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36)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36화(136/439)
136―――――
혹한기라고 아냐
천막 안에 불편한 적막이 찾아들었다.
시온은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쟌을 쳐다보고 있었고, 리시키다는 잔뜩 긴장해서는 여차하면 바닥에서 나뒹구는 병장기 하나를 집어 들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쟌은, 손에 들려있는 ‘테이블이었던 것’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아아.”
그러다가 시온과 리시키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려있음을 알아차린 그녀는 다급하게 그것을 간이화로로 휙!
하고 집어던졌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불 속으로 들어가는 불쏘시개, 깔끔한 홀인원이었다.
“크흠, 크흠흠!”
“···.”
설마 이 놀라운 차력 쇼를 보여주기 위해 굳이 이 장소로 자신을 안내한 것 아니겠고.
시온은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는 이 황당한 꼴을 또 볼 것 같았기에 자신이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혹시 따로 혼약···.”
“대충 보아하니 단순히 생활공간을 옮기는 수준이 아니라 훈련의 느낌이 짙던데.
재빠르게 천막을 거두고 다른 곳으로 움직여서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는 지역을 확보하는 그런 훈련 말이죠.”
“아?
어··· 그런 셈이지.
우리 북부의 전사들은 말과 함께 움직이다보니 빠르게 지역을 이탈하여 안전한 곳에 천막을 쳐야 할 경우가 많으니까.”
“말들이 쉴 공간을 만들어야 하기에 잠깐 머무는 구조가 아닌 최소한의 ‘군영’ 형태는 갖춰야 하고.
내 말이 맞습니까?”
“···그렇다.”
그에 시온은 피식,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결국 뭡니까.
군 훈련과 비슷한 수준의 기간에 나를 밀어 넣어서 일주일이라는 시간도 채우지 못 하도록 조치를 취할 생각이었다.
뭐 이런 뜻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그건, 그건 아니다.
내가 그대를 칼타로 부른 이유는 다른 것을 논의해보기 위함···.”
“목에 칼까지 들이댄 전사가 그렇게 말하니 믿음이 안 가는 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군.
내 실수다.”
북부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다 수용이 되는 여인이 사과를 하고 있다.
아마 이 장면을 보았다면 부족장들이고 전사고 펄쩍 뛰면서 왜 이러냐고 소리라도 질렀을 일.
하지만 시온은 사과해서 뭐 어쩌라고, 라는 반응을 유지 중이었다.
사람 죽여 놓고 그 때도 실수하고 말하려나.
미안하지만 내 목숨은 그쪽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거란 말이다.
당장 시온 자신이 죽으면 그 다음 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그조차도 감히 상상하기 싫은 수준이었다.
“뭐, 어찌 되었든 우리 간의 거래는 여전히 진행 중이겠죠.
나는 일주일 동안 여기 머물면서 최대한 부족민들의 마음을 돌려서 왕국과 대화를 해보자는 의견으로 기울게 만든다.
그리고 당신은 내가 여기 머무는 동안에는 최대한 무력 도발을 자제하며 끝까지 히스파냐와 싸울지, 아니면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잊지 않았으리라 믿겠습니다, 쟌 테무친.”
“···서로 노력은 해야지.
결과는 장담치 못 하겠지만.”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말한 시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은 눈앞에 앉아있는 여인의 아랫사람도 아니고, 그저 손님에 불과하니 이렇게 먼저 자리를 비워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가, 가려는 건가?”
“테무친이 워낙 바빠 보여서.”
그렇게 말하며 슬쩍 천막 한 구석에 처박혀있던 온갖 것들을 턱 끝으로 가리키는 시온.
쟌은 ‘으윽.’ 하고 탄식을 내뱉고는 못 볼꼴을 보게 했다는 듯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혹시 더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굳이 나를 테무친의 천막까지 데리고 온 걸 보면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 아니다.
이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해도 되겠지.
오늘은 그만 돌아가서 쉬도록 해, 시온 클라우젠.
내일 보도록 하지.”
담담한 목소리로 쟌이 그렇게 말하니 시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미련 없이 그녀의 천막을 나섰다.
천막 출입구를 촤악!
하고 걷고 나서는 시온이 주변의 시선이 온통 이쪽으로 쏠려있음을 느끼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리시키다는 바로 그들의 시선을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시온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들의 시선 전부를 깔끔히 무시한 채 자신의 천막으로 향했다.
‘북부 야만 전사들의 특징, 일단 약해보이는 건 가족이든 뭐든 물어뜯고 보는 놈들.
여기서 표정과 분위기 관리를 해주어야 앞으로 저 인간들의 마음을 사는데 도움이 될 거야.’
칼타 전원의 마음을 사서 ‘왕국 만만세!’를 외치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시온이 원하는 건 칼타라는 이 연합체에 보이는 작은 균열을 조금 더 벌릴 수 있을 만한 건수,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였다.
