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8화(18/439)
<―>
릴리트의 검술에 대해서 묻는다면, 시온은 냉정하게 별로라고 답할 수 있었다.
주공은 어디까지나 정신을 뒤흔드는 것, 신체로 하는 싸움은 그녀에게 있어 최후를 가하는 것, 아니면 마지막 발악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물론 일반 기사들보다는 위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김유현과 비교하자면 턱도 없을 정도.
‘릴리트야 적당히 하다가 빼면 되는데, 문제는 김유현이다.’
만났을 때부터 결투 상대로 지목 했고, 연무장에 와서도 다른 기사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오직 그녀만을 콕 집었다.
천하의 그 김유현이 아무런 이유 없이 상대를 지목할 리 없다.
분명 뭔가를 눈치 채고, 뭔가를 느낀 것이 확실했다.
‘미치겠네, 진짜.’
서큐버스 퀸 릴리트는 절대 잃어서는 안 될 중요 전력이자 희귀 카드다.
아직 본편으로 진입도 못 한 상황에서 혹 김유현과 대련을 하다가 죽거나, 아니면 정체가 탄로 나서 적대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다면 그건 시온에게 있어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
설탕인 줄 알고 부었더니 미온이고 식용유인줄 알고 부었더니 식초인 셈이었다.
슛!
선공은 그래도 릴리트가 가져갔다.
아니, 어쩌면 김유현이 일부러 양보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공격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몸놀림으로 릴리트의 공격을 피하던 김유현.
하지만 곧 목검을 들어 상대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기 시작했다.
툭!
탓!
목검이 서로 부딪치고 있으니 둔탁한 소리가 들렸지만 저게 아마 진검이었다면 쇠와 쇠, 날과 날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었을 것이다.
김유현이 진검을 들고 휘두르고 있다는 상상을 한 시온은 몸을 떨며 속옷에 지릴 뻔 했다.
목숨은 하나인데 사신은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었다.
‘시바!
릴리트 파이팅!
누님 힘내!
비록 이기지는 못 해도 한 번은 후려쳐줘!’
속으로 열심히 응원을 하며 시온은 두 ‘남자’ 의 결투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옆에 앉아있던 리히텐 변경백이 결투보다는 자신을 더욱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흠.”
한편, 김유현은 상대가 생각보다 꽤나 괜찮은 검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도출했다.
자세가 살짝 엉거주춤하기는 했지만 급소를 노리는 것 하며 망설이는 기색이 1도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칼밥을 꽤나 먹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야.’
처음 응접실로 들어서던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갑자기 몸이 찌르르 울리며 감각과 세포 하나하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강자에게서 전해지는 특유의 기세와 압박감이 신체로 전해진 것.
물론 그 감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처럼 사라지긴 했지만 김유현은 이미 확신한 후였다.
저 노스라고 하는 기사가 제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 실력을 드러내야 할 거다.’
그렇게 생각한 김유현은 방어에만 집중하던 제 검 끝을 돌려 천천히 공세로 전환했다.
‘뭐야, 이 새끼.
인간치고 제법인데?’
릴리트는 그녀대로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시작부터 상대의 검술이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자신의 움직임을 읽고 그것을 역으로 분쇄하려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실력을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진심으로 대할 필요까지는 없었기에 적당히 어울려주었는데 상대는 마치 더 재롱을 부려보라는 듯 자신을 약 올리고 있었다.
‘···이 개자식이 시온이 보고 있는데.’
계약자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렇게 떠들었는데, 고작 인간 하나한테 떡발린다면 그건 여왕님의 자존심이 산산이 부숴 지는 것이었다.
입술을 깨문 그녀는 페이크 동작을 섞기 시작했다.
잠깐의 시간, 몇 번 검을 나눈 그 짧은 사이에 이쪽의 무게 중심을 왼쪽 다리가 지탱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그 곳을 노리며 계속해서 자세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원하는 걸 내어주고, 대신 더 큰 걸 가져가면 될 것이다.
릴리트는 바로 생각을 끝내고 막 전개된 김유현의 공격에 조금이나마 중심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왼쪽 다리가 공격에 노출된 상황.
당연히 바로 안으로 파고 들 것이라 예상했고, 릴리트의 생각대로 김유현은 바로 상대의 빈틈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이럴 줄 알았지!’
재빠르게 검을 돌린 릴리트.
그리고는 손잡이 부분으로 훤히 노출된 상대의 옆구리를 후려치려는 순간이었다.
퍽!
‘···읏?’
