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35)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35화(135/439)
135―――――
혹한기라고 아냐
“시온 클라우젠.”
한창 전사들을 갈구며 작업 지시를 하고 있던 시온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밑에서 꽤나 당황한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보면 모릅니까?
이러다가 날 샐 것 같아서 좀 도와주고 있는데.”
“···.”
쟌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자신이 등장한 순간부터 전사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는 혹여 테무친의 신경에 거슬리는 짓을 할까 조심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오직 저 남자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 대해서 잘 몰라서?
아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자신의 동생이자 아이기오르의 버일러인 에오스가 조심하라고 아주 입이 닳도록 설명을 했을 것이다.
쟌 테무친, 제 언니를 조심하라고.
혹시 세상물정 모르는 천방지축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아까 아이기오르 측에서 나눈 이야기들로 봤을 때 그런 남자도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이렇게 전사들을 애초부터 제 수족이었다는 듯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는 장면은 쟌으로서는 미처 예상치 못 한 부분이었다.
“또 뭐라고 불평을 하려고 그러는 걸까.”
천막 위에 올라가 있던 것도 신기한데, 거기에서 또 숙련된 몸짓으로 한 번에 착, 하고 내려온 시온이 쟌 앞에 서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그와 딱 얼굴을 마주하게 된 그녀는 눈동자를 데룩, 하고 굴리면서 애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대는 손님이다.
이럴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손님이 마음 편히 좀 쉬게 환경이 조성되어야 쉬지 않을까 하는데.
한쪽은 눈 치워, 다른 한 쪽은 천막 쳐, 또 다른 곳은 아예 땅을 파고 앉아 있어.
사방이 난리인데 내가 뭐 마음 놓고 쉴 수 있겠습니까?”
시온의 투덜거림에 쟌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던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그의 말이 재미있었다기보다는, 이렇게 자신 바로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또 새로워서였다.
다들 그녀에게 겁을 먹어서는 이렇게 앞에 서있지도 못 했는데 말이다.
쟌은 시온이 자꾸만 자신을 바라보자 슬며시 고개를 돌리다가 주변의 상황을 보곤 저도 모르게 ‘하.’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원래라면 중구난방으로 눈을 치우고 있거나, 천막을 치고 있어야 할 전사들이 몇 명씩 짝을 이루어서 이리저리 눈을 밀고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전사들이 평소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데.”
“빨리 치우고 일찍 쉬는 게 최고지 않겠냐 하니 말은 잘 듣더군요.
확실히 어디를 가나 군인들 달래는 데에는 빨리 하고 푹 쉬자, 가 최고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시온은 쟌이 아직도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음을 눈치 챘다.
저 여자가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정말 자기 얼굴이 눈 뜨고는 못 봐줄 정도인지 억울해지는 시온이었다.
‘아니, 빌어먹을.
보니까 야만 부족이라고 해서 왕국 사람들이랑 아예 다르게 생겨먹은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 얼굴 어디가 열 받는다는 거지?’
혹시 저기 있는 전사 놈들처럼 거칠어 보이는 인상이 최고라고 쳐지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게, 이런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는 곱상하게 생긴 놈보다 좀 거칠게 생기기는 해도 싸움 잘하고 일도 잘하는 놈이 최고일 것 같기는 했다.
···물론 야만 전사 놈들은 싸움질 외에는 딱히 잘 하는 것이 없으니 그건 아닌 듯 했지만.
“테무친.”
“···.”
“쟌 테무친.”
“뭐냐.”
“사람이 말을 하면 얼굴 좀 보고 대화라는 걸 나눠주면 안 되는 겁니까?”
“왕국에는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는 자유도 없는 것인가?”
“아이고, 북부에는 이렇게 바로 면전에서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얼굴 따위는 보지 않는 예의라도 있습니까?
이거 몰랐군요.
허미, 미안해라.”
심사가 비틀린 시온이 살짝 도발하듯 말을 하자 쟌의 눈썹이 일순간 꿈틀거렸다.
덕분에 주변에 모여 있던 전사들이 더 긴장해서는 꿀꺽, 하고 침을 삼킬 정도였다.
‘저 미친 왕국 놈이 뭐라는 거야!’
‘죽었다.
우리 모두 죽었다.’
‘테무친에게 겁도 없이 저런 빈정거림을!’
단순히 강하기만 했다면 전사들이 그리도 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력도 뛰어나고, 재능도 엄청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조금만 심사가 뒤틀려도 바로 흉포한 성격이 드러나는, 마치 한 마리의 맹수와도 같은 모습 때문이었다.
이제 막 활동하기 시작한 젊은 전사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조금 있는 이들은 쟌 테무친의 전설적인 과거에 대해서 아주 상세히 알고 있었다.
