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7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79화(179/439)
179―――――
I will burn you alive
트리샤와의 약간은 모호한 관계 발전이 있었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이번에도 은근한 어조로 헤먼에게 사르데나를 맡긴 시온은 다른 때와는 달리 혹시나 자신의 곁에 감시의 눈초리가 붙은 건 아닐까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오죽하면 리아와 릴리트에게 따로 부탁을 해서 자신의 곁에 미행이 붙지 않았는가 해서 조사까지 부탁했을 정도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일만큼은 정말 기밀을 유지해야만 한다.
항구에 해적 놈들의 끄나풀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더더욱!’
미행이 붙지 않았음을 확인한 후, 시온은 두 여자를 데리고서 어딘가로 바쁘게 이동했다.
사르데나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 산이라고 부르기에도 모호하고 그렇다고 언덕이라고 보기에도 좀 아닌 것 같은 곳에 다다른 그는 바로 말에서 내려서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슬쩍 신호를 해보였다.
푸륵!―
그러자 수풀 속에 숨어있던 뭔가가 갑자기 쑥!
하고 머리를 내밀었다.
거대한 독수리 머리, 원래라면 눈앞에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바로 내빼도 모자랄 판국이었지만 시온은 미소를 짓고는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온 공자님.”
“맥.”
거기에는 뭔가 묘한 복장을 걸친 채 그리핀 옆에 서있는 남자가 하나 서있었다.
그는 시온에게 다가와서는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해 보이고는 상대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리핀 기수 맥클스키, 리히텐 변경백 각하의 명령을 듣고 최대한 빠르게, 그러면서도 은밀하게 남부까지 날아왔음을 공자께 보고드립니다.”
“먼 곳까지 쉬지 않고 오느라 고생했어.
다른 기수들이랑 그리핀들은?”
“근처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입니다.
애초에 그리핀들은 이런 환경을 더 좋아하니 안성맞춤이죠.”
“대신 그대들이 고생일 텐데.”
“어쩌겠습니까.
이놈들이 좋다는데 말입니다.”
카악!
그러자 그리핀이 갑자기 불만이 가득한 울음소리를 낸다.
심지어 날개를 펼쳐서는 맥클스키의 뒤통수를 가볍게 치기까지 한다.
“아아, 미안해.
미안하다고, 숙녀 분.”
“이놈이라고 불러서 싫어하는 건가?”
“머리가 원체 좋으니 사람 말을 대충은 알아듣더군요.
이 녀석들 앞에서는··· 실례, 여기 있는 숙녀 분 앞에서는 함부로 욕도 못 할 정도랍니다.”
맥클스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그리핀인 ‘헬캣’ 의 등을 정성스레 쓰다듬어주었다.
그에 그리핀 계의 트리샤, 그야말로 손도 못 댈 말괄량이, 지옥에서 올라온 미친년이자 그리핀 5남매의 맏이 격인 헬캣이 그런 기수의 손길에 무척이나 만족한다는 듯 크륵, 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그보다 내가 말한 대로 훈련은 계속 진행 했겠지?”
“네, 공자님.
왕성으로 떠나시기 전에 하셨던 명령대로 급강하 및 딱 거리를 맞추어서 상승하는 부분까지 다섯 마리의 그리핀과 다섯 명의 기수 모두가 훈련 완료했습니다.”
상당히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에 시온은 짐짓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날카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반년도 채 안 되는 기간이었는데.
확실히 자신 있나?”
“혹시나 훈련에 방해가 될까 끼니도 매일 조금씩만 먹으며 훈련에 매진한 친구들입니다.
모두가 그렇게나 원하던 대로 하늘을 날게 되었는데 그 정도 훈련을 못 이겨내겠습니까.”
말하는 목소리나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일단 거짓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도 아니고 클라우젠 영지의 사람들이니 그 후계자 앞에서 감히 거짓을 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바로 가족들까지 엮어서 죄를 물어도 할 말이 없을 테니까.
“저, 그런데 공자님.
훈련이라고 하여 일단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그래도 궁금한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쭈어도 될 런지요?”
“이상한 질문만 아니면 항상 환영이지.”
“감사합니다.
사실 조금은 궁금해서 말이죠.