갑자기 전해지는 고통에 릴리트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그녀는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상대는 자신의 페이크에 넘어가주는 척 하면서 역으로 자신의 팔을 노렸다.
릴리트가 생각하던 것과 똑같이, 목검의 손잡이 부분으로 그녀의 팔뚝을 강하게 가격한 것이었다.
“크읏!”
묵직한 일격이었고 예상치 못한 공격이기도 했으니 정말로 중심이 흐트러졌다.
그건 결투에 있어서 가장 물어뜯기 좋은 약점이었고, 김유현은 그런 상대가 숨을 고르도록 놓아줄 정도로 인심이 좋은 이가 결코 아니었다.
뻐억!
유려한 선을 그리며 그대로 릴리트의 어깨를 강하게 치고 가는 김유현.
그리고는 물 흐르듯 범위에서 벗어나서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재차 목검을 바꿔 잡었다.
“어쭙잖은 짓 하지 말지.”
그 말이 김유현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릴리트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인간 나부랭이 따위가 감히 자신에게, 서큐버스 퀸에게 저따위 말을 하다니.
심지어 자신의 계약자인 시온이 바로 보고 있는 그 앞에서 말이다!
‘저 싸가지 없는 개새끼가.’
순간 저 놈의 정신을 지배해서는 사정없이 망가트리고 무릎을 꿇은 놈의 면상을 쟐근쟐근 밟아주며 자신의 발가락을 핥아보라고 명령하고 싶었다.
활화산이 폭발하듯 분노가 쏟아지자 잠깐이었지만 변형으로 이루어졌던 노스의 눈동자가 다시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음?’
그 변화를 눈치 채지 못 할 김유현이 아니었다.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자 그는 슬쩍 거리를 벌리고는 바로 틈을 노려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죽일까?’
릴리트는 고민했다.
자신의 성격 상 여왕을 깔본 놈은 무조건 죽여 없앴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자신은 예속의 계약에 묶인 한 명의 여인이다.
그리고 그 계약자는 분명 자신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었다.
‘절대 본심도, 그리고 힘도 드러내지 마세요.’
‘아, 왜―.
나대는 놈들 쳐죽이는 것도 안 되는 거야?’
‘네.
무조건 안 됩니다.’
‘왜, 왜 왜 왜!
나도 날뛰고 싶을 때가 있다고!’
‘릴리트님을 잃고 싶지 않거든요.’
‘···어?’
전혀 예상치 못하던 때에 날아든 구속 300km 직구였다.
멍청하게 그 자리에 서서는 자신의 두 어깨를 붙잡은 시온을 쳐다보며, 릴리트는 참으로 바보 같게도 볼에 붉은 홍조만을 띄운 채 대답조차 하지 못 했었다.
‘약속해주세요.
제 말 들어주겠다고.’
‘어, 어···.’
‘약속한다고 말씀하세요.
누님 잃으면 저 정말 죽습니다.’
‘아, 알겠어.
약속··· 약속할게.’
몸을 배배 꼬면서 그렇게 답하자 시온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거기서 또 멍청하게 입술만 달싹거리는 자신이 얼마나 미우고 한심했던가.
분명 몽마는 자신인데, 왜 자꾸 끌려 다니는 것도 자신인 건지!
‘씨이··· 계약을 해도 이상한 놈이랑 해버렸어.’
한숨을 내뱉은 릴리트는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뭐야.’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 달려들 것 같았던 상대의 기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조금 전의 그 흉흉한 안광도, 몸에서 줄기줄기 내뿜어지던 살기도 전부.
혀를 찬 김유현은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다른 이도 아니도 자신을 상대로 또 실력을 숨기고 자신을 굽히려 하다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 무시를 하는 처사가 아니었던가.
‘이러면 어쩔 수 없지.
단박에 한계까지 밀어붙여서 본능적으로 제 힘을 이끌어내게 만든다.’
슈슛!
김유현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움직임이 보였다면, 이제는 라이온 기사단장의 눈조차 함부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뭐지, 저 남자?’
변경백의 기사단장인 자신조차 제대로 쫓을 수 없는 움직임이라니.
라이온은 기가 막혀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저런 가공할 만한 위인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다는 말인가!
‘···아, 이런!
노스 경은!’
자신조차 힘든 상대를 노스 경이 지금 맞이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노스 경은 순식간에 여러 곳에 검격을 적중 당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급히 둘의 결투를 막으려는 찰나였다.
“···!”
어느 순간, 김유현의 검이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그리고 바로 그 앞에, 한 청년이 서있었다.
