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8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88화(188/439)
188―――――
저기요, 그 앞은 지옥입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
지금 뭐라고···.”
“아, 왕자님께서 제 말을 제대로 듣지 못 하신 모양이군요.”
시온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변 귀족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또박또박하게.
“아쉽지만 그리핀 부대는.
왕자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속으로 낄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시온은 무척이나 아쉽다는 표정을 지은 채 죄송하다는 제스처까지 해보였다.
덕분에 에라더 왕자는 두 눈을 껌뻑이며 멍하니 그를 쳐다보아야만 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
“네, 브레멘 이시크 백작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 겁니까?
그리핀 부대가 왕자님과 함께 할 수 없다니.
혹 부대 자체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문제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확실히 항해 내내 바다를 돌아다니며 해적선들을 찾아 헤매고 공격했으며 마지막에는 해적들의 거점까지 공격했으니 말입니다.”
일단 그렇게 운을 떼는 시온.
하지만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하지만 며칠간의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충분히 작전을 할 수는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문제될 부분이 아니지 않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왕자님도 바로 출항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서 이틀 정도의 항해 준비를 하고 출항할 것이니···.”
“그렇다고 해도 그리핀 부대는 에라더 왕자님과 함께 나가는 경우가 없을 겁니다.”
브레멘 백작의 말까지 바로 잘라버리는 시온이었다.
덕분에 제정신이 돌아온 에라더 왕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리고 살짝 화가 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체 왜 그리핀 부대가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소리인가?
현재 상황에서 국왕 전하의 명을 받고 남부로 내려온 내게 일시적으로나마 모든 군 집단을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은 전쟁영웅이라는 시온 클라우젠, 그대가 더 잘 알 텐데?”
에라더 왕자의 말대로다.
국왕의 명을 받고 파견된 ‘지휘관’ 은 어느 정도의 독립권이 보장되어 있는 귀족 영지의 병사들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동원하여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전쟁과 같은 국가적 사태에서 귀족들이 자신들의 이익이나 다른 모종의 이유를 빌미로 협조하지 않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다만 어지간해서는 지휘관의 입에서 그런 권한을 사용한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그 지역의 귀족들이 최대한 협조하는 그림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괜히 지휘관에게 대들었다가 왕실에 정면으로 반발한다는 인식이 심어질 경우, 반역자로 몰릴 수도 있어서였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에라더 왕자님은 국왕 전하의 명령을 받고 남부의 해적들을 토벌하기 위해 군사적 목적을 띠고 온 지휘관이시죠.
그러니 지역의 모든 군권을 일시적으로나마 통제할 수 있고 말입니다.”
“···잘 알고 있군.
그러면 정식으로 요청하겠네, 시온 클라우젠 공자.”
에라더 왕자는 그나마 예의상 입가에 걸치고 있던 미소도 이제는 입가에서 미소도 전부 지워버린 채 시온 클라우젠을 날카로운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가 새로 구상한 작전에 맞추어 역시나 새로이 만든 함선과 함께, 그리핀 부대의 운용에 대한 부분을 잠시 넘겨주었으면 좋겠어.
어차피 그대가 거의 다 이겨놓은 싸움이니 딱히 그리핀 부대가 전처럼 크게 고생할 일은 없을 거야.
그 존재만으로도 해적들에게 압박감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
“그렇습니까.”
“지금은 이렇게 요청을 하지만, 계속 거부하면 나도 어쩔 수가 없을 수도 있네.”
애써 돌려 말하고는 있지만, 결국 좋은 말 할 때 내놓고 뒤로 빠지라는 소리.
그에 시온은 살짝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 자격으로 요청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군요.
허면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제가 사람들을 시켜 개조한 함선을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반응에 에라더 왕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가 아무리 거부해봤자 결국 국왕에게서 권한을 받은 이는 바로 나인데 어찌 할 수가 없는 건 당연한 거지.’ 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원래 ‘사람 말은 끝까지 다 들어봐야 하는 법’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맙네, 시온 공자.
그러면···”
“모함이 없는 그리핀 부대는 어차피 바다 위에서 딱히 할 일도 없으니 간만에 긴 휴식을 취하라고 해두어야겠군요.”
“···뭐라고?
시온 공자, 지금 뭐라고 했지?”
