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5)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5화(15/439)
<―>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에 미녀가 천천히 눈을 뜬다.
여전히 잠에 취해 몽롱한 기운이 섞여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부스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자 은빛 폭포수가 사르륵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린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지극히 단순한 모습이었지만, 몸짓 하나 하나 행동 하나 하나가 전부 묘하게 색스럽고 또 매혹적이었다.
“일어났네요.”
“어··· 응.
잘 잤어?”
“잘은 잤는데, 지금은 잘 못 있겠네요.”
돌아오는 대답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릴리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가에 서서 뭔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시온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매서운 눈길로 어느 한 지점을 똑바로 보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한 노년의 남성과 젊은 여인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느낌이 존나 쎄하다.’
라이도가 또 찾아왔다.
워낙 제멋대로 사는, 정신적으로 분명 문제가 있는 남자이긴 하지만 오고 가는 걸 좋아하는 편은 절대 아니었다.
즉, 이틀 전에 성에 방문했었던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리.
‘루시아까지 왔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열심히 뇌를 풀가동 시켜보았지만 단박에 떠오르는 뭔가는 없었다.
다만 시온이 예상하는 이유는 크게 둘이었다.
하나는 곧 벌어질 전쟁에 대해 리히텐 변경백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왜, 왜 그렇게 봐?”
“···.”
“뭔데.
설마 아침부터 또 하고 싶어서 그래?”
아, 물론 똘똘이가 확 일어설 정도로 릴리트의 풀린 모습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당장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그저 머리칼로만 가슴을 약간 가린 정도였으니 남자가 그 장면을 보고서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뒈질 때가 다 된 것이었다.
“따, 딱히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건 아닌데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나중에요.
그보다 릴리트님.
어제 말씀하셨던 것 있잖아요.
어딘가에 갇혀있었다는 거.
자세히 좀 말해주실래요?
최대한 자세히.”
혹시 소설 속 내용 중에서 뭔가 일치하는 구석이 있지 않을까 싶은 시온이었다.
릴리트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갑자기 공격당해 대부분의 마나를 빼앗기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전에 봉인되었던 자신.
그러다가 갑자기 주변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마나의 흐름에 조금씩 그걸 흡수해서 딱 한 번의 탈출 기회를 노렸고 마침 누군가의 강렬한 부름에 답하여 봉인을 뚫고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게 저였다고요.”
“응.
아마 일정 거리 내에서 뭔가를 강렬히 원했던 이가 너여서 그랬던 것 같아.”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그렇게도 컸었나.
머리를 긁적이며 시온은 찬찬히 릴리트의 말들을 살펴보았다.
일단 소설에서 그녀가 등장하는 시기는 클라우젠 영지가 함락되어 누디아 왕국에 편입되고 나서 그 이후이다.
누디아의 기사가 신전을 조사하다가 갑자기 뭔가의 기습을 받는 것으로 내용이 끝났고, 얼마 뒤에 김유현의 앞에 나타난 그 기사는 릴리트의 인형이 되어 있었다.
‘소설 속 내용보다 릴리트가 빨리 등장하게 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어차피 김유현 하나에만 집착하던 여자였고 나중에는 천족들에게 죽임을 당하니까.
딱히 큰 문제는 없겠어.’
거기에 서큐버스 퀸이 옆에 있다는 건 굉장한 이점이다.
단순한 무력도 평균 이상이지만 무엇보다 몽마의 특성으로 인해 정신 공격에 특히 능했다.
온갖 극한 상황에서 단련된 김유현마저 그녀의 정신 공격을 괴로워했으니 말 다 한 셈.
여전히 마나 고자에 체력 조루는 1도 나아진 것이 없었지만, 대신 옆에 든든한 방패를 세워두면 조금은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릴리트님.
옷은 좀 입으시는게 낫지 않을까요?”
“옷?”
“네.
설마 그렇게 맨몸으로 생활하실 건 아니죠?”
“음··· 그러네.
너희 인간들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옷에 신경을 쓰니까.
솔직히 말해서 너무 귀찮게 사는 것 같아.
누가 뭐 얼마나 본다고 옷에 그렇게도 신경을 쓰는 거야?”
“저도 거기까지는 아닙니다.
그냥 서로에 대한 예의로 가릴 건 가리고 다니자는 말이죠.”
“헤에?
뭐야.
다른 남자들이 내 몸 보고 발정할까봐 질투하는 거야?”
그렇게 말한 릴리트가 갑자기 시온에게 바짝 달라붙는다.
말캉한 가슴이 부딪치고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찌르며 이성을 매섭게 뒤흔든다.
“좋았어?”
“네?”
“못 들은 척 반문하지 말고.
나 좋았냐고.
우리 어제 밤에 말이야.”
그녀의 질문에 갑자기 부끄러워진 시온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좋았냐고 묻는다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평생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심지어 여신이라고 불리던 그녀를 안았으니 말이다.
“그러면, 나를 독점하고 싶어?”
“···제가 그렇다고 답한다면 문제가 되나요?”
“아니, 전혀.
오히려 당연한 거지.
계약을 맺었으니 이제 난 네게 예속되니까.
