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52)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52화(152/439)
152―――――
남자라면 한 번쯤은
“버일러!
버일러!”
칼타와의 극적인 평화 회담 이후, 다시금 급박한 분위기가 아이기오르 측에 돌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해서 정찰병들이 들이닥쳤는데, 마치 전쟁이라도 난 분위기였다.
“이번에도 왕국 국경에 대한 보고입니까?”
“그렇습니다.
버일러.”
에오스는 전해보라는 듯 손을 들어보였고, 전사 하나가 다급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타이커 자작가의 성이 거대한 화마에 쌓였다는 보고가 사실이었습니다.
저녁부터 시작된 불길이 새벽을 넘어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합니다.”
“아침이 지나도록 진화가 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 보고에 에오스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타이커 자작은 왕국의 북부 귀족 중에서 그나마 전사라고 불릴 만한 이였다.
당연히 그 휘하 병사들은 웬만한 전쟁 상황에 대비하여 각종 훈련을 마친 상태였다.
공성전 도중에 성에 불이 날 수 있으니 분명 화재 진압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을 텐데 저녁부터 시작된 불을 새벽이 지나 아침이 되도록 잡지 못 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이상했다.
‘설마 그들이 제 성을 포기한 것은 아닐 테고.
도대체 왜 불을 잡지 못 한 거지?’
그렇게 생각하던 에오스는 문득 김유현이라는 이가 떠나기 전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마십쇼.
아마 모든 것이 그 남자의 생각 하에 일어나는 일일 테니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유현?’
‘아직은 조금 그렇지만, 믿을 수 있는 남자라는 소리입니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 해 항상 싸늘하게 굳어있던, 한겨울에 불던 삭풍보다도 더 차가워보이던 눈동자가 비록 잠깐이었지만 조금은 신뢰로 들어찬 기운을 보이고 있었다.
그게 무척이나 신기했던 에오스가 킥, 하고 웃자 김유현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이곳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니 안심해도 좋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남겨두고는 왕국으로 떠났었다.
‘이상하게 슬퍼 보이는 남자.’
김유현에 대해서, 에오스는 그렇게 정의할 수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세상 슬픔을 한 가득 안아들고 간신히 버티는 모습이었다.
어찌나 고독해 보이는지, 만남은 짧았지만 그가 자신을 대할 때마다 혹시나 피해를 끼칠까 무척이나 조심스럽다는 기운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이가 ‘그 남자’, 시온 클라우젠은 믿어 봐도 좋다고 말했다.
이미 에오스 스스로도 시온이라는 왕국의 귀족을 꽤나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데, 마치 한 마리의 고독한 늑대처럼 보이던 전사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신뢰도가 더더욱 높아졌다.
‘언니가 괜히 반한 게 아니라는 건가?’
에오스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는 와중에, 항상 그녀의 고문 역할을 하던 노장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버일러.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슨 말이죠?”
“칼타 말입니다.
그리고 테무친이.”
그 말에 에오스는 두 눈을 살짝 찌푸리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뜻으로.
“물론 테무친이 스스로 한 약조를 어기고 왕국을 공격하지는 않겠지요.
그 분을 따르는 칼타의 대부분도 그러할 겁니다.
하지만 다른 뜻을 지닌 부족들이 걱정입니다.”
“···왕국과의 전쟁을 원한다며 끝내 떨어져 나간 일부 부족들 말이군요.”
칼타 전체가 테무친을 따르기 위해 모인 이들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왕국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며 테무친이 그들에게 칼끝을 돌리는 상황을 원해서 칼타에 들어간 부족들도 분명 있었다.
왕국과 아이기오르, 그리고 칼타 사이에 잠시 간의 평화가 약속된 이 순간은, 그들이 원하던 장면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도 분명 왕국의 국경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눈치 챘을 겁니다.
그들이 이때를 노려 독단적으로 행동해 왕국을 공격한다면, 기껏 버일러와 테무친, 그리고 왕국이 노력한 평화가 또 깨어질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죠.”
평소에도 단합이 잘 되지 않는 부족들이다.
이렇게 서로의 뜻이 갈린 상황에서 그런 자들이 무슨 짓을 벌일 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노인의 걱정대로, 정말 그들이 왕국의 혼란 속에 국경을 넘어 왕국을 본격적으로 공격한다면 문제가 커질 확률이 매우 높았다.
“걱정 하냐고 묻는다면, 난 걱정 안 해요.”
“예?”
하지만 에오스는 별 걱정 없다는 반응이었다.
예전에는 테무친과 칼타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여인이 오늘따라 반응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가끔 이상한 행동을 보일 때는 있어도, 명예와 긍지까지 잊은 전사는 아니에요.