“그리핀 부대는 휴식에 들어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시온의 대답에 에라더 왕자는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여태 자신이 좋게, 좋게 말하기도 했고 시온 클라우젠의 명예도 최대한 높여주면서 그에게는 손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양보를 부탁한 것인데 그는 지금 그것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시온 공자.
지금 그 말 진심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국왕 전하의 명령을 받은 지휘관임에도 불구하고 말인가?”
“그래서 제가 함선을 내어드리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함선뿐만 아니라 그리핀 부대도 필요해서 이런 요청을 하고 있지 않겠는가!
그대가 비록 전하의 명령을 받아 나와 함께 남부로 왔다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지휘권은 내게 있다.
한 지역을 맡게 되는 왕실 임명 지휘관은 필요시 귀족 영지의 병사라고 해도···.”
“그들을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인지하고 있지요.”
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히스파냐의 귀족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알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임을 강조했다.
그것이 이 히스파냐를 지배하는 왕실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한이자 귀족들에게는 결코 반발해서는 안 될 금역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금역에도, 항상 빈틈은 있다.
“하지만 에라더 왕자님.
왕실에서 한 지역을 총괄하는 지휘관을 정하고 파견을 보내면, 그 지휘관이 병사를 부릴 수 있는 건 딱 그 지역에 한정해서입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왕자님은 현재 ‘남부 지역’ 의 귀족 영지에 대한 병력 운용 권한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죠.”
“그게 무슨···.”
그러다가 문득, 에라더 왕자는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니 시온이 개조한 저 배는 원래 남부 지역의 배라고 해도 그리핀 부대는 절대 남부의 이들이 아니었다.
저들은 이 히스파냐의 동쪽 끝자락, 항상 굳게 대문을 지키고 있는 왕국의 방패인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사람들이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시온은 아주 살짝 입 꼬리를 올려 상당히 재수가 없어 보이는,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감히 함부로 뭐라 할 수 없는 분위기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왕자님이 아무리 남부 지역의 지휘관이라고 해도,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영지민이자 곧 병사들인 저들에게는 그 어떤 권한도 가지실 수 없습니다.
저들은 다만 제 요청으로 인해 머나먼 동쪽에서 여기까지 날아온 이들이니까요.”
“그런···.”
“왕실의 지휘관도 그 지역에 한해서만 병력 운용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부의 사람들이 아니라 완벽히 동쪽의 클라우젠 변경백령에 속하는 저들은 그 권한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따라서 저 역시 왕자님의 요청을 합법적으로 ‘거부’ 할 수 있습니다.”
“시, 시온 공자!”
“따라서 제 뜻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라더 왕자님.
그리핀 부대는 저와 함께 작전에서 벗어나 휴식에 들어가겠습니다.
다만 모함은 따지고 보면 남부 측 것이니 운용하셔도 됨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핀이 없는 모함은 그냥 덩치가 좀 크고 둔하기만 한 거대한 배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에라더 왕자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시온은 내보내도 그리핀 부대는 반드시 필요했던 그로서는 말 그대로 청천벽력 같은 선고와 다름없는 말이었다.
“이보게, 시온 공자!
나, 나라를 위한 길이네.
그러니···.”
“왕자님은 제가 몹시 피곤하다고 판단하셔서, 이 히스파냐에 승리를 가져다 준 영웅의 몸이 다쳐서는 안 된다고 하셔서 저를 잠시 뒤로 물러나라고 말씀하셨죠.
따지고 보면 그리핀들과 그 기수들이 저보다도 훨씬 더 고생하고, 훨씬 더 많은 공을 세운 영웅들입니다.
제가 쉰다고 하면, 그들 역시 무조건 쉬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히스파냐에 승리를 전해준 이들인데 혹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하는지요?”
에라더 왕자가 시온에게 들먹였던 논리를 그대로 써먹는 시온이었다.
이미 할 만큼 했고, 괜히 지친 몸 이끌고 싸우면 더 손해니까 들어가서 쉬어!
라는 에라더 왕자의 말을, 지금 시온이 완벽하게 꺼내 쓰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네게 남은 길은 둘이네?
깨끗하게 포기하고 물러나던가, 아니면 이제 와서 말 바꾸고 시온 공자가 싸우는 편이 더 낫겠네!
라고 말하는 것.
물론 후자를 택할 것 같지는 않지만.’
