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63)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63화(163/439)
163―――――
돌아왔는데, 이건 뭔?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감히 누구에게 그딴 말을 하는 것이더냐!”
그렇게 일갈을 토해내면서 리만 특사를 잡아먹을 듯 눈을 부라리는 여인은 바네사 왕녀.
바네사의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시온은 진심으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저 여자는 또 왜 저래?’
솔직히 나선다고 해도 리히텐 변경백이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비로서 자식이 말도 안 되는 의심을 받으니 어느 누가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리히텐 변경백이 불만을 토해내기도 전에, 바네사가 나선 것이었다.
‘이건 조금 예상외고, 무엇보다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인데?’
자신이 세게 나가거나, 혹은 리히텐 변경백이 불편한 의사를 표현해도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될 확률은 거의 없다.
어차피 그냥 개인적, 한 귀족으로서 내놓은 의견 정도가 될 테니까.
하지만 바네사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히스파냐의 왕녀, 현 국왕의 직계, 타국에서 보기에 그녀의 말이나 행동이 곧 히스파냐 전체의 뜻이라고 비쳐져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 여인이 오만방자하다는 말까지 쓰며, 그야말로 ‘극대노’를 하는 모습은 히스파냐 왕실에도, 그리고 시온에게도 그리 달가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바네사 왕녀님?
왜, 왜 이러십니까.”
“다시 말해 보거라.
뭐라?
시온 클라우젠이 마족 추종자라고?”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결국 그 의도와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지금 그대는 이 자리에 모인 히스파냐의 모든 이들을 바보로 아는 것인가?”
바네사 왕녀의 일갈에 리만 특사는 침음을 내뱉으며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감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 했다.
시온 클라우젠을 압박할 때, 그는 시온이 알아서 물러서거나 아니면 반발한다고 해도 시온 본인이나 그 아비 되는 사람인 리히텐 변경백이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해서 그들이 나선다면 적절히 받아칠 생각으로 먼저 도발을 한 것이었는데.
‘설마 바네사 왕녀가 나설 줄은 미처 몰랐다.’
시온 클라우젠이 요즘 들어 왕국 내에서 가장 이름값이 높다는 거야 대충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네사 왕녀까지 이렇게 흥분을 하며 달려들 정도로 왕실에 이미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 줄은 조금도 눈치 채지 못 했다.
왕실에서 분명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을 인물은 확실하다고 여겼지만, 서열권이 있는 인물이 이렇게 흥분을 하며 달려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당장 사과하라.”
“예?”
“당장 사과하란 말이다.
감히 왕국의 신성이라 불리는 영웅에게 그따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였으니까 말일세!”
한 국가의 대표로 이 자리에 왔음에도 저렇게 험악한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이었다.
‘물러서야 하나?
아니면···.’
리만 특사는 눈치를 살피다가, 문득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에라더 왕자를 발견했다.
그는 영 불만이라는 표정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바네사 왕녀에게 뭔가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리만 특사는 히스파냐로 오기 전에 현 히스파냐 왕실의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한 보고서를 봤던 기억을 들추어냈다.
‘둘의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고 했지.’
여기서 이대로 물러서면 기껏 펼쳐놓은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수가 있었다.
히스파냐를 성전에 끌어들어야 한다, 하다못해 뒤에서 지원이라도 하게 해야 한다.
“바네사 왕녀님.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시지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온갖 불길한 일들이 히스파냐는 물론이고 누디아와 신성 프러센에서도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이지?”
“정황을 보면 대륙 전체를 혼란에 빠트릴 세력이 개입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희가 조사를 한 결과 마족 추종자들이 그 뒤에 있었습니다.”
“시온 클라우젠이 말하지 않았는가.
확실한 증거를 보여 달라고 말이야!”
“저는 특사 신분으로 최대한 빠르게 달려온 사람입니다.
조사의 결론만 듣고 바로 누디아를 거쳐 히스파냐로 왔기에 조사단의 상세한 보고는 알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돌고 돌아서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대화.
바네사는 눈앞의 이 특사란 자가 정말 정확히 아는 것이 없어 저런 대답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말을 빙빙 돌리기 위해 저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쯤 해두지 그러냐, 바네사 왕녀.”
그리고 때를 맞추어 에라더 왕자가 슬쩍 몸을 일으켰다.
현 상황에서 국왕의 장자라는 부분을 빼면 에라더 왕자는 딱히 세워놓은 공훈이 없다.
