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3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39화(139/439)
139―――――
홀로 서있기 싫다면
시온의 충격적인 모습이 칼타의 모든 전사에게 영향을 끼쳤냐?
그건 절대 아니다.
미처 예상치 못 했던, 지극히 특이한 손님의 이야기는 그를 책임지는 잘란이 이끄는 전사들과, 그 주변에 머무는 천막들 정도에만 퍼졌을 뿐이다.
그 외에 시온에 대해 알려진 부분은 그와 함께 하는 전사들이 자신과 가까운 다른 전사들에게 이야기를 한 것 정도에 불과했다.
여전히 칼타의 전사들 중 절반 이상은 시온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일부라고 해도 여론은 여론이고, 그것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위에 앉아있는 자들이고 그게 곧 부족장들이었다.
“듣자하니 그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테무친의 손님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하더군요.”
“왕국의 귀족이 맞기는 한 겁니까?
전사들과 함께 한다는 것부터가 너무 이상한데.”
“···전쟁영웅이라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정말 병사들과 함께 했다면 그런 고생이 익숙한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쟌과 전사들이 들어서기 전, 부족장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3년간 그래도 살만 했던 북부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부족민들의 불만이 커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불만이 커지면 가장 먼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쪽이 바로 자신과 같은, 위에 자리해 그들을 책임지는 자들이었다.
그 불만과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그들은 왕국에게 창칼을 겨누고자 했다.
저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한다면 여태 누렸던 것보다 더 한 것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가 있었다면, 이전과는 달리 부족민들이 왕국의 무서움보다는 당장 누리고 있던 것들을 전부 잃어가자 거기에 혹해서 원래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왕국으로 밀고 내려가자 들고 일어난 것.
거기에 막 세대교체가 되며 공을 세우고 싶어 안달이 난 젊은 전사들의 수가 늘어나며 분위기가 더욱 과열된 것이었다.
‘오도 가도 못 하게 되어버린 상황이지.’
그게 제 부족원들에게 바람을 넣었다가 갑자기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가 된 이들을 바라보는 부족장들의 속마음이었다.
스스로가 놓은 덫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사이, 밖에서 소란스러움이 전해졌다.
기동 훈련을 마친 쟌이 전사들과 함께 천막으로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천막 입구가 걷히며 한 여인이 전사들을 대동한 채 안으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테무친.”
“테무친.”
부족장들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쟌은 별 말없이 손을 들어 그들의 대충 인사를 받아준 다음 발걸음을 옮겨 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두 눈을 감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이가 본다면 나이 지긋한 이들을 상대로 너무 오만한 것 아니냐고 할 정도의 귀찮음이 묻어있는 반응.
하지만 백전노장이라는 부족장들도, 젊은 혈기를 지닌 전사들도 감히 그녀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지금이야 저렇게 고요해 보여도 언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그 분노가 사방으로 옮겨 붙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쟌의 무서움을 몸소 겪었던 부족장들이 침묵을 유지하자 역시나 오늘도 가장 먼저 입을 연 쪽은 비교적 젊은 전사들이었다.
“테무친.
전사들 사이에서 들리는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무슨 이야기.”
“이번에 테무친의 손님으로 온 왕국의 귀족 말입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전사들과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더군요.”
“그런가.”
“저도 주변의 전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하던데요.”
쟌은 ‘그래?’ 라고 반문하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너무 잔잔한 반응에 먼저 이야기를 꺼낸 쪽이 무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쟌이 남몰래 멀리서 시온을 지켜보고 있었음을 알지 못 했다.
“너무 바람 잡지 마시오.
그저 신기한 손님에 의해 불어온 잠깐의 봄기운일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칼타의 뜻이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역시나 전쟁을 주장하는 전사들은 불만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북부 최강의 전사라는 쟌이 자신들을 이끌고 있고, 현재 칼타의 기세는 창칼과도 같이 날카롭게 연마되어 있다.
지금이 적기, 왕국이 아직까지 평화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 하고 있는 바로 이 시점이 선제공격을 하기에 완벽한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왕국의 귀족이란 남자가 손님으로 찾아와서는 칼타의 전사들과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우마냥 너무나도 잘 어울리며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고 있었다.
“흐음.”
부족장들이라고 칼타 내에서 흐르는 묘한 기류를 눈치 채지 못 했을 리가 없다.
아직 전원이 전쟁에 대해서 회의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여전히 전쟁을 원하는 자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전쟁에 대해서 약간은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는 이들도 분명 증가했다.
왕국이 이렇게 진심으로 자신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으로 잠시의 기다림을 채워준다면 이겨도 죽고, 져도 죽는 싸움을 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퍼지고 있는 것이었다.
‘왕국의 귀족이라는 자도 제법이군.
전사들이 무엇을 싫어하고 어떤 이를 멀리하며, 동시에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이에게 호감을 가지는 지 전부 알고 있었어.’
