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16)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16화(216/439)
216―――――
너희는 논하지 말라
돈과 돈이 오고 가는 곳에는 어느 때, 어디나 항상 소위 말하는 ‘VIP’ 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온은 하이네스 상단에게 있어 VIP, 아니 그 이상의 존재, ‘VVVIP’ 수준의 인물이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일단 히스파냐 왕국에서 가지는 이름값이 웬만한 귀족 따위는 상큼하게 씹어서 시원하게 말아 드실 정도로 어마무시한 수준이다.
히스파냐의 대귀족 가문인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후계자로 단순히 방패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창끝의 역할까지 할 수 있다는 인물로 평가 받는 젊은 귀족.
거기에 어떻게 설득을 했는지 소란스럽던 북부의 야만 부족들을 단박에 침묵시키고 역으로 왕국에 해를 끼치던 북부의 귀족들을 망설임 없이 일거에 소탕해버렸다.
그뿐인가?
이번에 남부로 내려가서는 여태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 했던 전략으로 바다 위의 해적들을 그야말로 불쏘시개로 만들어 버리며 두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그들을 모두 정리해냈다.
하나, 하나가 나라를 구한 인물이라고 평가 받아도 모자람이 없을 것을 무려 세 번이나 해냈다.
그것도 별 어려움 없이 너무나 가뿐하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온이 하이네스 상단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인물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클라우젠 변경백령과의 교역권을 내어주고 무엇보다 클라우젠 변경백령과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이네스 상단의 이름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시온 클라우젠, 그 남자 하나와 거래를 한 적이 있다는.
그리고 지금도 거래를 하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어서 오세요, 시온 공자님.”
몇몇 이들은 은밀하게 들어가기도 할 테지만, 시온은 그냥 대놓고 당당히 하이네스 상단을 오고 갔다.
그리고 이번에도 당당히 안으로 들어섰고 말이다.
‘숨기려는 티가 나면, 오히려 벌레들이 더 꼬이는 법이다.’
애초에 자신이 하이네스 상단과 무슨 반역을 꾸미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정보 좀 공유하면서 거래 이야기도 하는 무척이나 정상적인 관계가 전부다.
정말 이를 갈고 있는 놈이 유언비어를 흘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다는 느낌을 주면 사람들은 그의 이름값에 더해서 그 사실 여부 때문에 ‘뭔 개소리야!’ 라고 무시할 확률이 아주 높았다.
“혼자 바쁘네, 헬렌.
그 사이에 왕성으로 올라오고 말이야.”
“저야 돈이 흐르고 정보가 오고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 하는 법이니까요.”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오는 헬렌에게 시온은 미소로 화답하며 앉으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전부터 항상 헬렌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여비서가 급히 다과를 가지러 나가자 헬렌이 평소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미소를 띠곤 말을 이었다.
“일이 많았던 터라 공자님께서 남부의 일을 마무리하시는 것도 보지 못 했네요.”
“볼 게 뭐가 있었다고.
그리고 마무리는 내가 아니라 왕자님이 하셨지.”
“대신 부상을 입으셨고요.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걸 보아 상태가 조금 안 좋으신 모양인데, 괜찮으신가요?”
정말 괜찮은지 묻고 싶어서 저 질문을 하는 건 아니다.
지금 헬렌은 왕자가 정말 부상만 입어서 잠시 쉬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제부터 공식 활동을 철저히 제한하고 권력과 자기 자신을 멀리 하려는 준비 단계에 들어간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이런 사항을 직접적으로 묻는 건 엄청난 무례이고.
무엇보다 내가 답하기 모호한 상황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써서 돌려 말하고 있는 거지.’
확실히 눈치 빠르고 머리도 좋은 여인이다.
이러니 이런 큰 규모의 상단을 운영하고 그 주인으로 앉아있는 거겠지.
더해서 자신에게 꽤나 괜찮은 정보도 물어다주었고 말이다.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조금은 더 누워계실 것 같아.”
“그렇군요.”
“바네사 왕녀님이 원정군과 함께 귀환하시면, 그 때는 조금 괜찮아지시겠지.”
“···아!”
