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27)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27화(227/439)
227―――――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전에 있었던 왕실 파티와는 달리 이번 건 일정이 이틀 밖에 되지 않았다.
남부에서의 승리나 북부에서 온 손님을 위한다면 며칠은 더 웃고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게 맞을 테지만 성전에 참전했던 이들을 아무 공도 없이 불러들였으니 거기에 맞춰 일정을 줄일 필요가 있던 것이었다.
아무튼 짧은 일정 때문에 왕성과 먼 곳의 귀족들은 참석치 못 했다.
그럼에도 호아킨 구첸 후작이나 볼코 레데넨 후작, 그리고 에스티아 오네르 후작, 왕국의 3후작이 모두 참석했는데 그들은 이 파티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가 될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에라더 왕자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하하, 걱정해준 덕분에 이제는 괜찮습니다.”
에라더 왕자 역시 일단 파티에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다.
잠깐 덕담을 나누고, 잠깐 미소를 띠고 이야기를 하고.
그러나 그는 파티 초반에만 그곳에 머물렀을 뿐 시간이 흘러 분위기가 무르익자 어느 순간 조용히 파티장에서 사라졌다.
‘새끼, 그래도 눈치는 좀 있네.
자신은 더는 뭘 할 수가 없다는 걸.’
후계자를 볼 수 없다는 건 이런 군주제에 있어서는 치명타 그 자체다.
양자로 해결을 할 수 있다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말 최후의 최후 수준.
멀쩡히 서열 2위의 계승권자가 있는데 굳이 정통성 문제에 휘둘릴 해결책을 쓸 필요는 없었다.
에라더 왕자 역시 자신의 부왕인 에드가 4세가 자신에 대한 미련을 전부 접었음을 눈치 챘을 것이다.
갑자기 앞에 닥친 위기 상황에 약한 것이지 처음부터 돌대가리는 아니니 당연한 일.
“왕자님은 가시고, 왕녀님은 딱히 전공이라 부를 것이 없으니 결국 이 파티는 오롯이 너를 위한 자리가 되겠구나.”
딱히 파티와는 거리가 먼 볼코 후작이 잔을 기울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시온은 슬쩍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요.
후작님, 그렇게 보면 확실히 저를 위한 자리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게 아닐 겁니다.”
“무슨 소리냐?”
“보세요.”
그 말에 볼코 후작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파티장에 길게 머무르는 국왕 에드가 4세, 그리고 그런 부왕의 곁에서 미소를 띤 채 귀족들을 맞이하고 있는 바네사 왕녀.
마지막으로 왕과 왕녀를 살피며 분위기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귀족들까지.
“···드디어 국왕 전하께서 결정을 하신 모양이군.”
“그런 셈이죠.”
“헌데 이상하구나.
왕자님은 남부에서 공을 세워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고, 그에 따라 전하께서는 원정군이 공을 세우기도 전에 급히 불러들여 바네사 왕녀님이 두각을 드러내는 걸 막으려고 하신 것으로 보였다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공을 세울까 걱정하신 게 아니라 혹 바네사 왕녀님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길까 하여 급히 부르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온의 말에 볼코 후작은 침음을 내뱉으며 또 술잔을 기울였다.
3후작가의 주축이긴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무장 계열이었다.
이렇게 적도 아군도 불확실한 정치판은 그에게 있어 정말 최악의 싸움터였다.
“네 녀석은 이런 곳이 상당히 좋은 모양이구나.”
“단순히 전장에서 칼만 들고 휘두른다고 해서 나라가 평안해지는 건 아닙니다.”
“···.”
“누군가는 이런 진흙탕에서 뒹굴며 오물 범벅이 되어야만 나라가 굴러가는 법이죠.”
“정말이지, 네놈이 클라우젠의 사람이 맞는가 싶다.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이야.”
사실은 다른 사람 맞습니다.
시온은 킥킥대며 볼코 후작의 잔이 다 비워짐을 눈치 채곤 다른 술잔을 집어 들어서는 그에게 내밀었다.
“루드비히는 요즘 뭐합니까?”
“미친 듯이 검만 휘두르고 있다.”
“오오.
좋은 일입니까?”
“나한테야 좋은 일이지, 네게는 안 좋은 일이다.
마나 한 톨 다루지 못 한다는 네가 히스파냐의 영웅이라고 불리니 은연중에 품고 있던 우월감이 깨지면서 충격이 큰 모양이더군.”
“원래 사나이란게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법 아니겠습니까.”
“···혓바닥에 꿀을 발랐나.”
볼코 후작은 더 이야기하다가는 자신도 물들까 두렵다며 저리 가라고 손짓을 해보였다.
