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2)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2화(2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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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묘사되는 이세계 파트는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다.
각 국가와 종족이 서로의 이득만을 위해 무의미한 싸움을 벌이며 무수히 많은 피와 눈물을 흘리고 후회로 얼룩지게 되는 내전 파트가 주를 이루는 전(前)기와.
그렇게 다 무너져가는 세상에 쐐기를 박기 위해 찾아오는 심판자들과 그들을 막기 위한 상처입고 피 흘리던 자들의 개고생이 후(後)기로 말이다.
전기에서 악역들이라고 불리던 등장인물들이 그래도 뭔가 사악한 짓을 하려 하기보다는 자신과 자신이 포함된 세력의 이득을 위해 그런 것이었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후기에서는 그냥 ‘좆같은 세상 다 불태우고 깨끗하게 리셋하시죠.’ 라는 미친놈들이 주를 이루는, 정말 완벽한 아포칼립스 직전의 상태였다.
‘전기는 주로 김유현과 주변 인물들의 갈등, 그리고 성장이었다면 후기는 그야말로 너 뒈지고 나 산다 식의 무한 데스 매치.’
그리고 그 무한 데스 매치를 이끌었던 이들이 바로 칠익(七翼)이라 불리던 자들 이었다.
그들이 소설에 등장하게 된 배경은, 김유현으로 인한 파워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심해지자 작가가 급하게 준비한 대(對) 김유현 악역들이었다.
문제는 급하게 소설에 등장시키고 그로 인해 설정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느낌이 강했던지라 각각의 칠익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나 이유가 꽤나 불친절하게 설명되었다는 것이었다.
당장 지금도 그런 상황이었다.
‘이 빌어먹을 작가님아!
아무리 설정 끼워 맞추기가 귀찮았다고 해도 그렇지, 사익(四翼)의 오빠가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던 전장이 다름 아닌 여기였던 거냐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오빠가 전쟁으로 죽음.
그 후로 혼자 남은 여동생은 차마 말로 못 할 온갖 끔찍한 일들을 당하고 모진 고초를 겪게 됨.
결국 절망한 그녀 앞에 나타난 건 잘못된 믿음과 거짓된 신념, 그리고 바르지 못한 힘!
이상 설명 끝!
‘설정 존나 빈약해!
내가 차마 막 뭐라고 하지는 못 했지만 진짜 설정 개같이 했다고, 당신!’
독자들이 제대로 된 설정을 요구했으나 전투신으로 가득한 후반부였던지라 흐지부지.
결국 사익이 어떤 고통스러운 삶을 보냈었는지, 그 오빠라는 이가 어디서 죽었는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소설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아무리 애독자라고 해도 작가가 저렇게 나오면 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소설을 볼 때는 ‘설정 진짜 대충 해놓네.
끝물이라고 너무 막 써!’ 가 다였지만.
지금처럼 소설에 ‘당할’ 때는 바로 앞에 일이 닥쳐서 ‘좆됬구나!’를 외쳐야만 했다.
‘하필이면 사익이야.
하필이면 불벼락이고!
하필이면 성이 대마왕 페이커라고!’
달렸다.
정말 미친 듯이 달렸다.
불길이 당장이라도 자신을 불살라먹을 듯 이글거려도, 누디아의 군사들이 놀라면서도 다급히 크로스보우에 볼트를 장전함에도 시온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지 못 했다.
사익, 트리샤 페이커는 단신으로 히스파냐 왕국을 초토화시켰다.
정말 무서운 것이, 김유현이 아무리 죽이겠다고 달려들어도 그녀는 그저 그를 적당히 상대하며 온갖 함정으로 묶어두기만 할 뿐 절대 교전 해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건 모든 생명체들의 말살, 그리고 이 대륙의 멸망이었다.
마침내 김유현에게 따라잡혀 심장이 꿰뚫리는 순간에도 그녀는 한 명의 인간을 더 죽이지 못 함에 아쉬워할 뿐이었다.
‘그 미친년을!
다른 칠익들조차 껄끄러워하던 그 여자를 막을 수 있다!
히스파냐 왕국이, 클라우젠 영지가 위협받을 일이 완벽하게 사라지는 방법!
내가 확실히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한 10퍼센트는 올려줄 방법!’
그 여자만 적으로 돌아서지 않기만 해도 히스파냐 왕국 주식이 상장 폐지될 일은 없다.
내 집인 클라우젠 영지가 폭삭 주저앉을 일도 없다!
라고 생각하니 시온은 없던 힘마저 생겨나는 듯 했다.
“지미 페이커!
페이커가 누구야!
빌어먹을, 들리면 대답하라고!
페이커 센빠이!”
카캉!
챙!
‘···강하군, 이 여자.’
김유현은 라이도를 제외하면 참으로 오랜만에 누군가와 이리도 오랫동안 검을 나누고 있었다.
아직 몸이 전부 회복되지 않았다곤 해도 자신의 검을 이렇게나 받아 내다니.
역시 제 스승의 말대로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았으며 미친놈은 더더욱 많은 모양이다.