시온이 한 쪽 눈을 찡긋하며 그렇게 말하자 헬렌은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왜 굳이 ‘바네사 왕녀가 돌아오면’ 이라는 말을 했을지 단박에 파악한 모양.
역시 사람이고 요정이고 눈치가 빨라야 마음에 드는 법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시온은 말을 이었다.
“남부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줘서 참 고마웠어.
다른 건 몰라도 빠르게 기술자들을 모아준 것이나 스크롤에 쓰일 재료들을 조달해준 건 네가 아니었으면 빠른 시일 내에 불가능했을 일들이었어.”
“뭘요.
시온 공자님 덕분에 저희 상단이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번창하고 있는데요.
물론 전부 무료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을 공.
짜.
로 해드릴 수 있답니다.”
“상인이라면 공짜로 받아먹는 일도 멀리하고 공짜로 하는 일도 멀리하라고 했는데.
이거 조만간 하이네스 상단이 망하는 거 아닐지 몰라!”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직속 상단에 다시 들어가야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헬렌이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음을 내뱉었다.
바로 그 때 그녀의 비서가 다과를 들고 들어왔는데, 그녀는 상단주인 헬렌의 웃음을 보고는 상당히 놀랐는지 몸을 움찔거렸다.
‘상단주님이 웃고 계신다고?
그것도 저렇게 소리 내서 밝게?’
그녀를 보좌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비서는 그런 와중에 헬렌이 저렇게 밝은 미소를 짓는 건 정말 단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특히 처음 그녀와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정말이지 감정이란 게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삭막하고 싸늘한 상단주였다.
“거기다 놓고 나가서 기다려요.”
지금도 그렇다.
바로 웃음기 싹 사라진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하는 헬렌.
그나마 저 정도면 상단의 인원들 사이에서는 ‘아, 기분이 좋으시구나.’ 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녀의 기분이 엉망일 때면 그 날은 상단 건물 전체가 얼어붙은 것 마냥 차갑기 그지없었으니까 말이다.
“드세요.
공자님이 오신다고 해서 나름 준비를 했으니까요.”
그런데 시온 클라우젠을 대할 때는 바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띤다.
그 변화에 비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까지 저렇게 꽁꽁 얼어붙은 겨울 속에서 살 것만 같았던 고용주에게 비로소 봄이라는 것이 다가온 모양이었으니까.
“남부에서 벌써 여러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요.”
비서가 나가고, 시온이 차를 홀짝거리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헬렌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상당히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왜, 뭔데, 라는 반응의 시온을 바라보았다.
“추모식을 진행하셨다고요.”
“그랬지?
아아, 그 날 비 참 많이 왔는데.”
“그 때 남부의 모든 사람들에게 상당히 인상 깊은 장면을 남기셨다면서요?”
“비 쫄딱 맞은 강아지 꼴이 된 거?”
“아뇨.
비를 맞으면서까지 함께 싸운 전우들의 넋을 달래고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준 전쟁 영웅의 고요한 슬픔이라고 해야겠죠.”
헬렌의 말에 시온은 ‘우욱!’ 하고 입을 가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계산이야 항상 깔려있었지만, 이렇게 닭살 돋는 단어로 들으니 갑자기 상당한 거부감이 든 것이었다.
“너무 띄어주지 마.
상당히 부끄러우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남부에서 전해지는 ‘시온 클라우젠’ 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
“그리고 덤으로, 이런 말도 엄청나게 유행한다고 하던데요?”
“무슨 말.”
시온이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그렇게 반문하자 헬렌은 전보다도 훨씬 더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살짝 시온을 놀리는 듯 한 목소리로 답했다.
“난 설탕이나 소금이 아니다, 라고요.”
“···내 그럴 줄 알았다, 젠장.”
헬렌의 말을 들은 시온은 괴롭다는 몸짓으로 머리를 부여잡곤 낑낑거렸다.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 ‘그런 건 또 왜 퍼진 거야.’ 라고 혼잣말까지 내뱉었다.
덕분에 헬렌은 아하하!
하고 정말 오랜만에 시원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 엄청난 남자가, 국왕이나 왕녀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자신 앞에서 저리 빈틈을 보여주니 왠지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다시는 누구 앞에서 웃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 전에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거라고.
