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1)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1화(2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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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팔자야!’
노스 경은, 아니 릴리트는 적들의 모가지를 맨 손으로 꺾어버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이 위장한 이 노스 경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주인의 호위다.
그 주인은 클라우젠 변경백의 장자이자 아마도 차기 변경백이 될 남자, 시온 클라우젠.
원래라면 가장 안전한 곳에서 전장의 판도를 살피고 있어야 할 테지만 현재 그는 진형의 선두 열 바로 뒤에서 현장 지휘관으로 뛰고 있는 중이었다.
덕분에 릴리트는 팔자에도 없는 ‘중년 남성’ 기사 코스프레를 하며 검을 휘둘러 적들을 베고, 그 피로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다.
‘씨이잉!
나도 이런 약해빠진 놈들 말고 센 놈들이랑 붙고 싶단 말이야!’
서큐버스 퀸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그녀도 본질은 마족이다.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비겁한 자보다는 명예로운 자에게 끌리는 종족.
그게 아군이든 적이든 가리지 않는다.
상대가 강하다면 기를 쓰고 조지고 싶고, 명예롭다면 또한 명예롭게 아작 내고 싶어진다.
‘김유현이라는 저 놈만 재미 보게 생겼어!’
또 다시 몰려드는 한 무리의 기사들을 향해 미친개처럼 달려드는 김유현.
다른 곳을 보는 걸 빈틈이라고 여겼는지 자신에게 날아든 창을 슬쩍 피한 릴리트는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동시에 ‘으적!’ 하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적 병사의 안면이 그대로 함몰되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
다른 놈은 몰라도 앞쪽에 있는 인간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한편,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기사들에게 날아든 김유현은 가장 앞에서 내달리고 있는 기사를 바로 두 동강 내고 남은 기사들까지 전부 죽일 요량이었다.
하지만 한 기사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바로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푸걱!
히히히힝!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목이 반쯤 잘린 말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원래라면 그 위에 타고 있던 기사는 낙마하여 어디 한 군데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물 흐르듯 부드러운 동작으로 바닥에 안착했다.
그 뒤를 따르던 기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둘을 무시하고는 그대로 전장으로 내달렸다.
원래라면 단 하나의 적도 통과하게 두지 않았을 김유현이었지만, 그는 오직 눈앞의 적에게만 집중한 채 검을 고쳐 쥐고 있었다.
‘시불탱!
저 새끼 뭐하는데?’
덕분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시온이었다.
소설에서 등장한 누디아의 기사단 중 절반을 도륙 내던 이가 바로 김유현.
그래서 이번 전장에 굳이 끌고 온 것이었는데 그거 하나 못 막고 이리로 다 보내면 후방은 어떻게 지키라는 것인가!
‘버스인줄 알았더니 저 새끼가 트롤러였네!
X맨이 이렇게 튀어 나오냐?
니미럴!’
이미 이쪽의 기사들은 누디아의 기사들과 전투를 벌이느라 상당히 지친 상태다.
새로 합류한 저들과 또 싸우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자신이 그냥 보내준 기사들이 앞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듯, 김유현은 앞에 서있는 한 명의 기사와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씹새끼, 도대체 뭐하기에 저렇게 정신줄을 놓고 있는··· 어, 뭐야.
시발.’
순간 시온은 두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원래 소설의 흐름에서는 여기 없어야 하는 이가 김유현과 검을 맞대고 있는 중이었다!
‘지랄, 내가 지금 헛것을 보나?
눈깔에 하자 왔나?’
열심히 두 눈을 비비고 또 비비고, 그 다음에 눈깔에 힘을 빡!
하고 줘본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시온은 자신이 헛것을 본 게 아니라는 걸 자각하고 말았다.
‘···미친!
리시키다 암셸이 왜 여기 있어!’
김유현은 분명 강했다.
무림에서 지존으로 불렸던 남자니까.
