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65)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65화(165/439)
165―――――
돌아왔는데, 이건 뭔?
대전 안에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전부 빠져나가고, 남은 인물은 넷이었다.
하나는 당연히 국왕 에드가 4세.
둘은 각각 에라더 왕자와 바네사 왕녀, 마지막으로 시온이 약간은 난감한 기색으로 살짝 거기를 두어서 서있는 중이었다.
“둘 모두가 상당히 불만이 많은 표정이구나.”
에드가 4세의 말에 에라더 왕자와 바네사 왕녀가 흠칫 몸을 떨곤 애써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세를 바로하고 얼굴에 담긴 감정을 전부 지워낸다.
물론 자신들의 속마음은 전부 들킨 이후였지만 말이다.
“다 안다.
하나는 원하지 않는 전장에 나가야 하고, 다른 하나는 원하던 전장에 나갈 수 없으니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둘의 위치를 바꾸고 싶겠지.
그렇지 않느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왕 전하.”
“저희는 다만 전하의 뜻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그래도 둘 다 말은 상당히 정치적으로 잘들 내뱉는다.
아주 바람직한 모습에 시온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려다가 바로 그럴 만한 장소가 아님을 깨닫고는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남쪽에서 급보가 전해졌다.”
역시 예상대로, 정확히 말하자면 소설 속 흐름대로였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시온은 조금도 모르는 눈치로 살짝 놀란 기운까지 흘리며 에드가 4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해보였다.
“몇 년 동안 잠잠하던 해적들이 다시 나타났다.
벌써 교역선 중 상당수가 피해를 입고 그 중 몇몇은 아예 나포까지 되었다고 하더구나.”
에드가 4세의 말에 에라더 왕자와 바네사 왕녀의 표정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왕국의 남부에는 여러 항구 도시들이 자리하고 있는, 해상 교역의 중심지인 곳이다.
누디아와도 어느 정도 교역을 하기는 하지만, 역시나 주된 대상은 그 너머의 신성 프러센.
육로는 너무 멀고, 또 불안한 부분이 많기에 자연스레 뱃길이 발달한 것이었다.
‘그리고 부가 흐르면 자연스레 그걸 빼앗으려고 하는 도둑놈들도 생기기 마련.’
해상 교역을 하는 무역선들을 노리고 해적들이 등장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남쪽 바다에는 빈 섬이 많았기에 히스파냐나 누디아, 심지어 신성 프러센의 사람들까지 그곳을 기지로 삼아 해적질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냥 분탕질 정도에 지나지 않던 해적질.
하지만 나쁜 짓도 하면 는다고, 바다와 뱃일에 익숙해진 해적들은 점점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활동을 해나갔다.
왕국이 자랑하는 마법사나 기사들은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대부분이 육지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던 이들이다.
호수 같이 잔잔한 곳이라면 모를까, 바다는 그 자체로 물의 흐름이 엄청난 곳이다.
당장 멀미로 인해 나가떨어지기 일쑤였으니 히스파냐는 해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역시 숙련된 해군을 양성해야만 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해적들의 본거지를 공격하는 데에 성공해서 더는 해적질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는데, 역시나 그 뾰족귀 놈들이 거기에까지 마수를 뻗쳤지.’
그 천하의 김유현마저 고전한 때가 몇 번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남쪽의 해적을 토벌하는 일이었다.
김유현도 배 위에 올라 그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무척이나 힘들어했고, 그에 비해 해적들은 너무나도 익숙하게 바다를 가르며 해상 운송로를 털고 다녔다.
겨우 해적들을 소탕했을 때에는 이미 두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난 상황.
그나마 김유현 때에는 아직 신성 프러센이 움직이기 전이었다지만 지금은 다르다.
당장 성전이 눈앞으로 다가왔고, 거기에 시온이 줄을 대려고 하던 바네사 왕녀가 참전한다.
‘그렇다면 남부를 버려야 하나?’
그건 안 될 말이다.
누디아와의 사이가 항상 껄끄러운 히스파냐는 육로를 이용한 교역보다 배를 이용하여 교역을 하는 방법으로 전환한지 오래다.
그야말로 히스파냐의 목줄이라고 봐도 무방할 곳이기에 누디아마저 건드리길 꺼려했다.
저기를 건드리면 휴전이고 평화고 회담이고 미래고 나발이고, 너 죽고 나 살기 전까지 길고 긴 전쟁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남부를 버리는 순간 그야말로 난장판의 시작이다.
기껏 혼란 잠재우겠다고 뼈 빠지게 구르고 있는 시온의 여태 행보를 정면으로 말아먹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부왕 전하.”
“에라더 왕자.
네가 남부를 맡거라.
바네사 왕녀가 원정군을 이끌고 성전을 치르는 동안 너는 왕국을 위협하는 또 다른 놈들을 뿌리 뽑으라는 소리다.”
“···바네사 왕녀에게 맡기셔도 될 부분 아니었습니까?”