급강하를 하다가 갑자기 그대로 상승하는 부분도 그렇고, 그 찰나의 순간에 맞추어서 왜 양피지를 찢는 연습을 하시라 한 겁니까?”
“아아, 그거 말인가.”
시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반은 알려주고, 나머지 반은 나중에 다시 알려주기로 했다.
전부 발설했다가는 자칫 정보 과다로 기수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음이었다.
“그리핀들의 이점이 뭐라고 생각하지, 맥?”
“일단 중형 비행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소음이 많이 일지 않습니다.
사냥감들이 왜 그리핀들이 번개처럼 날아들어서 낚아채기까지 전혀 알지 못 하다가 당하는지 알았다고 할까요.”
“맞아.
그러면 그리핀들이 사냥감을 노릴 때 날갯짓을 하며 천천히 활강하던가?
아니면 날개를 접고 거의 추락하듯이 내리꽂히는 형태로 수직 낙하하던가?”
“···거의 수직으로 지상에 충돌할 기세로 내리꽂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에 시온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날개를 펴고 펄럭이며 상대에게 다가가게 되면 소리도 잘 들리고, 무엇보다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아.
그래서 반격할 틈을 주거나 도망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되는 거지.”
“그래서 그리핀들이 날개를 뒤로 하고 그대로 수직 낙하를 하는 것이군요.”
잠시 고민하던 맥클스키는 그래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냥감을 붙잡을 때나 그렇지, 전투에서는 쓸모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적을 하나하나씩 공격하는 건 시간 낭비에 자칫 그리핀에게 위험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맥, 자네의 걱정이 아예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전제가 잘못 되었어.
난 사냥감이나 적을 붙잡을 목적으로 그대들 기수들이나 그리핀들을 훈련시킨 게 아니야.”
“그러시다면···.”
“그건 나중에 차차 알려주도록 하지.
일단은 여기서 잠시 더 머물면서 긴 비행 동안에 지쳤을 그리핀 녀석들을 잘 다독이고 있어.
아마 앞으로는 이런 풀내음 대신 비린내와 짠내만 매일 같이 마셔야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시온의 말에 맥클스키는 군례를 올리고는 다른 기수들이나 그리핀들을 조금 더 보다가 가시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사실 기수들이고 그리핀들이고 상태를 전부 확인하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이미 시간을 많이 소비한 상태였다.
자신이 아예 사르데나에서 벗어난 것을 귀족들이 알게 된다면 너무 과하게 물어뜯을 수도 있으니 이만 빠르게 돌아가야 했다.
“꼭 알아둬, 맥.
보안이 생명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다른 기수들에게도 그 잠깐을 참지 못 해 비행을 나가는 건 자제하라고 일러둘 테니 빠르게 일 보시고 어서 저희를 불러주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그리핀 기수들과 잠깐의 만남을 가졌던 시온은 다른 이들에게 의심을 사기 전에 빠르게 사르데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냐앙.
난 도대체 시온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나도 마찬가지란다, 리아.
옆에서 뻔히 보고 있는데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나중에 다 알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자꾸 달라붙지 마, 리아.”
“냐앙!
그냥 지금 알려주면 안 되는 거야?”
나중에 알려준다고, 나중에!
이 떼껄룩아!
시온은 자꾸만 자신의 등에 매달리고, 다리에 달라붙는 고양이 여인을 억지로 떼어내며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잔소리를 퍼부어야만 했다.
덕분에 ‘나도 저렇게 매달려볼까?’ 라고 한창 고민을 하던 릴리트는 역시 참기를 잘 했어, 라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엄지를 들 수 있었다.
“그보다 시온.
루시아한테 한 번을 안 가보는 거 같은데 괜찮겠어?”
“며칠 전에 찾아갔는데 오히려 그쪽 아버님이 딸 방해하지 말라고 내쫓아서요.”
“···확실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제가 물러나야지 뭐 어쩌겠습니까.”
“···.”
그 말에 릴리트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시온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시온은 고작 그 정도 말을 들었다고 해서 물러날 놈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능글맞게 웃으면서 ‘원래 그럴수록 더더욱 만나러 가봐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할 인간이란 말이다.
‘저, 저, 저!
시온 녀석 또 이걸 이렇게 이용해 먹는다고?’
