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2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28화(128/439)
128―――――
누님들, 보통이 아님
히스파냐에서의 마지막 휴식을 취한 다음 날.
시온 일행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북쪽 야만 부족의 땅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슈마허 부단장님.”
“네, 시온 공자님.”
“고향이 북부 영지라고 했죠?
혹 야만 부족들에 대해서 더 아시는 게 있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일단 한 가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사나우면서도 호쾌하고, 명예를 중시하면서도 속이 은근히 좁은 집단입니다.”
가감 없는 감상평에 시온은 킥,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면 저리도 소설에서 묘사되던 북부 야만 부족들에 대한 설명과 똑같을 수가 있나 싶었다.
확실히 북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그는 일행들을 향해 다가온 한 야만족 무리를 상대로 막힘없이 대답을 해냈다.
이후 슈마허 부단장은 이 이상 들어가 봤자 저들의 적의만 살 뿐이니 멈춰서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 위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차를 멈춘 채 멍하니 기다리고 있어도 될까 싶었지만 시온은 그러기로 했다.
“으, 여기 참 기분 별로네.”
마차 안에서 릴리트는 투덜거리면서 장난을 쳤다.
리시키다는 그런 릴리트의 장난에 어어어, 하고 받아치면서 은근슬쩍 옆에 앉아있는 트리샤를 경계 중이었다.
아무래도 그녀 입장에서는 북부 야만족들보다도 이 트리샤라는 여인이 더 껄끄러운 모양.
다만 트리샤는 다 상관없다는 듯 시온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시온은 애써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척 하며 트리샤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헌데 왜 기분이 별로라는 거지?’
시온은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입을 열었다.
“릴리트님.
기분 별로라고 하신 게 무슨 소리죠?”
“마나가 영 똥 같다고.
차갑고, 날카롭고.
마나 사용하기 참 뭣 같은 곳이라 이거지.”
릴리트의 대답에 시온은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북부는 생활환경도 그렇고, 마나 분포도도 불안한 지역이라 상대적으로 왕국에 비해서 실력자가 많이 부족한 곳이었다.
환경도 안 좋은데 거칠기 짝이 없는 곳이라 일찍 죽거나 암살당하는 일도 비일비재.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겨울의 딸과 칸 자매는 그야말로 돌연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고작 30대의 나이에 북부 야만족 입장에서는 초월적인 존재로 성장하여 각각 거대한 세력 하나씩을 맡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하긴, 겨울의 딸이라 불렸던 에오스는 김유현과 여러모로 비슷하던 여인이고, 칸은 그런 김유현과 대등하게 싸우던 포스 철철 넘치는 악역 누님이었으니까.’
왕성에서 출발하기 전, 릴리트와 대등하게 싸우던 김유현을 바라보며 시온은 그의 힘이 반 이상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상급 기사 정도는 무리 없이 쓰러트릴 수 있으며 원래 소설 진행대로 칸과도 격전을 치를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아직 사려야지.’
시온은 슬쩍 뒤를 돌아보며 건너편 마부석에 앉아있을 김유현을 떠올렸다.
처음 그 차갑던 분위기도 이제는 자신과 함께 지내면서 많이 누그러진 상황이다.
무림에서 하도 고생을 하고, 심심하면 당하던 게 통수라서 사람을 도통 믿지 못 했던 성격.
그런데 이제는 먼저 자신의 의견을 구할 정도로 성장했다.
좋은 변화,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시온은 부디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김유현이 사춘기만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시온 공자.”
아, 시펄.
깜짝이야.
갑자기 마차 밖에서 들려온 김유현의 목소리에 시온은 가출할 뻔한 심장을 붙잡아서는 다시금 고이 안으로 모셔 넣었다.
하필 김유현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타이밍에 본인 등판을 하시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슬쩍 창 바깥을 확인해보니 마부석에 몸을 뒤로 숙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누가 다가옵니다.”
“다가온다고?”
“정확히는 여럿이라고 해야겠군요.”
김유현의 그 말 이후, 잠시 후에는 슈마허 부단장과 리시키다가 살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릴리트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창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고 말이다.
잠시 후, 정지해있던 마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드디어 온 모양이네.’
이렇게 잘게나마 땅이 흔들릴 정도라면 야만 부족의 기병대 밖에 없다.
시온은 손님으로써 이 땅의 주인들이 몸소 행차했는데 마차 안에만 있는 건 딱히 좋은 광경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마차 바깥으로 나섰다.
“주인님!”
“괜찮아, 리시.
정 걱정되면 네가 앞에 서있으면 되잖아.”
시온의 말에 리시는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앞서 내려서는 바깥 상황을 살폈다.
