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1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19화(219/439)
219―――――
너희는 논하지 말라
“누구시오?”
“좋은 말씀 좀 전하러 왔습니다.”
“아··· 교도 분이시오?
잠시만···.”
그렇게 말하며 꽤나 근사한 저택의 문이 열리는 순간.
“월척이구나.”
퍼억!
그대로 중년 남성의 배에 발길질을 꽂아 넣는 시온이었다.
불의의 기습을 받은 파인듀, 노예상으로 활동 할 때는 ‘이다’ 라고 불렸던 남자는 시온의 사나운 발길질에 그대로 배를 부여잡고는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꺼헉!
컥!
크허헉!”
엄살은, 염병.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이럴까.
눈물, 콧물, 타액 등을 얼굴 구멍에서 다 흘리고 앉아있는 놈의 면상을 발끝으로 톡톡 치며 시온은 슬쩍 뒤쪽에 서있던 헬렌을 바라보았다.
파인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얼어붙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이놈이 맞구나, 싶어 그대로 놈을 몇 번 더 잘근잘근 밟아주었다.
‘확실히 북부에서 좋은 기운 좀 받아먹었더니 몸이 아주 날아갈 것만 같네.
호랑이 기운이 쑥쑥 솟아난다는 게 바로 이런 걸까?’
그 호랑이 기운으로 사람 하나를 ‘발닦개’ 로 만들고 있는 시온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밑에 깔린 파인듀를 쓰다듬어주던 시온은 앞서 조져두었던 앤키류, 일명 ‘류’ 까지 싸들고서는 이놈들이 아주 허벌나게 헌금을 했다는 빛의 교단 측 건물로 향했다.
영문도 모른 채 두들겨 맞은 두 남자는 어떻게 저항을 해보기도 전에 시온의 손에 질질 끌려가며 다만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칠 뿐 반항을 할 생각조차 못 했다.
바로 옆에 서서 칼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기사들만 열 댓 명이 훨씬 넘어가서였다.
“그래, 과연 너희들이 그렇게나 돈을 먹인 빛이 너희들을 구해주는가 한 번 보자.”
진정 반성하고 너희 삶을 살았다면, 빛의 후예라는 천족님들이 와서 ‘오오!
나의 충실한 종자들이여!’ 라고 말하며 나를 말릴 거라고, 시온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말인 것이 애초에 이 두 놈은 노예상 짓을 그만 두고도 결국 여인들에게 집적대다가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손찌검을 하려다가 제지를 당한 상태였다.
그 부분을 훤히 알고 있는 시온으로서는 그냥 죽기 전에 죽어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를 읊어준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두 노예상을 질질 끌고 교단 측 건물로 향하는 시온으 뒷모습을 바라보며.
헬렌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점점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무서워.’
처음 그 노예상들의 얼굴을 본 순간 든 생각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세페르 카슈가르 같은 경우에는 매일 같이 자신의 몸을 탐하던 호색한, 딱 그 수준이었지만 노예상들은 그보다도 훨씬 더 잔혹하고 난폭한 이들이었다.
무척이나 거친 방식으로, 마치 짐승을 잡듯 이종족들을 마구 잡아들이던 놈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일단 잡아들여서 반항하는 이들은 역시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매질을 해서 죽음에 이르게까지도 했었다.
그렇게 해서 얌전해진 이들 중, 그녀와 같은 이종족 여인들은 차마 말로 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들을 당하며 고객들의 선호도에 맞게 ‘작업’을 당했다.
누구는 어떤 식으로, 또 누구는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잃은 채 다만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법이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졌다.
‘···나쁜 놈들.
지옥에나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아니, 내가 떨어트리겠어!’
공포, 두려움은 곧 분노와 증오로 변했고 헬렌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쥐며 시온의 손에 붙잡혀있는 노예상들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녀의 몸은 마치 굳어버린 듯 자리에서 움직여주지 않았다.
자신은 이제 노예가 아니고, 저들은 노예상이 아닌데.
헬렌이란 여인은 하이네스 상단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수장이고, 저들은 자신들의 죄를 못 이겨 도망치듯 떠난 쓰레기들일 뿐인데.
‘아아···.’
과거가 자꾸만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만약 저들에게 다가갔다가, 또 잡혀서 처참한 일을 당할 지도 몰라!
도망가자, 도망가.
그 때는 어리고 약해서 제대로 하지 못 했던 그거, 도망.
지금은 네가 더 빠르고, 네가 더 멀리 갈 수 있어.
그러니까 도망가.
복수의 대상들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헬렌은 끝내 그들에게 말 한 마디조차 하지 못 했다.
몸을 잘게 떨며 헬렌이 또 다시 그 지옥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려는 찰나.
“헬렌.”
누군가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또 바보 같이 그 무저갱 속으로 빠지지 말고, 어서 바깥으로 나오라고.