루시아가 따뜻하고, 착한 면이 대부분이라는 건 릴리트도 인정한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대담한 면도 있고 가끔 가다가 정색하며 화를 내면 순간이지만 릴리트도 흠칫 놀라서는 분위기를 살필 정도였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매일 웃고 항상 착한 모습만 보이던 이가 한 번 제대로 화가 나면 그대로 꼭지가 돌아버려서 아무도 못 말린다고 말이다.
‘라이도라고 했던가?’
중년을 넘어서 이제는 노년에 들어간 인간 마법사.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놈인지 마법도 마법이지만 주먹질이나 발길질도 얼마나 극악의 실력을 자랑하는지 릴리트조차 놀라게 만든, 그야말로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
처음에는 그런 놈이 장인어른이랍시고 시온을 괴롭힐까 걱정했던 릴리트였다.
그렇다고 루시아한테 뭐라고 하자니 그건 뭔가 그림이 영 아닌 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던 찰나였었는데 시온은 아주 간단하게 그 문제를 제거해버렸다.
‘릴리트님.
원래 그 어떤 부모도 자식 못 이기는 법이랍니다.’
자신이 라이도라는 이를 바꾸기 보다는 그냥 루시아에게 맡겨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시온 클라우젠, 자신을 대할 때에는 아주 조심하시라고.
사위라고 함부로 하시다가는 딸내미의 무시무시한 잔소리를 받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도 그래.
라이도가 바쁘다, 나중에 오라, 라고 말했다고 해서 정말로 홀라당 가버렸잖아?
당연히 루시아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지.
아버지라는 사람이 적당히 눈치도 좀 주고 한 번 가보라!
라는 말도 해줘야 하는데.
아무튼 라이도라는 인간, 또 루시아한테 잔소리 한 번 듣겠네.
히야··· 진짜 어디까지 사악한 거니?
너라는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며 얌전히 고양이와 한창 격전을 벌이고 있는 시온의 뒤를 따르던 릴리트는.
“뭘 그리 생각하세요?”
“응?”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리아를 업은 채 다가온 시온과 마주하게 되었다.
“왜요.
설마 루시아 보러 갔다는 말에 질투하시는 건 아니죠?”
“···뭐라는 거야.
내가 왜 루시아를 질투하겠니?
그럴 이유가 없잖아?”
“나이?”
“야!”
다른 건 다 건드려도 그건 진짜 아니다.
그 부분은 그 어떤 종족의 여인에게 있어서 역린(逆鱗)이나 마찬가지인 부분.
그에 시온은 미소를 짓고는 또 어느 틈에 옆으로 돌아서는 릴리트의 가녀린 허리를 붙잡고는 슬쩍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제가 이래서 릴리트님이 좋아요.”
“가,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데.”
밑도 끝도 없는, 이유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릴리트는 시온의 말이 그리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자신 역시 알게 모르게 시온의 그 사악함에 빠져들고 있다는 건 전혀 자각하지 못 했지만 말이다.
“냐아앙.
시온, 어디서 인간 다가오는 거 같아.”
이 때 등에 업혀있던 리아가 훌쩍 뛰어내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동시에 릴리트가 재빠르게 마법사들이 입고 다니는 후드를 뒤집어썼고, 리아는 재빠르게 빈틈을 찾아서 몸을 숨겼다.
모든 것이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
“시온 클라우젠 공자!”
그리고 잠시 후, 헤먼 이시크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 꽤나 다급해 보이는 것이 ‘일이 터졌다고, 젠장!’ 이라고 외치는 것 같아 시온은 절로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헤먼 공자.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소식 들으셨··· 아아, 휴식 시간이시니 들으신 적이 없으시려나.”
“무슨 말인지?”
“방금 전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해적 소탕 및 해적선 나포에 나섰던 에라더 왕자님이 급히 회항하고 있으시답니다.”
“···평소보다 며칠은 더 빠른 회항이라.”
시온은 턱을 쓰다듬으며 헤먼 공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쪽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냐, 라는 무언의 질문.
그에 헤먼 공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항구에서 머물고 있던 해군들을 비상 대기 시키고 언제든 출격할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요.
