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42)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42화(142/439)
142―――――
홀로 서있기 싫다면
혼인 동맹, 북부 부족들이 맺는 혈맹으로 어지간해서는 깨지는 일이 거의 없는 관계.
쟌은 그것을 시온에게 제안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대상이 무슨 부족장의 딸이나 아들, 그리고 왕국의 귀족 자제나 영애가 아닌.
북부 최강이라고 불리는 자신과 왕국의 전쟁영웅, 시온 클라우젠이었다.
‘일이 너무 커지는데?’
혼인 동맹 부분을 아예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시온도 북부 부족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으니 그런 조건으로 평화를 요청해볼까 했다.
하지만 왕국의 어느 귀족이 북부의 야만 부족들과 사돈을 맺으려고 하겠는가.
열에 열, 무조건 불가하다며 버티고 또 버텼을 것이다.
혼인 문제에 대해서는 왕실도 함부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여태까지 이어진 히스파냐 왕국의 불문율이었으니, 시온이라고 해서 어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북부의 부족들도 이왕 혼인 동맹을 할 거 왕국의 유력한 귀족 가문을 원할 텐데, 역시나 유력 가문 중에서 자식을 내놓을 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아무나 귀족이라고 하고 속인 다음에 얼렁뚱땅 넘어가는 방식도 있지만···.’
그런 수도 몇 달을 버티지 못 할 것이다.
더구나 북부의 상황이 이후 더욱 혼란스러워지면 그런 얕은 수가 더 빠르게 드러날 수도 있다.
시온이 원하는 건, 그 어떤 눈보라가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북부 야만 부족과의 연대감이었으니 바람직한 의견은 결코 아니었다.
“쟌, 쟌 테무친.
왜 당신이고, 왜 나인 거지?”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시온은 질문을 던졌다.
최대한 놀랐다는 반응과 함께, 쟌이 솔직히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그에 쟌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약간은 평온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현재 전사들과 부족장들, 그리고 그 밑의 부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림이니까.
그대가 알지 모르겠지만, 북부는 항상 힘이 있는 자가 원하는 짝을 가장 먼저 맞이할 권리를 지닌다.
강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예우인 셈이지.”
“대충 알고는 있어.”
“허면 이야기가 더 빠르겠군.
그대는 나에게 조금의 시간을 달라 했고, 그 대가로 그대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을 꺼내놓았다.
부족들을 풍족하게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먹일 수 있는 식량.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무리 전쟁영웅, 대귀족이라는 그대라고 해도 우리 부족들과 이야기도 되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그 물건들을 북쪽으로 돌렸을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날카로운 지적에 시온은 저도 모르게 오,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스스로는 여전히 지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원체 머리가 좋은 여인이니 거기까지 어렵지 않게 내다본 모양이었다.
“결국 그대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을 해내기 위한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왕국과 북부의 부족들이 기다려줄 명분.”
“날카롭네.”
“원해서 저들의 지도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아예 무능력하지도 않아.”
시온의 칭찬에 애써 담담히 반응하지만,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시온은 놓치지 않았다.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 모양, 그게 무척이나 신기한 시온이었다.
“에오스, 내 동생을 제외한다면 북부 부족의 그 어떤 전사보다도 강하다는 나.
쟌 테무친과 그 명성이 왕국 내에서 꽤나 많이 알려져 있다는 그대, 시온 클라우젠.
이 둘이 혼인을 이유로 동맹을 체결한다면 그대는 원하던 대로 시간을 벌 수 있고, 나 역시 원하던 대로 부족들의 안녕을 꿈꿀 수 있다.”
“서로가 굳이 피를 보지 않고 원하는 선으로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는 소리군.”
“그렇지.”
“동시에, 어느 한쪽이라도 제대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바로 파혼이라는 카드를 쓸 수 있고 말이야.”
시온의 말대로, 혼인 동맹은 일단 맺으면 깨기 어렵지만 동시에 맺기 직전까지도 서로가 합의한 부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깨트릴 수 있는 약속이기도 했다.
북부에서 혼인은 그저 사랑하는 이들 간의 맺음이 아닌, 부족과 부족 간의 평화를 도모하고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그들의 유일한 ‘비무장지대’ 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리인가?
시온이 쟌을 바라보자 그녀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소, 솔직히 조금은 궁금했다.”
“무슨 소리지?”
“그대를 처음 봤을 때, 전쟁영웅이라는 호칭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라서 어이가 없었다.
난 엄청난 강함을 지닌 전사인 줄 알았는데, 느껴지는 마나나 하다못해 몸에서 딱히 강자의 기운이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크흠.”
“헌데 보아하니 그대보다 훨씬 강해보이는 이들이 전부 그대를 따르고 있더군.
나처럼 강함으로 찍어 누른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말이다.”
“그게 궁금했다고?”
“당연하지 않은가.
그대라는 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기에 그렇게나 따르는 것인지.”
