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37)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37화(137/439)
137―――――
혹한기라고 아냐
“···그래서 제가 전사 의식을 통과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팔을 잃으신 아버지, 다시는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형을 위해서라도, 제가 집안을 책임져야했죠.”
“그랬군.
이제 열일곱 살이라고 했나?
탸스가 고생이 많았네.”
“아하하.
그런 말을 들어보기는 엄청 오랜만이네요.
이게 이제는 의무이고,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서 다들 그런 감흥이 별로 없거든요.”
“원래 사는 게 다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유별나게 힘든 쪽이 있거든.”
“당신도 그리 나이가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기분이 묘하네요.”
“그렇지.
아, 네 이야기는 잘 들었다 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고.
왜 근무 시간에 졸고 있던 거지?”
“헙.”
들어줄 거 다 들어주었으니 이제 괴롭힐 차례다.
물론 정도가 심하지 않게, 서로 웃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말이다.
“내가 아까 잘란이란 전사랑 이야기를 나누었거든.
혹여 제 임무에 충실하지 않은 전사를 보거든 꼭 자신에게 말해달라고 말이야.”
“허억!
저, 정말입니까?”
정말이겠니?
당연히 개뻥이지.
물론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탸스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시온에게 슬쩍 달라붙어서는 입을 열었다.
“자, 잘란님께 근무 중에 졸았다는 말씀은 제발 해주지 말아주세요.
저 그러다가 하루 종일 말똥을 치워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면 졸지 말았어야지.”
“으윽!
너, 너무 피곤했단 말입니다!
손님 분은 모르시겠지만···.”
“뭔 소리야.
나도 아까 너희 도와서 눈도 치워주고, 천막도 쳐주었는데?
나라고 안 피곤하겠어?
너희 전사들이 피곤하다는 거 모를 수가 있겠냐고.”
“아, 아아··· 그, 그러셨죠.”
먹고 쉬기만 하던 남자가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어, 이놈 졸았네?
바로 일러바쳐야겠어!’ 라고 떠들었다면 적개심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지인에게는 상당히 폐쇄적인 분위기를 지닌 북부 야만 부족들인데 거기에 손님의 자리를 망각하고 함부로 나댄 꼴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온은 그런 개막장 손님과는 시작부터 달랐다.
다들 폭설로 인해 천막도 치기 전에 고생을 할 때, 누가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나서서 전사들을 도왔다.
물론 도우는 와중에 살짝 사람 마음을 갸우뚱하게 하는 걸쭉한 욕설이 섞여있었지만, 그의 지적을 듣다보니 ‘아, 우리가 너무 대충 대충 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렇게 고생을 같이 하니 저 남자는 전사도 아니고, 같은 부족 출신도 아닌, 심지어 북부 사람이 아니라 왕국민인데도 묘하게 동질감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동질감은, 이렇게 질책을 하는 와중에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저, 정말 잘란님께 말씀드릴 건가요?”
“잘란이 그렇게 부탁했는데 말이지.
탸스, 네 이야기가 너무 눈물 나서 참고 넘어가준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시끄러워.
이러다가 자는 사람들 다 깨우겠네.”
탸스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린 시온은, 다음 타깃으로 조준선을 정렬했다.
아까부터 귀동냥으로 이쪽의 이야기를 조금씩 듣고 있던,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전사였다.
“탸스, 물어볼 것이 하나 있는데.
혹시 전사들의 예법 중에 남의 이야기를 엿들어도 된다는 부분이라도 있나?”
“아니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만.
애초에 우리 북부의 전사들은 그런 비겁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명예로운 전사들은 말이지요!”
“···그러냐.”
그렇게 명예 어쩌고 하는 놈들이 왜 전투에만 돌입하면 그 어떤 수도 서슴지 않고 써서 왕국의 북부 귀족들에게는 ‘말 탄 도적떼’ 라고 불리는 것일까.