믿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저 남자의 저런 모습을 보면 자꾸만 그런 각오가 흔들렸다.
‘당연히 흔들려야지.
내가 흔들고 있는 건데.’
부끄러운 ‘척’을 하며 고개를 처박고 있던 시온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신들 옆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가 그 끝이 영 좋지 않았던 이들이다.
시온은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그녀들의 미래를 바꾸었고 그도 모자라서 아예 그들을 자신의 옆에 두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호감을 품게 만들고 연심을 가지게 하여 오직 자신만이 통제할 수 있는 완벽한 사람으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헬렌 하이네스는 그녀들과는 다르다.
이미 훨씬 전에 다른 이들의 손에 붙잡혀 무참하게 범해지고 결국 버려졌다.
심지어 동족들조차 몸을 더럽힌 년이라며 헬렌을 밀쳐냈다.
‘이미 다치고 다쳐서 가슴 속은 상처로 가득하고 흉터로 도배가 된 여인이다.
다른 여자들처럼 그냥 밀어붙인다고 해서 내 편이 되어줄 이는 아니야.’
분명 그녀 안에는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그리고 그때의 비참했던 기억을 잊기 위한 방어 기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온은 그 방어 기제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과 사람을 멀리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벽을 허물지 않는 이상 들어가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더 나아가서 이제 그만 악몽 속에서 벗어나 나와 함께 나가자는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조금씩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허물어야 한다.
그녀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 하게.
자신의 빈틈이 드러날까 무서운 이에게 가장 마음이 편해지는 게 뭘까.
아마도 그건, 자신과 마찬가지로 매사에 철저한 이가 막상 자신 앞에 서면 조금은 허술하면서도 편한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닐까.
그래서 그 상대가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확신이 아닐까 싶은 시온이었다.
“너무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만큼 남부에서 시온 공자님의 명성이 드높다는 것이니까요.
당장 승전을 기념하는 이시크 백작가의 파티장에서 그 후계자인 헤먼 이시크 공자가 대놓고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의 공적을 위한다며 건배사까지 했다고 하네요.”
“···그건 예상했다.
조금 특이한 녀석이었지.”
“특이한 게 아니라 사람 보는 눈이 본능적으로 좋은 거죠.
시온 공자님과 헤먼 공자가 같이 해적들을 소탕하고 다녔다는 소식에 헤먼 공자의 이름값도 껑충 뛰었거든요.”
내가 무슨 에어 조던도 아니고 나 덕분에 다들 껑충 뛰었다는 건지.
솔직히 그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남의 입에서 직접 그 말을 들으니 살짝 난감해지는 시온이었다.
자꾸 이런 식이면 멍멍이나 음메나 어떻게 좀 해보겠다고 달려들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두 손 가득 뭔가를 들고 오고 말이다.
‘···미래의 나야.
돈이 최고라지만 너무 많이 받아먹지는 마라.
그러다가 급체해서 아주 뒈지는 수가 있어.
제발 적당히, 적당히.’
미래의 자신에게 미리 걱정 한 번 해준 시온은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남부에서 헬렌, 너와 하이네스 상단 지부가 없었으면 일에 차질이 좀 생길 뻔 했지.
제럴드, 포드 형제에게 줄 작업 대금이나 다른 괜찮은 기술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 그리고 마법 스크롤에 쓰일 재료들 충원까지.
다른 때에는 몰라도 이번에는 확실히 네 덕을 많이 봤어.”
“잘 알고 계시니 다행이네요.
하지만 말씀드렸잖아요?
공짜로 넘어가드릴 수 있다고요.”
“그렇긴 한데, 공짜라고 해도 남는 셈이 있고, 그걸 치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굳이 그러시겠다면 저도 말리지는 않겠지만···.”
헬렌은 내심 자신의 호의가 거부당한 것 같아 살짝 마음이 아팠다.
아주 조금 마음의 문을 열어볼까 했는데 바로 거리를 두는 시온을 바라보며 고맙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은 섭섭하기도 했다.
“이번에 일을 하나 맡게 되었어.”
“네?”
“별 거 아니야.
쓰레기 좀 치워야 하는 일이지.
다만 이게 높으신 분이 부탁한 거라 제대로 내다버려야 하는 일이라 신경이 조금 쓰인다고 할까.”
