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04)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04화(204/439)
204―――――
죄송합니다.
집에 우환이 생겨서 이만!
“자네를 전적으로 믿으라?”
“예, 국왕 전하.”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시온의 대답이었다.
에드가 4세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잠시 후 ‘크핫!’ 하고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웃어댄 에드가 4세는 ‘정말이지, 황당할 정도로 대단한 청년이군.’ 이라고 혼잣말까지 중얼거릴 정도였다.
“시온 클라우젠.”
“예, 전하.”
“그 어떤 이도 감히 왕의 앞에서 나를 믿으라는 말은 하지 않네.
왜 그런지 아나?”
왜겠는가.
당연히 거기에 걸어야 하는 맹세가 말 그대로 존나게 무겁고, 또 무시무시하니까.
“심려를 끼친다거나, 혹은 기대에 부응치 못 한다면 감히 왕실을 능멸한 죄로 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잘 알고 있군.
그런 의미에서 정말 괜찮겠나?
제아무리 내 딸아이가 그대를 아낀다고는 해도 말을 함부로 하는 신하는 금방 신뢰가 떨어지기 마련이지.
하다못해 국왕의 앞에서 감히 자신을 전적으로 믿으라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말까지 하는 자는 더더욱 말이다.”
네가 지껄인 것에 있어서 책임을 질 수 있느냐.
만약 그 기대에 부응치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경우, 그 어떤 선처나 용서도 없이 극형을 받을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느냐, 라는 질문이자 경고였다.
아마 보통의 귀족들이라면 눈치를 보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거나 아니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기 위해 애써 돌려서 말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아주 매끈한 혀 놀림으로 상대를 현혹시키던가.
‘하지만 이 아저씨 앞에서는 전부 부질없는 짓이야.’
원래부터 머리가 좋은 국왕에다가 지금은 자신의 병세로 자칫 왕실이 흔들릴까 바짝 날을 세우고 쳐내야 할 자와 품에 안고 갈 자들을 구별하여 후계자에게 넘겨주려는 에드가 4세다.
이럴 때에는 괜히 혀를 놀려서 경계심을 사는 것보다 그냥 담백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더 좋을 것이었다.
“저는 행동으로 증명했습니다.”
“흠?”
“최소한 이 나라와, 왕실에 피해를 줄 사람은 아님을 말이죠.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제 삶을 살아갈 겁니다.
그리고 그런 제 삶에서 이 히스파냐와 왕실은 절대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위해서 여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으로 왕실과 왕국을 위해서 또한 힘껏 싸우고 있었다.
이런 소리인가?”
그에 시온은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그 어떠한 것도 믿을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눈 먼 충성심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국왕 전하께서도, 그리고 바네사 왕녀님도 알고 있을 겁니다.
오히려 저처럼 이리 목표가 명확한 신하를 곁에 두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방책이 아니겠습니까?”
시온의 대답에 에드가 4세는 하?
하고 탄식을 내뱉는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짧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군.”
“···.”
“내가 알던 클라우젠은 약간은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고지식하고 단단한 뭔가가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대와 같은 후계자가 튀어나와 이리도 골치를 아프게 하는 것일까.”
“칭찬은 감사히 듣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시 웃음.
에드가 4세는 그렇게 계속 웃어대다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손을 들어보였다.
“그대의 뜻은 잘 전해 들었다.
이거 원, 장난 한 번 더했다가는 무거운 분위기에 질식사할 수도 있겠어.”
도대체 방금 전의 어느 부분이 장난이었다는 건지, 시온은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그렇게 정색을 하고 몰아붙여놓고서는 또 저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평한 모습을 보이는 에드가 4세를 바라보며 확실히 국왕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을 깨닫는 시온이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말씀이신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반문하는 건 썩 유쾌하지 않군, 시온 클라우젠 공자.
아들 녀석은 이제 완벽하게 자신의 자리를 잃었고, 딸아이는 진작 내 명령을 확인했을 것이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 지라 선택을 해야 하기에 귀환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겠지.”
“···.”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딸아이만 돌아오고 원정군은 다른 이에게 지휘를 맡겨 계속 운용하는 것이 맞겠는가?
아니면 전부 왕국으로 들이는 것이 맞겠는가.”
아마 히스파냐가 신성 프러센과 같은, 극성맞은 빛의 교리를 믿는 자들로 득실댔다면 이런 고민은 하등 가치도 없는 것이리라.
어떻게 선포한 성전이고, 어떻게 다독여서 결성한 원정군인데 칼 한 번, 창 한 번 휘둘러보기도 전에 허무하게 끝난다면 그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히스파냐는 신성 프러센이 아니다.
그리고 왕실은 왕국의 안정을 위해서 빛의 교리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기는 했지만 그것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빛의 신도들을 은근히 경계하며 국가보다 종교에 더 심취하는 자들을 날카로운 눈매로 지켜봤고 말이다.
