
여러모로 왕국에게 부족한 그들이 생존의 길로 택한 것이 약간은 과하다 싶을 정도의 흉포함, 그리고 그로 인한 전쟁억지력이었다.
그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습관처럼 몸에 배이고 굳어져 그대로 드러나고, 과장되고 부풀려 몸집을 키운 다음 왕국으로 퍼졌을 뿐이다.
“솔직히 왕녀님도 제가 제일 적당한 인물이라고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겠지.”
바네사 왕녀가 막판에 실수를 했다지만, 그건 김유현이 너무 지랄 맞게 굴어서고.
원래 그녀는 개인적인 감정과 나랏일을 따로 볼 줄 아는 여인이었다.
시온을 꽤나 호감을 가지고 대하고 있다지만, 겨우 그런 것으로 나라의 중대사에 혼선을 빚게 만들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정말 그럴 정도로 무른 여인이었다면 시온이 픽업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것보다 제가 말씀 드린 대로 아주 면밀히 북부를 살피셨던 모양입니다.”
“꽤 많이 노력했다.
그에 더해서 오라버니가 남쪽으로 민생 안정 시찰을 나갔기에 조금 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지.”
“남쪽이라.
왕국의 해상 무역로가 있는 곳이자 현재로써는 왕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살기 좋은 곳이죠.”
“그래.
거기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지.
해서 오라버니와 그 세력들이 거기에 신경을 쏟은 동안 나는 반대로 북쪽을 주시했다.
그리고 늦지 않게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고 말이야.”
이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딱 적당한 때였다.
시온은 미소로 바네사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제는 정말로 가보겠다는 뜻을 밝혀보였다.
바네사 역시 더는 그를 붙잡을 수 없겠다는 듯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면 언제 출발할 생각인가?”
“아마 내일 새벽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부왕 전하께서 보낸 이들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출발하겠다는 소리이군.”
“시일을 지체해서 좋을 일이 아니니까요.”
“수도로 오자마자 또 강행군이구나.
사과할 것만 늘어나는 것 같아.”
“어차피 국왕 전하나 왕녀님도 저를 내일 중으로 보낼 생각이시지 않으셨습니까?”
시온의 장난스러운 반응에 바네사는 쿡, 하고 짧은 웃음을 내뱉고는 가볍게 종을 쳤다.
그러자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왕실 기사와 리시키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바네사는 그 중 왕실 기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를 배웅토록.
궁을 나서는데 있어서 한 치의 불편함도 없이.”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거의 원로 공신에 준하는 대우였다.
바네사 왕녀의 말에 왕실 기사가 고개를 숙이곤 안내하겠다는 듯 옆으로 살짝 비켜선다.
시온은 바네사를 향해 인사를 올리고는 걸음을 옮기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하지.”
“에?”
“아니, 아무 것도 아닐세.”
손을 내젓는 바네사.
시온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루시아와 함께 회의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회의실에 남은 바네사는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내일 보도록 하지, 라는 말을 시온이 부디 제대로 듣지 못 했음을 바라면서.
―
‘어후, 시펄.’
시온은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마차에 올라탔다.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을 잡아먹었으면 분명 바네사와 또 묘한 분위기가 되었을 것이다.
바네사는 든든한 정치적 파트너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와 손을 잡는 것과 연을 맺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다.
자칫하면 허울만 좋고 속은 텅 빈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음이었다.
‘바네사는 무조건 손에 쥐고 있어야 할 카드 중 하나야.
이건 변함없어.’
그녀는 반드시 여왕이 되어야 한다.
여왕이 되어서 자신의 등을 밀어주는 든든한 빽(Back) 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래야 차후 시온 자신이 원하는 그림대로 상황을 밀고 나갈 수가 있다.
에라더 왕자처럼 수준은 딱 범재인데 욕심과 의심 전부가 과한 놈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 때는 행복 끝, 불행 시작의 장이 열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너무 가까워지면 자칫 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왕의 배우자가 만만한 일이었다면 멍멍이나 음메나 다 달려들었을 것이다.
권력은 어디 시골 귀족보다도 못하게, 막말로 쥐똥만도 못 하게 쥐는데, 의무는 많아지고 가진 건 없는데 내놓아야 하는 것만 많아진다.
국왕의 배우자가 권력에 가까워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히스파냐의 특성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일단 현 국왕, 혹은 차기 국왕과 혼인을 하게 되면 그 즉시 가문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 완벽하게 왕실에 속하게 된다.
성도 본래 가문의 것을 버리고 왕실의 것을 쓰게 되며 오직 왕성 안에서만 지내는 것이 허락된다.
‘바네사와 이어지는 순간 모든 권력의 끈에서 손과 발이 다 잘리는 거지.
