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6)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6화(16/439)
<―>
“아, 아버지.
트레이 경 대신에 새로 제 호위를 맡게 된 노스 경입니다.”
시온이 자신의 뒤를 따라 들어온 기사를 소개하자 리히텐 변경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노스 경은 기사 직을 그만두고 낙향한다고 했을 텐데?”
“실은 사람을 보내 제 호위 기사로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긴, 고향이라고 해도 가족은 물론이고 아는 이 하나 없는 사람이었으니.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하네, 노스 경.”
“아, 감사합니다.
백작 각하.”
김유현을 응시하고 있던 노스는 리히텐 변경백의 말에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보냈다.
그러다가도 그는 김유현을 흘끗흘끗 쳐다보며 묘한 시선을 보내곤 했다.
“시온 공자님.”
“루시아님도 오셨군요.”
밝은 미소를 지은 채 먼저 인사를 건네는 루시아.
시온 역시 웃는 낯으로 그녀를 맞이했고 덕분에 라이도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찝찝한 얼굴을 짓고 말았다.
아무리 딸이 좋다고 해도, 소문과는 달리 뛰어난 남자라고는 해도 여전히 아버지라는 입장에서 봤을 때 영 탐탁지 않은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아마 딸을 가진 모은 아버지들의 입장이 자신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라이도는 입을 열었다.
“아무튼, 신전에서의 일로 성에서 갑자기 이상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해서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내 제자 놈이 성에 머무르는 건 어떨까 네게 의견을 묻고자 찾아왔다, 리히텐.”
“?”
“그렇게 해주신다면 오히려 저야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되면 신전 조사는 라이도님 혼자서 진행해야 할 터인데 괜찮겠습니까?”
“원래 나 혼자 진행하던 일이었다.
제자 놈은 영 학문 쪽에는 영 젬병이라 도움이 전혀 안 되는 녀석이라서 말이다.
신전 쪽 일은 나 혼자로 충분하다.”
“?”
라이도와 리히텐 변경백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사이, 시온과 노스 경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물음표를 동동 띄우고 있는 중이었다.
어째 저 둘이 말하는 ‘신전’ 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닐까.
“아버지.”
갑자기 옆에서 라이도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루시아.
그러자 라이도는 아아, 하고 탄식을 내뱉더니 옆에 앉아있는 제 딸을 가리켰다.
“그리고 실력있는 마법사도 필요할 테니 내 딸도 여기 머물 계획이다.
나만큼은 아니어도 마나의 흔적이나 그 잔류물을 감지하는 건 뛰어나니까 말이다.”
“?”
상황이 가면 갈수록 이상해지고 있다.
김유현이 성에 머무르는 것도 예상치 못 한 그림이었는데 이제는 루시아까지?
도대체 이게 어찌 되어가는 상황인지 시온이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고 있을 무렵.
리히텐 변경백이 잘 되었다는 듯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 아들 녀석이 라이도님의 제자 분과 관련해서 이야기 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실은 향후 있을 누디아 왕국과의 전쟁에서 힘을 빌려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습니다.”
“제자 놈에게 말이냐?”
“네.
전투에서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며 아들 녀석이 기대하고 있더군요.”
“흠.
네 아들이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긴 하구나.
확실히 제자 놈이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살인병기이긴 하지.”
“···그 말을 스승님께서 하시니 조금은 난감합니다만.”
검 한 자루면 백 명이고 천 명이고 상대가 가능한 김유현과 주먹 하나로 한 때는 정규 기사들마저 무슨 과일 으깨듯 갈아 마셨던 라이도.
두 괴물이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앉아있으니 거기서 웃을 수 있는 건 오직 루시아 뿐이었다.
“저, 아버지?
그리고 라이도님?”
슬쩍 끼어드는 시온.
리히텐 변경백은 할 말이 있냐고 물었고 시온은 슬쩍 김유현과 루시아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지는 못 하지만, 두 분이 성에 상주해야 할 만큼의 중요한 문제인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시온?”
“제가 보기에는 몰라도 영지의 기사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을 믿지 못 하여 외부인을 성에 들이고 경계 업무를 맡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버지.”
“흠···.
확실히, 기사단장에게도 아무런 말도 없이 외부의 검사를 들이는 건 그에게 있어 조금은 실례되는 일이기도 하겠구나.”
“가문의 마법사 분께도 말이죠.
루시아님이나 라이도의 제자분.