그러자 뭔가 불만이라는 듯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트리샤는 질세라 내려서는 리시키다의 반대편에 자리하고는 그녀와 비슷한 행동을 취해 보였다.
사익이라 불리며 히스파냐를 불태우던 여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보였다.
나쁘지 않아, 라고 중얼거리며 시온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릴리트가 ‘어휴, 참 피곤한 여자들 같으니라고.’ 라고 투덜거리며 후드 대신 모자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후드는 보는 입장에서 수상하다는 기운을 줄 수도 있으니, 마법사라면 응당 필수적으로 써야 하는 모자 하나를 씌운 것이었다.
“시온 공자님.”
“네, 부단장님.
아무래도 주인이 행차한 모양이군요.”
시온의 시야에도 확실히 들어오는 한 무리의 기병들.
왕국의 말과는 달리 체격이 작고 갈기도 그리 길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드문드문 빠져있었기에 상당히 볼품없어 보이는 말들이었다.
전마(戰馬) 라기 보다는 차라리 조랑말에 가깝다고 해야 할 정도의 모습.
당연히 왕성 방위군 중 일부가 기가 막히다는 웃음을 내지었지만, 시온이나 슈마허 부단장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저게 북부 야만 부족들을 함부로 토벌하지 못 하는 이유 중 하나.’
보기와는 달리, 저 조그마한 말이 왕국의 웬만한 전마보다도 훨씬 더 강인했다.
전마라고 해서 어디 풀어놓으면 바로 풀 좀 뜯어먹고 또 달릴 수 있는 말이 결코 아니다.
인간이 생쌀을 먹는 게 아니라 밥을 먹듯 전마들도 엄격히 관리된 마초를 먹는다.
정말 들판 위에서 풀을 뜯어먹게 한다면 대신 하루 종일 그 말들은 소화에 시간을 보내야 제대로 힘을 내고 달릴 수 있었다.
괜히 중무장한 채로, 역시나 중무장한 말을 탈 수 있는 이들이 기사라고 불리며 전장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겠는가.
말의 관리와 체력 유지가 사람의 경우보다도 훨씬 힘들고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부 야만 부족들의 말들은 달라.
생긴 건 어디 누룽지 숭늉이나 마실 것 같은 촌티 풀풀 머슴인데 하는 짓은 마초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터프하다고.’
작은 체구와는 달리 힘도 좋고, 속도도 왕국의 말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는다.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반찬 투정은 할 생각도 없으며 만일 사람이 마초를 챙겨주지 못 하면 알아서 풀뿌리라도 캐서 먹는다.
거기에 하도 황량한 땅이라 헝그리 정신이 뼈 속 깊이, 유전자까지 박혀있다.
덕분에 몇날며칠을 굶어도 달리는 것에 지장이 거의 없을 정도의 철인, 아니 철마들.
심지어 머리까지 좋아서 약탈을 나갈 때는 재갈을 물리지 않아도 수다 따위 떨지 않고 침묵을 유지한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항상 유목 생활을 하는 북부 야만족 생활 방식에 딱 어울리는 말들.
‘왕국 입장에서는 사람만큼이나 성가진 말 새끼들이지.’
기동력에 밀리면 이 너른 평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신나게 쳐맞는 일이 전부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던 왕국은 그냥 농작물 개간이 가능한 땅에 축성을 하고는 거기서 버티며 왕국의 영토로 버티는, 말 그대로 ‘존버’ 를 한 것이었다.
“하야!
하야!”
두두두두!―.
순식간에 가까워진 북부 야만부족 기병대.
그러다가 갑자기 선두가 촤악, 하고 갈라지더니 보통의 말보다 약간 덩치가 더 크고 강인해 보이는 말이 똑바로 시온의 앞으로 질주해온다.
어어, 하는 사이 그 거리가 확 좁혀지자 리시키다가 검 손잡이에 손을 댄 채 시온의 옆에 섰다.
“리시.”
하지만 시온의 제지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
덕분에 같이 나서려던 트리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그녀를 따라 시온의 뒤를 지켰다.
그러는 사이 정말 바로 앞까지 들이닥친 질주하는 북부의 기병대.
이대로라면 그대로 이쪽을 휩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긴장하려는 찰나 그들의 속도가 단 한 번의 고삐 질에 약속이라도 한 듯 줄어들었다.
동시에 가장 선두에 있던 이가 달리는 말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아무리 속도를 줄였다곤 하지만 여전히 달리는 말 등 위, 착지에 한 치의 실수라도 했다가는 단순히 바닥을 구르는 수준이 아니라 온 몸의 뼈가 2등분이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수는 이쪽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 부드럽게,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마냥 완벽하게 땅바닥에 착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흠.”