언니는 내가 잘 알아요.
칼타에서 떨어져 나간 부족들이 말썽을 부리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인물이었다면, 그 많은 부족들이 모인 칼타는 진작 흩어졌을 거예요.”
“하지만···.”
“걱정 마요.
무엇보다 세상 어느 누구라도 호감을 지닌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세상 어디가나 똑같으니까.”
노인은 잠시 에오스를 바라보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칼타를 이끌고 있는 쟌 테무친보다는, 여태 자신들을 이끌었던 에오스 버일러를 믿은 것이었다.
그리고 에오스의 확신대로, 현재 쟌은 아주 발 빠르게 대처를 하는 중이었다.
“테무친.”
칼타의 여러 전사들이 미리 매복하고 있다가 왕국의 국경으로 향하던 이들을 잡아왔다.
하나같이 가벼운 상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무장을 한 것이, 약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깽판을 부리기 위한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내가 분명 왕국의 답을 기다려보자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니 그야말로 호러 영화가 따로 없었다.
쟌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대기하고 있던 전사들에게 잠시 나가보라는 듯 손짓을 해보였다.
“할 말은 없나?”
칼타의 전사들이 나가자 쟌은 선심을 써주듯 나긋한 어조를 내보였다.
그에 전사들에게 잡혀온 이들 중 가장 선임자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국을 몰아내고 북부의 여러 부족들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난 북부의 사람들을 위해 싸우겠다고 했을 뿐이다.”
“그게 그것이지 않···.”
자리에서 일어선 쟌은 천천히 그 중년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잡고는 살짝 돌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왕국과 싸우겠다고 한 것은, 우리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아니, 믿음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거지.
왕국에 나와 같은 강자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우리가 전쟁을 외치는 순간 왕국이 어떻게 나올 지도 다 알고 있으면서 그냥 그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
“헌데 그 길을 고집하지 않아도 부족원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내게 찾아왔다.
전쟁을 반대하는 또 다른 부족원들을 해치지 않고,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모르는 전쟁으로 인해 내 주변의 사람들이 스러지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 말이다.”
“소용없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가면 또 지금과 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입니다.
고작 식량을 좀 받는다고, 혼인 동맹을 맺는다고, 교역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우리들은 왕국과 반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다고 해서 미래가 바뀌지는 않는단 말입니다!”
중년의 전사는 그걸 모르겠냐는 어조로 분하다는 듯 읊조렸다.
그에 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말을 했다.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 전쟁일 일어날 수도 있겠지, 왕국이 먼저 우리 부족들을 천히 여겨 직접 대대적인 공격을 가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 때의 우리는 너무나도 약해져서 반항 한 번 하지 못 한 채 사라질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이다.
하지만 정작 표정에는, 딱히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바뀌지 않는다는 부족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나와 내 동생이 이리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부족원들을 설득하고, 이전과는 다르게 그들을 살피고, 저 히스파냐와 대화를 나누면서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꾸욱―.
쟌의 손에 천천히 힘이 들어가며 남자의 머리를 강하게 쥐기 시작했다.
이내 다른 한 손까지 중년 전사의 얼굴을 붙잡은 그녀는 이후 있을 일을 직감한 듯 입술을 깨무는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같이 아무 것도 없는 자가 북부의 율법, ‘강자의 뜻에 따른다.’를 어기고 제멋대로 구는 것을 처벌하기도 하고 말이야.”
우드득!―.
사람의 목이 흉하게 돌아가며, 전사 하나가 그대로 절명했다.
순식간에 생명이 스러져 딱딱하게 굳은 나무토막이 된 몸뚱이가 옆으로 쓰러졌다.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이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쟌은, 그 다음 상대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으으으!”
“테, 테무친!
그래도 저희는 한 때 당신을 따르던 칼타의 일원인데 어찌···.”
“내 이름을 대고, 내 이름을 따랐다면 응당 내 뜻에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필요할 때는 내 이름 뒤에 숨어서 안전하게 지내다가 뜻이 달라졌다고 나를 곤란케 하려는 자를 내가 왜 대우해야 하는가.”
우득!―.
또 다시 한 생명이 바스러졌다.
쟌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 상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네놈들은 이제 칼타도 아니고, 내 전사들도 아니다.”
우득!
“너희는 내 적이며.”
우드득!
“내 반려의 적일뿐이다.”
―
오싹―.
순간 느껴진 한기에 시온은 몸을 가볍게 떨었다.
어째 등골이 싸늘한 것이 아무래도 어디에선가 영 달갑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시온.
어디 아파?”