‘히스파냐가 요 얼마 전부터 극성맞은 빛의 신도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는 건 귀족들이라면 대충 알고 있는 사실이지.’
처음 들여올 때만 해도 분명 그 뜻은 좋았다.
대륙의 악과 불의를 심판하고,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하며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으니까.
결국 그것들이 왕국의 통치 이념과 같았기에 지배자들도 빛의 교리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이 세를 불리는 것을 딱히 막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순수했던 것들이 변질되고 타락했다.
가난한 자들, 낮은 곳에 있던 자들을 위해 존재하던 것들은 어느 순간 부유한 자와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을 위한 무기가 되었다.
알게 모르게 유착이 되고 더 무서운 속도로 세를 불려가 이제는 빛의 교리를 믿지 않는 자들이 이단으로 불릴 수도 있는 시대 바로 직전까지 들어섰다.
‘성전은 그 마지막 그림을 위한 붓질이지.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공공의 적이라고 하는 마족이 대륙에서 사라지면 이제 빛의 교리는 힘을 잃는다.
악이 사라졌는데 선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들은 어떻게 할까?
그야 당연하다.
새로운 ‘악’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이 그 악이 되어도 되고,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 악이 되어도 좋다.
그렇게 해서 또 쳐내고, 또 쳐내다 보면 결국 모두가 이성을 잃은 채 그저 빛의 노예가 되어서 오직 그들의 뜻이라고 중얼거리며 미래를 기다리게 된다.
‘천족은 바로 그 때를 노리고 있겠지.
저항하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 손에 피 흘리고 다쳐서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할 이들을 또 악이라고 정화하면서, 그렇게 해서 끝까지 자신들은 구원을 위해 내려온 존재들이라고 말이야.’
이미 신성 프러센은 통째로 넘어갔고, 누디아는 거의 작업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히스파냐도 누디아와 같은 길을 가야 했으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히스파냐를 먹어치우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판단한 천족들은 히스파냐를 혼란에 빠트려 자신들에게 기대게 만드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누디아의 계속되는 공세, 북부 야만족의 준동, 남부의 해적, 이종족들의 갑작스러운 습격, 그리고 갑작스레 날뛰는 몬스터들까지.
천족들의 종자라고 자칭하는 요정들이 합세하여 만든, 아주 대단하신 작품들이 그것이었다.
자연스레 불안감이 증폭되고, 그런 와중에 ‘사실은 이게 모두 마족의 짓이었다!’ 라는 불똥 한 번만 날려주면 그게 순식간에 거대한 화마가 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덕분에 성전을 일으켜서 귀찮은 마족들을 다른 이들의 손을 빌려 제거할 수 있고, 동시에 자신들에게 반항할 수도 있는 자들의 힘도 완전히 빼놓을 수 있었으니까.
‘분명 그렇게 흘러갔지.
소설 내용상으로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아니야.’
놈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줄 생각?
물론 없다.
어떤 이들은 적당히 끌려가주다가 뒤통수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시온은 그것만큼은 절대 사절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미 국왕 전하께서는 답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시온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에드가 4세가 결정을 내리지 못 해서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묻는 건 아닐 것이다.
분명히 자신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니 저런 질문을 하고 있겠지.
그리고 시온은, 그 기대에 완벽히 부응할 생각이었다.
“답을 알고 있다?”
“이전의 히스파냐는 성전을 거부할 마땅한 명분이 없었지요.
오히려 왕국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빛의 신도들에게 저항을 살 수도 있었으니 국왕 전하께서도 성전을 주장하는 신성 프러센의 요청을 받아들이신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랬고말고.
한데 그것이 왜?”
“이제는 원정군을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 명분이 생겼지 않습니까.”
변화의 바람이 불기 직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혼란이 일어나지 않게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에라더 왕자를 제치고 바네사 왕녀를 차기 국왕으로 정하겠다고 하면 일시적으로나마 귀족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아들, 그것도 첫째 자식을 두고 굳이 혼란의 소지가 있는 둘째 자식을 차기 국왕으로 정했으니 분명 차후 왕국에 혼란이 올 수 있다면서 말이다.
심지어 바네사 왕녀를 지지해줄 수도 있는 세력들이 전부 성전에 참전하여 나중에 여기저기 상하여 돌아온다면 왕국은 더더욱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음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원정군을 다시 불러들여야 하는 법이지.’
집에 우환이 생겼는데 어떤 미친 집안이 사람들을 전부 밖으로 내돌리겠는가.
당연히 다 불러들여서 일단 집안부터 진정시키고 봐야 할 거 아니겠는가.
그걸 욕하는 놈은, 이해심이 부족하다 내지는 인정이 없다 수준이 아니라 그냥 개새끼였다.
집이 무너져가는데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일을 하면 그게 사람인가?