그렇게 말한 쟌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데, 막상 입을 열려니 어렵다는 몸짓.
시온은 재촉하지 않고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
“어제, 그대가 불러주었던 그 노랫말.”
“노랫말이라니, 그게 무슨··· 아.”
리시키다에게 불러주었던 그 노래를 말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때 천막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는데?
시온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은지 리시키다도 꽤나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 당신!
주인님이 나만을 위해 불러주신 노래를 엿들었다는 것인가요!
비겁합니다!”
“아아, 그 노래가 그대를 위한 것이었나?
미안하군.
나도 모르게.
하지만 그냥 주변에 머물다가 우연히 듣게 된 것이니 너그럽게 넘어가주었으면 하는데.”
“주인님이 저, 리시만을 위해서 들려준 노래를!
으으으!
너무하시는군요!”
“···.”
어째 리시키다가 화를 내고 분해하는 부분이 이상함을 느낀 시온이었다.
대게 호위기사라고 하면 자신 몰래 천막 근처에 와있던 부분을 지적할 텐데, 아무래도 이 여자 역시 상태가 완벽히 정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짜 릴리트님 말대로 무슨 페르몬이라도 뿌리고 다니나.’
이 몸뚱이의 정체가, 정확히는 이 얼굴이 가지는 힘이 도대체 얼마인지 궁금해지는 시온이었다.
“아무튼 어제 그 노랫말 말이다.
바람 부는 세상이, 나 홀로 서있다는 그 노래.”
“···그랬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나 혼자 서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뿐인 동생과도 원수가 되기 직전에, 도대체 이 감정이 무엇일지 모르겠는 감정을 품게 한 그대까지.
이대로 멍청하게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는 전부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해서 밤새 생각했고, 결론을 내렸고, 아침에 전사들과 부족장들을 모이게 해서 말했다.
사실은 손님으로 들인 이가 나와 혼인 동맹을 맺을 당사자고, 이 부족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초대한 것이었다고 말이다.”
와, 이 여자 빠꾸 없이 바로 일을 실행하네.
원래는 이쪽에 먼저 이야기를 하고 일을 벌이는 것이 정상 아닌가?
“무례하군요.
주인님께 말도 없이 혼인 동맹이라니.
아니, 애초에!
제게서 주인님을 뺏어가려 하는 건가요!
다른 분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습니까!”
역시나 바로 반응을 보이는 리시키다였다.
그러면서 연신 으르렁거리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자꾸만 꼬리를 치는 야생동물에게 경계심을 잔뜩 드러내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정작 쟌은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었지만 말이다.
“이상하군.
이게 그대의 주인이라는 남자가 원하는 것인데 그 밑 사람인 그대가 반발하는 이유가 뭐지?
난 시온 클라우젠에게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일의 향방을 결정지은 것인데.”
“그, 그건 그렇지만!”
“조금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나도 그대처럼, 저 남자 곁에서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할까.
그게 전부야.
더 이상은 홀로 고민하기도, 홀로 서있기도 싫어.
지치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며 쟌이 씁쓸한 미소를 짓자 리시키다의 표정이 묘해졌다.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그 노래 한 구절이 자꾸만 내 가슴을 아프게 훑어놓더군.
그래, 나는 칼 한 자루와 말 한 필, 그리고 이 몸뚱이 하나로 여기까지 올랐는데.
정작 나를 이해해주고 제대로 된 말 한 마디 해주는 이가 없어.
더는 차가운 바람만이 가득한 이곳에 홀로 버티고서 있고 싶지 않아.
그냥 누군가에게 등을 기대고 쉴 수 있으면 좋겠어.”
“···지쳤군요.
당신.”
“지쳤다라.
글쎄, 어쩌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쟌의 중얼거림에 리시키다가 전보다 훨씬 누그러진 기세로 그녀를 바라본다.
마치 비슷한 부류를 만난, 그러니까 강아지가 상처 입고 힘겨워 하는 늑대를 만나고 조심스레 꼬리를 살랑거리며 늑대를 핥는 모습 같다고 해야 할까.
“그게 나라는 건가?
네가 등을 기대고 잠시 쉴 수 있는 이 말이야.”
“최소한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이유가 뭔데.
왜 나지?”
“북부의 어느 누구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 모습?”
“다른 이들에게 나는 테무친이었지만 그대에게는 쟌이었으니까.”
그거야 그럴 것이다.
강함이 모든 일의 최우선인 이 북부에서, 쟌 테무친이란 여인은 그 어떤 전사도 감히 감내하기조차 황공한 여인일 테니까.
‘하아.’
만약에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었다면, 쟌의 저런 반응은 시온에게 있어 천군만마와도 같은 것이었다.
소설 중반부에 등장한 캐릭터 중 김유현과 호각을 다루던 악역이 스스로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겠다고 한 것이니 무조건 반겨야 할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시온 옆에 여인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밤일을 어쩌나, 그런 행복한 고민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다.
