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87)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87화(187/439)
187―――――
저기요, 그 앞은 지옥입니다
항해 기간 동안 힘든 것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시온은 잠깐 고민하다가 보통의 사람들이 말하는 뱃멀미가 아닌 ‘싱싱한 과일’을 먹지 못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보관이 힘든 음식은 당연히 항해 식량으로 챙기지 않는 것이 당연한 부분이다.
그리고 과일들은 말리거나 설탕에 절이지 않고서는 무조건 항해 도중에 망가지게 되어 있다.
사과를 하나 베어 물으며, 시온은 멀미를 전혀 하지 않던 자신이 참으로 훌륭하게 여겨졌다.
‘이 몸뚱이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원래 나는 멀미를 안 하는 체질이었으니까··· 설정 상 이놈도 멀미를 안 하는 놈이었나?’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일단 확실한 건 항해 기간 동안 시온이 멀미를 한 적은 없었다.
오죽하면 헤먼이 ‘육지 분인데 이렇게 멀미를 안 하는 이는 처음 봤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핀 기수들이나 그리핀들조차 바다 생활에 영 적응을 못 해 차라리 하늘에 있고 싶어 할 정도였는데, 하루 종일 배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온으로서는 멀미를 하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와삭―.
그런 의미에서 시온이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바로 과일부터 먹는 것이었다.
의자를 살짝 뒤로 기대고 테이블 위에 발을 쭉 올려둔 채 바닷바람을 맞이하며 음미하는 과일 맛은 정말이지, 말 그대로 최고였다.
“···.”
“···.”
“···.”
물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세 여인.
릴리트, 루시아, 그리고 리아의 표정은 좋지 않다 못해 완벽히 엉망이었다.
“열 받네.”
“화가 나네요.”
“죽인다냥.”
릴리트나 리아는 그렇다 치고, 매사에 항상 온화한 분위기를 내는 루시아마저 대놓고 ‘화가 난다.’ 라고 말할 정도라면 정말 단단히 열 받는 상황이란 소리였다.
그런데 정작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시온은 너무나 여유로운 모습으로 여전히 사과를 먹어대고 있는 중이었다.
“시온!”
결국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건 릴리트였다.
“네, 릴리트님?”
“넌 진짜··· 화도 안 나?”
“화요?”
“그래!
기껏 밥상 다 차려두었더니 그걸 애먼 놈이 앉아서는 홀라당 먹어치우게 생겼는데 반발을 하기는커녕 화도 안 내는 거냐고!”
그 말에 릴리트를 잠시 바라보던 시온은 옆에 서있던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혹시 루시아도 비슷한 생각이냐, 라는 뜻이었다.
“···이번 건 에라더 왕자님이 너무 했다고 봐요.
이건 진짜 아니에요.
아버지도 그 소식을 듣고 당장 그 건방진 놈팽이 궁둥이를 터트려버리겠다고 한 걸 간신히 말렸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말리는 척만 하고 못 이기는 척 보내드리고 싶었지만요.”
그 말에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시온이었다.
아무리 에라더 왕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히스파냐라는 국가의 왕자, 그것도 현 국왕의 첫 번째 자식이다.
그런 남자를 해하려 했다가는 아무리 라이도라고 해도 몸 성히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리아.
혹시 너도···.”
그래도 저 자유로운 영혼의 고양이 여인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곧 시온은 끙, 하고 침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시온의 질문에 리아가 바로 파칭!
하고 살벌하게 날이 선 손톱을 내보이며 짧고 굵은 한 마디를 해서였다.
“죽인다냥.”
이대로 두면 정말 한창 출항 준비로 바쁠 에라더 왕자에게 찾아가서 얼굴에 오선지를 그릴 것 같은 리아였다.
시온은 자칫 앞에 있는 세 여자가 무슨 짓을 벌일 것 같아 급히 입을 열었다.
“다들 착각 그만.
난 아무렇지 않습니다.
괜한 생각 말고 일상으로 돌아가길.
이상.”
“···말이 되는 헛소리를 해!”
“이건 왕자님이라고 해도 정말 아닌 거예요!”
“죽인다!
죽인다냥!
죽인다냐아아앙!”
“아니, 이 여자들이 진짜!
당사자는 괜찮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그래!”
시온은 그렇게 소리를 치며, 어제 있었던 사건을 다시 떠올렸다.
―
“해적들이 힘을 잃었다, 라.
그거 무척 반가운 소식이군.”
에라더 왕자가 그렇게 말하며, 입가에 아주 약간의 미소를 그린다.
다른 귀족들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만 보이는, 사람 열 받게 만드는 그런 미소.
거기에서 ‘아, 이 새끼가 또 말도 안 되는 개짓거리를 하려는 구나.’ 라는 확신을 얻은 시온은 부디 그가 어떤 헛소리를 해도 내색하지 말고 넘어가자, 라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
그러는 사이, 에라더 왕자는 발걸음을 옮겨서는 시온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입가에 너무나 장하다는 듯 흐뭇한 웃음을 띠곤 시온의 어깨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원래 귀족들 입장에서 왕가의 직계가 저런 행동을 해주면 무척이나 감격스러워하며 바로 무릎을 꿇었을 테지만, 시온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 새끼가 무슨 생각인 걸까 라는 부분에 의문을 감출 수가 없었기에 고개만 살짝 숙일 뿐이었다.
