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64)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64화(164/439)
164―――――
돌아왔는데, 이건 뭔?
“신성 프러센에서 온 이는 들으라.”
에드가 4세가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리만 특사는 급히 고개를 숙이고 히스파냐의 지배자이자 눈앞의 이들이 어떤 논의를 하든 간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리만 특사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에라더 왕자와 바네사 왕녀를 응시했다.
“둘의 의견에 조금의 양보도 없고, 동시에 둘의 의견이 틀렸다고 볼 수도 없겠지.”
“부왕 전하.”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은 들으라.”
국왕의 말에 자리에 모인 전원이 고개를 숙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에드가 4세는 잠시 두 눈을 감고는 고민을 하다가 결심을 내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히스파냐는 저들이 요청하는 성전에 참전함을 이 자리에서 친히 밝히겠다.”
“전하!”
동시에 에드가 4세를 부르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한쪽은 자신들의 뜻대로 국왕이 결정을 내려주어서 반기는 모습으로.
다른 한쪽은 전혀 예상치 못 했다는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말이다.
‘되었다!’
리만 특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과 쾌재를 동시에 내질렀다.
아무래도 히스파냐의 국왕은 마족에 대한 위협과, 그에 대한 에라더 왕자의 의견에 조금 더 무게를 둔 모양이었다.
“바네사 왕녀.”
하지만 사람 말은, 원래 끝까지 전부 들어봐야 하는 법이었다.
“신성 프러센과 누디아를 도와 성전에 참전할 이들을 추려내는 건, 네게 일임하겠다.”
“전하?”
“더해서, 군을 이끌고 성전에 참전하여 나의 권한을 대리토록 하거라.”
성전에 참전한다고 해놓고 정작 지휘관은 성전에 반대하던 이를 앉혀놓는 국왕이었다.
그에 가장 먼저 반발한 건, 판을 다 짜놓고 정작 공을 세울 수 있는 자리를 놓치게 생겨 똥줄이 탄 에라더 왕자였다.
“부왕 전하!
전장은 가벼운 곳이 아닙니다.
하물며 마족들이 득실대는 땅에 어찌 왕녀를···.”
“왕자 역시 예전에 소규모의 전투에만 나섰을 뿐, 전쟁 자체를 이끈 적은 없지 않느냐.
하물며 마족과 대면한 적도 없고 말이다.”
“하, 하지만···.”
“이미 내 뜻은 확고하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마라.
아니면 혹시.”
순간 에드가 4세의 두 눈이 번쩍이며 에라더 왕자에게 쏟아진다.
“네가 히스파냐의 안위를 걱정하며 성전을 주장하던 데에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라도 있던 것이더냐?”
한 마디로 여태 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왕녀와 의견 충돌을 빚은 것이냐, 라는 소리.
왕국과 왕실을 위한 논의를 할 때는 언제고 국왕이 결정을 내리자 바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그 말과 무엇이 다르냐는 뜻이었다.
덕분에 에라더 왕자는 결코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는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낭패다.’
리만 특사는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완벽하게 당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성전에 불참 의견을 내놓으며 가장 강력히 반발하는 시온 클라우젠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보이던 왕녀가 이제는 성전에 참전할 군의 총지휘관이 되게 생겼다.
그리고 그녀 역시 현재 왕국의 상황을 설명하며 성전은 무리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었다.
그런 이가 총지휘관이 된다면, 그 군대가 어디 제대로 싸우기나 하겠는가?
‘이렇게 생색을 내겠다는 건가?’
성전에는 참전하겠지만, 미적지근한 행동으로 일관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리만 특사는 에드가 4세의 결정을 곱씹으며 이건 차라리 불참 의사를 밝히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가, 다들 의문이라는 뜻이 역력들 하군.”
에드가 4세는 대전에 흐르는 침묵을 여유롭게 음미하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병으로 인해 쇠해진 상태이지만, 그래도 이 히스파냐를 격동의 시기에 큰 문제없이 잘 이끈 군주답게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은 무뎌지지 않은 상태였다.
“기쁘게도 왕자, 왕녀 모두가 이 히스파냐를 위해 비록 의견은 다르나 나라를 걱정하는 뜻만큼은 같더구나.
하여 둘 모두가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할 기회를 주고, 그 마음을 증명할 때를 주는 것이니 허투루 행동하지 말 것을 밝히는 바다.”
“···전하?”
그 말에 에라더 왕자가 의문을 표한다.
분명 에드가 4세는 둘 모두에게 ‘기회’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는 건 에라더 왕자도 어떤 임무를 부여받는다는 것과 같은 소리 아닌가.
“신성 프러센에서 온 이는 들으라.”
“에, 예.
전하.”
“히스파냐는 그대들이 외치는 성전에 참전하겠다.