말 그대로 수술대 위에 누워서 강제로 팔다리 다 잘려나가는 거야.’
그건 안 될 말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히말라야 높은 공기 마시고 프리져 잡을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햇볕 따스하게 들어오는 적당한 높이에서 한가로이 지낼 만한 위치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역시나 권력이다.
무슨 사회적 위치, 그딴 게 아니라 진정한 힘.
나를 열 받게 하면 네놈 인생 하나 정도는 충분히 조질 수 있는 그런 권력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김유현이 바네사와 이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도 이해가 가긴 해.’
국왕의 배우자는 아무나 될 수 없는 법이다.
하물며 어디서 왔는지 출신조차 불분명하고, 귀족도 아니며, 예법보다는 전장에서 칼 휘두르는 것이 더 익숙한 이를 여왕의 옆에 두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유현도 다른 귀족들 눈에 자신이라는 존재가 영 좋지 않게 비쳐지는 걸 알았다.
해서 혹 믿음직한 동료이자 의지할 수 있는 이였던 바네사가 흔들리지 않았기를 바랐을 지도 모른다.
‘결말은 김유현을 조금 더 사랑했던 바네사의 방심, 그리고 파멸이었지만 말이야.
···잠깐만.
그렇게 생각해보면 바네사도 트리샤만큼이나 위험인물이잖아?
이런 야발!’
머리가 다 지끈거리는 시온이었다.
그나마 바네사는 아직 불꽃 폭탄 트리샤처럼 폭탄 심지에 불이 붙은 건 아니다.
아직까지는 서로 좋은 친구 정도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소리다.
“시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루시아가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척이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으로 시온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혹시 아버지 때문에 그런가요?”
루시아의 전혀 뜻밖의 대답에 시온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뜻으로 멀뚱멀뚱 그녀를 쳐다봤다.
물론 라이도가 무시무시한 남자이긴 하지만 굳이 그 때문에 루시아를 인원에서 뺄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데리고 오지도 않았다.
“무슨 소리죠, 루시아?”
“아버지가 혹 위험한 곳에 저를 끌고 간다고 뭐라고 하실까 저를 떼고 가시는 거냐고요.”
“그럴 리가요.
라이도님 때문이었다면 애초에 내가 루시아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을 리 없잖아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면 설명해줘요.”
항상 매사에 진중하던 여인이 이렇게 급해 보이는 모습이라니.
시온은 괜히 뜸을 들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말한다고 해서 딱히 설명이 될 부분이 아닌 터라 일단은 별장으로 돌아가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저녁 시간 이후에 말해주겠다고 루시아를 다독였다.
하지만 루시아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자꾸만 시온에게 달라붙어서 이유를 알려달라고 칭얼대고 있었다.
시온이 속으로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사실, 루시아의 걱정은 나름 타당한 부분이 있었다.
‘리아도 아버지라는 분이 오고 나서 갑자기 어딘가로 훌쩍 가버렸잖아!’
어디를 가든 항상 시온의 곁에 붙어서 지낼 줄 알았던 그 고양이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물론 리아는 자신이 원해서 간 거고, 길어도 한 달이니 그 안에는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시온에게 선언까지 해두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사실을 루시아가 모른다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왔다.
이야기를 나눈다.
끌려 나간다.
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이었다.
심지어 지랄 맞기로는 왕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이가 바로 라이도, 루시아 자신의 아버지다.
그런 남자와 시온이 딱 마주하고서 바로 직후 시온이 ‘루시아 씨는 유감스럽게도 저희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라고 합격 목걸이와 함께 떠나간다면 예상이 확신이 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루시아.
일단 말해주자면 리아는 끌려간 게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자리를 비운 거예요.”
“왜요?”
“트리샤와의 전투 이후로 느낀 게 있는 것 같아요.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 그래서 다른 여인들한테 뒤지고 싶지 않다는 거요.”
물론 개뻥이다.
리아는 그냥 시온의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고양이일 뿐이었다.
강해지고 싶다느니, 도움이 되고 싶다느니 그런 멋진 생각 따위는 한 적이 없다!
“저, 정말요?
리아가요?”
하지만 순진한 부분이 여전히 존재하는 루시아는 그걸 또 믿는 눈치였다.
속으로 미안하다!
떼껄룩!
하고 사과를 하며 시온은 말을 이었다.
“네.
마침 녀석의 아버지라는 분이 찾아와서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니 반드시 내게 도움이 되어서 돌아오겠다며 오지로 수련을 떠났어요.
그냥 철없는 고양이 인줄 알았는데, 참으로 기특하기 짝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짓는 건, 완벽히 의도된 것.
거기에 이 말까지 더 해주면 불타는 집에 항공유를 들이붓는 셈이었다.
“해서 돌아오면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했죠.
별 거 아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