그에 비해 자신의 여동생인 바네사 왕녀는 이번 북부 야만 부족의 불온한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하여 부왕의 인정을 받았다.
그 뿐인가?
당장 왕국의 신성이라 하는 시온 클라우젠과 꽤나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차후 왕국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귀족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 곧 후일 왕위 계승권을 두고 벌어질 정쟁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두 눈에 훤한 상황 아닌가.
‘당장 시온 클라우젠을 감싸고도는 것이 둘 사이의 확실한 동맹 관계를 의미하는 거다.
아직까지 눈치를 보고 있는 귀족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업적이 필요하다!’
에드가 4세의 건강이 근래 들어 점점 악화되자 차기 국왕의 자리에 더더욱 민감해진 에라더 왕자였다.
그런 와중에 성전이 벌어지고, 거기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을 만한 공을 세우면 장자라는 메리트에 공훈까지 더해져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완벽한 차기 국왕이 될 수 있었다.
“보이지는 않는 곳에서 항상 악의 추종자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 신성 프러센이다.
성기사들이 굳건히 서서 버티고 있기에 대륙에 마족들의 마수가 뻗치지 않는다는 건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것이 신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프러센의, 그리고 그 기사단의 의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성전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머나먼 타지, 완벽한 적진에 자국의 병사들을 밀어 넣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로 인해 벌어질 불미스러운 일들을 막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한 희생이라고 여긴다.”
“오라버니!”
희생되는 자들은 당신이 아니라 병사들이야!
왕국의 죄 없는 백성들이라고!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바네사 왕녀였다.
더해서 마족들이 사는 곳이라는 필멸의 땅은, 히스파냐와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이다.
누디아와 신성 프러센의 북쪽, 아주 멀고 외진 곳에 자리한 곳.
항상 끈적하고, 피비린내가 나는 붉은 안개로 뒤덮여 들어가면 열에 아홉은 몸도 마음도 썩어문드러지는 저주 받은 땅이었다.
괜히 대륙의 모든 이들에게 ‘금지’ 라고 불리는 곳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왜 그리 거부감을 보이는지 모르겠구나.
성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불이익이 있다고 신성 프러센의 특사가 말을 한 적도 없다.
네 반응이 너무 날카롭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확실한 대답을 듣지 않고서는 그 사지로 사람들을 몰아넣을 수 없으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마족들이 정말 이 작금의 사태에 관여하고 있다면, 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텐데?”
“만약 마족들이 전혀 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힘이란 힘은 다 소진하고 다른 새로운 위협에 그대로 노출될 수도 있는데요?”
이제는 남매의 싸움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대전 안 상황이었다.
단순한 감정 싸움도 아니고, 보통의 남매가 싸우는 것도 아니다.
이건 차기 국왕의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만 하는 두 후계자 간의 정쟁의 일환.
때문에 어느 누구도, 시온조차도 함부로 나서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둘 다 맞는 말을 하고 있어서 더더욱 편을 들기 어려운 형국이다.’
사지로 국민들을 몰아넣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바네사의 의견이야 당연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원흉인 마족들을 깔끔하게 지워내고 위협적인 세력들로부터 해방되자는 에라더 왕자 주장 또한 아예 틀린 것도 아니다.
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제공격을 해서 예봉을 꺾는 일이야 역사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일이니, 에라더 왕자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온은 슬쩍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에라더 왕자가 이상한 논리로 억지라도 부리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는 두 남매가 저마다 다른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적당한 의견을 세워 주장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어느 한 쪽의 의견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대부분의 이들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사회적 입지가 있는 인물의 편을 들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책임을 질 놈도 확실히 있고, 일이 성공적으로 흐르면 뭐라도 주워 먹을 수 있으니까.
가장 현명한 결정이지.’
그렇게 따졌을 때 이 상황에서 눈치를 보던 귀족들이 결국에는 에라더 왕자의 의견에 조금 더 고개를 끄덕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차피 최종 결정권은 국왕인 에드가 4세에게 있지만, 이때의 그는 차기 국왕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귀족들의 지지를 받는 자식의 의견을 따르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시발, 결국 이번에도 내가 총대를 메야겠군.’
바네사 왕녀는 반드시 왕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서 결코 에라더 왕자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은 시온은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는 두 남매의 말이 잠깐 끊어질 때를 노렸다가 입을 열었다.
“두 분, 그 모든 일을 직접 겪었던 제가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시온 공자?”