물론 시온이 정말 혀만 놀리는 놈도 아니고 동부와 북부, 그리고 남부에서 자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증명했기에 볼코 후작 역시 그를 정말 멀리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반 장난 식으로 편하게 대해서 그런 것일 뿐.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전할 말이 있다.”
피타장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마침내 에드가 4세가 입을 열었다.
“일전에 시온 클라우젠 공자가 북쪽으로 향하여 그곳의 부족들과 담판을 봐서 결국 또 다시 시작되던 북쪽의 갈등 분위기를 해소한 적이 있다.
다들 기억하고 있는가?”
국왕의 질문에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들 시온 쪽을 바라본다.
원래라면 바로 전쟁으로 들어가도 모자람이 없었던 긴박한 상황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마시켜 결과적으로 귀족들에게 많은 이득을 챙겨준 은인.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가볍게 박수를 치며 시온이 세웠던 공적 중 하나를 다시 한 번 축하해주었다.
에드가 4세는 그런 박수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잠시 기다린 후 말을 이어나갔다.
“그 북쪽에서 이번에 손님이 왔다.
왕국과의 갈등이 일소된 것에 대해서 기쁨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이왕 이렇게 시작된 평화가 부디 오래 가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온 부족의 대표이니 그대들 모두가 환영해주었으면 한다.”
굳이 그대들 모두가 환영해달라는 말을 붙이는 건, 왕국의 귀족들이 은연중에 북쪽의 사람이라고 하면 야만 부족이라고 하며 은근히 무시하는 언행을 우려한 부분일 것이다.
시온도 쟌이 왕국으로 왔다는 소식에 행여 귀족들이 모욕적인 언사나 이상한 말들을 해서 자칫 간신히 우호 쪽으로 되돌려놓은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을까 걱정했었다.
그리고 그 걱정대로, 몇몇 귀족들의 눈에는 북쪽의 야만 부족이라 불리는 이가 왕실 파티에 발을 들인 것 자체를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기운이 엿보이는 중이었다.
‘그래도 국왕이 나서서 어떻게 잘 해주고 있군.
그에 더해서 저렇게 끝까지 자리에 버티고 있다는 건 보다 더 중요한 발표가 있을 거라는 뜻이겠지?’
그런 와중에 북쪽에서 왔다는 손님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자리에 모인 모든 귀족들은 그 모습을 보고 바로 북쪽에서 온 이임을 알 수 있었는데, 귀족들이 가지각색의 화려한 예복을 입은 것과는 달리 북쪽의 여인은 꽤나 단출한 복장에 일부러 자신의 출생을 증명하듯 털옷까지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쟌에게서 흐르는 특유의 분위기나 그녀의 외모가 바래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희 따위의 속 빈 강정들이 아무리 겉을 꾸미고 치장한다고 해도 자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 한다는 기운을 팍팍 내뿜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쟌의 인상적인 모습에 귀족들은 서로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녀에 대해 평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색 봐요.
진짜 티 하나 없는 검은색이군요.”
“부족의 대표가 여인일 줄은 몰랐군.
사납고 거친 전사들의 땅이라고 해서 당연히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이가 왔을 줄 알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인상적인 얼굴의 여인이네요.”
“혹 외모로 전사들의 마음을 훔친 여인 같은 건 아니겠습니까?
저런 몸으로는 검조차 제대로 들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다른 말은 몰라도 그 마지막 말은 취소하는 게 좋을 텐데.
시온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우락부락한 전사들을 상상했던 너희들에게 있어 확실히 겉만 보면 여리여리 하겠지.
하지만 시펄!
저 여자가 이렇게 딱 손 한 번 쓰면 사람 허리가 접힌다니까?
그게 안 될 때에는 그냥 나무젓가락 부러트리듯 목을 분지르는 여자라고!
‘어떻게 아냐고?
내가 봤다고!
소설에서 막!
어?
이만한 사람을 그냥 접어버렸다니까?’
부디 저 수군거림이 쟌의 귀에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시온이었다.
자기 앞에서야 그냥 평범한 북쪽의 여인 같은 모습일 뿐이지, 자신이나 북쪽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 언제 ‘칸’ 으로 돌변해서 시퍼런 안광을 뿜어낼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안광을 마주한 자는 자신의 뒤통수와 발 뒤꿈치가 닿는 마술을 겪을 테고 말이다!
“이쪽이네.”
한편, 국왕은 나서서 인사나 하라는 듯 쟌을 돌아보았다.
그에 파티장의 여느 귀족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복장, 그리고 분위기를 풍기는 미녀가 자리해서는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한 이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나서 무척이나 반갑다, 왕국의 여러 귀족 여러분.”
“···?”
“···?”
···잠깐만, 잊고 있었다.
저 여자가 칸이라고 불렸던 여러 가지 이유들을.
