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190)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190화(190/439)
190―――――
저기요, 그 앞은 지옥입니다
에라더 왕자와 브레멘 백작이 지휘하는 해군이 사르데나 항구를 빠져나가기 시작한 건 원래 예정보다 늦은 시간인 오후 때였다.
원래는 오전 중으로 출항하려 했으나, 갑작스레 강풍이 불어 도저히 출항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점심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바람이 잠잠해지자 비로소 출항을 시작하는 배들을 바라보며 브레멘 백작이 슬쩍 입을 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내일 아침으로 출항을 미룰 것 그랬습니다.
이러다가는 얼마 가지도 못 하고 해가 떨어지겠군요.”
“글쎄요, 백작님.
기껏 출항 준비를 다 마쳐놓은 배들이 항구에 하루 더 정박해있다가는 오히려 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에라더 왕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브레멘 백작은 슬쩍 눈썹을 치켜세웠다.
최소 1주일 이상의 항해를 위해 준비를 전부 마친 배들이 항구에 그대로 있다가 만약 사고라도 난다면 그 때는 정말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배도 배고, 사람도 사람일뿐더러 물자가 소실되는 것도 출혈이 클 테니 말이다.
“야간 출항이 위험한 것이지, 야간 항해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난 히스파냐의 해군들을 믿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에라더 왕자가 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취하고 있음을 브레멘 백작은 놓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틀 전에 있었던 시온 클라우젠과의 약간은 의도치 않은 언쟁으로 인한 듯 했다.
‘아니, 정확히는 언쟁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
왕자님이 일방적으로 밀렸으니까.
시온 클라우젠 공자가 아주 제대로 찌르고 들어왔어.’
원래라면 브레멘 이시크 백작 자신이 나서서 두 사람을 말렸을 것이다.
왕자라는 이가 클라우젠 변경백령이라는 히스파냐의 충성스러운 방패를 압박하는 꼴은 결코 좋은 광경이 아니었고, 그 가문의 후계자가 왕자에게 ‘다른 뜻’을 운운하는 것도 옳은 그림이 결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에라더 왕자가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는가?
라는 말이 나오자 브레멘 백작마저 바로 입을 다물고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에드가 4세의 건강이 요즘 들어서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허수아비 국왕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답할 귀족들이다.
그 강성한 귀족들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히스파냐를 안정적으로 다스리던 군주다.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진중하고 고요한 모습의 남성이지만, 그 안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들어있음을 브레멘 백작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국왕이, 제 아들놈이 부왕의 건강이 안 좋다고 해서 벌써부터 자신이 왕이라도 된 것 마냥 명령을 내리고 귀족들을 압박하는 행태를 보이면 과연 에드가 4세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리 왕실의 힘이 강하다고는 해도 귀족들을 대놓고 압박하지는 않는다.
괜한 분란을 일으켜 왕국에 피해가 가는 건 국왕 입장에서 보면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클라우젠 변경백령을 압박하며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그걸 바라보면서 어느 누구라도 잘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다른 보통의 귀족이라면 또 모를까, 하필이면 요즘 들어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에라더 왕자님이 너무 흥분하셨었어.’
아마 에라더 왕자의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대놓고 거절을 당해본 적은 없을 것이다.
웬만한 귀족들은 알아서 양보를 하고, 대귀족 가문의 수장들도 괜히 왕실과 부딪치기 싫어서 조심을 하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온 클라우젠은 아주 교묘하게 에라더 왕자를 자극해서 자신이 아니라, 왕자가 먼저 검을 뽑게 만들고 그도 모자라서 자신의 목에 겨누게 만들었다.
‘도대체 어떤 남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능력 있고 충성심 높은 젊은 귀족인 줄 알았는데, 하는 말이며 내는 분위기가 너무 노련하다.
바네사 왕녀님은 시온 클라우젠의 이런 부분까지 알고서 그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밑으로 끌어들이기라도 한 건가?’
브레멘 백작은 이번 해적 소탕이 끝나면, 슬슬 확실히 방향을 잡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태까지는 확실하지 않게, 살짝은 모호하게 에라더 왕자를 지지했지만 이제 더는 그런 수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국왕도 자신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후계자를 지목할 분위기였고, 그에 따라서 히스파냐의 정계가 한 번에 뒤집어질 수도 있음이었다.