“고, 공자님!”
“형!”
아무리 목검이라고 해도 저 정도의 속도라면 최소한 골절,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정도.
그런데 시온 클라우젠이, 단 한 번도 기사들을 존중치 않았던 그가, 무예에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던 변경백령의 공자가 살벌한 결투 바로 한 가운데에 뛰어들었다.
“그만하지.”
김유현의 목검이 바로 눈앞에 있는 상황이다.
조금만 잘못 되었어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시온은 무덤덤했다.
아니, 무덤덤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차갑지만 고고했고 또 자신만만했으며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뭡니까.”
시온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김유현 역시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자신이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그대로 머리가 깨져 죽었을 텐데,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청년은 차가운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노스 경의 노림수가 막히고 역으로 당신의 공격이 적중한 때에 이미 승패가 결정 난 것 같은데, 그럼에도 죽일 듯 몰아붙이다니.
이건 너무한 처사 같아서.”
“결투 중입니다.”
“그 결투 네 승리라고.
그러니까 그만 해.”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났어.
그러니 여기까지야.”
강압적인 모습에 김유현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씰룩이며 사나운 눈길로 시온을 노려보았다.
곧 살기가 줄기줄기 뻗치며 웬만한 보통 사람은 숨조차 쉬기 버거울 정도가 되었다.
“···.”
하지만 시온은 여전히 그 차가운 눈동자를 번뜩이며 김유현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먼저 움직이는 쪽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결국 기세를 거둔 김유현이 입을 열었다.
“결투를 하여 변경백령의 기사들에게 나에 대한 입증을 하자고 한 게 당신, 시온 클라우젠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걸 당신이 막고 있군요.”
“이미 입증되었으니까.
더는 쓸 데 없는 피를 흘릴 필요가 없는 거지.”
“검을 휘두르는 자가 피를 흘리는 데에 있어서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고 검을 내지르는 건 어리석은 짓···.”
“어리석은 짓이 아니야.
김유현.
검을 휘두르는 자일수록 그 검의 무거움을 알아야지.”
시온의 말에 김유현은 흠칫, 몸을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그 말은, 한 때 그가 미치도록 동경했던 한 남자의 것과 똑같았던 것이다.
“피를 보는 것.
상대방의 목숨을 거두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잖아.
거기에 익숙해지는 순간 검을 휘두르는 자는 그냥 살인 도구, 존재 이유도 의미도 없는 칼잡이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꿀꺽―.
김유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입술을 깨물곤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귓가에서 아주 먼 곳에서 들리듯 흐릿하지만 분명히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짓 그만 두고 적당히 하라는 거다.
아우야.’
“그러니까 어리석은 짓 그만 두고 적당히 하라고.
김유현.”
시온은 그렇게 말하며 뒤에 주저앉아 있던 노스 경을, 그러니까 릴리트를 가리켰다.
“내 사람이거든.
주인이 자기 사람 지키는 게 당연하다고 저번에 말했지?
이번에도 그래.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고.”
김유현은 잠시 시온을 쳐다보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그 뒤의 노스 경, 릴리트에게 과했다고 사과를 하곤 뒤로 물러섰다.
‘···시발, 십 년 감수했네.’
이 상태로 조금만 더 진행되었다면 릴리트의 머리통이 깨지던가, 아니면 그녀의 정체가 드러나던가.
그도 아니면 그냥 자신이 인생 하직할 뻔 했다.
그 찰나에 김유현의 사형이었던 남자의 대사를 떠올린 것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괜찮나요, 노스 경?”
“아, 예.
괜찮습니다···.
시온.”
어쩔 줄 몰라하며 부끄러워 하는 중년 남성이었다.
물론 내용물이 릴리트인 건 알고 있지만 껍데기가 이러니 절로 구역질이 나고 닭살이 돋는 시온이었다.
릴리트를 일으켜 세운 후, 시온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고 있던 리히텐 변경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 정도면 김유현의 실력을 모두가 인정할 듯 합니다.”
“···그래.
기사단장도 이미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 같구나.”
멍한 기색으로 김유현을 바라보고 있던 라이온 기사단장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김유현은 얼마동안은 정식으로 클라우젠 변경백의 성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 선공을 취한 출정식이 진행되는 새벽이 찾아왔다.
[작품후기]4연참 완료했습니다.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전 숨 쉬겠습니다!
앞으로도 추천 많이 해주시면 더 많은 연참으로 찾아뵙···.
(미래에 과로사한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