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20)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20화(220/439)
220―――――
너희는 논하지 말라
“제발, 제발 살려주십쇼!
으아아아!”
“으아아앙!”
“자비를, 자비를!”
어디서 개가 짖나.
시온은 의자에 앉아서 한가로이 귀를 후비적거렸다.
그러는 사이 두 노예상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전부 교수대 앞에 섰다.
저들의 죄목은 간단하다.
감히 왕실에서 직접 엄명한, 결코 해서는 안 될 짓을 벌였으니, 그 죄는 당연히 ‘반역죄’.
그 반역자들의 일가족을 몰살한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우우우우!”
오히려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 꽤나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던 이웃을 향해 돌을 던지고 조소를 머금었으며 온갖 비난을 날려댔다.
저들은 왕실에서 세운 법을 어겼고, 저 죄인들을 심판하는 이는 다름 아닌 히스파냐의 영웅이라 불리는 젊은 귀족이다.
심지어 그 생김새가 마치 빛의 후예라고 해도 믿겨질 만큼 수려한지라 이미 왕국민들의 시온에 대한 호감도는 극에 달해 있었다.
시온은 마지막으로 이 가벼운 연극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
그리고 에드가 4세가 부탁한 일을 완수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 입을 열었다.
“죄인들은 들으라.
너희들은 감히 왕실의 뜻을 어기고 나라에서 금한 일을 벌였고, 단순히 그것을 모른다고 잡아떼며 방조했으니 반역죄로 응당 무겁게 처벌하겠다.
뿐만 아니라 빛의 교도로 위장하겠다고 헌금까지 내며 교단 또한 속였으니 너희들은 죽어서도 벌을 받을 것이다.”
“우우우!
더러운 반역자들!”
“쓰레기!
죽어라!”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지고 교수대 위에 올라간 이들에게 욕설을 내뱉는다.
그렇지 않아도 왕국이 안팎으로 시끄러운 이때에 저렇게 공식적으로 ‘죄인’ 이 된 자들의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그걸 노린 시온은 잠시 이 재미난 쇼를 지켜보았다.
‘너희는 누군가에게 악마였으니, 또한 악마에게 죽을 뿐이야.
그러니 억울해 하지 마.’
마지막으로 시온이 교수대 위에 올라 죄인들의 얼굴을 직접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온은, 노예상들의 가족으로 보이는 한 소년이 목에 밧줄이 감긴 채 울고 있는 장면을 보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이야.”
“흐윽!
흑!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울지 마렴.”
“흑, 흐흑!”
“울면, 내가 마치 나쁜 놈 같잖아.”
그 말을 끝으로 시온은 교수대 위를 내려갔다.
직후 받침대가 일제히 넘어지는 소리와, 사람이 켁켁거리는 소리, 생명체의 숨이 끊어지고 삶이 끝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닥포이 예비 주교.”
시온의 부름에 멍하니 교수대에 매달려 죽어가는 시체들을 바라보던 닥포이 예비 주교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도저히 청년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히스파냐의 젊은 영웅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빛의 교단도 무척이나 분노하고 있겠군요.”
“예?”
“저런 더럽고 구역질나는 자들이 고작 돈으로 빛의 후예들을 따르는 교도 분들을 속이고 스스로를 빛에 숨겨 또 목숨을 연명하려고 했으니 말입니다.”
“···.”
닥포이 예비 주교는 이제 축 늘어져서 대롱대롱 매달린 채 구경꾼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시온 클라우젠이 처형한 건 왕실의 명을 어기고 허튼 짓을 하며 살다가 걸린 죄인들이지만.
아무래도 이 남자를 보낸 히스파냐 왕실은 뭔가 다른 뜻을 전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대지 마라.’
저놈이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헌금을 했든, 그래서 정식 교도가 되기 직전이었든.
빛의 교도라고 해서 그 빛의 용서를 받았든 왕국은 전혀 상관치 않는다.
해가 되었다면, 그리고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이렇게 웃으면서 전부 죽여줄 수 있다.
그러니까, 되도 않는 짓을 하려고 나대지 마라.
“이번 일로 혹 빛의 교단에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군요.
예비 주교.”
시온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미 온갖 소란이란 소란은 다 떨어서 이미 주변의 왕국민들에게 과거 노예상으로 활동하며 온갖 더러운 수로 돈을 벌어들인 자들이 빛의 교단에 돈을 내고 죄를 사면 받으려고 했다는 소문이 퍼진 상황에서 말이다.
당장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도대체 빛의 교단은 뭐하는 집단이기에 저런 쓰레기들의 돈을 좋다고 받아먹고 죄를 사해주었다느니 마느니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저들이 노예상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은 것도 없는데 왜 저리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거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그게 당연한 거 아니겠냐고 답할 시온이었다.