그러니까 김유현을 무시하는 처사는 결코 아닙니다만 원래 굴러온 돌이 박혀있던 돌을 쳐내는 것 같다고 느껴지면 내부가 흔들리는 건 한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시온의 말에 리히텐 변경백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도 역시 침묵하고는 있어도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었는지 차만 홀짝이는 중.
“시온 공자님.”
그 침묵을 깬 건 김유현이 아니라, 바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루시아였다.
“공자님의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태가 꽤나 중한 지라 어쩔 수 없을 것 같네요.
무엇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서 좋을 사항도 아니고요.”
“루시아 말이 맞다, 애송이.
신전 조사도 비밀에 부치기 위해 나와 딸내미, 그리고 제자놈 이 셋이서 진행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자놈은 그냥 하는 거 없이 주변만 살폈을 뿐이지만 말이다.”
“원래 주변 확인이 가장 중요한 법입니다, 스승님.”
“한 마디를 안 져요, 시발놈.
아무튼!
이건 너와 네 아비뿐만 아니라 이 성의 모두와 영지민들을 위한 것이다.”
어째 그 신전에서 흘러나왔다는 기운이, 바로 옆에 앉아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시온은 슬쩍 곁눈질로 옆에 서있던 노스 경을, 아니 릴리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응접실로 오시 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야 이 시발.
너 지금 미쳤니?’
시온이 내민 초상화는 다음 아닌 중년 남성의 얼굴이었다.
릴리트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시온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오늘 새벽에 떠난 분입니다.
아직 멀리 가지는 못 했을 테니 따라잡을 수 있을 거예요, 릴리트님.’
‘무슨 소리야?
죽이라고?’
‘아뇨.
그냥 한동안 어디 틀어박혀서 조용히 있도록 정신 지배만 걸어달라는 겁니다.
마나를 탈취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그 정도는 쉽잖아요?’
‘막 쉬운 일 아니거든?
그냥 덜 지치는 일인 거지.
그보다 왜 하필이면 남자냐고!
주변에 여인들 많더구만!
그 중에 하나로 변할래!’
‘안 됩니다.’
‘왜!’
‘갱생했다는 놈이 옆구리에 여자 끼고 있으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거기에 루시아가 와있다.
그녀가 저번에 보냈던 호의 가득한 시선을 떠올린 시온은, 그녀 앞에서 다른 여인을 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루시아가 본다면 그리 좋지 않은 일이 터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루시아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아버지인 라이도가 일으킬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 말이다.
‘돌겠다.
서큐버스 생에서 남자로, 그것도 중년으로 변해달라는 건 또 처음이네.’
‘그러면요?’
‘마른 체형, 통통한 체형, 키 작은 여자, 큰 여자.
유부녀, 또는 어린 아이···.’
‘그만.
거기까지.’
릴리트의 입을 다물게 한 시온은 어서 일을 시작하라고 그녀를 보챘다.
한숨을 내뱉은 릴리트는 재빠르게 방을 빠져나가 아직 멀리 가지 못 한 기사에게 정신 지배를 걸고는 어디 한적한 곳에서 일손이나 도우라는 암시를 걸어두었다.
아는 이도, 가족도 없는 이였기에 며칠 정도는 의심 받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시온.
이렇게 한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게 있어?’
‘뭐가요.’
‘며칠의 말미잖아.
난 영원히 네 곁에 있어야 하는데 고작 며칠 속이는 걸로 어떻게 지내라는 건데.
심지어 이런 쭈그리 아저씨의 몸으로 말이야.’
‘걱정 마세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너무나 자신만만한 시온의 태도에 릴리트는 볼만 긁적이며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재빠르게 일을 끝내고, 변형을 통해 노스 경으로 바뀐 릴리트가 시온과 함께 응접실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라이도와 김유현, 그리고 루시아가 신전 조사를 하고 있었다니.’
원래의 소설 진행이라면 시온 클라우젠의 병신 머저리 짓 때문에 루시아는 물론이고 김유현도 클라우젠 영지과 불편한 관계가 되어 버린다.
아마 라이도 역시 리히텐과의 관계를 봐서 한 번은 넘어갔을 테지만 시온에게 이를 갈고 있었을 것이 확실하다.
당연히 그 셋은 바로 클라우젠 변경백령에서 떠났을 것이고, 그래서 이후 누디아 왕국의 기사가 신전을 발견할 때까지 잊혀졌던 모양.