다만 현재 나라의 상황이 그대가 말한 대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지라 그대들이 원하는 대규모의 원정군을 파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대가 고국으로 돌아가서 잘 전달해주었으면 하는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혹 우리의 태도에 대해 걱정한다면, 그럴 필요 없을 것이다.”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하지는 않을 것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는 뜻.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리만 특사가 고개만 숙이자 에드가 4세는 이만하면 되었다는 듯 두 눈을 감고서 왕좌의 등받이 부분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상당히 피곤하다는 듯한 눈치에 시종장이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전하의 심신이 피로하시어 오늘 자리는 이만 파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모여 전하의 뜻을 마저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국왕의 뜻이 그러하다는데 여기서 더 입을 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라더 왕자도, 바네사 왕녀도, 리만 특사도 물러서는 모습을 보며 시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저 국왕이 무슨 생각으로 성전에 참전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정작 총지휘관은 성전에 강력한 참전 의지를 밝힌 에라더 왕자가 아니라 바네사 왕녀를 앉힌 것인지 의문이었다.
“아, 잠깐.
한 가지 잊고 있던 것이 있었군.”
갑자기 눈을 뜨더니 슬쩍 몸을 바로 하는 에드가 4세.
그리고는 리만 특사를 뚫어져라 응시하기 시작한다.
“···.”
“···국왕 전하?”
분명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눈치로 보이는데, 그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다는 리만 특사.
그에 에드가 4세는 친절하게 그에게 말을 해주었다.
“뭐하는가, 신성 프러센의 리만 특사.”
“예?”
“바네사 왕녀의 말을 듣지 않았던가.
시온 클라우젠 공자에게 사과하라고 말일세.”
“저, 전하?”
“뭐하고 있는가.
어서 사과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에드가 4세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리만 특사가 잠시 망설이자 그는 슬쩍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는 국왕의 대리자로까지 임명되어 북부에 다녀오기도 했다.
막 임무를 마치고서 공식으로 그 대리자 이행권을 내게 반납하지 않은 이에게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것은, 곧 히스파냐와 왕실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와, 이걸 이렇게 뒤끝을 보여 주시네.
시온은 저도 모르게 박수가 터져 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아마 에드가 4세도 심히 리만 특사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다만 분위기가 격앙된 와중에 자신이 나서면 눈치를 보던 귀족들이 바로 급물살을 타서 신성 프러센의 사람을 물어뜯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외교적 문제로도 심화될 수 있기에 적절히 분위기가 풀어질 때를 노려 나선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히스파냐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고생한 인물이고, 그렇기에 왕국에서도 영웅이라 불리는 이인데, 그런 말을 하면 우리 히스파냐가 상당히 난감해지지 않겠는가?”
말 속에 싸늘하게 빛나는 비수가 들어있었다.
혓바닥을 놀릴 장소와 그러지 말아야 할 장소가 있다는 경고.
여기는 마족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떨며 성전을 주장해야 하는 신성 프러센이 아니라 히스파냐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뭣하면 그냥 외교적 결례를 범한 죄로 모가지를 쳐서 신성 프러센으로 보내는 수가 있다.
라는 뜻이구나.
이야, 역시 우리 국왕 전하.
카리스마 있으시네.’
시온은 역시 바네사 왕녀 같은 여인의 아버지답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어떻게 저런 강단 있는 사람 밑에 에라더 왕자 같은 쓰레기가 먼저 나온 것인지도 궁금해졌고 말이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
그리고 협박 아닌 협박을 받은 리만 특사는 그에 굴복하고 수긍했다.
시온에게 다가온 그는 어지간해서는 잘 숙이지 않는 허리까지 굽히며 사과를 해왔다.
“아까는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부디 히스파냐의 이들을 대하던 너그러운 마음씨로 저 역시 용서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시온은 허리를 숙이고 들어온 리만 특사를 바라보다가 슬쩍 에드가 4세를 확인했다.
그러자 에드가 4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놀려먹어도 괜찮다는, 바네사 왕녀와 마찬가지로 리만 특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사과를 받아들이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리만 특사?
당신은 신성 프러센의 사람이지 않습니까?”
“예?”
“히스파냐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 이 소리입니다.”
속으로 낄낄거리며 시온은 반은 장난, 그리고 반은 진담으로 그렇게 답했다.
덕분에 멍해진 기색이 역력한 리만 특사는, 지금 이 상황이 진짜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장난으로 하는 것인가 도통 구별을 하지 못 하는 중이었다.
“하하하.
시온 클라우젠 공자가 은근히 그대의 말에 앙심을 품고 있던 모양이군.
그만 하고 리만 특사의 사과를 받아주는 건 어떤가, 시온 클라우젠 공자.”
비록 가벼운 분위기의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자그마치 히스파냐의 국왕인 에드가 4세가 시온에게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일개 귀족, 심지어 아직 정식으로 작위도 받지 않은 이에게 말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리에 모인 히스파냐의 귀족들은 에드가 4세가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남자를 확실히 대우하고, 또 챙기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겠습니다, 국왕 전하.