‘왕국민 모두가 왕국의 법을 지키며 힘껏 살아가고 있는데, 몇몇 쓰레기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재산을 축적해서 떵떵거리며 사는데 박탈감이 안 들겠어?’
이래서 세간의 평가라는 것이 중요한 거다.
과거 행실이 개차반인데 과연 누가 그들을 비호해주겠는가.
오히려 저렇게 매달린 시체들을 바라보며 조롱하고 낄낄거리는 것이 전부이리라.
“···앞으로는 교도들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본 후에 그들에게 빛의 교리를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히스파냐 왕실도, 나도 교단과 척을 지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또 다시 성호를 긋는 시온이었다.
물론 ‘척 지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처신 잘 해라.’ 라는 뜻으로 은근한 눈빛을 띠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이걸로 간단하게 임무 완수군.’
미친 듯이 상승 곡선을 그리던 빛의 교단의 평에 확 찬물을 끼얹었다.
역으로 왕실의 권위는 미친 듯이 상승했으며 무엇보다 큰 수확은 역시 하이네스 상단.
그리고 바로 자신의 옆에 서있는 요정족 여인이었다.
‘거래 관계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확실한 내 편.
그런 존재를 위해서 이득과 손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해주는 상단 겸 정보통이 필요한 법이지.’
권력은 닿지 못 하는 곳에도 돈은 흘러들어간다.
이제는 왕국 내부의 일 뿐만이 아니라 외부로까지 시선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외부의 소식을 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보가 필요했다.
양에서도, 질에서도 최대한 많고 좋은 쪽으로.
시온은 이대로 왕성으로 복귀할까 하다가 슬쩍 헬렌을 살피고는 일부러 걸음을 천천히 떼며 그녀가 조금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렇게 일행이 막 다리를 건너던 무렵, 헬렌이 별안간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멍하니 노을이 져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응?”
헬렌의 갑작스러운 말에 시온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살짝 고개를 돌려서 기사들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혹시나 그녀의 과거가 다른 이들에게까지 알려질까 내심 신경을 써주는 모습이었다.
“노예상들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전부 교수대에 목이 매달릴 때.
저는 그래도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은 마음이 편치 않다거나, 아니면 약간의 동정심이 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네 앞에서 수많은 생명이 꺼져감에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묵묵하게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다?”
“네, 맞아요.”
“···.”
“제가 이상해진 걸까요?
인간들이 으레 말하던, 복수에 눈이 멀어서 결국 스스로 괴물이 된.
어디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존재가 된 건가요?”
잠깐의 순간, 시온은 ‘그게 뭐 어때서?’ 라고 눈치 없게 말을 할 뻔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참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자신에게 말 그대로 지옥을 선사했던 놈들이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게 살다가 비로소 죽었다고 한다면 쌍수를 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잘 뒈졌다고 춤이라도 출 시온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너무 고통 없이 죽였다고 불평이라도 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시온은 잠시 헬렌을 바라보다가 멍하니 다리에 기대어 서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헬렌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슬쩍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지.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고.
그 어떤 복수도 결국 마음에 독이 되어 남을 뿐이니 차라리 훌훌 털어내라고 말이야.”
“···.”
“만약에 내가 그런 말을 한 자와 마주했다면, 아마 그 입을 꿰매어버렸을걸?”
상상치도 못 했던 말이어서 그럴까.
헬렌은 화들짝 놀라서는 반사적으로 시온을 바라보았다.
“뭘 모르는 것들이지.
복수가 얼마나 달콤한지.
그렇게나 증오하던 자에게 완벽한 복수를 성공했을 때 허탈감이나 공허함은커녕 환희만이 차오를 뿐이야.
편히 잘 수 없을 거라고?
그런 놈들은 지옥에 빠져서 잠이란 걸 자지 못 했던 놈들이 아닌 거지.
복수를 하고 나면 그 모든 악몽 속에서 벗어나 단잠을 잘 수 있는데, 왜 그따위 말을 하고 앉아있는 건지.”
“시온 공자님···.”
“당연한 거야.
그러니 신경도 쓰지 마.
그놈들로 인해 망가졌던 네 과거를 동정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남은 네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누굴 챙겨.
누굴 생각해.
누굴 용서해.
그딴 말을 지껄이는 놈이 있다면 당장 내게 말해라, 헬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잘난 혓바닥을 뽑아버릴 테니까.”
그래,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감히 당해보지도 않은 주제에 복수는 해롭고 덧없는 것이라고 지껄이는 놈들.
지옥이란 것을 겪어보지도 않은 채 감히 혀만 나불거리는 머저리들.
그런 놈들이 앞에 있다면 시온은 당장 머리통을 깨부수고 곤죽을 만들 생각이었다.
너희가 말하는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어떤 사람에게는 똑같은 단어 하나.
‘지옥’ 그 자체일 텐데 감히 어디서 입을 놀리는 것이냐고 말이다.