하지만 또 다른 세계에서 시작부터 먼치킨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작가의 계략으로 그는 이세계로 전이되면서 상당한 양의 내공을 영구히 잃고 말았다.
거기에 큰 부상까지 입어 자력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던 것을 라이도가 구해준 것이었다.
이후 소설 초반부에서 김유현은 대륙의 여러 실력자들과 부딪치고 겨루면서 강해진다.
주 무대인 히스파냐에서는 라이도, 세바스찬, 그 외에 여럿이 있었다.
그리고 매번 부딪치던 누디아 왕국에는···.
‘지금 김유현이 몸을 얼마나 회복했지?
리시키다랑 싸워서 이길 수 있나?’
기사들이야 김유현이 한 손으로도 때려죽일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검을 맞대고 있는 저 기사는 소설 초반부에 김유현과 동급으로 묘사되던 인물로 천재 중의 천재라고 불리던 여자였다.
김유현이 아직 전성기 시절의 힘을 낼 수 없다면, 리시키다는 딱 지금이 전성기였다!
“공자님!
더는 무리입니다.
적들의 기사들이 아군 진형의 후방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대로 본대가 전멸할 겁니다!”
시온은 이를 악물었다.
김유현이 저런 트롤짓을 해서 상황이 대차게 꼬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리시키다가 그대로 이곳으로 뛰어들었다면 그야말로 ‘좆망’ 트리를 탔을 것이다.
‘안 되겠어.
원래는 주변의 모든 시선이 집중될 때 릴리트를 내세우려고 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이야.
여기서 변경백령의 군사들이 더 다쳐서는 안 돼!’
덥석!
자신의 손을 강하게 쥐는 시온의 행동에 릴리트는 ‘지금?’ 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시온이 생각했던 전개는 변경백령의 군사들이 퇴각할 때 추격하는 적들의 앞으로 가로막고 ‘시끄러워.
이만 하고 집으로 들 돌아가렴.’ 이라고 나른하게 말하는 서큐버스 퀸의 등장이었다.
그야말로 전지전능하신 여신의 등장과 비슷한 컨셉을 잡을 계획이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로 인해 다급히 수정을 가해야만 했다.
“릴리트님, 일단 적 기사들부터···.”
“파이어 볼트!”
엥?
파이어 볼트?
시바, 누가 이런 전쟁터에서 쥐불놀이 급도 안 되는 저급한 마법을 쓰는 거야!
라고 욕설을 내뱉으려던 것이 3초 전의 시온이었다.
그 ‘쥐불놀이’ 급의 화력을 눈앞에서 목도하기 전까지 말이다.
콰아아앙!
‘···예?
아니, 저기요?
내가 아는 파이어 볼트라는 마법의 파괴력은···.’
화염병을 던지는 수준, 딱 그 정도라고 소설에 명시되어 있었다.
저렇게 무슨 네이팜탄 터지듯 일대를 불바다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우아아악!”
“아아아악!”
기사들의 등장으로 당장이라도 변경백령의 군사들을 압살할 듯 몰아붙이던 누디아 왕국의 군사들이 산 채로 불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시온은 다급히 고개를 돌렸고, 마법 영창을 한 곳이 후방에 위치한 지휘관 대열에서 터져나왔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지휘관 대열에서 마법을 쓸 만한 인물은 단 하나.
‘루시아님!’
그렇다, 그녀를 잊고 있었다.
김유현 옆에 찰싹 붙어서 애정을 갈구하던 히로인으로만 보였었지만, 그녀도 나름 실력자로 아버지가 자그마치 라이도다.
늬 아버지 뭐 하시노!
하면 궁정 마법사였는데요, 라고 당당히 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이어 볼트!”
한바탕 불지옥을 선사해준 루시아의 마법이 또 다시 허공을 가르고 날아들었다.
이미 난리가 난 누디아 왕국의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열이 깨졌으니 이제 저들은 더는 군대가 아니라, 그냥 개개인의 사람일 뿐이었다.