“해적선 9척을 깨부수고, 심지어 해적들의 거점을 타격하는 데에 성공했다면 분명 많은 일을 했다는 소리일 것이야.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왕자님.”
“거기에 더해서, 그리핀 부대를 그대가 원하는 대로 운용하기 위해 적응 훈련을 진두지휘 했다니 거기에서 또 상당량의 피로가 누적되었을 테고.
그렇겠지?”
“···?”
설마 이 새끼가 또?
시온은 하, 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에라더 왕자를 바라보았다.
한 번 써먹어서 조금 달달한 맛 좀 보다가 그대로 혀고 입천장이고 다 데여서 살갗이 벗겨지는 개고생까지 해놓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건가 싶었다.
그에 더해서,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짓일 텐데 설마 그런 짓을 할까?
싶은 시온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런 짓을 하고서라도 반드시 정치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시점이었다.
“히스파냐의 영웅인 그대가 피로에 찌든 상태로 또 나서는 건 무리겠군.”
“···.”
“해적들을 약화시키고 회복 불가능으로 만든 이가 그대라는 걸, 그래서 누구보다도 더 큰 공을 세운 이가 시온 클라우젠 공자, 바로 그대라는 걸 모든 이가 다 알 것이야.
그러니 이쯤에서 잠깐 물러나서 쉬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마지막 피날레는 기어코 자신이 맡겠다는 소리였다.
이미 멋진 일 많이 했으니 이쯤에서 물러서고 나머지는 에라더 왕자 본인이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이 새끼 진짜··· 좆같은데 차마 욕은 할 수가 없네.’
기가 막혀서 욕을 못 하는 게 아니었다.
현재 정치적으로 한계에 몰린 에라더 왕자가 그나마 찾은 ‘명분’ 이 있는 돌파구였기에 조금은 이해가 가서 욕을 할 생각이 없는 것뿐이었다.
에라더 왕자의 말대로, 현재 시온은 엄청난 전공을 세우고 돌아왔다.
그건 히스파냐의 어느 누구라도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에라더 왕자 본인조차 방금 전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는 시온이라고 확언했다.
공을 세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그로써는 한 발짝 물러선 셈.
하지만 아예 패배를 시인하고 뒤로 물러난 것은 또 아니었다.
그만큼의 공을 거두느라 고생을 했을 테니 이만 쉬라는 부분은 시온 입장에서는 칼 같이 거절하고 정색을 하며 그럴 수는 없다고 하기에 약간 모호한 부분이 있다.
어차피 이미 약화되어 조금만 건드려도 와르르, 하고 무너질 해적들인데 굳이 고생을 하고 돌아온 이를 또 내보낼 필요가 없다는 건 다른 이들도 대충은 수긍할 수 있다.
‘왕국을 위해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이들에게 휴식을 내어준다.
그리고 뒷정리는 자신이 맡을 테니 안심하고 있어라, 라는 소리.’
그렇다.
에라더 왕자는 속칭 ‘막타’ 를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여전히 남부에서 세운 공훈으로 보자면 무조건 시온이 앞설 테지만 원래 사람이란 앞서 있던 부분보다 더 나중에 일어난 일을, 그리고 나중에 일어난 일보다는 마지막에 벌어지는 일을 더 잘 기억하는 법이다.
‘당장 게임에서도 그렇잖아?
40분 내내 푸짐하게 똥을 싸던 새끼가 막판에 판 다 짜준 거 호로록!
다 처먹고 아, 씹 하드캐리 하느라 힘들었다.
그 지랄 떠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공은 양보하되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며 존재감만큼은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의지.
어차피 남부의 지지를 받아 에드가 4세에게 자신이 국왕이 되어도 왕국 남부는 거부 반응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에라더 왕자의 최종 목표이다.
그런 부분에서 볼 때, 막타를 치는 것은 알맹이를 전부 시온에게 빼앗긴 에라더 왕자에게 있어 마지막으로 가져갈 수 있는 큼지막한 살코기였다.
“저, 왕자님.
그 부분은···.”
당장 남부의 귀족들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한다.
솔직히 에라더 왕자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뻔히 보이는데, 또 그걸 제지할 마땅한 명분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혹여나 에라더 왕자가 ‘아니, 히스파냐의 영웅이 지쳤는데 또 전장으로 내몰았다가 몸이 상하기라도 하면 왕국의 큰 손해야!
그대들이 책임 질 수 있겠는가!’ 따위의 말을 한다면 귀족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왕자 놈.
그래도 아예 돌대가리는 아니군.
이런 때에는 또 잔머리가 참 잘 돌아가.’
시온은 에라더 왕자의 쪼잔하지만 분명 머리가 잘 돌아가는 구석이 있음은 인정했다.