오히려 네가 독점할 마음이 없다고 답했다면 나 스스로가 초라해졌을 거야.”
릴리트는 발걸음을 옮겨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살짝 다리를 꼬며 유려한 선을 그리는 골반 라인과 매끈한 허벅지, 종아리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거기에 일부러 보라는 듯 은밀한 곳을 드러냈다가 가리기를 반복하는데 그럴 때마다 남성이 벌떡 벌떡 서는지라 여간 곤혹을 치르던 시온이었다.
“후후.
벌써부터 그렇게 흥분하면 안 된단다?
어제야 마나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아서 본능이 강해지고 이성이 마비된 것이었지만, 그래도 발정기는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내가 발정기에 들어서면 그 때는 어쩌려고?”
그 때 일은,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진짜 고자도 아닌데 박음질은 그 때에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시온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자!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니?
계약을 했으니 난 네가 하자는 대로 할 거야.
그래야 네 정기를 받으면서 계속 본체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그냥 제 옆에 계셔주면 될 겁니다.”
“···와.
방금 그거 준비한 멘트 아니지?
잠깐이었지만 나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했어.”
매혹적인 미소를 지은 시온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안아달라고 조르는 그녀의 모습에 시온이 어깨를 으쓱이곤 막 그리 해주려는 찰나였다.
“공자님.
세바스찬입니다.”
푸헉!
핑크빛 꽃밭에서 냉혹한 현실로 돌아온 시온은 사례가 들린 듯 콜록거렸다.
릴리트가 왜 갑자기 지랄이냐는 눈길로 쳐다봐도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는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변경백께서 30분 후에 응접실로 나오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알겠어요.
늦지 않게 갈 테니 걱정 마시라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공자님.”
혹시 세바스찬이 방 안으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슈퍼좆된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한 시온이었지만 다행히도 댓바람 아침부터 작은 주인의 방에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세바스찬이 순순히 물러갔다.
“뭐야?
너 왜 그렇게 긴장했어?”
릴리트가 검지로 시온의 가슴을 쿡쿡 찌른다.
세차게 고동치는 상대방의 심장 소리를 들은 것일까.
시온은 후우, 한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주변에 괴물들이 득실대서 말이죠.
마음 놓고 살 수가 없네.”
“흐응?
말만 해.
이 누나가 다 잡아줄게.”
“둘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쳐도 나머지 하나는 좀 힘드실 걸요.”
“애 말하는 것 봐?
어제 내가 네 밑에 깔렸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는 거니?
왜 이래.
나 서큐버스 퀸이야.
최고위 마족이라고!
앙?”
누님이 최고위 마족인 것도, 반신이라도 불리는 것도 다 잘 알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런 당신도 김유현한테 결국 씨게 참교육 당하고는 도망치듯 날아가서 상처를 치료하다가 천족들한테 끔살 당한다고요.
‘애초에 상성이 영 별로였어.’
서큐버스 퀸이라고는 해도 결국 몽마다.
육탄전보다는 정신 공격에 더 뛰어난 면모를 지닌 마족.
헌데 김유현은 이세계 전이만 두 번에 온갖 일들을 겪었던 터라 멘탈이 비브라늄 급이다.
살인은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피를 볼 상황을 결코 피하지 않는다, 라는 모티브를 충실히 지키는 이가 바로 그였고, 전형적인 이세계 전이물의 주인공답지 않게 냉혹한 면모까지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릴리트의 정신 공격은 처음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김유현이 내성을 가진 이후에는 그냥 그를 졸졸 쫓아다니는 정신병 걸린 스토커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다른 등장인물들은 릴리트의 정신 공격에 맥을 못 췄지.
이 정도면 내게는 정말 굉장한 카드가 들어온 셈이다.’
최소한 목숨 한 개는 더 얻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 어떤 이성이라도, 하다못해 천족들마저 그 아름다움은 자신들과 비견될 정도라고 인정했던 그 서큐버스 퀸 릴리트가 옆에 있음에도 그냥 ‘원 코인’ 으로 여기는 시온이었다.
“릴리트님.
변형 가능하시죠?”
“응?
당연히 가능하지.
그런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그냥 책에서 봤죠.”
“거짓말.
매혹에 이어서 서큐버스의 두 번째 무기인 변형에 대해 인간들이 뭘 안다고 책에 썼을까?
이 누나한테 솔직히 말해봐.
어떻게 알았니?”
허읍.
릴리트가 갑자기 자신의 남성을 강하게 움켜쥐는 통에 시온은 신음을 내뱉었다.
어찌나 노골적이면서 적극적인 손길인지 순식간에 피가 확 쏠리며 빳빳이 고개를 드는 남성.
그 모습에 릴리트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나랑 그렇게 하고 싶어?
으응?”
“이, 이건 그냥 당연한 생리적 반응입니다.
입 안에 음식 들어가면 침 나오는 거랑 다른게 없는 법이죠.”
“말은 잘 해요.
그래서 이 누나랑 더 하고 싶지 않다는 말?
나는 항상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네가 조금만 만져주어도 아마 홍수가 나지 않을까아―?”