다만 항구에서 머물고 있던 이들이라면 어제 밤에 야간 순찰을 끝내고 쉬고 있던 선원들과 배일 텐데요.”
“하지만 현재 사르데나에서 바로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이들이 그들 밖에 없어서 말입니다.”
“하긴··· 원래 있던 해군들은 해적들의 감시를 피해서 주변 항구로 흩어진 상태니까요.”
“일단 지휘부로 가시죠.
혹시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죠.
아, 릴리.
너는 돌아가 있어.
또 마법 익힌다고 사고치지 말고.”
표정 변화나 목소리의 흔들림 하나 없이 릴리트의 위장 신분을 언급하는 시온이었다.
헤먼은 애초 릴리트를 클라우젠 변경백령에서부터 시온을 따르던 마법사라고 알고 있었으니 그녀를 경계하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기에 릴리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남자와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샤샤샥!
그리고 그 뒤를 뭔가가 재빠르게 뒤따르기 시작했고 말이다.
“시온 공자.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합니다.
갑자기 회항이라니.”
“뭐, 해적들을 너무 많이 붙잡아서 더는 항해가 힘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숙련된 남부의 해군들도 일주일 가까이 항해하며 해적들을 찾아 헤매어야 찾을 수 있는 바닷고기 같은 놈들입니다.
출항하신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배 여러 척에 해적들을 꽉꽉 채울 정도로 소탕을 했다면 그건 오히려 한 가지 사태를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한 가지 사태, 그건 해적들이 떼를 지어 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도 분명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어쩌면 회항을 하는 이유도 적을 많이 붙잡아서가 아니라, 붙잡은 적들을 관리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아군의 피해가 커서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다행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헤먼 공자.
그 이상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괜히 다른 귀족들에게 꼬투리를 잡히면 이시크 백작가만 피곤해질 테니까요.”
“···그렇군요.
신경 써주어서 고맙습니다, 시온 공자.”
평소보다 이른 때에 군사적 목적을 띄고 출정한 이들이 다급하게 돌아오는 이유는 단 하나.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전체적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심각한 수준의 문제.
‘그래, 그래도 좀 오래 버티나 싶었다.’
그리고 시온과 헤먼이 지휘부로 돌아왔을 때에 막 새로 들어온 소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헤먼은 바다로 나갔던 이들 측이 전달한 서신을 확인하곤 기어코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말았다.
“···에라더 왕자님이 탑승하셨던 함의 인원 중 사상자가 자그마치 절반 이상이랍니다.
그나마 왕자님께서는 조금도 다치시지 않으셨다니 불행 중 다행이군요.”
사상자가 절반 이상이라면 그냥 ‘전멸’ 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 사상자를 챙기기 위해 더 많은 멀쩡한 이들이 필요하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전력 이탈 수준.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함선의 피해가 너무 커서 복구도 불가능하고 항구까지 끌고 오기가 무리라고 판단, 결국 불을 놓아 자침시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최악이군요.”
해군 입장에서 다수의 사상자 발생보다도 더 치욕스러운 일은, 바로 타고 있던 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었다.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배를 잃으면 치욕이라고 여기는 판국에 전멸 수준의 피해를 입고 함선까지 포기했다는 건 말 그대로.
‘대패.’
보통 일이 아니었다.
왕국의 정규군이 해적들에게 제대로 당했다는 것이니까.
이건 해적들에게는 더 날뛸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었고, 반대로 왕국의 백성들에게는 믿고 있던 희망에 파직!
하고 금이 가는 것과 똑같은 부분이었다.
‘사실 충분히 회복이 가능한 패배이긴 해.
승패는 병가지상사(勝敗兵家常事)라고도 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패배를 당한 윗대가리의 멘탈 상태다.’
과연 기록적인 패배를 당하고도 에라더 왕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을 수 있을까.
시온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지금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에라더 왕자라면 모를까.
소설 속 모습 그대로인 에라더 왕자에게는 무리인 부분이었다.
‘축 쳐져 있는 것까지는 이해해준다.
그런데 설마 바로 남 탓까지 시전한 건 아니겠지?’
아니긴 뭐가 아니겠는가.
며칠 후, 항구로 돌아온 에라더 왕자와 휘하 병사들을 확인한 시온은 이마를 부여잡고 말았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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