시온은 쟌이 어릴 적부터 항상 최고, 최강으로 군림했기에 누군가에게 자신을 낮추는 것을 무척이나 어색해하고 또 어려워한다는 것을 이제야 떠올렸다.
그나마 파티가 열리기 전에 시종장에게 최소한의 언질은 들었는지 ‘왕국의 여러 귀족 여러분.’ 이라는 단어 정도는 내놓아서 다행이었다.
원래 시온이 알고 있는 ‘칸’, 쟌 테무친이라면 ‘만나서 반갑다, 제군들!’ 이라고 말하고도 남았을 인물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이게 무슨···.”
이러하니 귀족들은 대부분 하나 같이 황당하다는 반응들이었다.
사실 그럴 만한 것이, 이런 자리에서는 설사 왕자나 왕녀라고 해도 귀족들에게 함부로 하대를 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흐름이었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자리가 아니라 이 또한 정치판의 연장선, 권력판에서의 보이지 않는 싸움터였으니 응당 겉으로는 예의를 지키면서도 뒤에서는 칼을 갈 준비를 해야 했다.
이러니 괜스레 남을 막 대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주어 제 편을 경쟁자에게 통째로 내어주는 일이 없도록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 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또 다른 전투의 현장에서, 심지어 국왕과 왕녀까지 있는 자리에서 자신들에게 야만족 소리를 듣던 부족의 여인이 무슨 밑의 사람을 대하듯 말을 해버렸으니 귀족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무리도 아니었다.
‘바네사 왕녀도 살짝 당황한 느낌인데?’
항상 침착함을 잃지 않는 바네사 왕녀가 당장 에드가 4세의 눈치를 보는 것부터가 쟌의 행보가 상당히 충격적이라는 증거였다.
이 여자가 지금 돌았나?
라는 눈빛으로 쟌을 바라보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바네사 왕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
물론 에드가 4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아주 미미한 미소만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는 사이, 쟌은 그 위풍당당한 기세를 조금도 잃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쟌 테무친이다.
저 멀리, 광활한 초원에서 이 먼 곳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왕국 측이 우리 초원의 부족들에게 보여준 호의에 감사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
아무래도 쟌은 귀족들이 침묵하고 있는 이유를 꽤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실상은 그게 아니라 ‘뭐 저딴 여자가 다 있지?’ 내지는 ‘역시 야만 부족이란!’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느라 정신이 없어서 귀족들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되면 기껏 북쪽의 여러 부족들에 대해서 조금이나 호의적인 분위기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되는 건데.
역시 쟌보다는 에오스가 왕국에 오는 편이 나았으려나···.’
쟌이라는 여자가 원래 저런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무력만큼이나 자존심도 강하고, 아름답지만 약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도도한 여인이다.
북부의 부족들을 야만족이라 칭하는 왕국의 귀족들마저 ‘칸’, 혹은 ‘북부의 악몽’ 이라는 칭호까지 붙여주며 두려워하던 여인이 바로 쟌 테무친이었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온이 고민하는 와중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있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지.
바로 왕국에 대한 북쪽의 사과다.
우리 부족들이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욕심에 빠져 무척이나 단순한 장난에 놀아났다.
우리 부족과 왕국의 북부 귀족들 모두의 잘못으로 전과 같은 불길한 움직임이 일었지.
부족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나의 책임이 없다고, 나의 과실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
해서 이 자리를 빌려 그대들에게 사과하고자 한다.
부디 받아주기를 바란다.
북쪽 전사들의 진심 어린 사과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여러 귀족들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쟌.
다른 이도 아니고 쟌이, 소설 속 그 칸이 보이는 저 행동에 왕국의 여러 귀족들은 물론이고 시온까지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북부의 부족들이 자존심 강하기로는 이미 정평이 나있다.
당장 시온뿐만 아니라 귀족들까지도 그 소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서로가 그런 특성을 잘 알기에 정말 엄청나게 큰 잘못이 아니면 사과는 잘 하지 않는다.
그냥 힘들 때 말없이 도와주거나 아니면 뒤에서 받쳐주는 식으로 대신한다.
그런 부족들의 수장이라고 하는 여인이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다니, 아무래도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은 야만 부족이라는 평가가 조만간 달라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
시온은 뒤에 앉아있던 에드가 4세가 바네사 왕녀에게 눈짓으로 뭔가를 말하는 걸 포착했다.
원래라면 자신이 나서서 쟌에게 그만하면 되었다는 말을 해야 할 테지만, 이 자리는 단순한 파티 따위가 아니라 이제 정식으로 모든 권력을 바네사에게 넘겨줄 것이라는 기운을 귀족들에게 확실히 알리는 자리.
왕을 대신해서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라는 뜻을 바네사 왕녀는 바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북쪽에서 온 손님은 이만 고개를 드시오.