시온은 볼을 긁적이며 그리 생각했지만, 달리 보면 그게 또 합당한 일이긴 했다.
다른 때에는 몰라도, 전쟁에서는 적의 옆이나 뒤를 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으니까.
“거기, 애써 이쪽은 안 보고 있지만 열심히 듣고 있는 전사 분?”
“···.”
“못 들은 척 하면 여태 엿들은 게 안 들은 게 되나?
흐음.
왕국에서 말하길 북부의 전사들은 다른 때에는 몰라도 평소에는 명예를 지킨다던데 이렇게 보니 그냥 순 거짓말···.”
“크흠!
여, 엿들은 건 아닙니다.
그냥 근무를 서다보니 자연스레 들린 것이지!”
그래, 그래.
말은 누구나 그렇게들 하겠지.
아무튼 쟌이고, 휘하 전사들이고 너무 싸움에만 열혈 집중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다른 부분에서는 맹한 구석이 많이 보이는 자들 천지였다.
애초에 왕국과는 달리 정치 싸움할 장소가 되지 못 하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원래는 경계 근무 중에 떠들지 말라고 하지만, 입 닥치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서있는 것만큼이나 졸리고, 지루하고, 사람 미치게 만드는 일도 없어.’
시온은 여전히 탸스 옆에 서서는 일부러 그 전사 쪽은 바라보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내 소개는 조금 전 탸스와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겠지.”
“···도대체 어떤 남자이기에 테무친이 손님으로 받아들인 건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의문이 좀 풀리는군요.
부족장들은 왕국의 귀족들이란 존재들은 하나 같이 전부 상종하지 못 할 쓰레기라고 하던데, 당신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어이, 그게 일부 사실이긴 해도 나 역시 엄연한 왕국민이야.
왕국민 앞에서 왕국 까내리는 말은 하지 말지 그래.”
“···혹 무례가 되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이 부분도 시온이 나름 포석을 깔아두었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지만, 그 힘든 작업들을 같이 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는 같이 해냈다.’ 라는 동질감을 쌓아둔 것이다.
동시에 쟌 테무친, 전사들이 그렇게나 두려워하면서도 또 동시에 가장 존경하는 여인의 손님이었으니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도 한 몫 단단히 해주었다.
‘원래라면 어쩌라고, 하며 차가운 반응을 보여야 정상인데.
확실히 어디를 가도 같이 고생한 사람한테는 함부로 화내기가 어려운 법이지.’
그에 더해서 북부처럼 퍠쇄적인 분위기를 가진 곳에서는 ‘도움’을 받았으면 응당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한다, 라는 예절까지 겹치니 더더욱 금상첨화였다.
“저, 그런데 손님분.”
“시온이라고 말했다, 탸스.”
“아, 네.
시온.
갑자기 이 새벽에 왜 나온 거죠?
불침번이라면 또 모를까, 갑자기 새벽에 나오셔서는···.”
“말했잖아.
혹여나 경계 소홀한 놈 잡아달라고 해서 사람이 가장 약해지는 때인 새벽때를 노린 거지.
그리고 정확히 탸스, 네가 붙잡혔고 말이야.”
“정말입니까?”
“그걸 또 믿냐?”
시온의 타박에 탸스는 ‘아니, 그러면 왜 일어났는데요?’ 라고 의문 섞인 질문을 다시 내놓았다.
“잠도 잘 안 오고해서 잠깐 나온 거뿐이야.”
“잠자리가 불편한가요?”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어쩔 수 없이 태생이 귀족인 놈이니까.
하지만 못 잘 정도는 아니야.
그냥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이 안 왔을 뿐이지.”
“그러고 보니 당신에 대해서 전사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전쟁영웅이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왜 저 부분을 안 물어보나 했다.
야만 전사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전쟁터의 공훈이고, 영광스럽게 싸웠다는 증거이니 시온에게 붙여져 있는 ‘전쟁영웅’ 이라는 호칭을 무척이나 궁금해 했을 것이다.