단신으로 적대적인 부족 전사들 전부를 쓸어 담기도 하고, 부족민을 습격한 흉악하기 짝이 없는 몬스터를 무장 하나 걸치지 않고, 맨주먹으로 때려 죽여서는 질질 끌고 온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온 몸이 흉악한 병기인 북부 최강의 전사 앞에서 ‘나 좀 잡아먹어주쇼.’ 라고 춤을 추고 있으니 전사들이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시온 클라우젠.”
때리려나.
전사들이 몸을 움츠리며 자리에서 달아날까 고민하는 전사들이었다.
“그대는 손님이다.
이런 행동을 할 필요는 없었는데.”
“내가 말했을 텐데요.
눈치 안 보고 빨리 쉬고 싶어서, 그리고 쉴 때 주변이 소란스러운 건 싫어서라고.
주변이 정리가 되어야 쉬든 말든 뭘 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당장 어깨와 머리 위에 눈이 쌓여있고, 말끔하던 복장은 흙이 묻고, 눈에 젖어서 엉망이었다.
손님이라는 입장에서 두 손 놓고 멀찍이 서서 구경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저 남자는 무슨 이유라도 있다는 듯 굳이 고생을 자처했다.
그럼에도 왕국의 대귀족이라는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저게 만약 연기라면 정말이지 대단한 자이고, 만에 하나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라면 더더욱 대단한 것이었다.
“쟌 테무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여인이 반사적으로 자신을 돌아보자 시온은 주변을 슥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 부하들 엄청 불편해 보이는데 꼭 여기서 이렇게 서서 대화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
이 이상 민감한 대화는 다른 이들의 눈과 귀가 없는 곳에서 하자는 소리였다.
쟌은 시온에게 따라오라고 하곤 지휘관용 천막으로 그를 안내했다.
시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저 뒤에서 여전히 눈을 치우고 있는 여기사를 향해 말했다.
“리시!
그거 넘기고 가자.”
“핫!
네, 주인님!”
주인 잘못 만나서 상급 기사까지 단 여인이 눈을 치우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전까지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던 리시키다는 바로 넉가래를 옆의 전사에세 넘겨주고는 후다닥!
뛰어와서는 시온 옆에 섰다.
“그보다, 리시.”
“네, 주인님.”
“···너 묘하게 흥분한 것 같다?”
“그, 그런가요?”
시온이 이유를 묻듯이 그녀를 쳐다보자 리시키다는 쑥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건 처음 봐서요.”
“아아.”
리시키다의 대답에 시온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미친 듯이 쏟아지는 폭설은 누디아에서 살던 그녀로써는 여간 보기 쉬운 풍경이 아니었을 것이다.
클라우젠도 겨울철에 약간의 분위기를 낼 수 있을 정도의 눈만 내릴 뿐, 이렇게 사람 하나 파묻을 정도로 쏟아진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근데, 리시.”
“네?”
“쓰레기 너무 좋아하지 마라.”
“무슨 말씀이신지?”
“눈 말이야, 눈.
내가 장담하는데, 사람 미치게 만드는 자연의 것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내가 장담할 수 있다.”
“그,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아무튼 시온의 생각은 그러했다.
참고로 그가 싫어하는 나머지 둘은 비에 젖은 낙엽과 어딜 가도 생겨나는 잡초들이었다.
―
“들어가지.”
쟌이 시온을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천막.
원래라면 쟌 본인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금지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 여태 그녀를 따랐던 부족장들이나 전사도 아닌, 왕국에서 왔다는 손님이 들어가니 몇몇은 불만을 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걸 떠나서 그 손님들을 걱정했다.
‘괜찮으려나?
설마 맞아죽어서 나오는 거 아냐?’
실제로 쟌은 자신에게 버릇없이 까불던 전사 몇을 말 그대로 때려죽인 전적도 있었다.
그녀 딴에는 최대한 힘을 빼고 교육 목적으로 두들겨 팼다는데, 상급 기사도 무리 없이 잡아낼 수 있는 강자의 파괴력은 이미 예상 범주를 넘어도 한참 벗어난 것.
거기에 더해서, 애초에 쟌의 천막으로 간다는 건 뭔가를 잘못해서, 그래서 질책을 받기 위해 가는 장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저 안으로 불려간다는 건 결코 좋지 않은 미래가 도사리고 있음을, 모든 부족장들과 대부분의 전사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손님에게 손찌검을 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이 있는데···.’
‘시체 치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테무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우려의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온이 천막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자, 잠깐만.”
먼저 안으로 들어갔던 쟌이 갑자기 소리를 치더니 곧 뭔가가 우당탕!
하고 쓰러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잠시 후에는 뭔가 와장창!
하고 깨지고 쾅!
하고 묵직한 것이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렸다.
심지어 시간이 더 지나니 아예 뭔가 드르르륵!