왕국 역시 사과를 받을 수만은 없는 입장에 있으니 이쯤하면 모두가 전에 있었던 마찰들을 이해해 줄 겁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조금은 다행이군.
감사를 표한다, 바네사 왕녀.”
아니, 이 여자야.
제발 말 좀 어떻게 예쁘게 해봐.
여기는 북부가 아니라고, 젠장!
그리고 그렇게 말한다고 바로 고개를 드는 거 아니야!
조금 더 뜸을 들여야 사람들에게 점수를 따는 법이라고!
시온은 당장이라도 저 칸을 끌고 가서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나마 상황을 알고 있는 에드가 4세가 미소로 넘어가주고 있으니 귀족들도 애써 침묵하는 것이지, 어느 국가의 왕족도 아니고 그냥 부족들의 수장 정도 되는 자가 차기 국왕으로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바네사 왕녀에게까지 저러면 정말 뭔 소리를 들을지 감도 안 잡혔다.
“허면 사과에 이어서 부족들의 감사를 대신 전하겠다.
앞으로 우리 전사들은 왕국의 호의를 잊지 않고 왕국이 혹 도움을 청한다면 응당 응할 것이다.
비록 가진 것이라곤 말 한 필과 활 한 자루, 칼 하나뿐이지만 은혜든 원수든 반드시 갚는 것이 초원의 율법이니, 우리는 그 율법대로 왕국에게 직접 증명하겠다.”
“이미 북쪽의 부족들이 전쟁보다 평화를 원한다는 건 시온 클라우젠 공자를 통해서 잘 알아들었으니 더는 문제될 것이 없을 겁니다.
쟌 테무친, 그대는 먼 길을 달려온 것으로 이미 충분히 부족들의 마음을 보였으니 왕국의 여러 사람들도 그들의 진심을 알 것입니다.”
바네사 왕녀는 이 북부의 여인이 더 이상한 실수를 하기 전에 얼른 내려 보내고는 파티를 계속 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파티가 재개되면 북쪽의 부족에게 관심이 있는 극소수의 귀족들을 빼고는 쟌이라는 여인에게 관심을 끌 것이 확실해서였다.
“왕녀의 말대로 하는 게 좋겠군, 쟌 테무친이여.
북쪽과는 또 다른 즐거운 자리이니 여태까지의 적의는 치워버리고 즐기도록 하시오.”
에드가 4세의 말에 쟌은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여전히 귀족들은 무례한 언행이라며 투덜거렸지만 시온은 그나마 ‘그래, 알겠다!’ 라고 대답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파티가 재개되고 연회장은 다시 귀족들의 이야기꽃으로 가득해졌다.
특히 에라더 왕자가 물러난 이후 모든 귀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바네사 왕녀는 계속해서 몰려드는 귀족들을 상대하느라 아주 진땀이 다 날 정도였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
좀 도와주면 안 되는 것이냐!’
라는 뜻으로 시온 쪽을 쳐다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는 애써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이런 때에 여러 귀족들을 자신의 밑으로 확실히 끌어들이라는 뜻인지.
바네사 왕녀 쪽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볼코 후작과 함께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 중이었다.
분명 다가오는 이는 많은데 정작 진짜 의미의 ‘제 편’ 이 없는 것 같아 바네사 왕녀가 한숨을 내뱉을 무렵, 귀족들과는 항상 거리를 두고 있던 쟌이 슬쩍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쟌이 다가오자 바네사는 옳다구나!
하곤 북쪽의 손님과 잠시 나눌 이야기가 있다며 곁에 들러붙은 귀족들을 비로소 떼어낼 수 있었다.
“후우.”
여태껏 에라더 왕자에게 쏟아지던 눈빛이나 기대 따위가 이제는 오롯이 자신에게 돌려졌다.
이제부터 진짜 의미로 모든 일들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자각하며 왕녀는 제 옆으로 다가온 쟌을 향해 막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시온에게 들었다.
바네사 왕녀, 그대가 자신의 주인 되는 자라고 했었는데.”
“···시온 클라우젠 공자가 그리 말했다고요?”
“그러하다.
자신이 보기에 이 나라의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여인이라고 하더군.”
그 말이 시온이 할 때는 ‘어차피 내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계획이니까.’ 라는 의도로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타인을 통해 바네사 왕녀가 듣고 있으니 ‘왕녀를 굳게 믿고 있다!
오직 그 분만이 왕재(王才)다!’ 라는 따위의 말로 전해지고 있었다.
“해서 할 말이 있다, 바네사 왕녀.
질문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군.”
“···말해보세요.”
“시온 클라우젠, 그 남자를 가질 생각이 있나?”
···에?
바네사 왕녀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반문하고 말았다.
―――――――작품 후기―――――――
추천은 항상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