그리고는 쓰고 있던 모자를 뒤로 젖히니, 마침내 기수의 정체가 드러났다.
윤기가 흐르는 짙은 회색 머리, 총기로 가득한 보랏빛 눈동자.
왕국의 여느 여인들과는 묘하게 다른 생김새, 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답다는 기운을 숨길 수 없는 자태에 왕실 기사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쪽을 당장이라도 짓밟을 것처럼 달려들던 기수가 묘령의 여인, 그것도 귀족 영애 뺨을 후려쳐서 넉다운 시킬 미모를 지닌 이였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그 아름다운 자태는 여인이 서로의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추위를 막기 위한 두꺼운 옷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나 그 우월한 기럭지까지 전부 가릴 수는 없었다.
여인의 매력을 전혀 뽐낼 수 없는 옷을 입고 있는데 더 아름다워 보이는 자태라니.
시온은 왜 김유현이 저 여인에게 푹 빠졌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한 눈 팔면 너 정말 죽어.”
슬쩍 뒤로 다가온 릴리트가 미리 경고 사격을 해준다.
시온은 크흠!
하고 작게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발군의 실력이군요.
버일러.”
그 말에 여인이 흠칫, 놀라서는 발걸음을 멈춘다.
동시에 그녀의 뒤에 붙어있던 야만 부족 전사들까지 당황한 얼굴이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왕국의 귀족이 무척이나 익숙하다는 듯 그녀의 호칭을 부르고 있었으니까.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클라우젠.”
“클라우젠은 가문 이름입니다.
이름은 따로 있죠.”
“나도 이름은 따로 있어요.”
“이 땅에서는 이름보다는 그 호칭으로 불린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버일러.”
그렇게 말한 시온은 걸음을 옮겼다.
리시키다도, 트리샤도, 슈마허 부단장도, 김유현도 전부 뒤로 둔 채 혼자서.
그러자 에오스 역시 부하 기병들을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겨 딱 중앙 지점에서 시온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 몸이랑 키가 거의 비슷한 것 같은데?’
자신이 결코 작은 키가 아님을 감안하면, 정말 우월한 몸매가 아닐 수 없었다.
시온 클라우젠의 키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80으로 정해놓은 작가가 오늘따라 굉장히 서운한 시온이었다.
아니면 에오스 버일러의 키를 좀 작게 설정해두던가!
“···.”
자신을 아주 살짝 올려다보는 에오스를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한 2cm에서 3cm 차이가 나는 것에 안심하는 시온이었다.
참고로, 김유현의 키는 불행히도 179cm 였다.
“시온.”
그렇게 말하며 시온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북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이렇게 무기가 없는 손을 보이는 것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인사이자 예법이었다.
그에 에오스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도 이 남자는, 북부 야만 부족에 대해서 아예 모르쇠는 아닌 모양이었다.
“에오스.”
두 남녀가 손을 맞잡으며 최소한 서로에게 무기를 겨눌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했다.
그러자 그녀의 뒤로 온갖 흉흉한 무기를 든 채 정렬해있던 이들이 무기를 내리고는 모든 기수가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아 쥔다.
상대와 싸울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하는 모습이었다.
“···다들 무기를 내리고 너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마라.
저들 입장에서 일단 말에서 내린다는 건 결코 공격할 생각이 없다는 확실한 의사 표명이니 쓸데없이 의심하다는 속만 꼬이게 만들 뿐이다.”
북부 상황과 야만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슈마허 부단장이 명령을 내리자 왕실 기사들과 왕성 방위군 소속의 병사들이 날을 세우고 있던 무기를 전부 내렸다.
“···저 여자 짜증나네.”
“너도 그러니?
이하동문이야.”
트리샤와 릴리트는 간만에 시온 앞에 서있는 우월한 자태의 미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시온이 무슨 페르몬 뿌리는 것 마냥 여인을 몰고 다니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두 여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리시키다는 옆에 서있던 김유현의 숨소리가 갑자기 조용해져서 그를 살폈다.
“김유현 경?”
“···.”
김유현의 모습이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살짝 당황한 듯, 아니면 넋이 나간 듯 멍하니 한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길이 향한 이는 시온과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인.
잠시 멍하니 에오스를 바라보던 김유현은 아, 하고 탄식을 내뱉더니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이 ‘나는 저 여인한테 조금의 관심도, 이성적 호감도 없어요!’ 라고 온 몸을 다 해서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봐도 콩닥거리는 심장을 숨기려 애쓰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리시키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음 놓으세요.
저 여인이 시온님께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으니.”
안타깝게도, 리시키다는 릴리트에 비해서 눈치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작품 후기―――――――
리시야, 그거 아니야···.
아, 추천은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