그 자가 자신들과 인접한 북부 귀족들 중 하나였다면 이리 놀랍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족에 대해서 꽤나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는 그들이고,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이 땅에 대해서 그리 큰 두려움을 지니고 있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귀족은 북부 출신이 아니다.
이곳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살기 좋은 땅에서 여기까지, 거의 한 달이 걸리는 여정을 거쳐 당도했다.
그런데 마치 이곳의 모든 것이 몸에 익숙하다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테무친.”
한 부족장이 자신을 부르자 쟌은 슬쩍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았다.
꽤나 긴장한 모습의 그는 전사들과 다른 부족장들을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슬슬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정이라.”
“부족들의 특성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이야 기세가 극에 달해 아주 날카롭다지만, 언제 그 날카로움이 무뎌져서 흩어질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
“확신 없는 전쟁입니까, 아니면 기약 없는 기다림입니까.”
그에 쟌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러한 질문을 던진 부족장을, 그리고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자신이 무슨 결정을 내려도 따르겠냐는 무언의 질문임을 자리에 모인 이들이 대충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다만, 자신들의 지도자가 보다 서로가 원하는 말을 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또 시작인가.’
쟌은 쟌대로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또 다시 이런 상황이었다.
자신은 그저 부족들을 위해 이 자리에 앉았을 뿐인데, 너무 엄청난 중압감이 온 몸을 짓누르는 듯 한다.
제 동생, 에오스의 말대로 자신은 사실 이런 지도자의 자리에 알맞은 이가 아니었다.
뛰어난 전사, 혹은 지휘관처럼 적을 향해 매섭게 날아가는 칼이자 창이 될 수는 있어도 수많은 이들을 이끄는 ‘지도자’ 만큼은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저들을 위해 가장 앞에서 부족의 적들과 싸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저들의 지도자 추대를 받아들인 것이었는데.’
적들을 베거나, 몬스터들을 죽이는 건 몰라도 이런 일은 정말이지 익숙지 않았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쟁이냐 평화냐를 놓고 다투는 건 쟌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전사들은 물론이고 부족민들도 점점 우왕좌왕이오.
이 상황에서 왕국과 싸우겠다고 하다가 이탈하는 이들이 생기는 날에는···.”
“기하급수로 그 수가 늘어나겠죠.
그걸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걱정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서둘러야 합니다.
오늘 보니 전사들의 상태가 최고조에 다다랐었습니다.
테무친도 보셨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전사들이 확인했습니다.”
“거기에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질 테니 적당한 때입니다.
날이 풀려 왕국의 영지 근처 땅이 녹기 시작하면 그 때는 싸우고 싶어도 말들이 위험해서 힘들 겁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다보니 또 금세 시끄러워진 천막 내부.
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들은 전사들이었고, 부족장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어떤 방법이 현재에서 가장 좋은 수일지 고민했다.
북부 전체의 운명도 좋지만,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제 부족의 미래였다.
싸움만이 살 길이라면 두말 않고 싸우겠지만, 다른 길이 있음에도 죽을 것이 뻔히 보이는 전장으로 전사들과 부족원들을 밀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부족의 몰락은 곧 자신의 몰락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테무친.”
“테무친, 당신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테무친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결국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그들은 또 다시 쟌을 찾았다.
덕분에 혼란만 가중된 쟌이 멍하니 전사들과 부족장들을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천막 안에 모여 있던 이들이 거의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
쟌은 그들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처음 나왔던 의견대로 싸우자고 해야 하나?
그러면 아이기오르는, 에오스는 어찌 하고?
그들과 합류할 수 없다면 위험한 적임은 왕국과 다름이 없는데 등 뒤에 두고 진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들부터 공격해야 하나?
거기에서 입을 피해는?
차라리 시온 클라우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조금만 더 버티면서 기다리는 건 어떨까.
그런데 정말 전사들의 걱정대로 모든 것이 왕국의 속임수면?
왕국군이 밀어닥쳐서 점점 지치고 무뎌져가는 부족들을 공격하면 그 때는 버티는 것도 불가능할 텐데?
답답해졌다.
이 상황이, 자신들에게 자꾸만 기대를 거는 저들이, 그리고 저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치 못 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나는 정말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구나.
그저 부족원들을 위해 싸우는 전사일 뿐, 북부의 전설적인 영웅이었던 테무친의 이름이 아까운 존재구나!
쾅!―.
마음이 갑갑하니 저도 모르게 그것을 분출하려 테이블을 때린 쟌이었다.
그녀 딴에는 적당히 힘을 주어서 때렸다고 하지만, 테이블에게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쩌저적, 쿠궁!―.
“억.”
“힉?”
이전에 시온과 마주 했을 때 쟌에 의해 한 움큼이나 뜯겨져나가 결국 교체되었던 새 테이블이 또 급사하신 순간이었다.
깔끔하게 두 쪽이 나서 그대로 갈라져 바닥에 무너진 테이블을 바라보던 부족장들과 전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마른 침을 꿀꺽, 하고 삼키더니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테무친.”