“제법이군, 당신.”
여기사, 리시키다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겉으로는 덤덤해보여도 속으로는 무척이나 놀란 상태였는데, 누디아에서 천재라고 불리던 자신의 공격을 이렇게 여유롭게 막아낼 수 있는 젊은 인물이 변경백령에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 해서였다.
“클라우젠 영지에 당신 같은 실력자가 있을 줄은 몰랐어.
혹시나 성에서 대기했다면 기사들이 역으로 전부 당신 손에 죽었을 지도 모르겠어.”
“죽었을지도 모르겠어, 가 아니라 진작 전부 죽였을 거다.
지금도 쫓아가서 도륙을 내고 싶은데 앞에 꽤나 멋진 상대가 있어서 참는 중이거든.”
“제정신이 아니군.”
“여태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진탕에서만 뒹굴어서 그런가.”
말을 끝낸 김유현이 검을 고쳐 잡았다.
상대는 분명 강했지만, 이길 수 없는 적은 결코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의 몸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어느 정도 놀아주다가 숨통을 끊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지금도 상대의 검로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준 것이었고, 이제 그 과정이 전부 끝났다.
남은 건, 상대의 목에 한 줄기 혈도를 그려주는 것뿐이었다.
“지미 페이커!”
막 공격에 나서려는 찰나, 뒤쪽에서 들려온 고함 소리에 김유현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전투 중에 방심은 절대 금물이기는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여태 주시하고 있던 한 남자의 것이라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페이커가 누구야!
빌어먹을, 들리면 대답하라고!
페이커 센빠이!”
한 남자가 미친놈마냥 뛰어다니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불길이 주변에서 이글거리고 있어도, 누디아의 군사들이 크로스보우를 장전하고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아주 열심히, 무슨 먹이 찾는 개새끼마냥 말이다.
“도대체 저게 무슨 짓···.”
순간 리시키다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청년이 누군가를 발견했는지 땅바닥에 주저앉고는, 그대로 한 병사를 짊어진 것이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어떻게 저런 힘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저 생지옥에서 사람 하나를 구하겠다고 저리 나설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공자님!”
“어서 공자님을 보호해라!”
“얼른 진형 갖추고 움직여!”
공자님?
공자님이라니?
설마 저 남자가 클라우젠 가문의 장자인 시온 클라우젠?
화들짝 놀란 리시키다는 자신이 전투 중이라는 것조차 망각한 채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자그마치 백작 가문의 후계자, 모자람 하나 없는 자리에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본인이 손해인 위치에 있는 자다.
애초에 귀족 가문의 후계자는 중요인물이니 전투의 와중에 물러선다고 해서 크게 질책을 당할 일도 없다.
오히려 잡히면 더 피곤한 일이 생기니 뒤로 빠져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남자는 달랐다.
제 병사 하나 구하겠다고 불길을 뚫고 달려 코앞에 적병들을 두고 병사를 들어올렸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귀족은 일개 병사 하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는 것.
쉬익!
‘아차.’
리시키다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마자 바로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며 바람에 흩날렸다.
“전투 중에 너무 한눈을 파는군.”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진심으로 공격하지 않았고.”
리시키다의 말대로, 김유현은 충분히 그녀의 목을 노릴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틈을 주었다.
마치 어서 눈치를 채고 피하라는 듯.
“한 가지 묻고 싶다.
혹 저기, 저 병사를 구하고서 제 진형 쪽으로 달려가는 남자 말이다.”
“그 남자가 뭐.”
“시온 클라우젠, 정말 그 소문 무성하던 변경백령의 장자가 맞나 묻고 싶다.”
“맞다.”
단답 형식으로 대답을 해준 김유현.
하지만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소문이 그리 믿을 만한 것은 못 된다고 하지.”
“···.”
“빌어먹을 스승이 그러더라고.
어쩌면 그 소문도 노린 게 아닐까, 라고.”
그 말을 들은 리시키다는 역시,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김유현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여기사는 검을 살짝 빼며 말했다.
“전투는 이만 하도록 하지.
서로가 많이 상했다.”
“멀쩡한데?
너나 나나.”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리시키다의 말에 김유현은 흘끗 전장을 살펴보았다.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던 전장은 시온의 돌발 행동으로 다시 위기감이 오르고 있었다.
불길이 잠잠해지면 다시금 전면전이라도 펼칠 분위기.
“서로의 기사들도 반 이상이 상했고 병사들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지.
이쪽의 지휘관은 내가 설득할 테니 걱정 말고 돌아가라.
이 전투는 그대들의 승리다.”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거냐?”
“믿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명예를 지키는 기사다.
내 이름과, 내 신념에 걸고 맹세하니.
오늘 전투는 이것으로 족하고 물러서도록 하겠다.”
“···.”
한창 잘 싸우던 상대가 저렇게 나오니 맥이 탁, 풀리고 짜증이 치미는 김유현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검까지 내리는 걸 보니 정말 더는 싸울 생각이 없는 모양.
저런 이를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건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었기에 김유현은 혀를 차면서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름.”