금수만도 못 한 놈이지.
“경쟁하던 두 사람 중 후계자를 지정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입니다.
거기에 그 후계자가 무슨 귀족 영지도 아닌, 국가 전체를 아우를 차기 국왕의 자리를 놓고 하는 것이라면 말이죠.
당장 어떤 혼란이 찾아올지 모르는데 가장 중요한 ‘군’을 외부로 돌리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흐음.”
“제아무리 대륙을 위해서라지만, 평화니 정의니 빛이니 주장하지만 집이 멀쩡해야 그걸 지킬 가치가 있고, 그걸 지키겠다고 나가서 고생을 자처할 수 있는 겁니다.
집이 불타 무너지고 가족들이 싸우고 있는데 어느 누가 밖에 나가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시온의 열정적인 말에 에드가 4세의 입가에 그려져 있던 미소가 더욱 진해진다.
때마침 시종장이 차를 가지고서 돌아오자 잠시 이야기를 쉬며 시온은 국왕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일단 숨을 고르고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에라더 왕자가 고자가 된 이상 에드가 4세는 무조건 바네사를 택할 거다.
정통성 부분에서 쥐약인 양자라는 카드를 선택할 인물이 아니야.
그만큼 에라더 왕자를 사랑했다면 또 모를까, 눈앞의 이 남자는 자식들보다 나라를 선택할 인물.
당연히 에라더 왕자는 광탈이야, 광탈!’
남부 귀족들의 변화는 얼마 후면 국왕의 귀에도 슬슬 전해질 것이다.
에라더 왕자의 세력이 자연스레 바네사 왕녀 쪽으로 기울었음을 확인한다면 이제 남은 건 성전에 참전할 만한 정도의 규모와 실력을 지닌 군을 바네사 왕녀에게로 넘기는 것이었다.
무력이 없으면 제아무리 정통성이 있다고 해도 다 부질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더더욱 밖으로 나간 군을 불러들여 제 위치에서 대기하게 만들고, 차기 국왕에게 충성 맹세를 해서 새로운 국왕의 치세가 시작되는 날부터 삐거덕거리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
“신성 프러센이 가만히 있겠나?”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위대한 성전이라지만 나라의 주인을 정하는 자리에 덜렁 후계자만 보내고 나라 밖에서 큰일을 치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해하는 모습은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분명 소소한 앙갚음을 하려고 할 거다.”
“···.”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하군.”
역시 눈치가 빠르신 아저씨라니까.
시온이 그런 생각으로 씨익, 미소를 짓자 에드가 4세는 ‘정말이지, 리히텐 변경백의 밑에서 어쩌다 이런 녀석이 튀어나왔을까?’ 라고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예상을 하고 있었다면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 생각해두었겠군.”
“어느 정도는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그대 같은 이가 도대체 왜 지금의 자리에서 만족하려는 건지 모르겠어.
다른 자들 같았다면 3후작 체제를 4후작 체제로 바꾸려고 한다거나, 더 심하다면 국가의 전복도 노렸을 만한데 말이야.”
“장난이 너무 심하십니다.”
“본인은 그렇다고 해도, 주변에서 그리 바람을 잡고 다른 이들이 그렇게 오해를 하면, 장난이 어느새 현실이 될 수도 있는 법이야.
그걸 알아두게, 시온 클라우젠 공자.
때로는 자신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해도 주변 때문에 그걸 지킬 수가 없을 때가 있을 테니까.”
꽤나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역시 어디를 가나 아버지란 존재는 이렇게 다들 현자이신 걸까, 시온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명심하겠다는 말과 함께 찻잔을 머금었다.
“다만 걱정이긴 하군.”
“···예?”
“일이 갑작스레 이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신성 프러센 측이나 누디아로서는 우리 히스파냐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을 거야.
겨우 모여서 이제 막 필멸의 땅으로 들어가야 할 시점에 갑자기 돌아간다고 하니 분명 불만이 생기긴 하겠지.”
“결국에는 이해할 겁니다.
누디아나 신성 프러센에 왕실이 없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집에 우환이 생겼다는데 뭐 어떻게 할 건가?
당연히 놓아줘야지.
괜히 안 놓아주고 시간 끌다가 정말 더 큰일이 생겨서 ‘너 때문이야!’ 라는 말과 함께 적이 되는 순간 서로가 상당히 모호해진다.
‘뭐, 물론 비둘기들이나 그 비둘기 좋다고 따르는 뾰족귀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가기는 해.
아주 훤히.’
아마도 히스파냐가 무조건 마족을 공격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역시, 마족들의 기습으로 위장해서 바네사 왕녀를 해하는 것이라던가.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그거 하지 마.’
그랬다가는, 주인공에게 정말 사지가 뽑혀나갈 지도 모르니까.
‘다리나 날개 없는 치킨은 별로잖아?’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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