피곤할 테니 가서 쉬라고 할 때는 언제고, 그리핀 부대를 뺀다고 하니 바로 말을 바꾸어서는 ‘사실 시온 공자가 마무리하는 편이 낫지!’ 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 순간 에라더 왕자는 그대로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인물에게, 더 나아가 바네사 왕녀에게 굴복한다는 느낌을 자신의 지지자들 앞에서 내보이게 된다.
한 집단의 수장으로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존심을 굽히는 순간 그 집단은 그대로 무너진다.
따라서 시온은 에라더 왕자가 입술을 깨물며 이쯤에서 물러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 상황이라면 굳이 그리핀 부대가 없어도 되는 상황일 텐데.’
갑작스러운 그리핀들의 공격과 거점 타격으로 인해 해적들의 기세가 꺾였을 거라고 에라더 왕자 본인이 스스로 인정까지 했다.
그렇다면 그냥 이대로 출항해서 밀어붙여도 될 텐데 왜 그리 그리핀에 집착하는 것인지.
시온은 에라더 왕자의 생각을 얼추 예상은 해볼 수 있었다.
‘막타를 치는 거 이왕 폼 나게 치고 싶다?
어림도 없다, 이 자식아.’
막타 양보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어디서 행복회로를 돌리려고 하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온이 이쯤에서 슬슬 자신은 쿨하게 사라지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을 하곤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내가!”
내가?
“내가 이렇게 요청하지 않는가!
해적 소탕이라는 히스파냐의 앞날이 걸린 일이야.
반드시 해적들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하는 중요한 때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건가!”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왕자님께서 권한을 말씀하시니 그 권한에 저는 닿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만?”
“그 부분은 내가 따로 어떻게 해주겠네.
그러니 그리핀 부대를 참전시키란 말일세!
시온 클라우젠 공자!
이건 히스파냐 제 1왕자인 에라더 라곤 히스파냐의 명령이야!”
그 말에 시온은 지금 자신이 뭔가 잘못 듣고 있나 싶었다.
아니, 이런 자리에서, 압박에 무척이나 민감한 귀족이란 존재가 많은 공간에서 절대 내뱉지 말아야 할 말들을 지껄이다니?
‘이 새끼가 드디어 돌았나?’
아무래도 일이 단 하나도 제 뜻대로 풀리지 않자 정신줄을 놓아버린 모양.
시온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고는 슬슬 저 망나니를 짓밟아주기로 했다.
그래도 꽤나 즐거운 진흙탕 싸움이었는데, 여태 열심히 싸우다가 갑자기 저렇게 징징거리기 시작하면 재미도 식고 열정도 식고, 그 자리에는 역겨움만이 가득해질 뿐이다.
“에라더 왕자님.
그 말씀대로라면 남부의 지휘관임에도 머나먼 곳에 있는 클라우젠 변경백령에까지 그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전해집니다.
굳이 그렇게 ‘명령’을 내리신다면 조금은 고민이 되겠군요.
헌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 말에 에라더 왕자와 주변 귀족들이 그건 또 무슨 말이냐는 듯 시온을 바라본다.
“지역에 상관없이 귀족들의 권리를 잠시 치워두고 동원령을 선포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분, 바로 이 히스파냐의 적법하신 지배자이시자 우리들의 군주이신 국왕 전하뿐입니다.
지금 에라더 왕자님께서 바로 그 국왕 전하라도 된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제 말이 틀립니까?”
“뭣···!”
시골 말단 귀족이라고 해도, 왕자나 왕녀 앞에서도 어느 정도 당당할 수 있는 대귀족이라고 해도 모두가 똑같이 등골이 싸늘해질 수밖에 없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설사 국왕의 장자라고 해도 자유로울 수 없는 그 단어, 아니 오히려 장자이기에 더더욱 조심해야만 하는 공포 그 자체의 단어.
“듣는 이의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뜻’을 품고 있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시온 클라우젠!”
에라더 왕자의 입에서 사나우면서도 약간은 다급한 기색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시온이 말하는 그 다른 뜻이 ‘반역’ 이라는 것을 칭한다는 건 자리에 모인 전부가 안다.
다만 그가 애써 돌려서 말했을 뿐이다.
에라더 왕자 역시 시온의 입에서 그 말을 듣자 간신히 제정신이 돌아왔다.