“신성 프러센 왕국에서 어떤 판단을 했든, 누디아에서 정말 마족 추종자들이 일을 벌였든 간에, 여태 히스파냐에서 벌어진 일들은 마족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시온의 말에 눈살을 찌푸린 에라더 왕자가 몸을 돌린다.
“그게 무슨 말이지, 시온 공자?”
“누디아와의 전쟁은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지 못 해서이고, 왕성이 공격당한 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한 방심 때문이며, 왕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버젓이 노예시장이 운영되고 있던 것은 모두가 해이해졌기 때문입니다.
야만족들이 준동한 건, 북부의 귀족들이 말도 안 되는 짓들을 벌였던 건 우리가 그들을 은연중에 무시해서였습니다.”
사실이다, 전부 다 맞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시온은 국왕과 왕자, 왕녀, 자국의 수많은 귀족들, 그리고 타국의 사신 앞에서 왕국의 부족함을 논하는 꼴이었다.
“제법 흥미로운 의견이군.”
여태까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에드가 4세가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시온이 현재의 왕국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모양.
시온은 속으로 심호흡을 하며 앞으로 할 말들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조금이라고 삐끗하면 바로 왕실 모독죄로 엮일 수도 있었다.
“마족 추종자들이 정말 있다면 걷어내는 것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것으로 우리의 부족함으로 인해 일어난 일을 덮어버리려는 자세는 지양해야 합니다.
저는 많은 것을 보았고, 들었으며 직접 겪었습니다.
거기에서 느낀 것은, 우리는 아직도 부족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고 다시는 그런 일이 또 벌어지지 않도록 배우고 대처해야 할 겁니다.”
“시온 공자.
그 말은, 내가 마족 추종자들을 핑계로 왕국 내부에 생긴 일들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라는 들리는데.”
결국 시온이 자신의 편을 들지 않고 바네사의 의견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배알이 꼴린 것인지, 에라더 왕자가 살짝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에 시온은 천천히 고개를 내젓곤, ‘어찌 제가 그런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라는 느낌이 팍팍 들도록 표정과 행동 연기를 기가 막히게 수행해냈다.
“에라더 왕자님.
가까이에 있으면 무엇이든 확연히 보여서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자신의 눈을 믿고 사실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허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은 다릅니다.
보이지 않으니 들을 수밖에 없고, 들을 수밖에 없으니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별하기가 힘듭니다.
당장 여기 모인 귀족들에게는 왕자님의 모습이 마족들의 손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참된 분으로 보이겠지만, 먼 곳에서 왕자님을 바라볼 귀족들이나 백성들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좋아, 시발!
내가 생각해도 존나 멋있는 말이었어!
시온은 속으로 제 등을 두드리며 슬그머니 주변 반응을 살폈다.
일단 애초 자신에게 호의적인 눈빛을 보이던 바네사 왕녀와 리히텐 변경백, 그리고 꽤 많은 수의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일을 꾀하고 벌이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민심’을 최소한 반은 얻은 것이었다.
‘일단 내 편은 확실하게 넘어왔고.’
다음 시온은 눈치를 보며 어디에 붙어야 할지 고민하던 이들을 확인했다.
여전히 많은 수의 귀족들이 에라더 왕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지만, 반대로 생각하자면 그의 눈치를 살필 정도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끄응···.”
하다못해 에라더 왕자마저 시온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침음을 내뱉고 있었다.
더해서, 그의 표정 연기가 워낙 완벽해 여기서 뭐라고 더 토를 달았다가는 마치 ‘왕국의 충신이 충언을 함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쪼잔하고 능력 없고 의심만 많은 왕자’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덕분에 초조해진 쪽은, 신성 프러센 왕국의 특사 리만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왜···?’
그렇게 생각하다 말고 시온을 바라본 그는, 순간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저렇게 절절한 표정과 목소리를 내짓고서 말을 하는데, 거기서 뭐라고 하는 순간 바로 불충으로 잡혀 들어가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아, 안 된다!
설득 당하면 안 돼.
성전에 반드시 히스파냐도 참여해야 한단 말이다!’
리만 특사가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하던 순간.
갑자기 시종장이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오더니 곧 에드가 4세의 곁으로 다가가 뭔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흠.”
그리고 시종장의 말을 전부 전해들은 에드가 4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
싸늘하게 굳어서 당장이라도 서릿발 같은 고성을 토해낼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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