그 뒤집어지는 정세에 휩쓸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느냐, 아니면 그 흐름에 알맞게 올라타서 지금보다도 더 먼 곳까지 함께 나아가느냐, 브레멘 백작은 물론이고 남부의 모든 귀족들이 아마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있으리라.
‘왕자님.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이자, 역전의 발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핀 부대를 이용해서 승리를 거둔다면 그저 시온 클라우젠 공자를 더 띄워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그들이 없어도 승리를 거두신다면 그건 온전히 왕자님의 능력이고 공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이번만큼은 평소 자신이나 다른 귀족들에게 보여주던 모습을 보여달라고,
브레멘 백작은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
만에 하나, 이번에도 기대 이하라면 자신도 결국 왕자를 버려야 하니 말이다.
“백작님!”
이 때, 막 배 전체를 총괄하고 있던 선장이 다급한 기색으로 다가왔다.
“방금 전 들어온 소식인데, 주변 항구에서 같이 맞춰 출발한 함선들이 저마다 해적선들과 조우했다고 합니다.”
“해적 놈들이?
아니, 이놈들이 추격이 힘든 먼 바다로 도망을 간 것이 아니라 항구를 습격하려 했다는 건가?”
“정황 상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브레멘 백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만약 이 상태로 출항을 하루 뒤로 미루었다면, 밤중의 항구 안에는 정신 사납게 꽉 차있는 함선들로 인해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고, 반대로 해적들에게는 먹음직스러운 표적이 가득할 뻔 했던 것이다.
브레멘 백작은 잠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서는 에라더 왕자에게 향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왕자에게 설명을 하고는 결정을 기다렸다.
“···해적 놈들이 겁을 먹고 물러나기는커녕 때를 놓치지 않고 항구를 노리려 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머리가 돌아가는 이가 해적들을 이끌고 있는 모양이군요.
좋지 않은데.”
에라더 왕자는 초조한 기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긴장을 하면 실수가 잦아짐을 잘 알고 있는 브레멘 백작은, 부디 그가 이상한 결정을 내려서 자신이나 선장이 그 의견에 반발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다른 항구를 두고 사르데나만 그대로 두지는 않겠죠, 백작님.
가장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인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왕자님.
분명 사르데나를 노리고 다가오는 해적 놈들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현재 어디까지 나온 상황입니까?”
“연안 지역을 벗어나긴 했지만 사르데나와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분명 이 때쯤에 사르데나를 노릴 해적 놈들이 나타나야 할 터인데···.”
바로 그 순간, 갑판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좌측 해적선의 활대 발견!”
“놈들이 우리 배를 발견했습니다!
급히 선수를 돌려 이탈하려는 모양입니다!”
“왕자님, 어찌 할까요.
적들이 사르데나 역시 노렸던 모양입니다.”
브레멘 백작의 질문에 에라도 왕자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자신 역시 이게 마지막 기회임은 아주 잘 안다.
그러니 아무리 다급해도, 아무리 긴장되어도 실수를 하거나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일단 놈들을 추격하도록 하죠.
다만 슬슬 날도 저물고 있고 놈들이 무슨 수를 쓸지 모르니 너무 무리하게 추격할 필요는 없습니다, 백작님.”
“알겠습니다.”
요컨대, 혹시나 모를 후방 침투를 경계하는 모습.
그 바람직한 결정에 브레멘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선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선장 역시 그 정도면 따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명령임을 확인하곤 급히 기함으로서 해적들을 추격할 것을 명령했다.
신호기가 올라가자 주변에 있던 해군 함선들이 각자 속도를 올리며 저 앞에서 열심히 바람을 타고 먼 바다로 도망치고 있는 해적선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의 끝, 노을이 거의 수평선으로 저물어가던 바로 그 때.
마침내 에라더 왕자는 해적선들의 꼬리를 잡는 데에 성공했다.
시온 클라우젠이 이끈 승리로 해군들의 사기가 바짝 올라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전투에 대한 열의가 넘쳐서 였을까.
“왕자님!
왕자님!
우측에!”
선장의 외침에 에라더 왕자는 바로 우측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왕국의 해군들이 해적선들과 전투를 벌일 때 배들을 포위하여 수로 밀어붙이려는 작정이었던 듯, 우측에서 또 다시 몇 척의 해적선이 나타난 것이었다.
‘설마 이것들이 항구를 노리는 척하면서 해군을 끌어들이려고 한 건가?’
에라더 왕자는 쯧, 하고 혀를 차며 조금은 골치가 아파졌다고 생각했다.