“리시키다 암셸.”
“좋아.
나중에 오늘 못 다 한 승부를 낼 터이니 꼭 다시 만나자고, 리시키다.”
“그럴 수 있다면 나도 좋겠군.”
모호한 대답이었다.
김유현도 리시키다의 대답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상대가 클라우젠 측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리시키다는 시온이라는 이를 떠올렸다.
귀족이라는 자리에 걸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 하나 때문에 자칫 살아남은 병사들 전원이 목숨을 던져야 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기어코 그는 제 병사를 데리고 그 지옥을 빠져나갔다.
‘그런 자를 주인으로 모시는 이들은 행복하겠구나.’
밑의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걸 줄 아는 주인이라니.
리시키다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마지막 명령이다.
리시키다 암셸.’
‘···.’
‘가서 죽어라.
싸우다가 명예롭게.’
‘···네.’
자신은 달랐다.
자신의 주인은 달랐다.
신하의 목숨을 달라 하는 주인, 그리고 주인의 명령을 거절치 못 하는 신하.
옳은 것이었다.
그게 옳다고 믿었던 것이었다.
그저 검으로 만들어져 검으로 살다가, 검처럼 사라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저걸 보고 있으니.’
아주 조금, 미련이 생겼다.
더 살아보고 싶다는, 저 남자의 검이 되어 보고 싶다는 미련이.
―
“네가 미쳤지?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
이 미련한 것아!
어!”
“리, 릴리트님.
제발 진정하시고···.”
“죽어, 그냥 죽어!
내 손에 그냥 죽어!
뒈져버리라고, 이 미련한 것아!”
게핵!
살려주십쇼 누님!
잘못한 것이 있으니 차마 반항도 못 하고 맞고만 있는 시온이었다.
불길이야 어떻게 피해서 간다고 쳐도 누디아 왕국의 화살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온이 이렇게 멀쩡히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릴리트 덕분이었다.
그녀가 미미하게 매혹을 걸어 적들의 시야를 잠시나마 흐릿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미 방어 마법 전개로 어느 정도 회복되었던 마나를 거의 소지한 터라 그게 릴리트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시온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정신을 차린 적군에 의해 고슴도치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했다.
시발··· 내가 진짜 사익을 막았다고···.’
사익의, 트리샤 페이커의 오빠라는 녀석이 산 채로 불에 타서 뒈지거나, 아니면 적들에게 잡혀 노예로 팔려가거나 그냥 교수형 당하는 걸 막아냈다.
이렇게 되면 트리샤 페이커가 사익이 되지 않을 거다, 대륙에 적대적인 눈을 지니지 않을 거다!
“시온.”
옆을 바라보니 리히텐 변경백이 근심이 잔뜩 어린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저런 눈길을 받을 만도 한 것이, 당장 백작가의 후계자라는 놈이 앞뒤 안 재고 뛰어든 것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등장한 마족까지.
“···옆의 누님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가서 해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지겠구나.”
그 말을 끝으로 리히텐 변경백은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시온은 그게 푹 쉬라는 뜻이겠지,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길을 느끼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
“···.”
“···.”
라이온 기사단장도, 루시아도, 그리고 김유현도.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옆에 있던 릴리트를 바라보는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왜요.”
그렇게 반문한 시온이었지만 곧 그들의 시선에서 신경을 끄기로 했다.
앞으로 자신에게 펼쳐진 난관들이 눈앞에 훤히 보여서 였다.
‘당장 릴리트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어.
소설 후반기부터 설정이 막 짜여 있던 터라 누가 어느 때에, 어느 곳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미리 대처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당장 사익, 트리샤 페이커의 경우도 그렇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녀의 오빠는 그대로 사망했을 테고, 기껏 살아남은 영지가 1년 후 그녀의 손에 의해 잿더미가 될 수도 있었다.
‘그저 흐름만 바라보며 대비하는 건 병신 짓이야.
눈앞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 핵 감축 논의를 하고 앉아있는 꼴이라고.’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정보를 모아야 했다.
작가란 놈이 세계관은 방대하게 짜놓고 막상 세부 설정은 회차가 진행 될수록 떨어졌던 터라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만 삐끗해도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차라리 완결이라도 났었으면 또 모르겠는데··· 후, 시바··· 너희는 그런 거 보지 마라···.’
지각 연재를 해도, 말없이 휴재를 해도 항상 작가를 응원했던 자신이었는데.
오늘만큼은 완결을 내지 않은 작가가 그렇게나 미워지던 시온이었다.
[작품후기]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달리는 화랑입니다.추천 선작 항상 감사드려용!
마음 같아서는 막 더 쓰고 싶은데 다른 작품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지라 10연참은 무리입니다 ㅠㅠㅠ;
(그러면 9연참 ㄱㄱ 하시면 미워할 겁니다···.)
여전히 위장 상태로 별로고 역류성 식도염도 나을 기미가 안 보이네요···.
그래도!
매일 2편 연재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김유현은 페이커가 누군지 몰라요.
네, 당연히 lol 도 모릅니다.
불쌍한 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