“멀리 이웃한 나라와 싸울 때 공을 세웠지.
아, 이건 내가 탸스한테도 제대로 말 안 해줬나?”
“시온이 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는 건가요?”
“설마.
왕국의 대귀족이라고 했으니 혹여 붙잡히면 큰 손해일 텐데.”
“그쪽한테는 아쉽게도 난 당시 진짜 1선에서 싸웠어.
그 뿐만이 아니라 뒤에 쳐진 병사를 직접 업고 달려서 꺼내오기도 했지.”
시온의 당당한 대답에 탸스와 다른 전사가 ‘말도 안 돼!’ 라는 듯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확실히 그들 입장에서 보기에 시온은 고생 따위는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곱상한 외모, 힘주면 부러질 것 같은 팔다리하며 상처도 거의 보이지 않는 매끈한 피부까지.
‘저 몸으로 어떻게 전쟁터에 나갔다는 거지?’
라는 의문이 머릿속 한 가득 생겨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뭐야, 그 표정들은.
믿을 수 없다는 것 같은 반응인데.”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당장 우리와 가끔 부딪치던 왕국의 북부 영지들도 대부분 병사들이나 기사가 선두에 서지, 귀족들은 지휘를 맡고 있었는데 말이죠.”
“귀족들이라고 현장 지휘관도 못 할까.
비록 앞장서서 적들을 베어내지는 못 했지만 병사들과 같이 가장 앞에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긴 했지.”
그렇게 말한 시온은 눈을 치우는 모습, 그 다음에 천막을 치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까 내가 보여준 모습은 뭐 연기겠어?
내가 뒤에 처박혀서 손가락만 빨았다고 하기에는 너희들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지 않아 보였냐고.”
“확실히 시켜먹기만 하는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죠.”
“···그렇기는 하지.”
탸스와 전사가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전사인 자신들도 눈을 치우고, 땅을 다지고, 지대를 확인하고, 기둥을 올리고 천막을 치는 건 아무리 해도 영 즐겁지도 않고, 달갑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아까 시온이 보였던 그 모습들은 연기라고는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 익숙해보였다.
“그리고 말이야.
내가 악기로 연주 한 번 해서 쫓아온 적들을 모조리 돌려보냈단다.”
“에이, 설마요!”
“그건 진짜 아닌 것 같은데.”
“진짜야, 이 자식들아.”
남자들끼리 가까워지는 방법은 뭐 별거 없다.
인생 살면서 고생한 일 꺼내놓아서 서로 동질감 형성 좀 하고, 허풍 같기도 하고 진짜 같기도 한 이야기를 해서 흥미도 유발시키고, 그러면서 같이 낄낄거리면 그만.
거기에 ‘같이 고생한 사람’ 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만나서 술 한 잔 하자!’ 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끄응.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한 천막에서 전사 하나가 낑낑대며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밤 귀가 예민한 모양인지 시온과 두 전사의 대화를 듣고 깬 모양.
탸스가 나서서 미안하다고 하며 다시 들어가 자라고 했지만, 그는 이쪽의 대화에 나름 흥미를 가진 모양이었다.
“거, 손님분이라고 했수?”
“시온 클라우젠.”
“난 융이라고 하오.
아까 당신 옆옆에서 눈 치우던 사람.”
“아아, 아까 배 찔려서 나가떨어진 전사?”
“크흠흠!”
시온의 자비 없는 팩트 폭격에 융은 헛기침을 하고 말았고, 탸스와 전사는 낄낄대며 아까 눈을 치울 때 넉가래 대에 배를 찔려 낑낑대던 융의 모습을 따라해 보였다.
“에이 씨벌.
부끄러운 모습 보였구만.”
“아하하!
융 아저씨가 조금 볼썽사납게 쓰러지긴 했죠.”
“시끄럽다, 녀석아.
거짓말 하나 안 보내고 마누라한테 맞는 기분이었단 말이다.”