지노 자작이 가지고 있던 서류들을 시온과 함께 살펴보고 있던 릴리트가 시온의 변화를 알아차렸는지 슬쩍 질문을 던져왔다.
그에 시온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어보였다.
“그러면 다행이고.
그보다 이 인간, 정말 대단하다.
너희 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정말 엄청나게 해 먹은 것 같은데?”
“이러니 북부의 부족들이 교역이 끊어지자마자 곧장 어려운 상황에 빠진 거 아니겠습니까.”
자신들 딴에는 야만 부족들의 재정 상황이 풍족해지면 저들이 역으로 성장해 왕국을 노릴 수 있어 그걸 제한한다고 했지만, 애초에 그 위험을 감수하고 교역길을 연 것이 히스파냐이고 왕실이다.
그 뜻에 반해서 야만 부족들을 막다른 길로 몰아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불러일으키고, 자신들이 여태 해오던 짓을 숨기고 심지어 그 전쟁을 이용하려고까지 했으니 이건 그냥 반역이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솔직히 조금 놀랐어.
적당히 잡아 족치고 있는 정보, 없는 정보 다 토해내게 하려는 줄 알았는데 약간의 자백과 그 자백서만 받아내고 싹 죽여 없앨 줄이야.”
“살려둬서 이득이 되는 자들과, 손해만 가득인 놈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무섭네, 무서워.”
세페르 카슈가르 같은 경우에는 잊을 만하면 왕성을 공격한 죄인으로 부각시키며 왕국의 분열된 분위기를 바로 단결시킬 수 있는 좋은 먹이이다.
하지만 북부의 귀족들은 이득이 될 부분이 하나도 없는 자들이다.
오히려 국가의 분열과 함께 위협감만 조장할 뿐이다.
해서 그나마 가장 희망이 보이는 레포엠 남작 하나를 제외하고는, 약간의 자백을 제외하곤 전부 빠르게 제거했다.
‘북부의 몇몇 부족들이 책임자 운운하며 뭔가를 요구하기 전에 제거해야 왕국도 편하고, 왕실도 이런 걸 원해서 내게 대리자 자격을 준 거 아니겠냐.’
멋지고 좋은 일만 하라고 대리자 자격을 준다면 차라리 후계자를 보내는 것이 낫다.
힘들고, 때로는 욕도 좀 먹고, 왕국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일이기 때문에 대리자 자격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바네사 왕녀도 시온을 불러왔지만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말이다.
“들어가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온 이는 리시키다였다.
여기사인 그녀의 본분과는 다르게 시녀나 할 법한, 차를 들고서 온 모습.
그런 리시키다의 등장에 릴리트는 ‘흐음!’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잠깐 볼일이 있어서.”
“볼일이요?”
“어··· 으응!
트리샤가 자꾸만 까불어서 조금 눌러주려고.”
“···적당히 하세요.”
무슨 걱정이야!
라고 흥얼거리며 릴리트는 바로 방을 나섰다.
물론 나가는 와중에 리시키다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찌르며 힘내라는 듯 눈을 찡긋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갑자기 차는 뭐야, 리시?”
“아, 그, 그게.”
분명 뭐라고 말을 해야 할 터인데, 차마 대답은 못 하고 우물쭈물하는 리시키다였다.
그 모습에 시온은 일단 고맙다는 말을 하며 찻잔을 받아들었다.
찻잔에 담긴 차를 홀짝이던 그는 쌉싸름한 기운이 혀끝에 계속 맴돌았기에 자꾸만 전에 먹었던 달콤한 쿠키가 생각났다.
“저··· 주, 주인님.”
“응?”
“호, 혹시 단 거 드시고 싶지 않으신가요?”
“···조금 그러긴 하네.
차만 마시기에는 아쉽다고 할까.”
별 생각 없이 내뱉은 진심이었다.
원래 살짝 쓴 기운이 도는 것과 달콤한 것이 항상 최고의 조합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시온은 순간 자신이 꿈이라도 꾸는가 싶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제 앞에 멀쩡히 서서 제 대답을 기다리던 여기사가.
어, 하는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져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리시가 왜?’
갑자기 왜 이 여기사가 왜 테이블 위에 눕는 거지?
“리시?
지금 뭐 하는···.”
“그, 그게!
다, 단 거!
단 거 드시고 싶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라고 릴리트님이··· 앗!”
당황해서 허우적대다가 저도 모르게 진실이 튀어나온 리시키다였다.
그 말에 테이블 위에 허물어지듯 누워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시온은 기가 막힌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이 누님이 얘한테 도대체 뭘 가르친 거야!’
제가 이렇게 한다고 좋아할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오예’ 입니다!
―――――――작품 후기―――――――
모두가 오예!
저는 추천도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