너를 그 지옥으로 밀어버린 놈들을 내가 대신 밀어줄 테니 너는 다만 내 옆에 서서 그 멍청한 놈들을 향해 통쾌한 웃음을 내뱉어주면 된다고.
그녀가 그토록 증오했으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했던 노예상들을 질질 끌고 가며.
당장이라도 그 두 남자를 으깨 죽일 수 있는 그녀의 ‘거래인’ 이 미소를 짓는다.
“시온 공자님···.”
“뭐하고 있어.
어서 와.”
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아니.
진짜 복수라는 건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시온은 표정과 몸짓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헬렌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곤 시온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가 무슨 짐짝 던지듯 두 남자를 교단의 건물로 집어던질 때, 통쾌하기까지 했다.
인과응보라고, 당해도 싸다고, 너희에게 벌을 내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내 사람이라고!
헬렌은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개처럼 바들거리는 노예상들을 바라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희는 그렇게 고통 받아야 해!
더, 더, 더!
내가 흘렸던 눈물만큼, 내가 흘렸던 피만큼, 내가 토해냈던 울음만큼!
너희도 똑같이 당해라, 개처럼 잘못했다고 빌다가 개처럼 질질 끌려가버려!
‘나쁜 놈들, 개자식들!’
시온 앞에서 바들바들 몸을 떠는 두 노예상을 바라보며 헬렌은 온 몸이 간질거렸다.
아아, 그래.
바로 이런 걸 원했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분노하는 바로 저 모습을.
나를 위해서 내 원수를 밟아 죽이는 바로 저런 모습을!
헬렌의 입가에서 그렇게 미소가 번지고 있던 찰나.
갑자기 노예상 중 하나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바, 받았습니다!
받았습니다!
빛께서, 빛께서 저희를 용서하셨습니다!”
용서?
무슨 용서?
그 말을 듣는 순간 헬렌은 어이가 없었고 기가 막혔다.
누가 감히 자신 대신 저들을 용서한단 말인가?
다른 여인들 전부가 저 남자들을 용서한다고 해도 자신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데.
빛이고 천족이고 나발이고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나를 대신해서 그들을 용서한다는 거지?
문 너머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헬렌은 저도 모르게 안으로 뛰어들어가 저들의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 여태까지의 모든 삶이 지옥의 연속이었는데, 너희는 헌금 좀 했다고, 그 잘난 빛의 교리좀 믿고 성호를 긋고, 기도문 따위를 외웠다고 모든 악행이 없어진다는 거야?
처음으로 분노가 공포를 넘어섰다.
헬렌은 또 다시 피가 흐르도록 입술을 깨물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모든 걸 인정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내게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놈들이, 빛이 무슨 자격을 가졌다고 사과했다고 말한단 말인가, 용서를 받았다고 지껄인단 말인가!
“푸핫.”
그 때, 한 남자의 조소가 교단 건물 내부를 가득 메웠다.
날개만 달려있다면 천족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찬란한 외모를 지닌 젊은 귀족.
시온 클라우젠은 그렇게 한동안 웃음을 내뱉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빛이 뭔데.”
“빛이 무슨 자격으로 너희를 용서 해.
빛이 뭐기에, 거기에 용서를 빌어.”
그 말을 듣는 순간, 헬렌은 참고 참았던 뭔가가 가슴을 빠져나와 긴 탄식과 함께 바깥으로 천천히 사라져감을 느꼈다.
“너희로 인해 고통 받은 이들은 여전히 지옥 속에서 사는데.
그들은 죽어서도 너희를 용서할 수 없다는데.
너희는 무슨 오만과 자신감으로 용서받았다고 지껄이나?
빛이 뭔데 마음대로 너희를 용서해.
눈물과 피를 쏟은 수많은 이들이 용서를 못 하겠다는데.
세상 어느 것이 무슨 자격으로 용서를 한다는, 그 따위 개소리를 하는 거냐.”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헬렌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몸을 떨다가, 결국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다.
그래, 나는 저 말 한 마디를 너무나도 기다렸어.
이 지옥 속에서 꺼내줄 그 한 마디를.
네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 이건 모두 그 악마들의 잘못이라는 말.
저들이 죄인이니 그에 합당한 벌을 묻겠다는 말.
“용서 받았다는 그 말, 함부로 지껄이지 마.
그건 돈 좀 준다고 해서, 반성 조금 한다고 해서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상처 입고 피 흘리며 쓰러진 나를 위해주는 바로 그 말을.
“흐윽, 끅흑··· 흐윽!
흑!”
제대로 소리조차 내지 못 하고, 입을 틀어막고서 간신히 울음을 토해내는 요정족 여인.
그러다가 어깨 위에 뭔가가 부드럽게 내려앉는 걸 느끼고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조심스레 들어서 위쪽을 바라보았다.
“울지 마.
억울하잖아?
저런 쓰레기들 때문에 마지막까지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게.”
“흑··· 끄흑···.”
“웃어.
아주 당당하게 웃어.