미약하게나마 토를 다는 에라더 왕자였다.
사실 억지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이, 성전은 에라더 왕자에게 맡기고 해적 소탕은 바네사 왕녀에게 맡겼다면 아무 문제없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에 에드가 4세는 미소를 짓고는 에라더 왕자에게 꽤나 달콤한 제안을 걸었다.
“원정군을 조직하는 데에만 못 해도 2주는 걸린다.
그리고 필멸의 땅은 히스파냐에서 무척이나 먼 곳이니 또 2주는 가뿐하게 흐르겠지.
그에 더해서 이런 저런 사안까지 생각하면 한 달은 물론이고 두 달도 훌쩍 넘길 수 있다.
바네사 왕녀가 마족들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 말씀은···.”
“그 안에 에라더 왕자, 네가 일을 끝내고 당당히 왕성으로 복귀한다면 네게도 임무를 부여해 원정군의 후발대로 뒤따르도록 조치해주마.”
에드가 4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시온은 에라더 왕자가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실제로 에라더 왕자는 눈동자를 바쁘게 굴리며 생각에 잠긴 상황이었다.
자신의 아버지, 히스파냐의 국왕인 에드가 4세의 말대로라면 자신에게는 하나만 세워도 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공훈을 두 개나 쥘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남부의 해로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두 말할 것도 없는 부분이고, 마족들을 악으로 취급하는 이 세상에서 성전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도 모른다고 하면 바보일 정도였다.
“바네사 왕녀.”
“네, 부왕 전하.”
“이제는 너도 알 것이다.
내가 왜 널 성전의 총지휘관으로 내세웠는지.”
그 말에 바네사 왕녀도, 그리고 시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가 4세는 제 딸에게 경고를 함과 동시에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괜히 늦장을 부려 에라더 왕자에게 기회를 주지 말고 적절한 공을 세우던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아예 성전에서 히스파냐의 원정군을 이탈시키던가.
‘국왕도 알고 있는 거야.
에라더 왕자라고 해서 두 달도 안 되는 기간 내에 일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바네사를 보내 성전에서 공을 세우고 차기 국왕의 자리에 더 가까워지라는 소리인 거다!’
정말이지, 정치적 싸움이 맞물리니 피를 나눈 형제자매고 뭐고 다 적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심지어 그 아비인 사람조차 경쟁을 유도하며 하나는 확실히 살아남아 이 나라의 지배자가 되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둘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맡게 되었음은 두 말 할 것도 없지.
해서 특별히 너희가 조금이라도 더 세간의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게 말한 에드가 4세는, 이럴 목적으로 시온을 남겨두었다는 듯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
그대는 머리가 비상하니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겠지.”
너무 잘 이해해서 문제다.
이렇게 중요하면서도, 왕실 내부의 갈등 문제를 자신에게 대놓고 보여주었다.
이건 무슨 뜻이냐?
여기에서 정하라는 것이다.
바네사 왕녀를 도와 성전에 참전할지, 아니면 에라더 왕자와 함께 남부의 일을 정리하는 데에 집중할지 말이다.
‘원래라면 망설임 하나 없이 바네사와 함께 성전인지 뭔지에 따라가서 신성 프러센 놈들을 실컷 방해해야 하는데···.’
여기서 너무 대놓고 바네사를 지지하면, 바로 직전까지 쌓아온 ‘히스파냐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귀족’ 의 모습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게 된다.
당장 성전에 대해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던 이가 바네사 왕녀의 뒤를 따른다고 하면,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전쟁영웅이, 더 나아가 클라우젠 변경백령이 공식적으로 바네사 왕녀를 지지래 왕위 계승권 싸움에 뛰어들겠다는 뜻으로 내비칠 수도 있음이었다.
‘그렇다고 에라더 왕자를 따라 남부의 일을 정리하자고 하니···.’
자신을 위해 왕녀로서의 자존심도 버리고 화를 내준 바네사에게 뭔가 배신을 하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그에 더해서, 이미 자신을 반은 정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에라더 왕자가 무슨 딴지를 걸며 귀찮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그대에게는 미안한 소리이나, 원래 영웅이란 쉬지 못 하는 법 아니겠는가.”
어째 스무 살 밖에 안 된 애송이를 영웅으로 만들어주나 싶었다.
이렇게 개처럼 굴리기 위한 합법적인 이유가 필요했던 것이더냐!
시발, 그렇다고 에드가 4세가 이용만 해먹고 버리는 남자는 아니어서 ‘뒤통수칠까?’ 라는 생각은 바로 버리는 시온이었다.
“그대가 보기에는 어떤가.
성전과 남부 해적.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 사안이라고 보나?”
단순히 묻기만 하는 게 아니다.
저 대답 여부에 따라 이후 자신의 행보가 정해질 확률이 매우 높다.
‘···사실은 내가 내 고생길 정해서 나가는 거라고 봐야 하겠지만.’