허면 리만 특사.
아까 있었던 말들은 그저 대륙의 안위를 걱정하는 신성 프러센의 사람으로서 한 실수라고 여겨두겠습니다.”
“그,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만 특사의 사과가 끝나자 비로소 자리가 파해지는 분위기였다.
귀족들은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대전을 벗어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마 시온 클라우젠와 왕실과의 관계, 그리고 성전에 참전하게 될 인원에 대한 문제와 에라더 왕자, 바네사 왕녀의 이후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그 주제일 것이다.
“고생 많았구나, 시온.”
그리고 시온은, 비로소 리히텐 변경백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야만 부족들과 회담을 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북부의 귀족들까지 소란을 피워 그걸 정리하고 올 줄이야.
이거, 네가 클라우젠에만 처박혀 있을 인재가 아니라는 소리가 내게까지 들릴 정도더구나.”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데 여실히 느꼈습니다.
저는 그냥 되도록 클라우젠에 처박혀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입니다.”
시온의 넉살에 리히텐 변경백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국왕이나 왕녀에게도 자세한 보고는 올리지 못 했기에 리히텐 변경백도 시온이 쟌 테무친과 혼인 동맹을 이유로 평화 유지에 동의했다는 부분은 알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장으로 돌아가서 차차 이야기하기로 한 시온이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시종장이 슬쩍 곁으로 다가와서는 시온을 부른다.
그에 시온이 무슨 일이냐는 뜻으로 그를 바라보니 시종장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귀족들이 전부 대전에서 물러날 때까지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국왕 전하께서 긴히 하실 이야기가 있으시답니다.”
“···.”
귀족들 다 내보내고 남으라는 건, 역시나 아까 전 시종장이 귓가에 속삭였던 어떤 이야기에 대한 것과 연관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사실 시온은 대강이나마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중이었다.
에드가 4세의 표정이 싸하게 굳은 것과, 그가 성전을 반대하는 바네사 왕녀를 원정군의 총지휘관으로 삼고 찬성하는 에라더 왕자에게는 다른 일을 시키려는 것인지 말이다.
‘딱 이때에 남쪽이 슬슬 소란스러워졌지.’
내부의 안정을 도모하자는 자에게는 외부의 일을 맡기고.
외부의 정리를 주장하는 이에게는 내부의 안정을 맡긴다.
‘진짜 무섭네, 무서워.
이래서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사람이 적이 되는 순간 진짜 최악이라는 말이 맞다니까?’
지금 에드가 4세는 제 아들, 딸에게 서로의 능력을 증명하고, 동시에 상대의 약점을 쥘 기회를 던져준 것이었다.
자신들이 그저 외치, 내치만 주장하며 뛰어난 것이 아니라, 정 반대의 방향에도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차기 국왕의 자리에 도전할 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동시에 그 부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서로의 실수를 발견하여 합리적으로 물어뜯고 상처를 내어 계승 싸움에서 함부로 덤벼들지 못 하게 하라는.
아버지이지만 그 전에 한 나라의 지배자이자 국왕인 남자의 전언인 것이다.
‘갓직히 바네사 왕녀는 크게 걱정 안 해도 되는, 믿고 쓰는 왕재(王才)지.
소설에서는 김유현 놈이 하도 마음을 뒤흔들어서 사람을 반병신으로 만든 탓이 있었지만 가진 능력이나 재주는 확실히 뛰어났어.
국왕으로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도 에라더 왕자보다 더 나으면 났지, 덜하지는 않았고.
비록 성전에 반대하기는 했지만 일단 나라의 일을 맡게 되었으니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싸울 거고, 승리를 거두려고 할 거야.
지금 문제는···.’
문제는, 에라더 왕자였다.
이렇게 되면 남쪽의 문제를 해결하게 될 인사는 에라더 왕자가 될 것이었다.
여기서 시온은 시온대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바네사처럼 일을 잘 풀어버린다고 생각하니 바네사의 후계자 입지가 좁아질까 걱정이 되었고, 그렇다고 망해버리라고 저주하자니 남쪽이 흔들리면 그대로 히스파냐의 해상 운송로가 통째로 망하는 수준에 가깝다.
망하라고 빌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잘 되라고 빌기도 애매한 상황.
아무래도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시온이었다.
‘성전에 참전하느냐, 아니면 남쪽으로 내려가느냐.
하··· 시발.
도대체 언제쯤 쉴 수 있냐고.
진짜 이러다가 비둘기 새끼들이 똥폭탄을 퍼붓기 전까지도 뼈 빠지게 일만 하는 거 아닌가?’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갑자기 노래의 한 가사가 떠오르는 시온이었다.
―――――――작품 후기―――――――
4 !
궁극기 시전!
그래도 트리플 킬은 가능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