“···높으신 분이라면, 그렇겠군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갑자기 왜···.”
“내가 눈여겨 본 쓰레기는 둘.
여태까지 구역질나는 짓을 하면서 인생을 살다가 막판에 와서 반성 좀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뒷구멍으로 또 뭔 이상한 일을 하려는 건지 빛의 교단에 들어간 놈들이야.”
그 말에 헬렌이 살짝 놀란 표정을 해 보인다.
신성 프러센이 아니더라도 빛의 교단을 건드리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도 왕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마족들과 그 추종자들의 소행이라느니, 그러니 우리들은 더더욱 빛의 교리를 따르며 정의를 외치고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빛의 교도들이 늘어나는 판국에 말이다.
“시온 공자님, 이런 말씀들 드리는 게 주제 넘는 관여일 수도 있습니다만, 제 의견은···.”
“면밀한 조사 결과, 그 두 놈 모두 과거 노예상으로 활동했던 전적이 있더군.”
노예상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헬렌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헬렌의 그 밝은 미소마저 순식간에 얼어붙어 와장장, 하고 깨지게 만든 시온은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본명은 따로 있지만, 당시 놈들이 활동할 때 썼던 이름은 각각 ‘이다’ 와 ‘류’ 였다고 하더군.
이름도 참, 바로 죽여 버리고 싶은 걸 쓰고 있어.”
시온은 알고 있다.
바로 그 두 남자가 일전에 헬렌을 붙잡아서 노예로 팔아먹은 놈들이란 것을.
어쩌면 불행 따위는 모르고 행복하게 지냈을 지도 모르는 요정족의 소녀를 처참한 삶의 나락 끝으로 내던진 자들이 바로 그 두 남자란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온갖 짓은 다 하고 또 막판에 회개를 한 건지 아니면 뭐가 켕겨서 그랬는지 빛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교도가 되었다고 하더군.
그런데 젊을 적 본성 못 버린다고, 또 이상한 일을 벌인 모양이야.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갈까 생각 중이고.”
“···.”
강하게 쥔 헬렌의 손이 바르르 떨린다.
그 날의 기억들이 분노와 두려움, 증오, 고통, 그 외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로 변해 휘몰아치며 시커먼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안으로 헬렌이 떨어지려는 찰나.
“헬렌.
네 복수는 이제 끝난 건가?”
“···네?”
“아니잖아.
관련자는 다 잡아 족쳐야지.
그래서 그 죗값을 받아내야지.
그래야 복수고, 그래야 진정 네가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헬렌은 복수, 그 하나를 위해 급진파 요정들과 손도 잡았던 요정이다.
자신을 끝도 없이 범하고, 끝내 버린 카슈가르 백작가에 복수하기 위해.
그 무엇도 꿈꿀 수 없는 몸이 된 자신의 슬픈 과거를 위해.
긴 세월동안 속으로 칼을 갈고 닦았던 여자다.
‘요정들이 생긴 것과는 다르게 독한 면이 많으니까.
헬렌도 애써 숨기고 있었겠지만, 자신을 팔아넘긴 노예상들에게 엄청난 증오심을 품고 있겠지.’
다 지나간 일이라는 말, 용서하라는 말, 잊으라는 말.
그 따위 개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지옥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 앞에서 무슨 개 좆같은 소리란 말인가.
시온은 마치 손을 내밀 듯, 앞으로 팔을 살짝 뻗고는 천천히 말했다.
“같이 가지 않을래?
내가 보여줄게.
내가 그 놈들을 어떻게 깨부수는지.
어떻게 곤죽을 내는지.
그래서 그 놈들이 어떤 말을 지껄이며, 울고 불며 잘못했다고 비는지 말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 이를 쫓기 마련이다.
원한 관계에 있는 자를 심판해준 이를 따르기 마련이다.
지옥 속에서 마침내 자신을 꺼내준 사람을 무조건 가까이 하고프기 마련이다.
“나가자, 헬렌.
그 지옥에서.
그 과거에서.
그리고 복수하자.
널 그렇게 만든 놈들에게.”
―――――――작품 후기―――――――
노예상이 그냥이라면 시온은 T.O.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