하고 끌리며 엄청난 소음이 들려왔다.
“···.”
“방금 소리는 아무래도 병장기가 넘어간 소리 같습니다만, 주인님.”
“내가 듣기에도 그러네.”
“혹시 주인님을 해하려다가 일이 꼬인 것은 아닐까요?
수상합니다.
저 여인, 매우 수상해요!”
“···.”
리시키다가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불안해지는 시온이었다.
확실히 ‘칸’, 쟌 테무친은 소설 속에서 그런 흉포한 모습을 자주 드러냈었다.
평소에는 잔잔한 호수처럼 조용하다가도 상대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던가, 아니면 부족민들에게 위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자비 없는 맹수가 되었다.
차라리 트리샤처럼 매사에 불같으면 대처라도 쉬웠을 것이다.
헌데 저 여자는 지극히 평범한, 조금 차갑기는 해도 진중한 모습을 보이다가 한 번 꼭지가 돌면 그대로 폭탄이 되어버리는 캐릭터였다.
‘오죽하면 제 동생인 에오스가 종잡을 수 없는 미친년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을까.’
왜 하나같이 성격이 좀 괜찮은 캐릭터 찾기가 힘든 것인지, 시온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 릴리트가 자비의 여신으로 보일 정도라고 해야 할까.
“이, 이제 들어와도 된다.
시온 클라우젠.”
“···그러면 실례.”
라고 말하면서 시온은 슬쩍 옆에 붙어있던 리시키다에게 ‘혹시 저 여자가 정말 이상한 짓 하면 괜히 싸울 생각 말고 바로 나 데리고 튀어.’ 라는 식의 말을 해두었다.
아무리 리시키다라고 해도 ‘칸’ 이라 불리던 여인과의 결투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조만간 김유현한테 리시키다 좀 맡겨야지.
그리고 그 놈을 부려먹기 위해서는 칸 뿐만 아니라 겨울의 딸과도 우호 관계를 다져놓아야 해.
그래야 김유현 부려먹기가 더 편해지거든.’
다행히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왁!
하고 날아들 것 같던 병장기는 없었다.
딱히 특이하다고 할 만한 부분조차 없는 천막 내부.
그저 테이블 하나와 의자 5개, 그리고 잘 개어져 있는 침낭만이 전부인 공간이었다.
예상 외로 진짜 별 거 없는 개인 천막이구나, 싶던 순간이었다.
‘···아니, 정정.’
시온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은 이유.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자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나무로 대충 만들어진 간이 테이블이 뒤집어져서는 한쪽으로 쳐박혀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그 뒤로 삐죽, 드러나 보이는 칼과 창, 그 외에 단검 여러 자루.
심지어 책까지 드문드문 보이는 것을 시온은 놓치지 않았다.
‘도대체 뭘 숨기려고 저런 거지?
혹시 북부 부족들의 중요한 정보라도 되나?’
북부 야만 부족들의 기밀이 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었다면, 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것만 싹 거두어서 어딘가로 치우거나 하다못해 안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간이화로 안에 던져버리면 될 것을, 무슨 애들이 방 치우는 것 마냥 한쪽으로 싸그리 몰아서 처박아 둔 것이었다.
이 여자 뭔데, 도대체?
라는 말이 절로 치솟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었지만, 시온은 애써 그쪽으로는 시선을 두지는 않았다.
저런 행동을 하는 애들을 몇 번 봐서 아는데, 물건들을 치운다고 저렇게 한 구석에 싹 쌓아둔 애들을 자극해서 딱히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다.
특히나 저렇게 쌓아두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제발 저거 못 본 척 해달라고 온 몸으로 외치고 있는데 거기서 ‘저게 뭐니!
아앙?’ 하면 무시무시한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시온은 온갖 물건이 안쓰럽게 처박힌 곳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았다.
리시키다는 그런 시온의 호위를 맡겠다며 그 뒤에 얌전히 섰고 말이다.
“···흠.”
뭔가를 엄청나게 고민 중이라는 듯, 쟌이 테이블을 잡은 채로 시선은 또 피한 채 침음을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불렀으니 말을 해야 하는데, 정작 입을 열자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저, 시온 클라우젠.
내, 내가 할 말은 다름이 아니라···.”
우지직!
갑자기 흉악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잡고 있던 나무 테이블이 박살이 나버렸다.
어찌나 힘을 강하게 쥐고 있었는지 손으로 쥐고 있던 부분이 아예 뜯겨져 나온 것이었다.
“···.”
“···.”
“···아.”
···아는 무슨 얼어 뒈질 놈의 ‘아’ 야.
쟌의 손에 들려있는, 도끼로 내려쳐야 잘릴 것 같은 투박하기 짝이 없는 원목 테이블을 바라보며 시온은 기가 막힌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작품 후기―――――――
추천 안 하면 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