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75)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75화(175/439)
175―――――
마지막 선물이란다
며칠간의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에라더 왕자는 다시금 배에 올랐다.
해적 소탕도 이유가 있었지만, 전처럼 해적들의 근거지를 찾아 그 배들을 전부 지워내는 것이 최고의 상황이었기에 계속해서 왕국의 함선들이 움직여야만 했다.
다만 일전에 있었던 일로 원래 그가 승선하던 함선의 인원들이 다수 비었던 터라 에라더 왕자는 다른 배로 잠시 기함을 옮기게 되었다.
“크기도 비슷하고 건조된 시기도 조금 빠를 뿐입니다.
왕자님께서는 아무런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슬쩍 브레멘 백작이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나 일전에 이용하던 배를 잠시 운용하지 못 하는 것에 왕자가 불편한 느낌을 가질까봐 말한 모양이었다.
그에 에라더 왕자는 전혀 그런 것이 없다는 뜻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브레멘 백작님.
내가 한 두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니고 배가 잠시 바뀌었다고 긴장이라도 하지는 않는답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한 말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길.”
브레멘 백작의 말에 에라더 왕자는 당연한 것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때는 어느 누구도, 심지어 에라더 왕자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사람이란 것이 상황이 악화되면 아주 조그마한 부분에서도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상당히 속이 좁은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에라더 왕자님.”
이번에도 뒤에 남아 사르데나 항구를 지키게 될 시온과 헤먼이 인사를 하기 위해 나왔다.
요즘 들어 영 상황이 좋지 않았는지 더는 시온 클라우젠을 데리고서 나가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도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그 부분에 에라더 왕자의 기분이 좋아진 것은 당연한 부분.
“헤먼 공자, 시온 공자.”
또 은근히 헤먼 이시크를 앞에 두고, 시온을 뒤에 두는 에라더 왕자.
그에 헤먼은 이곳이 남부라고 하여 자신을 먼저 부르는 줄 알고 있었지만, 시온은 진작부터 에라더 왕자의 속뜻을 훤히 읽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사람이란 게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쪼잔해지는 법이니까.
뭐, 별 말 안 하련다.
내 입만 아플 텐데.
대신 나중에 두고 보자고.
왕자님.’
시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은근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왕자님께서 남쪽에 내려온 이후 해적들이 계속 소탕되고 있어서인지 백성들이 에라더 왕자님을 칭송하는 말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거 반가운 일이군.”
“예.
아마 이전보다도 훨씬 더 빨리 해적들을 정리하고 다시금 바다에 평화를 가져오시고, 남쪽에 부유함을 되찾아주실 거라고 말입니다.”
“흐음···.”
“저도 그들처럼 왕자님이 계속해서 승전보를 전해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기분 좋았지, 등신아?
어디 한 번 겪어보렴.
성공한 자가 가지는 ‘부담감’을.
시온은 낄낄거리며 알게 모르게 에라더 왕자에게 그 부담감을 아주 팍팍 심어두었다.
잘 나가는 스타도 한 방에 무너트리는 것이 바로 그 기대에서 오는 압박감, 스스로를 옥죄며 이런저런 걱정에 빠지게 만드는 불안감임을 시온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무너진 이들이 주변을 한 번 둘러보면 보였고, 그것을 버텨낸 이들만이 진정한 의미의 ‘스타’, 이세계에서는 ‘영웅’ 이라고 불리는 자가 될 수 있다.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멘탈이 튼튼하지 못 하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써먹지도 못 하는 피지컬을 누가 좋다고 받들어주겠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일단 멘탈이 좋아야 흔들리지 않는 법이고, 흔들리지 않아야 숨기고 있던 자신의 비장의 무기를 쓸 수 있는 법이다.
‘원하던 대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으니 어디 한 번 버텨보세요.’ 라는 시온의 뜻을 에라더 왕자는 아는지 모르는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배 위로 걸음을 옮겼다.
“휴우.”
점차 항구에서 멀어져 바다로 향하는 함선들을 바라보며 헤먼이 한숨을 내뱉는다.
그에 시온이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는 어깨를 으쓱이곤 입을 열었다.
“조금은 너무 하다 싶어서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헤먼 공자?”
“저야 후계자 자리를 쥐고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딱히 제대로 이룬 것이 없습니다.
해봤자 배 좀 몰아본 것이 전부이지요.
한데 시온 공자는 다르지 않습니까?