“···프훗.”
갑자기 헬렌이 입가를 가리고는 웃음을 내뱉는다.
그 반응에 시온에 예상외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짓자 그녀는 황급히 제 입술을 문지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왜 웃었어.
말해, 헬렌.”
시온이 일부러 정색을 하며 그렇게 묻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게···.”
“그게 뭐.”
“그, 항상 여유 넘치시던 분이 그리 흥분하시고 화를 내시니 조금 새, 새로워 보였다고 할까요.
저, 절대 놀리려던 의도가 있던 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네가 그리 당황하는 것도 꽤나 새로워 보이는데.
시온은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이상한 소리 할 바에 얼른 왕성으로 돌아가자고 쏘아붙였다.
아닌 척 해도, 내심 자신이 포커페이스를 유지 못 하고 감정을 드러냈다는 것에 상당히 불편한 기운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다행이에요.”
발걸음을 옮기던 헬렌이 또 입을 열자 시온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는 무언의 질문에 요정족 여인이 무척이나 편안해보이는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지옥에서 발버둥 칠 때, 공자님의 손을 잡아서 참 다행이라고요.”
“네가 사람 보는 눈이 좋았던 모양이지.”
“아니면 공자님의 상대를 혹하게 하는 매력이 상당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만한 말인데.”
“어쩔 수 없네요, 이게 사실인지라.”
헬렌은 그렇게 말하며 쿡쿡, 웃음을 내뱉었다.
마침내 지옥에서 빠져나와서 진정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돼서일까.
‘이제 마음 놓고 부려먹어도 되겠구만.’
할 일이 태산이었다.
당장 북부에 식량을 계속 대주는 것도 있고 클라우젠과의 무역을 이어가는 일도 있으며 남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왕국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로까지 돌리면 이제는 누디아와 신성 프러센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도 전부 알고 있어야 했다.
이제부터는 왕국 내부만 정리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성전을 거하게 말아먹기는 했지만, 포기할 놈들은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금 그 구역질나는 전쟁을, 하다못해 다른 방식으로 대륙의 힘을 빼두려고 할 거야.’
성전이 허무하게 허물어졌는데도 비둘기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구구구구구!
하며 달려들 것만 같았던 놈들이 너무나도 조용하니 오히려 더더욱 수상해지는 시온이었다.
클라우젠 변경백령만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때에 상단의 힘이 필요하다.
단순히 하이네스 상단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네스 상단을 통해 다른 상단들과 접촉하고, 거기에서 흐르는 돈을 이용해서 다시금 다른 이들에게, 그리고 다른 곳의 다른 정보에까지 닿는 것이다.
‘1차 목표는··· 일단 누디아이려나.’
아마 지금쯤이면 왕이 여인들한테 홀라당 넘어가서 나랏일이고 뭐고 다 뒤로 제쳤을 것이다.
비둘기들이나 뾰족귀 놈들에게는 아마 가장 맛난 먹이 정도로 보일 이웃 나라.
동시에 시온 입장에서는 괜한 파도에 맞기 전에 딱 적당히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방파제와도 같은 곳이었다.
도대체 그놈들을 어떻게 이용해 먹어야 할까.
시온이 마차에 올라서도 그 생각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
헬렌은 왕성에서 출발할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까지 띤 채, 그녀는 두 눈에 뭔가를 고심하는 미청년을 가득 담았다가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피로감에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원래라면 이런 모습을, 빈틈이 잔뜩 드러난 자신을 결코 남에게 드러내지 않았을 테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 되어주겠다고 한 저 사람 앞에서는 조금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어이, 헬렌.
혹시 누디아 쪽에 따로 정보통이···.”
그러다 말고 시온은 제 앞에 앉아있던 여인이 정말 편안한 모습으로 마차의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든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던, 하이네스의 그 철두철미한 상단주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건 조금 선 넘는 건데.’
자신이 무슨 김유현이나 에라더 왕자도 아니고.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너무나 건강한 남자다.
그런 사람의 바로 앞에서 저리 무방비로 잠든 모습을 보이면 도대체 어떤 남자가 본성을 억느를 수 있겠단 말인가!
‘물론 저는 아닙니다, 릴리트님.’
사전 합의도 없이 품에서 외간 여자의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면 그 때는 정말 영혼까지 뽑아먹을 테니 각오하라고 으름장을 놓던 서큐버스 퀸을 생각하며, 시온은 고개를 내저었다.
여태 지옥 속을 헤매다가 간신히 ‘삶’ 으로 돌아온 여인에게 약간의 휴식은 주어도 무방할 듯 했다.
물론, 깨어나면 바로 일거리를 던져줄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작품 후기―――――――
두 눈 부릅 뜨고 감시 중인 릴리트 누님···.
헛, 추천 안 누르시고 가신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