다른 평범한 이들이 보기에는 무슨 애새끼들 말장난처럼 보이겠지만 원래 정치판에서는 이런 사소한 명분 하나, 하나가 칼날보다도 더 날카로운 법이다.
일국의 왕자가 귀족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이미 그대는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승자다.
라고 인정까지 해주었고 자신이 대신 나서서 뒷정리를 해주겠다고 하는데 거기에서 귀족이란 자가 정색을 하면서 ‘까고 잡수는 소리 마세요.’ 라고 할 수는 없잖은가.
둘 다 금수저라고는 해도 한쪽은 비브라늄으로 테를 두른 이였고, 다른 하나는 그냥 금테 정도만 두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열에 아홉은 시온 쪽이 더 손해였다.
‘그래.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게 너로서는 최고이자 최선의 방법이겠지.
인정!
조금 억지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명분 면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인정해줘야지!’
이 정도면 그래도 성의 있는 태클이니 대충 걸려주는 티를 내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시온이었다.
물론, 정말 넘어져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왕자님께 부탁을 드릴까 했습니다.”
“흠?”
“사실 항해 도중에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아서 말입니다.
뒷정리를 다른 이에게 맡기고 좀 쉬려고 했었는데 왕자님께서 나서주신다니 든든하기를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군요.”
시온의 말에 헤먼이 ‘저기요?
분명 멀미도 안 하고 멀쩡히 잘만 항해 했잖아요?’ 라는 듯 시온을 쳐다보았지만 시온은 그쪽으로는 일부러 시선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헤먼이라면 알아서 현 상황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차후에 시온을 찾아와 그 이유를 물을 것이라고 확신해서였다.
그런 헤먼과는 반대로, 에라더 왕자는 ‘오오!’ 하고 얼굴 가득 미소를 그렸다.
혹시나 시온이 ‘그래도 제가 마무리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따위의 거절을 하면 어쩔까 고민했는데 이리 쉽게 수긍을 하다니 그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고의 그림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바로 덥석, 하고 문다면 삼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온이 말했던 대로, 에라더 왕자는 일류는 아니더라도 아예 개막장 삼류 정도는 아니었다.
“흠흠.
그런데 이렇게 시온 공자 본인에게 답을 듣고 보니 조금은 아쉽군.
다른 이들의 실수로 인해 조금은 불리해졌던 상황을 그대가 전부 뒤집은 것인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뒤로 물러나야 한다니 말이야.”
시온의 걱정을 염려하고, 마지막 공까지 세우지 못 하는 부분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이전에 있었던 패배를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실수라고 대충 퉁 치며 넘어가려는 모습까지.
정말 시온 입장에서 ‘새끼, 대단하다!’ 라는 칭찬과 함께 1따봉을 받을 만한 철면피였다.
그리고 원래 이런 정치판이나 권력판에서는 얼굴에 철판 수 백 장은 깔아야 사지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어쩌겠습니까.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원래 세상 일이 ‘욕심을 내면 크게 다치는 법’ 이니 물러서는 편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에라더 왕자는 모를 테지만, 시온은 정확히 그를 노린 채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날렸다.
저 인간은 이제 해적이란 게 다 죽어가서, 그래서 다가가서 살점 한 움큼 뜯어내서 맛있게 구워먹으면 그만인 줄 아는 모양인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시온은 방심은 금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원래 모든 생물은 뒈지기 직전에 가장 처절하게 반항하는 법이거든.
괜히 지옥으로 뛰어들 필요는 없지.
거기에 지금쯤이면 항구에 있을 빨대 새끼가 신나게 정보 모아서 해적 놈들한테 넘겼을 거야.
그리핀들에 대해서 얼추 알았을 테고 대충이나마 방어를 하려고 할 테지.’
그리핀은 정말 비행기마냥 강철로 만들어진 물체가 결코 아니다.
살과 뼈, 그리고 피로 이루어진, 아프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하나의 생물체다.
눈 먼 화살 하나에도 재수가 없으면 치명상을 입고 그대로 추락할 수도 있다.
적이 날카로운 기세로 방어를 하려고 한다면, 시온 입장에서는 굳이 그 난장판으로 기어들어가 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가봐라.
가서 네가 치려는 게 막타인지, 아니면 지옥문인지 몸소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부분에 더해서, 시온은 에라더 왕자에게 해줄 말이 하나 더 있었다.
아무래도 저 남자는 시온 자신만 떼어낼 생각인 모양이었는데, 아쉽게도 자신이 여기서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몇 개 있었다.
“에라더 왕자님.”
“음?
왜 그러지, 시온 공자?”
막타를 챙길 생각에 행복 회로 풀가동 중인 에라더 왕자를 향해.
시온은 지을 수 있는 가장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왕자님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시온은 바로 전에 왕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 옆으로 다가가서는 어떤 말을 나긋한 어조로 속삭였다.
“···뭐, 뭐라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에라더 왕자는, 방금 전의 귀족들보다 몇 배는 더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작품 후기―――――――
선추코는 항상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