“당신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대가 이 칼타의 진정한 강자이니, 뜻을 묻는 게 아니라 뜻을 따르겠습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너무 굳어있는 터라 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한숨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한숨에 자리에 있던 인원들이 더더욱 굳어서는 잔뜩 긴장했다는 점이었다.
쟌은 잠시 뭔가를 고민하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테, 테무친?”
“오늘 하루, 다들 수고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이 자리에 모이도록.
오늘은 이것으로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쟌은, 뭔가 급한 일이 있다는 듯 천막 밖으로 나섰다.
―
촤아악!―.
“그아아아악!”
제설도, 텐트도, 하다못해 철야도 견딘 자신이었지만, 정말 이것만큼은 버티기 힘들었다.
해가 떠있는 낮이라고는 해도, 온도도 그렇고 불어오는 바람도 차갑기 그지없다.
그런 상황에서 다 식어버린 물을 몸에 쏟아 붓고 있으니 펄쩍 뛸 일이었다.
전사들은 굳이 씻을 필요 없다면서 그냥 영 달갑지 않은 냄새를 풍기며 돌아다녔지만, 시온은 엄연히 보자면 북부의 사람도, 왕국의 귀족도 아닌 현대인이었다.
이렇게 먼지투성이에 냄새까지 나는 상황에서 물을 끼얹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것도 잘란의 배려로 조그마한 공간을 얻어서 누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장비만 들고 다니는 그들에게 있어 개인 샤워실은 어불성설 수준이었으니까 말이다.
가지고 있던 천 중 그나마 가장 깨끗한 것으로 물을 빠르게 닦아내고는, 미리 챙겨왔던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은 후 재빠르게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가는 시온이었다.
기껏 씻었는데 그게 얼어버려 허옇게 변하면 그 때는 전사들의 조소가 사방에서 들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 오셨습니꺄아아앙!”
이미 시온에게서 ‘나 씻고 올 거니 불 피워두고 대기하고 있어라!’ 라는 명령을 들은 리시키다였지만, 단추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 하고 헐레벌떡 들어온 시온의 모습에 바로 소녀 감성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덕분에 시온은 ‘내가 혹시 밑에 잊어먹고 안 입었나?’ 하며 저도 모르게 밑을 살필 정도였다.
다행히도 그렇게 병신은 아닌지라, 속옷은 확실히 입고 들어온 자신이었다.
“여, 여, 여기 앉으시면 되겠습니다!”
“···진정해.
내 몸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냐.”
“처, 처음 보는 겁니다!”
“너 나랑 했을 때 봤잖아?”
“모, 모릅니다!
아무튼 처음 본 겁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여기서 괜히 다른 말을 더 해봤자 결국 뫼비우스의 띠 마냥 반복만 될 것 같았다.
시온은 간이화로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을 제외하면 앞으로 이틀.
그 안에 결론을 내야 했다.
여전히 쟌은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할 뿐이고, 칼타와 아이기오르의 대립은 현재 진행형이다.
일이 어찌 흐를지 모르니 시온 자신은 칼타로 향하기 전에 대강의 사정을 정리한 서신을 기사들을 통해 왕국으로 전달해두었다.
하나는 왕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거래 대금을 치르기 위해 분주할 하이네스 상단에게로.
‘혹시나 거래 대금보다 더 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내가 차후 갚겠다고 해두었으니 헬렌이 되도록 빨리 움직여주었으면 좋겠는데.’
왕성에서 북부까지는 2주, 짐마차를 위시한 행렬은 3주가 걸린다.
거기에 서신을 전달하는 이가 왕성에 도착하는 시간이나, 하이네스 상단이 북부로 향할 준비에 필요한 시간까지 생각해보면 시일이 훨씬 더 걸리게 된다.
즉 시온이 말한 식량을 북부에 전달하기 까지는 아무리 못 해도 한 달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그 한 달 이상의 빈 공간을 어떻게든 다른 수로 메꿔야 하는데, 그 방법이 보이지 않아.’
당장 일주일은 어떻게 보냈다고 쳐도 나머지 시간이 문제다.
북부의 여러 부족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뭔가가 필요한데, 당장 자신의 손에 아무 것도 없음이 문제였다.
혹시나 쟌이 ‘전쟁이다, 이놈들아!’ 라고 외치며 왕국으로 말머리를 돌리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 시온이 다른 수를 강구해보려던 순간이었다.
“시온.
안에 있습니까?”
이 근처의 천막을 책임지는 잘란의 목소리였다.
시온이 대답을 하니 잠시 후,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당연히 잘란이라고 생각하여 딱히 옷을 더 여밀 생각을 안 하고 자리에서 막 일어난 순간, 시온은 ‘엥?’ 하고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시온 클라우젠.
그대와 잠시 할 말이···.”
안으로 들어선 건 다름 아닌 쟌 테무친, 북부의 최강자이자 ‘칸’ 이라 불릴 여인이었다.
시온과 딱 눈이 마주친 그녀는 반쯤 벗은 상태의 시온을 확인하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려던 찰나.
“···.”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리고는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