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3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38화(138/439)
138―――――
혹한기라고 아냐
칼타의 게르로 들어온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되었다.
훈련이라고 해서 막 뭔가 대단한 걸 기대했다면, 시온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들에게 있어 천막을 거두고 이동하는, 지극히 단순한 생활의 연속이 곧 이동 훈련이었고 말을 달리는 것이 기동 훈련이었다.
그나마 몇 가지 훈련이라고 볼 수 있는 활동이라면, 평시보다 훨씬 강화되는 경계 수준이나 야습을 대비한 철야라고 해야 할까.
“주인님, 주인님.”
“왜, 왜.”
“꼬, 꼭 오늘도 나가셔야 하는 겁니까?”
이틀 전, 그리고 어제.
시온은 새벽마다 나가서는 경계 근무를 서는 전사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는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호위를 하겠다고 해도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는 통에 리시키다는 시온이 무사히 천막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전전긍긍 해야만 했다.
물론 시온이 들어온 뒤로는 한 침낭 안에서 제 주인의 온기를 느끼며 정말 마음 놓고 잘 수 있었기에 그 부분은 확실히 좋았던 리시키다였지만, 이 이상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가 듣기로 오늘은 아예 밤을 새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거기에 야습을 대비하여 역으로 공격한다는 훈련이기에 불조차 쬘 수 없다고 했고요.”
“맞아.
철야라고 부르곤 하지.”
“북부는 클라우젠 영지나 왕성과는 다릅니다.
자칫 몸이 상하실까 너무 걱정됩니다.”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야.
내일 새벽에 철야가 종료되면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으로 전사들이 기동전술을 연습하는 동안 나는 테무친과 못다 한 이야기 좀 할까 하거든.”
원래 일상이 전쟁인 이런 유목 민족은 오랫동안 이런 거친 곳에 있을 수가 없다.
자신들은 몰라도, 말이 상하면 그걸로 상황 종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저들의 기마술이 어찌나 뛰어난지 말에 탄 채로 몬스터를 상대할 정도였고, 왕국의 기사들조차 저들이 말을 타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면 진절머리를 낼 정도라고 했다.
“그보다 리시, 네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지?”
“전사들의 반응 말입니까?”
“그래.
일부러 말을 살피러 가면서 주변 전사들이 우리를 향해 속닥이는 말들을 좀 들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주인님이 그들과 서슴없이 어울리신 이후로 묘하게 그런 부분이 줄어들었습니다.”
리시키다의 말에 시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킥킥거렸다.
하나를 설득해봤자 안 하느니만 못 하고, 둘을 설득해도 그 둘이 한 무리에 들어가면 힘을 잃기 마련이다.
하지만 원래 인간은 셋부터 진짜라고 했고, 그 셋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비로소 진짜 파괴력이 드러나는 법이다.
요 며칠 사이에 시온과 급격히 가까워진 전사 셋이 조금씩 주변 전사들에게 그와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시온은 여전히 테무친의 손님임에도 전사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신은 전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꽤나 즐겁고 익숙하다는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그저 곱상하게만 생긴 놈이 하루 정도 연기 하는 건 아닐까, 자신들을 속여서 왕국에 대한 환상을 심어두려는 건 아닌가.
‘아마 내가 엣헴, 하고 근엄한 짓을 하고 다녔으면 바로 의심을 받았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어느 세상이나 결국 전사들, 싸움을 대비하는 자들은 똑같아.
자신들의 고생을 알아주고 함께 하는 이들에게 호감을 가지기 마련이지.’
왜 병사의 주적은 간부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이 나왔겠는가.
현실을 모르고 무조건 그들보다 자신이 위에 있음을 강조하며 제 위치만을 내세우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최소한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내가 너희보다 훨씬 더 대단한 놈이다.’ 라는 주장을 온 몸으로 펼치는, 반감을 사기에 딱 좋은 아주 멍청한 짓이다.
그래서 시온은 그런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손님으로 온 첫날, 테무친의 손님이라고 거드름을 피우거나 전사들에게 온갖 부탁을 하거나 근엄해 보이려고 지랄이라도 떨었나?
아니, 전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이, 마치 한 명의 전사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왕국, 북부 부족들을 떠나서 외지인에게 가질 만한 경계심이나 거부감을 지우는 데에 주력했다.
‘이미지만, 첫인상만 잘 박아두면 그 뒷이야기들은 그들이 알아서 멋지게 꾸며주는 법이지.
내가 굳이 노력할 필요도 없어.
알아서 말이 번져가거든.’
생활공간이 넓은 곳이라면 또 모를까, 어제 봤던 놈 일어나서 눈 비비면 또 봐야 하고, 밥 먹으면서 보고, 말 타면서 보고, 용변 보러 가면서도 보는 사이다.
부족이 다른 이들은 말도 잘 나누지 않는다지만 몇 다리 건너 뛰다보면 결국 전부가 아는 사이임을 알게 된다.