‘믿쑵니다!
믿고 있었다고, 젠장!
역시 이래야 떡상 코인답지!’
이렇게 되면 릴리트를 애매한 상황에 불러내지 않아도 된다.
동시에 김유현이 없어도 충분이 이 전투를 이길 수 있다!
라고 생각한 것이 또 3초 전의 시온이었다.
그리고 현재의 시온은, 그 3초 전의 스스로에게 욕설을 퍼부어야만 했다.
“어어어···?”
방향이 이상하다.
처음 마법은 그대로 누디아 왕국의 진형 우측에 떨어졌는데, 지금 날아오는 건 아무리 봐도 상당히 위험해보였다.
그래, 그러니까 이건 누디아 왕국군의 머리 위가 아니라 아군 쪽···.
‘야 이 시바아아아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루시아는 아버지를 닮아서 마법의 화력을 증가시키는 데에는 재능이 있었지만, 마법 자체를 컨트롤하는 건 꽤나 미숙했다는 사실을, 그녀의 재능은 마법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루시아님!
루시아!
쏘지 마!
아군이다!
데인저 클로즈!
브로큰 애로우!
이거 개트롤 짓이야!”
목청껏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떨어지고 있는 핵폭탄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이건 영화마냥 자폭 버튼 따위가 있을 리도 없다.
콰아아앙!
순간 시온은 이대로 눈 떠보면 ‘어서 오세요, 지옥은 당신을 환영합니다,’ 라는 플래카드를 맞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려!”
으어어어.
시온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머리가 띵, 하고 세상이 뿌옇게 보이며 귀에서는 삐이―하고 이명 현상이 느껴졌다.
이대로 그냥 드러누워서 자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금 두 눈을 감으려는 찰나였다.
철썩!
“깨핵!”
찰싹, 이 아니라 철썩이다.
정신 차리라고 때린 게 아니라 배구공 후려갈기듯 친 수준이다.
덕분에 뺨에서 아예 감각이 사라진 시온은 두 눈을 부라리며 몸을 일으켰다.
“뭐, 뭡니까!”
“정신 차리라고, 이 바보야!
변경백이라는 남자가 퇴각 명령을 내렸어!”
“아, 그러면 어서··· 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온은 다급히 손을 뻗어 상대의 얼굴을 매만졌다.
“리, 릴리트님?”
“아, 왜!”
“변형, 변형은 어쩌고요?”
분명 노스 경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할 텐데, 지금 자신이 보고 만지고 있는 건 서큐버스 퀸의 끝내주게 아름다운 얼굴, 탱탱한 볼이었다.
시온이 두 눈을 껌뻑이고 대답을 기다리자 릴리트는 그대로 그의 등판을 후려쳤다.
“게헥!
왜 때립니까!”
“이 개새꺄!
너 죽는 줄 알았잖아!
그런 무시무시한 마법에 네 근처로 떨어지는 순간 변형이고 뭐고 다 풀고 방어 마법 전개했어.
왜, 불만 있어?
그냥 내가 죽여줄까!”
화가 난 것 같은데, 막상 목소리는 울먹거리는 느낌이 강했다.
몸을 일으킨 시온은 그제야 자신이 정말 죽을 뻔 했다는 걸을 눈치 챘다.
일대가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는데, 아마 릴리트의 방어 마법이 아니었다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려서 지금쯤 누군가의 발밑에 잘근잘근 밟히고 있었을 것이다.
“전투는 소강상태야.
네 인간들은 얼마 안 죽었어.
딱 내 방어 마법으로 막아냈으니까.
재수 없게 파편에 맞은 녀석들은 좀 있지만···.”
“아, 고마워요.
누님.”
“인사는 됐고!
시발!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년이기에 파이어 볼트가 무슨 메테오마냥 떨어지는 건데!
내가 살다 살다 그렇게 무식한 기초 마법은 처음 봤다고!