비음까지 살짝 섞으며 이성을 홀리는 듯 한 달콤한 목소리에 시온은 이성이 끊어지려는 걸 억지로 참아냈다.
인간에게 있어 성욕은 제어가 거의 불가능한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욕구.
하지만 시온은 그보다 더 단순하고 더 강렬한 욕구를 지니고 있었다.
그건 바로, 생존 욕구였다.
“지금은 진짜 안 됩니다.
그보다 얼른 변형해주세요.”
“쳇···.
알겠어.
대신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한 번에 몰아 받을 테니 알아두라구!”
그렇게 외친 릴리트는 누구로 변형하면 되냐고 질문을 던졌다.
마을처녀?
성 안의 시녀?
베일에 쌓여있던 약혼녀?
아니면 갑자기 애를 안고 나타나서는 ‘이거 당신 아이에요.’ 라고 외칠 법한 주말연속극녀?
“릴리트님이 변형하실 인간은 바로 이 사람 되겠습니다.”
시온이 상대방의 대략적인 정보와 대충 그린 초상화를 내미는 순간.
“···야 이 시발.
너 지금 미쳤니?”
릴리트는 진심으로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
클라우젠 백작가의 성 내부에 위치한 응접실.
애초에 변경인지라 방문하는 손님이 거의 없어 잘 쓰이지 않던 공간이었다.
“차라리 여기를 내 연구실로 썼으면 참 좋겠는데.”
“사양하겠습니다.
제 성이 완파되는 건 보고 싶지 않네요.”
리히텐의 진심이 섞인 농담에 라이도는 낄낄거리며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김유현의 등판을 후려쳤다.
정말 말 그대로 ‘후려친’ 것이기에 김유현은 오만상을 다 찡그리며 그만 하라는 뜻으로 제 스승을 노려보았지만 라이도는 여전히 웃으면서 자신의 등판을 갈기는 중이었다.
퍽!
퍽!
힘없는 노인네가 때리는 것도 아니고 무투술로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괴물이 휘두르는 중이니 저건 그냥 웃겨서 툭툭 치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 반쯤 죽이는 매타작이다.
저러다가 또 자신의 성에서 스승과 제자가 각각 칼부림과 주먹다짐이라도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우려되었던 리히텐 변경백은 급히 입을 열었다.
“이틀 사이에 두 번이나 찾아오셨군요.
갑자기 무슨 일이랍니까?”
“일전에 내가 조사하던 정체불명의 신전 말이다.
거기에서 뭔가가 탈출했다.”
“예?”
“그리고 그 흔적이 아주 미미하지만 여기 성 근처까지 이어졌어.
물론 그 이후에는 흔적이 완벽히 지워졌지만 말이다.”
라이도의 사뭇 진지한 목소리에 덩달아 리히텐 변경백의 표정도 굳어졌다.
사실 라이도가 자신의 영지에서 머무르는 이유도 그 신전에 대해서 조사하기 위함.
그런 곳에서 갑자기 뭔가가 탈출해서는 성 근처까지 흔적이 이어졌다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듯 했다.
“뭐, 크게 걱정하지는 마라.
새끼야.
형님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라이도님을 믿어야 하는 부분이 가장 걱정입니다.”
“프훗!”
리히텐 변경백의 역시나 진심 섞인 농담에 옆에 앉아있던 묘령의 여인이 웃음을 내뱉었다.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변경백은 살짝 고개를 숙이곤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는군요, 루시아 양.”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변경백님?”
“이쪽이야 탈 없이 지냈습니다.
그보다 갑자기 라이도님과 동행할 줄은 몰랐군요.”
“아, 그게 말이죠.
실은 보고 싶은 분이 좀 있어서요.”
“보고 싶은 분?”
“크흠흠!
리히텐, 이 놈아!
그보다 내가 부른 네 아들 놈은 언제 온다는 거냐!
왜 안 와!”
“아마 지금쯤이면 거의 다 왔을 겁니다.”
똑똑똑―.
“아버지.
시온입니다.”
변경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응접실 밖에서 시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는 대답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고 정복을 입은 시온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라이도와 얼굴이 마주치자 바로 인사를 하는 그였다.
“라이도님.”
“어서 와라, 이 빌어먹을 사ㅇ··· 자식아.”
말을 대충 얼버무린 라이도는 슬쩍 옆에 앉아있던 루시아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평온하던 딸아이의 눈빛이 과하게 반짝이고 있는 중이었다.
‘저런 도둑놈 쉐끼!’
라고 시온에게 일갈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루시아한테 6박7일로 잔소리 풀코스를 당할 판국이었으니 입을 다물고 만 라이도였다.
한편 시온의 뒤를 따라 기사 하나가 안으로 들어섰다.
평범한 중년의 모습을 한 그 기사는 시온의 뒤를 얌전히 따르다가 딱 김유현과 눈이 마주쳤다.
“···.”
“···.”
그 순간 김유현의 눈동자에서 묘한 빛이 번뜩였고 거의 동시에 중년 남성 기사의 두 눈동자에서 붉은 기운이 언뜻 머물다가 사라졌다.
[작품후기]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