그동안 세운 공이 많은데 에라더 왕자님이 시온 공자를 따로 챙기시는 모습이 별로 없어서 말입니다.”
“내가 바네사 왕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니 달리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나랏일에는 내 편이고 네 편이고 없다고 들었습니다.
남쪽 해적 소탕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설마 여기서 까지 그런 이유로···.”
“오히려 내부의 적은 기회가 왔을 때 쳐내야 하는 법입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에라더 왕자님은 그 분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인지하고 행하고 있는 것뿐이죠.”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시온의 대답.
그에 헤먼은 ‘진심입니까?’ 라고 시온을 걱정스레 쳐다본다.
“오히려 나는 에라더 왕자님이 전보다도 더 걱정되는데요.”
“···예?
시온 공자, 그게 무슨 말인지요?”
“쏟아지는 기대는 부담을 부르고, 더해지는 열망은 압박감을 느끼게 하죠.
그 어떤 적을 두고서도 긴장하지 않는 자도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승리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긴장한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압니까?”
헤먼은 잠시 생각하다가 시온이 원하는 대답을 말할 수는 없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뒤에 서서 기대한다고 외치던 자들이 갑자기 언제 돌변해서 자신을 물어뜯을지 모르는 법이거든요.”
―
바람도 적당하고, 파도도 거칠지 않다.
이렇게 항해하기 좋을 수가 있는 날씨가 있을 수 있을까, 라고 말하며 배에 오른 이들이 계속해서 에라더 왕자를 칭송한다.
모두가 그 덕분이라고, 해적들을 계속해서 공격해 소탕하는 것도 그렇고 항구가 공격 당했음에도 큰 피해 없이 막아낸 것도, 지금처럼 항해가 아주 순탄한 것도 말이다.
“왕자님.
이번 해적 소탕도 아주 훌륭하게 진행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그런가.”
배가 바뀌며 선장도 바뀌었지만, 그 역시 이시크 백작가와 연이 닿아있던 남자였기에 에라더 왕자에게 지극히 호의적인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 뿐인가?
근처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항해 하고 있을 다른 함선들도 아무 문제없이 순항중이라는 서신을 보내왔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너무나도 예쁘게 그려진 그림처럼.
티 하나 없이 깔끔하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벽하다고 느끼며 웃음을 짓던 에라더 왕자였다.
하지만 오늘은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뭔가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잘못되었냐고 묻느냐면, 그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애초에 잘못된 건 하나도 없으니까.
이건 그냥 단순한 불안감이다.
‘···그 뿐이어야 할 터인데, 도대체 뭐가 이리 답답한 거냔 말이다.’
모든 일이 너무 안 풀려도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만, 역으로 너무 무섭게 잘 풀려도 마음이 편치 않은 법이었다.
에라더 왕자가 원하던 대로 자신의 이름은 점점 높아지고, 시온 클라우젠의 거품은 빠진다.
남부에서는 에라더 왕자를 지지한다는 기색을 말로만 하지 않을 뿐, 온 몸으로 보이고 있다.
그라면 분명 또 다시 나타난 해적들을 전보다도 훨씬 빠르게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스무 살에 엄청난 일들을 이루었으니 히스파냐의 왕자이자 차기 국왕인 에라더 왕자는 분명 그보다 더 뛰어날 것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남부로 내려온 이후 시온은 영 눈에 들어오는 활약이 없었고, 모든 공은 에라더 왕자가 세웠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니 그런 기대는 당연한 것이었다.
“왕자님!
수평선 끝에 해적선이 발견되었답니다.
이대로 가면 딱 교역로라고 하니 빠르게 뒤를 잡아서 놈들이 교역선을 덮치기 전에 잡는 것이 낫겠습니다.”
“으음?
아아··· 그러는 편이 좋겠···지?”
“그렇지요!
바로 배의 돛을 펴고 최대한 속도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불안하다, 도대체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자꾸만 불안하다.
하지만 에라더 왕자의 속마음과는 달리 또 다시 왕국의 해군은 해적선 하나를 붙잡고서 함상 전투를 치렀고 승리를 거두었다.
이번에는 항복하지 않고 발악하는 이들이 워낙 많았기에, 선장은 에라더 왕자의 뜻을 밝히며 그들 전부를 수장시켜버렸다.
“···.”
몇 번의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푸르다 못 해 시커먼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에라더 왕자는 그동안 잘 참아오던 뱃멀미가 갑자기 확 느껴지는 듯 했다.