거기에 계산은 할 줄 모른다니?
마법을 던져놓고 그 위치 파악도 못 할 거면 왜 마법을 써준 거야!”
“···그러게요.”
할 말은 많지만 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루시아는 마법으로 대성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어찌 되었든 그녀 덕분에 하마터면 그대로 무너질 뻔한 전선이 불길을 사이에 두고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니 말이다.
카캉!
캉!
그 와중에 김유현과 리시키다는 영혼의 맞다이를 아직도 하는 중이었다.
무슨 탑신병자도 아니고,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 라인이 터지는 대폭발이 일어나든 일절 상관치 않는 그 모습에 절로 경의가 들 정도였다.
‘어찌 되었든 목적은 달성했어.’
성공적으로 기습을 달성했고, 비록 이쪽의 피해도 많이 생겼지만 저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절반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으니 누디아 왕국군은 사실상 전멸이었다.
‘그 리시키다 암셸이 이 타이밍에 저기 있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어차피 초반부의 캐릭터이고 곧 알아서 지워질 등장인물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려나.’
그 흔한 전투력 측정기 역할 한 번 못 해보고 작가에 의해 연기처럼 사라지는 여기사.
나라에 충성을 바쳤지만 돌아온 건 권모술수에 의한 억울하고 잔혹한 최후.
누가 그냥 잡아채가도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 초반 캐릭터.
‘···딱 괜찮은 케이스인데.’
쩝, 하고 입맛을 다신 시온이었다.
리시키다라면 분명 손에 쥘 만한 가치가 있는 등장인물이었지만, 시온 클라우젠과는 접점이 1도 없는 캐릭터다.
심지어 적대시 하고 있는 국가의 귀족과 기사이니, 개인적으로 어떻게 만나볼 수도 없다.
‘포기하자.’
릴리트의 부축을 받으며 시온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주변에 부상자와 전사자들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사태가 급박한 지라 어느 누구도 쉽게 전우들을 챙길 용기를 내지 못 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소대장님!
제발 놓아주십쇼!
친구 놈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미친놈이!
정신 차려!
저 불지옥에 제 발로 들어가려는 거냐!
심지어 적들이 코앞이다!
가봤자 개죽임을 당할 뿐이라고!”
“안 됩니다!
저 친구, 불쌍한 놈입니다.
부모님 다 전쟁으로 잃고 몸 약한 제 여동생 뒷바라지 하겠다고 고생만 하던 놈이란 말입니다!”
“내가 모르냐!
나라고 부하 놈 구하고 싶지 않겠냐고!
하나 구하자고 둘이 다 뒈질 수는 없다는 거다!
포기해, 빌어먹을 놈아!”
“으아아!
지미!
지미!”
한 병사가 버둥거리며 앞으로 달려가려고 하고 있다.
소대장이라 불린 또 다른 남자는 이를 악물며 그를 막고 있었다.
제 부하가 달려가려는 곳은 불길이 여전히 이글거리는 곳, 심지어 아군보다 적군이 더 가까워 근처로 갔다가는 바로 공격을 당할 수도 있는 지점이었다.
“포기하라고!
젠장!
너까지 뒈질 생각이냐!
네 가족 생각은 안 하냐고!
개자식아!”
“크흑!
지미, 지미···!
지미 페이커!”
혼자만 살아서 돌아간다는, 친구를 버려야 한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미안함, 괴로움에 병사는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동시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저 지옥으로 달려갈 수 없다는 것에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까지 들었다.
그 때였다.
“어, 어어?
야, 야!
시온!
너 어디 가아아아아아!”
여인의 뾰족한 비명 소리와 함께.
“으아아아아!”
한 남자가 미친 듯이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한창 불길이 이글거리는, 누디아 왕국의 병사들이 지척에 있는 곳이었다.
“쏘지 마세요!
누디아 여러분!
시발, 연구소 직원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지껄이며 내달리고 있는 남자는, 시온 클라우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