‘이미 소설 진행이 약간씩은 어그러졌어.’
하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전쟁은 어차피 벌어지고, 거기에 김유현 역시 참전한다.
다만 거기에 바로 자신, 시온 클라우젠 역시 종군하긴 했지만.
‘내 목적은 살아남는 거지, 소설 속 진행을 돕는 게 아니다.
최대한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되, 작은 곳에서 내가 가용할 수 있는 패를 많이 만들어야 해!’
왕국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고, 종족 연합들이 무서운 기세로 마족들을 공격할 때 대륙의 진짜 적은 등 뒤에서 칼을 갈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 마족, 이종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지쳐있을 때 공격이 시작되었다.
애먼 곳에 힘을 다 쓴 이들에게 남은 건 오직 피와 눈물, 그리고 죽음뿐이었다.
‘다른 놈들은 뒤통수를 맞아도 나는 절대 맞지 않겠어.
오히려 통수 치려는 놈들의 머갈통을 깨부수고 말지.’
아직 그 날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남아있다.
완벽하게 대비하기에는 빠듯했지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나중에 주인공에게 칼날을 겨눌 강력한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가능한 한 모조리 포섭하여 곁에 둔다면 살아남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내 땅을 지키며 사과 농장을 가꿀 것이다.
그리고 천운으로 살아남은 자들에게 농장에서 난 사과를 비싼 값에 팔아먹을 것이다!
그게 시온이 믿는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지혜’ 였다.
“라이도님께서 그러시다면 뜻대로 하시죠.
다만 김유현 군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올 겁니다.
그 때는···.”
“네 마음대로 해라.
제자 놈을 굽든 튀기든 삶든 안 말린다.”
과연 김유현이 굽고 튀겨지고 삶아질 때 가만히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온은 리히텐 변경백을 따라 그냥 웃기만 했다.
“변경백님.”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김유현이 드디어 리히텐 변경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출정은 언제입니까.”
“적들이 막 영지를 벗어나서 국경 인근에 도달했을 때 공격하기 위해서는 이틀 후 새벽이 가장 적당하겠지.
그리고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추리고 추린 정병들만 이끌고 갈 계획이네.”
“그렇습니까.
그러면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을 전하겠습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되도록 제게서 멀리 떨어지시길.
병사들이나 기사들이 쓸데없이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만만하다 못해 광오하기까지 한 말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웃지 않았다.
시온이야 당연히 김유현의 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라이도나 리히텐 변경백 역시 그의 강함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명심하도록 하지.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네.”
“확인하고 싶으신 것이라면.”
“시온이 말했듯이 원래 변경은 폐쇄적인 분위기가 서린 곳이라 말일세.
갑작스레 등장한 외부 인사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곳이지.”
“···.”
“해서 오늘 오후에 내 기사들과 가볍게 대련을 하는 건 어떻겠나.
거기서 자네의 실력을 보여준다면 내 기사들도 더는 외부 인사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을 걸세.”
가벼운 대련.
그 말에 김유현은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시온에게는 ‘다 조질까?’ 라고 고민하는 악마의 웃음으로 보였다.
부디 영지 내의 기사들이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라며 시온은 기도를 올렸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요.”
“그러면 그렇게 알고 준비시키도록 하지.
아, 루시아 양은···.”
“그 부분은 걱정 마라.
내가 가서 내 딸이라고 말하면 되니까.”
“···비밀이 새어나갈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죽고 싶으면 혀를 놀리는 거고, 살고 싶다면 영원히 입 닥치고 있겠지.
히스파냐 왕국에 거주하는 마법사 중에서 내 경고를 무시할 만큼 간 큰 녀석은 아마 없을 거다.”
싸늘하게 날아와 박히는 라이도의 비수 같은 웃음.
시온은 절로 마른침을 꿀꺽, 하고 삼키고 말았다.
아무리 마법사들이 나사 하나씩은 빠져있는 놈들이라고 해도, 저 살인 미소를 보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놈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면 기사들만 준비시키면 되겠군요.
인원은···.”
“변경백님.”
김유현의 부름에 리히텐 변경백은 할 말이 있냐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김유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시온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남자와 한 번 붙어보고 싶습니다.”
“음?”
“에?”
김유현이 가리킨 인물은 다름 아닌 시온.
이 아니라 그 옆에 서있던 노스 경, 으로 위장한 릴리트였다.
[작품후기]너가 그렇게 thㅏ움을 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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