자연스레 나눌 이야기는 현재 가장 궁금해 할 테무친의 손님이 될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미리 뿌려둔 씨앗이 발아하여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이번에 들어온 그 왕국의 귀족, 이상하게 전사들과 너무 잘 어울린다고.
‘거기에 더해서, 전사들은 지겹다는 육포도 나쁘지 않더라고.’
어떤 병신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주먹밥에 멸치를 쳐 넣은 놈의 머리통에 멸치똥을 쑤셔넣고 싶었던 과거의 자신이었다.
잔멸치라면 또 모를까,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왕멸치를, 주먹밥이랑 같이 할 생각을 했을까.
“주인님.
그러면 저도 같이···.”
“넌 항상 천막에서 머물기로 약속했잖아.”
“저는 주인을 모시는 기사, 거기에 반드시 옆을 지켜야 하는 호위입니다!
이유만이라도 자세히 알려주시면 수긍할 수 있지만, 계속 천막에서 대기하라고 하신다면 저로써는···.”
“이상한 놈들이 내 여자 훔쳐보는 거 기분 더럽거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끼고 아끼던 비장의 한 수를 날리는 시온이었다.
그 예상치 못 한 일격에 그대로 심장을 적중 당한 리시키다는 ‘어어어’ 하며 침음을 내뱉더니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푸시이익!’ 하는 효과음과 함께 귀에서 연기라도 나올 것처럼 말이다.
‘근데 사실 이게 맞는 말이거든.’
리시키다가 처음 게르로 들어섰을 때, 전사들이 알게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건 시온도 진작 알고 있었다.
쟌 테무친도 엄청난 미인이긴 하지만, 원래 항상 보던 것과 갑자기 보게 되는 것이 주는 느낌은 다른 법이다.
그에 더해서 북부의 사람들과 누디아의 사람들은 생김새가 약간 다르다보니 전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냥 호기심에 바라보든, 아니면 흑심을 품고서 훔쳐보든 남자 입장에서는 확실이 유쾌한 일은 아님이 분명했다.
‘괜히 피곤한 일 생기지 않게, 이런 때에는 숨겨두는 편이 나아.’
이쪽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든, 칼타 쪽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든 결국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당연한 수순.
어차피 내일을 끝으로 대부분의 전사들이 기동을 위해 군영을 나서니 그 때는 안심하고 자신과 함께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했지, 리시?”
“내 여자, 내 여자···.”
“···리시?”
아무래도 이상한 부분에서 방아쇠를 건드린 모양이다.
규격 외의 강자들을 제외하면 보통의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상급 기사라는 타이틀, 김유현과도 어느 정도 검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실력.
하지만 그 모습들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섬세한 마음, 거기에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어 하는 약간은 심각한 의존 증세까지 가지고 있는 여인이다.
요즘 들어서 살짝 그녀에게 소홀한 모습을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리시키다가 보이고 있는 반응이 그녀가 상당히 위험한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다가 얘도 흑화하겠네.
아니다, 리시.
너만큼은 제발 믿을 수 있는 호위 기사로 남아있어 줘라.
나는 트리샤랑 쟌 테무친만으로도 힘들다고.’
시온은 말로 해서 그녀를 진정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는 여기사를.
아니, 여인을 슬쩍 안아서는 반짝이는 금발을 부드러이 쓸어주었다.
“고생 많아.
자꾸만 고생길로 걸어 들어가는 주인 만나서 말이야.”
“아으?
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 저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아니야.
내색은 안 하고 있었지만, 트리샤와 관련해서 네게 너무 못된 일을 시킨 것 같아 내 마음도 그리 편치는 않았어.
결과적으로는 트리샤가 딱히 네게 적의를 품은 것 같지는 않으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
“···사, 사실은.”
원래라면 조용히 시온의 말을 듣고 있어야 할 리시키다가 입을 열었다.
살짝 초조해 보이는 기색에 눈을 어찌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몸짓.
이건 누가 봐도 아빠의 고가 낚싯대를 부러트린 아이가 다른 것으로 크게 혼낸 자신을 질책하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빠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하는 반응 아닌가.
‘얘는 불안하게 또 왜 이래.’
설마 리시키다까지 사고를 치거나, 칠 생각은 아니었겠지 싶은 시온이었다.
일단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린다.
잘못을 했다고 확신하는 아이가 스스로 제 잘못을 이야기 할 때까지.
괜히 몰아붙여서 좋을 것 하나 없다.
그게 상처 받기 쉬운 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저도 모르게, 그··· 진심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한심했고 무, 무서웠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지, 리시?”
“트리샤라는 여인을 압박하라고 하셨을 때, 그녀와 주인님이 같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봤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그게 너무 분하고 화가 나서 그 다음부터 주인님이 말씀하신 것보다 더 강하게 그녀를 몰아세웠습니다.”
“어···.”