‘도대체 왜 이러지?
뭐가 문제인 거지?’
사실 말하자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항해 도중에 사건사고가 일어나지도 않았고, 전투에서 패배하지도 않았다.
선장도, 배도, 그리고 선원들도 모두가 지극히 정상이었다.
한 번 시작된 불안감, 점차 불어나며 통째로 심장을 휩쓸고 지나가는 압박감에 정신줄을 놓친 에라더 왕자만 빼고 말이다.
“왕자님!”
선장의 급한 목소리에 에라더 왕자가 긴장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본다.
혹시나 뭐가 잘못되었나?
함정에 걸린 건 아닐까?
여태 일이 잘 풀렸으니 슬슬 난관에 한 번 부딪칠 때가 되었으니 그 때가 지금인 걸까?
“다른 함선에서 표시가 떠올랐습니다.”
“표시?”
“해적들이 사용하던 보통의 배와는 달리, 히스파냐 해군의 함선마냥 크기도 있고 속도도 빠르며 전투 인원도 배는 태울 수 있는 함선이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요즘 들어서 가장 많은 교역선을 약탈하고, 가장 악랄한 방식으로 히스파냐의 백성들을 해하던 해적들입니다!”
“배가 더 좋다는 말, 인원이 더 많다는 말은 이전과는 전투의 양상이 다를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저희 배 뿐만이 아니라 근처의 해군 함선들도 곧 모여들 겁니다.
그들을 처리한다면 보다 더 빠르게 해적들이 사라질 겁니다.”
여태 미끼가 되어 해적들을 끌어당기던 자신 앞에, 역으로 더 큰 미끼가 나타났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약탈을 하던 해적선의 등장.그들을 붙잡아 처리한다면 분명 교역로가 훨씬 더 빠르게 안정될 것이다.
“놈들이 항로를 바꾸어 저희 근처로 향할 것 같답니다.
에라더 왕자님, 어서 명령을 내려주시길.
해적들을 소탕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그렇군, 그래.
그러면···.”
한 번 불어난 걱정은 줄어들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에라더 왕자는 초조한 기색을 애써 숨기려고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이러다가 선장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는 입을 열었다.
“선장, 그대가 판단하라.”
“제가 말입니까?”
“그래.
해적들을 잡으러 간다면 참 좋겠다만 역시나 바다 위에서의 상황은 그대가 더 잘 아니 이번에는 그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군.”
“저야 다른 함선들을 지원해 놈들을 추격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만···.”
“그러면 그렇게 해보도록.”
모호한 대답이었다.
명령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하라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인지.
선장 역시 에라더 왕자의 변화를 눈치 챈 듯 했지만 일단 눈앞에 닥친 문제 해결 및 결론이 중요했기에 고개를 숙이고는 선원들에게 또 한 번 해적을 잡으러 간다고 외쳤다.
선원들은 어차피 또 그저 그런 해적들을 해치우고 공을 세우고 명예를 얻는다는 생각에 들떠서는 자심감에 가득 찬 환호성을 내질렀다.
마치 남부에 도착하여 주먹을 쥐며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다짐하던 에라더 왕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곧 그들은 뭔가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커억!”
“배를 빼앗아라!
갑판부터 정리해!”
여태 해적들을 상대로 항상 우위를 점하던 히스나퍄의 해군이 순식간에 밀려났다.
적의 갑판 위로 뛰어오르기는커녕 아군 함선으로 날아든 적들을 상대로 고전 중이었다.
숙련된 전투원들을 상대로도 해적들이 밀려나지 않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증 큰 이유는 그 중심에서 사나운 칼질로 전투원이고 선원이고 살해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캡틴!
저기!”
한 해적의 말에 캡틴이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여전히 배 위가 익숙하지 않아 살짝 불안한 자세를 취하고는 있지만, 그 날카로운 기세만큼은 숨기지 않고 있는 왕실 기사들이 여럿이나 자리하고 있었다.
몸에 두르고 있는 무장은 원래 그들의 것과 비교하자면 볼품이 없을지 몰라도, 검 하나 만큼은 서슬 퍼렇게 번쩍였다.
“이것들이 미쳤다고 배마다 저런 놈들을 채우고 다니지는 않을 테고.
설마?”