그가 우측에서 달려드는 해적선을 바라보면서도 저번처럼 긴장하지 않는 이유, 그건 그들 뒤에서 또 역으로 그들을 쫓아 맹렬히 달려오고 있는 왕국의 또 다른 해군 함선이 있어서였다.
아무래도 다른 항구를 기습하려던 해적들이 도망치는 와중에 아군을 보곤 숫자로 먼저 해군 함선을 제압하려는 속셈이었던 모양.
그에 에라더 왕자나 브레멘 백작은 해적 따위에게 배를 또 내어주지 말라고 외치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 근래 상당히 소극적으로 나서 불만이 쌓여있던 와중에 시온 클라우젠의 대승이 전해져 몸이 근질근질했던 해군 인원들은 평소보다도 더욱 거세게 해적들을 몰아붙였다.
해가 반 넘게 기울어 이제는 싸움도 무리라고 판단한 것일까.
결국 해적들이 자리에서 이탈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수많은 해적들이 왕국 함선 위에서 싸우고 있는데, 줄을 자르고 돛을 펴서 도망을 치려는 것이었다.
“놈들이 도망가려고 한다!”
“막아!
막으라고!
여기서 놓치면 또 이놈들을 찾아 고생해야 한다!”
넓은 바다가 부족해질 정도로, 수많은 배들이 얽히고 얽히며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갔다.
거기에 더해서 날이 어두워지며 상대적으로 시력을 통한 상황 판단이 불확실했고, 해적들은 그들대로의 사정이 있어서, 그리고 해군들은 여태 신나게 털려놓고 감히 겁도 없이 자신들의 앞마당까지 온 도적 떼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겠다고 완벽히 엉켜버렸다.
‘이건 좋지 않은데!’
에라더 왕자가 타고 있던 배의 선장을 맡고 있는 남자는 열심히 지휘를 하며 생각했다.
원래는 빠르게 해적선들을 제압하고 항구가 멀지 않으니 근처로 돌아가서 정박하던가, 아니면 야간 항해라도 하는 것이 맞았다.
이렇게 온갖 배들이 얽히고설켜 통제도 잘 안 되고, 명령 체계도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리는 그림은 지휘자로서 결코 반길 만한 사항이 아니었다.
해적들도 해적들이지만, 해군 함선들도 계속 몰려들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날도 어둡고, 그런데 적들이 사방에 몰려있고, 결정적으로 에라더 왕자와 브레멘 이시크 백작이 있다고 하니 해군들도 해적들을 물리치고 두 상급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저돌적이다 못 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들러붙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현실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왕자님!
저기!”
바다가 어둠으로 물들기 직전, 브레멘 백작과 에라더 왕자는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항구로 내달리고 있는 수십 척의 해적선들을.
마치 바로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미친 듯이 속도를 내는 적들을 말이다.
“도대체 이 해적들이 전부 어디서!”
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일단 얽히기 시작하면 어지간해서는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해상 전투의 특성으로 인해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낮이었다면 사전에 발견해서 다른 함선들에게 명령이라도 내렸을 터인데, 야간전으로 진행이 되면서 시야도 좁아지고 눈앞의 전투에만 집중하다보니 결국 저들을 놓친 것이었다.
‘좋지 않아!
위험해!’
에라더 왕자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어찌 할 수가 없는 사태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사르데나에 아무리 남은 함선들과 병사들, 그리고 그 강력한 그리핀 부대가 있어도 저렇게 밤바다에서 은밀히 접근하는 적들을 전부 제압하기는 무척이나 힘들다.
일단 항구 안으로 들어가서 저들이 난리를 치면 여태 쌓아둔 모든 승리는 그 불길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고, 해적들에게 사르데나가 공격당했다는 최악의 수치만 남게 된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시온 클라우젠, 현재 사르데나에 머물면서 방어를 맡고 있을 인물.
동시에 며칠 전에 자신에게 끔찍한 경험을 하게 해준 바로 그 남자.
에라더 왕자는 바로 그 시온 클라우젠을 믿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크으윽!
시온 클라우젠!
반드시 저 망할 놈들을 막아야 한다!
저들이 사르데나 항구를 점령하고 방화와 약탈을 저지르기 시작하면 아무리 큰 승리를 거둔 너라고 해도 왕국민들의 입에서 방어에 실패한 자로 이름이 오르내릴 거다!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크아아악!’