물론 시온이 거부를 할 수 있는 선택권도 있긴 하다.
욕 좀 먹어도 되니 그냥 집 가서 두 발 쭉 뻗고 잠 좀 자고 싶다고 해도, 여태 해온 일들이 있으니 공식적으로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못 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남부의 안정도, 그리고 성전도 중요한 문제이다.
어느 한 곳에서 일이 틀어지면 바로 혼란 가중, 그러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방에서 뾰족귀 놈들과 천족 추종자들이 일을 벌일 것이고 성전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왕국의 날카로움은 극에 달해서 의심 가는 이들은 이종족이고, 누이다고 가리지 않고 창칼을 휘두를 것이다.
‘에휴.’
그래, 내 팔자가 원래 이럴 수밖에 없지.
애초에 살아남으라고 던져진 세상, 아포칼립스가 벌어지기 1년 전의 상황이다.
여유는 지랄이고, 어디 시골에 처박혀서 귀농 생활은 먼 나라 이야기.
소설이 언제 어떻게 본 내용대로 흘러갈지 모르니 일단 천족 추종자 놈들이 벌이는 짓은 전부 다 막아내고, 망치고, 말 그대로 싸그리 털어서 아예 먼지 한 톨 안 나오도록 만드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여기에 계신 세 분, 국왕 전하나 에라더 왕자님, 바네사 왕녀님보다 가진 재주가 없음에도 전하께서 여쭈시니 대답토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자신의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에드가 4세도 그걸 알고 이렇게 물어보는 거다.
시온은 괜히 위축되거나 미안한 기색은 보이지 않기로 했다.
‘이건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곳이 아니라, 거대한 왕국의 한 가운데, 말 그대로 정치판이다.
잠깐의 신의를 위해 둘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갈 수는 없는 노릇.
적절히 타협하고, 그 안에서 해결점을 찾아서 서로가 윈윈 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시온은 잠시 바네사 왕녀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남부가 흔들리면 기껏 안정이 된 북부도 다시 흔들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해서 저는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남쪽의 해적 소탕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요도를 묻고 있는 질문이지만, 결국 ‘누구를 돕겠냐.’ 는 뜻이 깔려있음을 에라더 왕자도, 바네사 왕녀도 전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에라더 왕자는 ‘흠?’ 하고 눈썹을 꿈틀거렸고, 바네사 왕녀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시온을 응시했다.
“그렇게 대답한다는 건, 그대는 이미 다음 행선지로 어디를 생각하고 있는지 확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내 말이 맞는가?”
“네, 국왕 전하.
저는 가능하다면 에라더 왕자님을 보좌하여 해적 소탕에 주를 두고 싶습니다.”
그에 에라더 왕자는 시온의 뜻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것이, 여태 시온은 바네사 왕녀와 가까운 듯 한 모습을 보여 이미 정치적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했다.
헌데 갑작스레 시온이 자신을 도와 해적 소탕에 나서겠다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를 하거나 일이 더 번지면 당연히 시온 자신의 정치적 입지도 확 줄어드니 무조건 자신을 보좌하여 임무를 성공해야만 한다.
자신이 해적을 소탕하고 빠르게 왕성으로 복귀하여 원정군의 후발대로 출발, 본대에 합류하여 지휘권까지 양도받게 된다면 바네사 왕녀는 그야말로 얻는 것 하나 없이 들러리만 하다가 마는 셈이었다.
‘성전에 반대하던 자신이 그 원정군의 일원으로 참전할 수는 없다는 건가?’
에라더 왕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타국의 특사와 언쟁까지 벌일 정도로 반대하던 이가 바네사 왕녀가 지휘관으로 나선다고 하니 덜컥 따라붙으면 분명 불편한 시선,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소문에 휩싸일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말이다.
‘···이걸 반겨야 할지, 아니면 경계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하는 에라더 왕자와는 달리.
시온은 이미 모든 계획을 생각하고 시뮬레이션까지 돌린 이후였다.
왜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있는지.
이제부터 에라더 왕자에게 속성 강의로 알려줄 생각이었다.
‘난 떠오르고, 넌 가라앉는 거지.’
처음 일을 벌일 때에는 자신감 있게, 주변인들의 의견도 잘 수용하는 에라더 왕자.
하지만 그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자꾸 책임을 회피하려고 들고, 믿어야 하는 이를 믿지 못 하고 자꾸 의심하며 무엇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치 못 했다.
왕자 때는 드러나지 않던 부분이지만, 차기 국왕이라는 자리에 가까워질수록 드러나는 치명적인 결점이었다.
‘살려는 드릴게.
대신 목숨 빼고 다 내려두고 가쇼.’
에라더 왕자가 무슨 죄가 있어 이러냐고?
별 거 없다.
그냥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을 확률이 매우 높은 인물이니까.
치울 수 있을 때 빨리 치워내야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욕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오늘 쳐내야 할 후환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그러다가 피똥 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