‘리시나 루시아는 그래도 괜찮아.
둘 모두 성향이 악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들이었으니까.
리아도 조금만 교육해주면 알아서 얌전히 지내줄 떼껄룩이고.
문제는 트리샤, 그리고 릴리트님.’
한 여자는 가질 수 없다면 갈가리 찢어죽이겠어!
라고 외치던 마족.
다른 한 여자는 ‘너희도 고통 받아야 해!’ 라고 제 팔다리가 날아가고 목이 잘리면서도 업화를 뿜어대던 흑염룡 초진화 버전.
지금 이 상황은 누가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본래 성향이 중요한 것이지.
릴리트도, 트리샤도, 그리고 칸이라 불리던 여인, 쟌도.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상대의 목숨을 빼앗고 온갖 일들을 거리낌 없이 해내는 데에 도가 큰 여인들이었다.
소설에서야 서로 원하는 바가 달랐으니 충돌할 일이 없었던 그 여인들이.
이제는 자신이라는 한 남자로 인해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셋이 똑같이, 동시에 단 하나를 원하고 있다.
‘얌전히 잘 지낼 수 있으려나?’
그게 걱정이었다.
과연 그 셋이 공존할 수 있는가.
당장 릴리트와 트리샤도 릴리트가 상대를 해주지 않아서 그렇지, 계속 으르렁거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천족이 완벽하게 성소에서 벗어나고, 그로 인해 묶여있던 성흔이 제 힘을 발휘하는 순간 그 때부터는 릴리트도 긴장을 해야 할 것이다.
칸, 쟌 테무친도 그렇다.
소설에서는 부상을 당한 몸으로 스스로를 부서질 듯 밀어붙이다가 결국 제 동생과 함께 목숨을 잃었지만, 이제는 그럴 확률이 매우 낮아졌다.
아니,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그 말은 즉,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소리이다.
셋 모두 김유현 급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준’ 김유현 까지는 충분한 이들.
그런 여자들이 정말 정색하고 싸운다고 생각해봐라.
‘···시발, 차라리 천족들이랑 드잡이질 하는게 더 나을 지도.’
그러면 여기서 쟌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녀를 내치느냐?
그것도 문제다.
쟌이 저렇게 나올 정도라면 그녀 역시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는 소리다.
그 상황에서 거부를 한다면, 역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칸이라 불리던, 북부의 그 야만 전사들조차 두려워하던, 눈빛만으로 상대를 불태워죽일 것 같은 누님이 저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남자의 가슴에 불길이 일렁였다.
심지어 자신은 보다 앞서서, 그녀를 반드시 설득해서 제 수중에 넣고 말겠다는 결심까지 하지 않았는가.
‘물론 그게 결혼이라는 선까지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누르던 시온은 일단 조금 더 고민해보자는 뜻으로 입을 열었다.
“다 좋은데 시작부터 결혼은 좀 아닌 것 같아.
이건···.”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 하니 이렇게 알아 가면 좋은 거 아닌가.”
“···누가 그래.”
“전사들은 다 그렇다.
부족의 여인들도 전부.
서로가 마음에 든다면 미래를 약속하고,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며 서로에게 맞춰간다.
그게 결혼의 의미 아니었나?”
“아니, 그게··· 하아.”
시온이 한숨을 내뱉자 쟌은 여전히 흔들리는 눈동자를 애써 시온에게 고정하며 말을 이었다.
“그대라는 이에게 호기심을 가졌고, 호감을 품었으며, 같이 있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면 내가 더 노력하면 되는 일이겠지.
그대에게는 북부의 모든 부족들에게 있어 왕국의 대귀족보다 테무친의 반려라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테고 말이다.”
“그건··· 그렇지.”
“그래.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쟌이 그렇게 답하며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짓는다.
항상 차갑고, 냉정하며 강하기만 할 줄 알았던 여인이 그런 모습을 보이니 저도 모르게 움찔 하고 만 시온이었다.
‘···저 정도면 믿어 봐도 될 것 같은데.’
옆에 서있는 리시키다도 트리샤 때와는 다르게 적대감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마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 대한 외로움을 느껴서일까.
“아,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와서 무르기는 애매한 상황이야.”
“···?”
무르기 애매한 상황이라니?
시온이 그렇게 반문하는 뜻으로 쟌을 말없이 바라보자 그녀는 볼을 긁적이며 약간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결정을 내렸는데도 자꾸만 반발하며 그대에 대한 욕설을 내뱉는 전사가 몇 놈 있었다.”
“···그래서?”
“당연한 것 아닌가.
내 반려 될 사람을 욕하는데, 그건 나를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
하여 테무친의 이름으로 친히 그 놈들의 목을 꺾어 죽였다.”
···콜록.
“원래는 허리를 바깥쪽으로 해서 반을 접어서 죽이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건 조금 힘들더군.”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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