설득은 자신이 아니라 쟌이 해야 할 일이고 자신은 그냥 분위기만 좀 내주면서 ‘왕국이라고 다 병신인 건 아니란다.’ 라는 모양새를 넣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시온은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앞으로 며칠은 같이 자야겠네.”
“예?”
“북부 전사들은 남녀를 따로 구분하지 않거든.
혼인 시기도 빠르고 말이야.
녀석들이 우리에게 마련해준 천막도 나 따로, 너 따로 식의 두 개가 아니라 하나였다는 소리야, 리시.”
“그, 그런?
제, 제가 어찌 주인님과 함께 잠자리를!
저는 호위기사입니다!”
“호위기사 해.
누가 하지 말라고 안 했다.
다만, 같이 잘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
그에 리시키다는 바로 얼굴이 새빨개지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반응이었다.
천막 쪽으로 향하는 내내 몸을 배배 꼬며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아주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고 있는 그녀였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리시.
여기 천막은 우리가 지내던 성의 방들과는 달리 방음 잘 안 되어서 할 마음이 전혀 안 드는 환경이거든.’
내 여자의 숨결소리조차 남이 듣는 건 상당히 불쾌한 것이 남자의 소유욕이다.
뇌까지 근육 빵빵인 녀석들이 제 물건 쥐고 천막 안에서 열심히 휘두를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일주일동안은 매우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이 되는 시온이었다.
더하여 리시키다 입장에서는 아쉬울지 몰라도, 시온 입장에서는 다행인 것이 이 북부에서는 물이 꽤나 귀한 것이었다.
그에 더해서 지금과 같이 일종의 군사 훈련을 할 때에는 가지고 있는 물을 식수만으로 운용하는 것도 아까울 정도였다.
당연히 최소한의 세안 외에는 씻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혹여 불쾌하시다면···.”
“난 오히려 네가 불쾌할까봐 걱정이다.”
천막 안으로 돌아와서 두꺼운 방한복을 벗으니 안에 갇혀있던 사람의 열기가 확, 하고 퍼져나간다.
그래도 손님들 천막이라고 보통의 전사들 천막보다 조금은 넓게 해주었기에 두 사람이 쓰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지만, 리시키다는 자꾸만 구석으로 달라붙어서는 혹 시온에게 걸리적거릴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왜 자꾸 구석으로 숨어.
여기 와서 불이라도 쬐지, 리시?”
“괘, 괜찮습니다.
저는 여기가 더 편합니다.”
“서로 볼 거 다 봤는데 뭐가 부끄러워서 그래.
옆에 와서 앉아.”
리시키다는 잠시 낑낑거리다가 결국 조심스레 시온의 옆에 자리했다.
그러면서도 혹 몸이 닿을까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호위기사 모드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막상 같이 잠자리에 들어 ‘여자’ 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앙앙거리면서 애교를 부리던 그녀였는데 말이다.
그 때, 밖에서 잠시 소란스러움이 느껴지더니 한 무리의 전사들이 들어가겠다는 말과 함께 가벼운 무장을 한 상태로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리시키다가 반사적으로 일어나며 품에 안고 있던 검을 쥐었지만, 시온은 안심하라며 그녀를 제지했다.
“칼타를 방문한 테무친의 손님 분인가.”
“그렇다만.”
테무친의 손님이니, 전사들보다 자신이 더 상전이라는 점을 빠르게 파악한 시온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은 채,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이는 왕국의 귀족을 바라보던 전사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보이곤 입을 열었다.
“일주일동안 당신과 함께 할 잘란이라고 합니다.
이 주변으로 천막 8개, 32명의 전사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소대장이라고 보면 될 듯 싶었다.
시온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나 북부의 예의대로 자신 역시 이름을 밝히곤 먼저 손을 내밀어 인사를 청했다.
혹시나 그가 제 인사를 무시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잘란이라는 전사는 쟌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듯 시온의 인사를 상급자를 대하듯 받았다.
“오늘 전사들을 도와준 부분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할 겸 찾아왔습니다.”
“손님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일주일 동안 신세를 져야 할 몸이니 밥값을 한 거라고 치자고.
북부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 먹을 수도 없다, 라고 하지 않았나?”
“···잘 알고 계시는군요.”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나도 그대들 전사들과 같이 행동할까 하는데.
그대가 이 근처의 전사들을 통괄하는 자라면 허락을 받아야겠지?”
“당신은 테무친의 손님이시니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말했잖나.
최소한의 밥값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이유 없는 밥 사주기이고,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도 갑자기 밥을 사주는 것이라고 시온은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중에 저들이 무슨 꼬투리를 잡을지 모르니 최소한의 대외 활동은 해두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정 그러시겠다면 더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전사들에게 방해가 된다면 그 때는 이 천막의 책임자로써 더는 그런 행동을 금지시킬 수도 있으니 유의하시길.
그러면 식사 하시고 내일 뵙도록 하죠.”
그렇게 말한 잘란은 다시 인사를 해보이곤 천막을 나섰다.
전사들이 모두 멀리 사라졌음을 확인하자 그제야 리시키다도 안심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고 말이다.