“또 맞으셨어요?
아니, 그 전에.
저번에는 집에 돌아가면 아내 분이랑 진하게 한다면서요.”
“벌어오는 것도 없으면서 왜 이상한 곳에 체력을 쓰려고 하냐고 바로 거절당했지.”
융의 투덜거림에 탸스와 전사의 웃음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그에 융은 자기만 당할 수는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너희 둘은 뭐 소식 없냐?
탸스는 이제 막 전사가 되었으니 그렇다 치고, 허슬.
너는 우리 부족 여자랑 짝을 맺었다더니 아직 살아 있구만?”
“크흠!
무슨 말인지?”
“내가 아는 동생의 딸인데, 너희 부족 사람들을 꽤나 싫어했거든.
딸한테도 맨날 그 말을 해대서 딸년도 너희 부족이라면 으르렁거렸을 텐데.”
“며칠 동안은 그랬죠.
하지만 우리 부족 전사들은 그 정도로 굴복하지 않습니다.
여인이란 모름지기 남자가 직접 녹여주면 그만 아닙니까.
이렇게, 핫!
하고.”
그러면서 열정적인 허리 움직임을 보여주는 전사, 허슬이었다.
당장 앞에 여자라도 있으면 열기가 넘치는 정사를 보여주겠다는 듯 한 모습에 융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고, 탸스는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융, 당신은 이제 다 늙어서 허리나 제대로 쓸 수 있습니까?
역으로 여인한테 잡아먹히지만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크핫!
융 아저씨.
정말 그런 건 아니죠?”
“이것들이 쌍으로 지랄이네?
이놈들이 날 뭐로 보고?
내가 이놈들아!
한 때는 허리 하나로 부락 여인들을 다 녹이던 사내였다, 이것들아!”
“아, 그러셨어요?
그래서 지금은요.
지금이 중요한 거죠.”
깔깔대며 융을 놀리는 허슬이었다.
탸스 역시 배를 잡고 웃다가 옆에 시온이 앉아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웃음기를 거두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시온.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요.
이건···.”
“여자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빠질 수가 없네.
잠깐 잊고 있었나본데 나 왕국 대귀족이라고.
들러붙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그쪽들은 상상도 못 할 걸?”
남자들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이런 음담패설이 오고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대화가 평소에도 오고 가면 그 때는 성적 불만족이나 정신 문제가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매일 매일이 전쟁이고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장이라면 그 때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이 당연하게 된다.
힘들고, 괴롭고,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방로라고 할까.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갈 줄 알았기에 리시한테는 천막 안에서 그냥 있으라고 한 거지.
리시 입장에서는 상당히 거북한 이야기고, 전사들도 여인네 앞에서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정도는 아니니까.
리시가 옆에 붙어있으면 괜히 분위기만 모호해져.’
리시키다가 호위 문제로 걱정을 하긴 했지만, 시온은 그녀를 안심시키고는 밖으로 나왔다.
정확히는 ‘얌전히 기다리면 한 침낭에서 둘이 같이 자는 거다.’ 라고 미끼를 던져두고 나온 것이지만 말이다.
‘나도 그놈의 야한 이야기 좀 해보라는 선임 놈들 때문에 별 지랄을 해서 모은 야한 이야기 1, 2, 3편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라고.’
그러고 보니 연하가 좋다는 빌어먹을 맞맞선임 놈은 잘 지내나 싶다.
그 놈, 경찰한테 끌려가서 빨간줄은 안 그였을지 몰라.
“호오, 이보게.
시온.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나도요.
시온, 왕국의 여인들은 어때요?
정말 남자가 하라는 대로 다 하는 순종적인 이들이던가요?”
“지랄!
얼마나 드센지 너희는 모를 거다.
북부고 왕국이고 여자는 다 똑같아.
남자 잡아먹는 괴물이지.
마누라 못 이기는 건 어디를 가나 다 똑같다, 이 말이야!”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