근래 들어서 히스파냐의 왕자가 해적들을 잡는다고 바다를 돌아다닌다 했는데 바로 그 귀하신 분이 이번에는 자신의 목을 노렸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남자는 킥, 하고 짧은 웃음을 내뱉더니 바로 몸을 돌렸다.
“뭐하고 있냐, 이 멍청이들아!”
“예?”
“어서 불을 던져.
돛이고 갑판이고 일단 다 태우란 말이다!”
“캡틴?
이 배를 그냥 내어준다는 겁니까?”
“히스파냐의 왕자가 있는 배다.
곧 이 근처로 왕국의 함선들이 새카맣게 몰려들 거야!
뒈지고 싶다면 이 잘난 배 하나 가져보겠다고 더 싸우던가!”
“캡틴!
왕자를 붙잡으면 억만금보다도 더 한 것을 쥐는 겁니다!”
“미친 새끼들.
너희들이 저 놈들을 지나쳐서 왕자에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물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도 왕실 기사들은 그 하나, 하나가 중급 기사 급이다.
심지어 수도 하나나 둘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왕자를 지킬 것이니 왕국의 다른 배들이 다가오기 전에는 왕자의 몸에 손 끝 하나 닿지 못 할 것이 확실했다.
“뒈질 놈은 뒈져.
난 내 말 안 듣는 선원은 필요 없다.
바로 여기를 벗어난다!
돛을 펴라!”
그렇게 말하며 ‘캡틴’ 은 갑판의 반 이상을 점령했음에도 미련 없이 판자를 통해 자신의 배로 건너가며 어서 이곳을 벗어나자고 소리쳤다.
전투를 대비해서 접어두었던 돛이 펴지자 해적들은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지만, 해군에게 잡히면 어떤 미래가 펼쳐지는지 잘 알았기에 바로 왕국 함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물론 그냥 물러날 수는 없다는 듯 돛과 배 곳곳에 불을 지르며 여기로 달려온 함선들이 자신들을 추격하는 대신 이 배를 구하도록 시간을 끌게 만들었다.
늦은 오후, 점점 저물어가는 노을마냥 붉게 타오르는 왕국의 함선을 바라보며 활대의 줄에 매달린 캡틴은 낄낄거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왕자님!
이번에는 제가 특별히 물러나지만 다음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내 친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고기밥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 잘난 왕국의 땅에 틀어박혀 다시는 나오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일국의 왕자에게 행해지는 조롱에도 이미 배가 반이나 넘어갔던 왕국 측으로는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순식간에 순풍을 받으며 멀어지는 해적선, 그리고 각각 옆과 뒤에서 왕국의 다른 함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빌어먹을···.
왕자님!
왕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선장님!
돛에 붙은 불길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젠장.혹시 모르니 왕자님부터 다른 배로 옮겨야겠군.”
그렇게 말한 선장은 왕실 기사들을 지나쳐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배 전체가 타오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불길이 잡히지 않는다면 최악의 사태도 고려해야 하니 일단 최우선적으로 중요 인물을 탈출시키는 편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왕자님!
일단은 불길이 잡힐 때까지 다른 배로 가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어서 가시죠.”
전투에서 비록 부상을 입었지만 목숨은 건진 선장이 선장실 내부로 들어왔다.
그러자 그 안에 앉아서 가만히 창 너머의 수평선을 바라보던 에라더 왕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역시, 역시···.”
“왕자님?”
“그러게,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는가!”
“예?”
“불길했어.
처음부터 전부 다 말이야!
배가 바뀐 것부터, 너무 이상하리만큼 일이 잘 들어맞은 것도 그렇고!
적당히 하고 물러가야 했어.
그냥 다른 함선에 맡겨두고 지원을 하는 것이 나았을 텐데.
고작 해적들에게 이딴 수모를 겪게 만들다니.
그대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단 말이야!”
“···와, 왕자님?”
그대가 판단하라, 나는 그 의견을 존중할 테니.
그 말이 선장에게는 ‘이번에는 그대를 믿고 한 번 해보겠다.’ 라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에라더 왕자에게는 달랐다.
그는 그 말을 이런 목적으로 했을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래서 잘 되면 그대도 대단하지만, 믿은 나도 대단한 거다!
단, 역으로 일이 잘못되면 전부 그대의 잘못이고 내 탓은 없는 걸로.
―――――――작품 후기―――――――
잘하면 내 덕, 잘못 되면 네 탓.
물론 저게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군주의 위엄을 위해서는 저렇게 살 수밖에 없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