“북부의 대평원은 일단 해가 떨어지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오늘 하루종일 피곤했을 테니 식사 하고 오늘은 일찍 쉬도록 해.”
시온의 말에 리시키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녁 식사라고 해봤자 전사들이 내어준 말린 고기와 약간의 물, 그리고 마유가 전부였다.
정말 군사 훈련을 할 때 나를 데리고 왔구나, 이 망할 칸.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시온은 겉으로는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육포를 질겅거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왕국의 대귀족으로써 엄청난 고생을 하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솔직히 자신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조금 힘든 노가다를 하고 쉬러 온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조금은 주옥 같은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열 좀 받을 뿐이지.’
분명 아는 형이 계단을 많이 오르내리는 쪽으로 가면 큰 훈련 안 한다고 했는데, 막상 때가 되니 할 건 다 하더라.
그제야 왜 주변 선배들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래도 양구보단 나으리.’ 라고 자신을 그렇게 놀려먹었는지 알 수 있었고 말이다.
“주인님.”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시 멍하니 앉아있던 시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시키다가 입을 열었다.
시온이 왜 자신을 불렀냐는 뜻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여기사는 조심스레 그 모습을 조금씩 벗어내곤 리시키다라는 여인의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으신가요?
저야 온갖 고된 훈련을 한 기사이지만 주인님은 이런 곳과는 전혀 걸맞지 않은 분인데.”
“뭐야.
내가 고생 따위는 한 번도 안 해본 놈이라 걱정이라도 되는 건가?”
“설마요!
주, 주인님을 모욕할 생각은···.”
“없겠지.
네 마음 다 안다, 리시.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도 잘 알고.
네 말대로 이런 고생은 나도 조금은 언짢은게 사실이야.
하지만 이게 최선의 방법이거든.
이들과 왕국이 전쟁을 벌이면 결국 모두가 끔찍한 손해를 보는 법이지.
그리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을 테고.”
그 고통을 받는 인물 중에는 분명 미래의 시온 클라우젠, 자신도 있을 것이다.
북부의 안정을 확보하지 못 하면 이후 칼날 산맥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들을 막아줄 수 있는 방벽이 완전히 괴멸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미래의 나를 위해, 조금만 더 고생해주렴, 오늘의 나!
라는 마인드로 버티고 있는 것이 시온의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아, 그리고 리시.”
“네?”
“새벽에 갑자기 나 없어져도 놀라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
“···무슨 말씀이신지?”
리시키다의 반문에 시온은 킥, 하고 미소를 짓곤 답했다.
“근무자들 순찰 좀 돌아줄까 해서.”
―
“어이, 일어나.
교대 시간이다.”
“아, 넵.”
탸스는 자신을 깨우는 전번 근무자의 부름에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 시간대에 불침번 근무가 잡혀있었다.
오늘 쏟아진 폭설로 인해 온갖 굳은 일들이 생겨 피곤하기 짝이 없었지만 일상생활도 아닌 훈련 와중에 불침번 근무는 당연한 것이었다.
간단한 무장을 걸친 후 방한복을 입은 탸스는 밖으로 나섰다.
이미 자신과 함께 근무할 또 다른 전사는 특이사항에 대해서 인수인계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탸스, 너도.
특이사항 없고 고생해라.”
“옙!”
전사로 임명 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탸스는 패기 있게 대답을 해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빠르게 지루함과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그와 같이 근무를 서는 이와 대화라도 조금 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필 그와는 같은 부족 출신도 아니고, 나이대도 달랐기에 근무를 서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루하네.’
그런 생각이 드니 그나마 맑은 정신을 유지하던 머리가 순식간에 뿌옇게 변하고, 그렇지 않아도 피곤하던 몸이 더욱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멀쩡하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졸음이 몰려드는 것이었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
이성과 본능의 싸움에서, 항상 승리하는 건 본능이다.
심지어 인간의 3대 욕구라는 수면욕에서 벗어나는 건 웬만한 전사들도 힘들어 하는 일.
애써 졸음을 쫓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지만 딱 그 때 뿐이었다.
‘···자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경계 임무인 외벽 쪽은 다른 천막의 다른 전사들이 맡고 있다.
자신들은 그저 이 천막 주변에 다른 특이사항은 없는지 살피는 보조 인원에 불과.
그렇게 생각이 드니 간신히 참고 참았던 졸음이 밀물 들어오듯 들이닥쳤다.
‘안되는데, 진짜 안 되는데.’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원래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이 당연한 논리.
결국 탸스는 창대에 머리를 기댄 채 밀려드는 졸음을 이기지 못 하고 점점 감기는 눈꺼풀을 놔두고 말았다.
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탸스가 막 단잠에 빠지려는 찰나였다.
턱―.
“뭐하누.”
불량 근무자를 찾아내어 너무나 즐거운 당직 사령의 눈빛을 띤 채, 시온이 뒤에 서있었다.
―――――――작품 후기―――――――
등골이 오싹해지지.
3연참 했으니 추천 주세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