저런 악마 놈들이 지옥 속에 처박히는 꼴을 바라보며 비웃고, 비웃고, 또 비웃어.
일말의 동정도 없이, 지옥에 떨어져서도 고통 받으라는 저주와 함께.”
“공자님, 시온 공자님···.”
“용서는 저들의 권리가 아니라 네 선택일 뿐이야.
넌 그냥 거기서 예, 혹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면 그만이지.
그놈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방식으로 죄를 뉘우쳤든 상관없어.
네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야.
네가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죄인인 거야.”
시온은 그렇게 헬렌을 다독이며 그녀의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고는 잠시 여인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시온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 대답은 뭐지.
헬렌 하이네스?”
“···.”
“용서해줄 건가?”
그 질문에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기사들에 의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마냥 꾸엑 거리며 끌려가는 남자 둘을 바라보았다.
“그, 그때는 제가 뭐에 홀렸던 것 같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마족!
마족들이 제게 그런 악마 같은 짓을 하라고 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쇼!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죄하고 있습니다!
제, 제게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제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
저게 과연 뉘우치는 자의 모습이란 말인가?
반성하고 있다는, 자신의 죄를 깊이 깨우치고 있다는 자칭 ‘속죄자’ 들이란 말인가?
‘···다행이다.’
그래, 다행이었다.
저들이 여전히 쓰레기, 구제불가능의 오물덩어리들이라서.
혹시나, 정말로 만약에 저들이 진심으로 속죄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며 제 남은 생을 반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면 과연 자신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저 남자들을 온전히 미워하고 증오하고 저주할 수 있을까 아주 조금은 두려웠다.
“다행이네요.”
저 악마들이, 여전히 악마여서.
저 쓰레기들은, 여전히 구제 불가능의 오물 덩어리라서.
“시온 공자님.
이건 제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했죠.”
“그렇지.”
“그러면 조금 억지를 부려도, 떼를 써도 될까요?”
헬렌의 질문에 시온은 말해보라는 듯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몸짓에 요정족 여인은 아주 밝은 미소를 지었다.
비로소 지옥에서 벗어난, 비로소 자신에게 다가와준 누군가의 손을 잡으며, 그녀는 마지막으로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을 흘려보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다 죽여주세요.
저 악마들뿐만 아니라, 저 악마가 친 새끼들도 전부.
저와 이 세상에서 함께 숨 쉬는 것조차 역겨운, 저 쓰레기들의 흔적을 전부 지워주세요.”
단순히 관련자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전부 세상에서 없애달라는, 무척이나 으스스한 부탁.
어쩌면 정말 단순한 부탁일지도 모른다.
들어줄 수 없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니 그만큼 무거운 부탁을 하는 것이리라.
“좋아.”
“···예?”
1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온.
덕분에 헬렌이 오히려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네 부탁이라면 들어줄게.
그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이루어줄게.
난 ‘내 편’ 인 사람을 세상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터라, 그거 외에는 가치 있는 그 무엇으로도 안 봐.”
그렇게 답한 시온은 기사 중 하나를 불었다.
“네, 공자님.”
“저 두 남자들의 가족들까지 전부 잡아와.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반항하는 놈들이 있으면 도시의 병사들까지 동원해서 때려죽이든 밟아죽이든 해.”
“알겠습니다!”
서릿발 같은 명령, 그리고 망설임 없는 대답.
헬렌은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지만 사실 이게 당연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벌을 받는 죄목이 뭘까.
그렇게 따져보면 당연한 일이지.’
노예를 금하는 것은 ‘왕실’에서 직접 내린 명령이다.
그걸 어기면 설사 대귀족 가문이라고 해도 풍비박산을 면치 못 한다.
한 때 히스파냐의 대귀족이라고 이름을 날리던 카슈가르도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고작 해야 빛의 교단 정도에 몸을 의탁하려고 하는 미꾸라지 두 놈이 감히 그 법을 어겼고, 시온의 손에.
그리고 왕실의 손에 들어왔다.
‘미쳤다고 이걸 놓아줘?’
경고를 할 수 있는 기회다.
왕실의 명령을 함부로 거역하려는 자들, 빛의 교단이 대단하다고 믿는 자들.
그들에게 확실하게, 피로서 알리는 것이다.
여기는 히스파냐임을, 왕실의 명을 어긴 자들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전부 끔찍한 결말을 맞이한다고 말이다.
“헬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헬렌이 슬쩍 고개를 돌린다.
시온은 그런 요정족 여인을 바라보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제 더는 그 지옥에 홀로 있지 말라고, 네 편이 있으니 혹여나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와서 도움을 청해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자.”
그 지옥에서, 그 비참한 과거에서 이제 그만 나가자.
헬렌은 잠시 동안 자신 앞에 내려선 진정한 구원의 빛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시온은 그런 요정족 여인의 반응에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여태까지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헬렌 하이네스.”
“···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저도··· 저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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