어느 정도의 양보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최고 공로자는 시온임을 인정하고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만 원하는 기운을 내비쳤는데 그것마저 거부당하니 자신이 잠깐 이성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크, 큰일이다!’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 나왔다.
심지어 자신의 지지자들 앞에서, 단 한 순간에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트릴 만한 힘을 지닌 바로 그 말이 말이다.
에라더 왕자는 다급히 주변을 살피며 이쯤에서 그냥 자리를 파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먹이를 문 시온은 절대 그것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왕 상대가 보여준 최대의 약점을 강하게 문 김에, 아주 미친 듯이 흔들어대어 갈가리 찢어놓겠다는 것이 그의 속마음이었다.
“에라더 왕자님.
저희 클라우젠 변경백령은 이 히스파냐를 위해 국경 임지를 맡았습니다.
중앙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마다하고 말이죠.
히스파냐가 나날이 성장하는 동안 클라우젠은 왕국을 위협하는 적들과 매번 힘겨운 싸움을 치렀고 피해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왕국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했고, 그런 노력과 희생을 알기에 여태까지의 히스파냐 국왕 전하들로부터 그 의무에 어울리는 권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권리를 에라더 왕자님께서 침범하시려 하는군요.”
“시, 시온 공자!
그런 뜻이 아니야!
내 말은 그저 이 왕국을 위해···.”
“이 왕국을 위해 여태까지 희생한 클라우젠이고, 전 그 가문의 후계자입니다.
성인이 되자마자 전장으로 나서 대승을 거두었고 누디아의 침략군을 물리쳤습니다.
그 뿐입니까?
왕국과 왕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노예시장을 발견하여 지워냈고 이종족들의 반발심도 빠르게 억눌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북부로 올라가서는 왕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야만 부족과 담판을 짓고 이어서 감히 왕국에 해가 되는 짓을 하고 있던 북부의 귀족 무리들을 전부 처단했습니다!
전부 이 왕국을 위해!
히스파냐를 위해!
왕실을 위해 한 일이었습니다!”
여태까지 상당히 조용한 모습을 보이던 이가 갑자기 흥분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화까지 낸다면 그 효과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괜히 ‘조용한 놈이 화나면 그게 제일 무섭다.’ 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참고 있던 만큼 안에 쌓인 것이 많기 때문이니까.
“지금도 그렇습니다!
해적들의 성난 기세를 완전히 무너트리고 거점까지 타격하여 완벽한 기회를 만들고서 돌아왔는데, 거기서 왕자님은 제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국왕 전하마저 결코 함부로 하신 적이 없는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권리에 정면으로 침범하셔서는 오직 국왕 전하만이 내릴 수 있는 명령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이게 ‘다른 뜻’ 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를 압박하여 얻는 거라고는 오직 분열뿐인데, 전시 상황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왕자님이 가장 잘 아실 겁니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무리 대귀족 가문의 후계자라고 해도 왕자에게 저리 큰 소리를 낼 수는 없다.
왕실 모독죄로 잡혀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방아쇠는 에라더 왕자가 먼저 당겼고, 그 앞에 서서 공격 대상이 된 이는 여태 왕국을 위해 헌신하던 남자였다.
거기까지만 해도 이미 충분히 국왕에게 질책을 받을 만한 일인데, 심지어 그 방아쇠는 오직 국왕만이 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른 건 다 어떻게 넘어간다고 쳐도, 오직 국왕만의 권리를 건드리는 건 어느 누구라도 해도 결코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지.’
가장 높이 있는 권력자일수록 누군가가 그 권력에 도전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아무리 친한 벗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부하라고 해도, 그리고 심지어.
‘부모자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지.’
한편, 시온의 일갈을 들은 에라더 왕자는 이를 악물고 있다가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영원히 자신의 편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전부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왕실에 대한 충심?
아니면 국왕의 권한에 도전한 어리석은 자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아니다, 전부 아니다.
저들은 지금 더는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자를, 오히려 자신들의 목을 조를 수도 있는, 최악의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은 ‘지뢰’ 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항상 조심했어야지.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하는 이는 그 와중에 떨어지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셈인데.’
말 그대로 사람 하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시온은, ‘전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성공적인 퇴근에 들어갔다.
―――――――작품 후기―――――――
출근이야말로 진정한 지옥이다―친구놈
선추코는 항상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