어쩐지, 얘가 너무 흑화를 했다 했더니 알게 모르게 리시키다가 미친 듯이 갈구고 있었던 모양이다.
성격 좋은 사람도 순식간에 돌아버리게 만든다는 것이 미친 듯이 쪼아대고 갈구고 굴리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걸 흑염룡의 주인인 트리샤가 받았으니 이상한 방향으로 일이 틀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시, 실은 진작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혹 질책을 받을까, 또 내쳐지는 건 아닐까 두려워서 그만 기사로써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했습니다.”
“···.”
난 또 트리샤를 죽이려고 했다는, 뭐 그런 비슷한 무시무시한 고백인 줄 알았잖아.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시온이었다.
솔직히 리시키다 정도의 여인이라면 이보다 더 한 질투심을 보여도 자신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안심해.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네가 날 버리지 않는 이상 나도 너를 버릴 생각 없다고.”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된 거야.
네가 내 사람을 정말 해하려고 했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일이 잘 마무리되었으니 더는 묻지 않으마.
대신 다음부터는 사심으로 상대를 너무 몰아붙이지는 마.
상대가 내 목숨을 노린 게 아니라면 말이야.
알겠나, 리시키다 암셸?”
“며, 명심하겠습니다.”
등을 토닥여주니 꽤나 안심한 듯 슬그머니 제 이마를 시온의 어깨에 기대오는 리시키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시온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이 여기사를 한 번 진정시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흠, 그런데 말이다.
리시.”
“네, 네.
주인님.”
“다른 건 한 번은 넘어가준다고 해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작 내게 ‘보고’ 를 했어야 하지 않았나?
이건 호위 기사로써 의무를 망각한 것과 다름없는 일인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버, 벌을 내리신다면 무엇이든 수용하겠습니다.”
벌이라.
왕국으로 돌아가면서 무슨 벌을 내릴지 고민해봐야겠네.
연대책임이라고 했으니, 기사인 리시키다 암셸이 잘못한 것을 여인인 리시에게도 같이 묻는 것이 맞으려나.
시온은 미소를 짓고는 걱정 말라는 뜻으로 리시키다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덕분에 잘게 몸을 떨던 그녀도 곧 진정하고는 한동안은 이러고 있고 싶다는 듯 시온에게 기대어 서서는 그 품속의 안락함을 누렸다.
―
“정말 괜찮겠어요?”
“뭐가.”
“이건 전사들도 진절머리를 내는 훈련이거든요.”
“걱정 안 해.”
“불도 없어서 엄청 춥고, 몸도 굳어서 사지가 쑤시고 저리다고요.”
“걱정 안 한다니까.”
탸스의 우려에도 시온은 방한복을 점검하며 전사들이 미리 파 둔 참호에 딱 알맞게 기대었다.
확실히 춥기는 했지만, 최소한 여기의 방한복은 자신이 입던 개털보다는 훨씬 더 따뜻하고 보온력도 좋았다.
냄새가 조금 나기는 했지만, 얼어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도대체 시온, 당신의 정체가 뭡니까?
왕국의 귀족들은 전부 이런 생활이라도 합니까?”
허슬의 질문에 시온은 ‘앙?’ 하고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으로 시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건 우리도 영 짜증나는 일인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며칠이고 반복하고, 이 참호를 팔 때는 웬만한 전사보다도 더 삽질을 잘 한 것 하며 지금도 무슨 제 침낭에 누운 것 마냥 너무 편해 보이지 않습니까.”
“허슬의 말이 맞긴 하군.
이보시오, 시온.
나도 도대체 당신의 정체를 알 수가 없소.
전쟁영웅이라면 테무친처럼 강하고 멋지며 항상 고귀해 보이는 존재가 아니오?”
중년의 전사인 융도 시온의 모습이 영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두 시간 경계 근무를 서는 것도 아니고, 날밤을 꼬박 해야 하는 훈련이다.
이걸 저 곱상해 보이는 왕국의 귀족이 겁도 없이 같이 하자고 나선 것이다.
“시끄럽고, 다들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이 준비했나?
여기서 조금이라도 졸면 얼어 뒈지는 수가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들.”
“···저, 저 말투 보게.
저게 정말 귀족이 맞긴 한 건가?
전사들 저리 가라 할 정도야.”
“말 예쁘게 한다고 뭐 하나 더 주면 예쁘게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렇게 말하며 시온은 슬쩍 신발을 들여다보았다.
‘차단선박이’였던 친구 놈이 어느 날은 하도 추워서 전투화에 구두약 바르고 불을 질러봤다는데, 따뜻해지기는커녕 아무런 효과도 없어서 그냥 꺼버렸다고 했었다.
왜 나는 그런 창의적인 일을 생각도 해보지 못 했을까, 후회하며 시온은 낄낄거렸다.
예정에도 없던 혹한기였지만, 그 다음으로 따라올 보상들을 생각하면 한 하루 정도는 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였다.
그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만.
―――――――작품 후기―――――――
원한다, 추천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