한편, 해군들에게 아주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던져준 캡틴과 그 휘하의 해적들은 딱 한 번 있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
사르데나 항구를 점령하고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자신들은 도적 떼다.
군사적 목표를 띄고서 움직인다기보다는,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해서.
그리고 기세가 잔뜩 달아오른 해군들에게 한 방을 먹이고 이전처럼 소극적인 자세를 강제하기 위해서 지금과 같은, 말 그대로 자살행위에 아까운 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밤이 걷히고 왕국의 군대가 밀고 들어오기 전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피해를 주고 빠져나가야 한다.
그것이 캡틴이 내놓은 현재 상황을 위한 타개책이었다.
“항구로 진입하면 선두는 빈 배부터 장악하고 움직이지 못 하게 해.
왕국의 병사들이 와서 지랄하기 전에 방해물 쌓고 버텨!
최대한 막고 막으면서 다 불태우고, 다 조지고 빠르게 빠져나간다.
바다 위에 있는 동료들이 뒈져가면서, 피와 목숨으로 벌어준 시간이다!
이 개새끼들아!
명심해라!
이게 마지막 기회다.
여기서 쫄아서 움츠리면 결국 다 잡혀서 고기밥이 되거나 목이 매달리는 거다!
알겠냐!”
캡틴의 고함에 해적선원들이 저마다 악을 쓰며 역시 소리를 지른다.
여태 교역선을 약탈하고, 항구를 공격하기도 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공격을 하기는 자신들도 처음이었다.
죽으러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완벽히 지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항해를 하는 와중에 머리 위에서 불덩이가 떨어져 바다 한가운데에서 꼼짝없이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렇게 열 척이 훨씬 넘는 해적선이 항구로 내달리는 와중이었다.
“···캡틴?
저 앞에···.”
항구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인해, 그리고 달빛으로 인해 어렴풋이 뭔가의 윤곽이 드러났다.
언뜻 보면 군용 함선 같지만, 자세히 보면 교역을 위한 대형 교역선임이 분명했다.
돛의 위치도 그렇고 속도보다는 물건을 더 많이 싣기 위한 구조가 여실히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 커다란 배가 항구로 통하는 입구를 가로막고서는 꿈쩍도 않고 서있었다.
‘그래도 대가리 좀 쓰는군.
그렇게 해서 길을 막겠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야 좋지!
우리 배들을 그 좁은 항구 안으로 들이지 않고 작은 배들을 통해서 상륙하면 그만이니까 말이야!’
오히려 저 큰 배가 항구 안에 정박해 있는 왕국의 배들을 가두는 감옥이 될 것이다.
차라리 안에 정박한 배들을 전부 빼돌려서 바다로 달아나게 해야지, 어쩌면 저리도 멍청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캡틴은 저런 결정을 내린 왕국 측 결정권자를 비웃으며 막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였다.
···화륵.
“···어?”
화르륵!
화르르르르르르륵!
갑자기 사방이 대낮처럼 밝아지기 시작했다.
항구로 내달리고 있던 해적선들 앞에 나타난 것은, 마치 쏟아지는 별똥별마냥 반짝이며 이리저리 휘날리는 불길들.
마치 불꽃이 살아서 춤이라도 추듯 밤하늘을 수놓으며 이글거리는 장면은, 과장 하나 없이 장관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불길에서 나오는 빛으로 인해, 항구를 가로막고 있던 배가 아주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의 배들과는 달리, 평평해도 너무 평평한 갑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위치로 바뀌어져 있는 활대와 완전히 걷힌 돛들.
그리고, 그 배 위에 홀로 서있는 한 여인까지.
“시온님.
당신이 원하는 대로.
전부, 전부 불태워 드릴게요.”
상당히 비틀려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던 불길들이, 순식간에 지옥의 불벼락이 되어 해적선들을 향해 사납게 날아들었다
그 장면을 높은 곳에서 아주 확실히 바라보고 있던 시온은, 이쯤에서 가장 어울릴 만한 대사가 뭔지 고민하다가 오오!
하고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듯 탄성을 내뱉곤 낄낄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아!
모든 걸 가졌건만 남동풍이 없는 게 아쉽구나!”
···참고로 말하자면, 여기서 남동풍이 불었다가는 다 같이 지옥으로 다이빙이었다.
―――――――작품 후기―――――――
에라더 왕자가 왜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초조해 하는지 전편에 설명드렸습니다!
태풍 피해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코로나도 조심하시고요!
아, 그리고 트리샤 일러 제작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