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37)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37화(237/439)
237―――――
즉위식
“그리고 말일세.
요즘 들어서 좋지 않은 소문이 자꾸 퍼지더군.”
“좋지 않은 소문이라 하시면?”
“히스파냐가 아닌 누디아가 그 근원지이지만 히스파냐와도 관련이 있어서 말이야.
부왕께 들어서 알고 있지 않나?
우리 군이 머물렀던 지역마다 원인 불명의 화재가 났었던 것.”
바네사 왕녀의 말에 시온은 아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원인 불명이라고 그녀는 말하지만 시온은 이미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런 헛짓거리를 할 만한 놈들이 비둘기랑 그 비둘기 좋다고 달려드는 뾰족귀들 밖에 더 있겠어?
내부에서 흔드는 게 안 되니 이제는 외부에서 흔들겠다?’
원정군을 지휘한 건 바네사 왕녀와 볼코 후작이다.
그들에 대해서 아예 알지 못하는 상태라면 또 모를까,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능력을 가졌으며 어떤 과거와 미래 행적을 지녔었는지 전부 알고 있다.
바네사 왕녀라면, 그리고 볼코 후작이라면 실수를 할 수 있을지언정 그걸 반복할 정도로 멍청하거나 게으른 이들이 결코 아니다.
숙영지에서 불이 났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사람이 밤을 보내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불을 피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관리가 미흡하여 불씨를 완전히 꺼트리지 않고 이동할 수도 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대감과 흥분 때문에 긴장감이 사라지고 약간은 흐트러질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몇 번이지, 상관들의 경고가 떨어지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머무르고 나서 이동하면 불이 나고, 불이 나고, 그게 반복된단다.
이렇게 되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인간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 아닌, 뭔가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거나 혹은 다른 존재가 개입하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누디아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지역 사람들은 성전을 포기하고 도망치는 자들의 꼬리에 붙은 저주라고 하더군.”
“저주라.
참 웃기군요.
이왕 내릴 저주라면 숙영지에 병사들이 머물고 있을 때 활활 태우려고 하지, 다 떠나간 뒤에 화륵!
하고 타오르는 저주가 세상 어디 있답니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은 이성적인 판단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감성적인 소문을 믿는 법이지.
어쩌겠는가?
하필이면 그곳이 누디아의 땅이니까.”
불이 난 곳이 히스파냐였다면 그냥 어떻게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누디아는 얼마 전까지 히스파냐와 상당히 불편한 관계를 지니고 있던 국가.
당연히 그곳의 왕국민들은 자신들과 피 터지게 싸우던 히스파냐와 관련된 소문에 대해 민감하게, 그리고 감성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원래라면 바네사 왕녀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하며 한숨을 내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왕녀는 다르다.
얼마 전에 그녀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존재에게 하마터면 ‘교육’을 당할 뻔 했으니까.
그저 빛의 후예라고만 알고 있던 자들이 사실은 속에 뭔가 시커먼 것을 숨기고 있다는 점을 바네사 왕녀는 마침내 알게 되었다.
“설마 이것도 천족들이 개입된 일이라고 보나?”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가능성이 아주 크지만, 그럼에도 섣부르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자칫 이런 경우의 확신은 과한 자신감과 적개심을 불러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바네사 왕녀가 자칫 실수를 해서 역으로 빛의 교단이나 빛의 교도들에게 약점을 잡힐 수도 있음이었다.
급할 건 없다.
오히려 급한 쪽은 저들이다.
일을 크게 벌이면 벌일수록 자신들이 노출될 확률도 높아지니 당연한 일이다.
이쪽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으며 저들의 빈틈을 노려 날카롭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리 해서 저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이고 있는 교도들의 마음속에 ‘의문과 의심’을 주입하면 되는 것이다.
“대체 왜들 그러는 것이지?
천족들은 대륙 위의 모든 존재들을 빛의 곁으로 인도하며 동시에 자신들과 반대되는 뜻을 품은 마족들을 상대하는 자들.
빛의 후예들이 아니던가?”
“원래 ‘신념’ 이란 것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잘못된 신념을 그저 올바른 것이라고 믿고 어떻게든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 자들이 있지요.”
“···그대는 뭔가 알고 있다는 눈치이군.
말하는 것도 그렇고.”
바네사 왕녀가 상당히 날카로운 지적을 해온다.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아직 시온이 천족들에게 한 번 노려졌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그녀로서는 시온이 천족들에 대해서 이리 파악하고 또 꽤나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얼추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요.
왕성을 습격한 자 중 요정이 있었고, 클라우젠 변경백령을 노리던 자들 중에도 요정이 있었습니다.”
“···그냥 인간을 싫어하는 극렬한 자들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목적을 지녔다면 최소한 자신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뒷구멍 정도는 마련해야 정상입니다.
헌데 그들은 마치 무언가의 재촉으로 인해 일을 벌이듯, 약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생각해보면 목적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왕궁을 습격하여 수도 왕성에 큰 혼란이 생겼고, 클라우젠 변경백령이 흔들려 자칫 무너지기라도 했으면 왕국의 동쪽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왕국에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되는 일들이라는 점이었다.
“생각해보세요, 왕녀님.
왕궁이 공격을 받았을 때 마족의 짓이다, 내지는 마족 추종자들의 짓이다, 라는 말들이 나돌지 않았습니까?”
“···그러했다.”
“그러면 그 소문을 기정사실화 한 후 클라우젠 변경백령이 뒤에서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면, 과연 그 몬스터들을 내몬 장본인들이 누구라고 생각하셨겠습니까?”
“마족··· 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겠지.”
바네사 왕녀는 그렇게 답하고서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시온은 자신의 입으로 답을 말하지 않고 그녀 스스로 직접 생각하고 결론을 내려 그걸 입 바깥으로 꺼내기를 기다렸다.
남이 말을 함으로써 받아들이는 것과, 내가 생각하고 결론을 내려서 직접 말하는 건 받아들이는 것에서 큰 차이가 났으니까 말이다.
“그들이 마족들을 상대로 한 전쟁, 성전을 원했다는 소리인가?”
“그럴 확률이 높다고 해두겠습니다.”
“어째서?
이유는?
그들이 왜 그런 짓을?”
“그건 저도 모릅니다.”
이 이상 아는 티를 내서는 좋을 것이 없다, 그저 의심만 받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
차후 여왕이 될 바네사 왕녀에게 천족에 대한 짙은 의문과 약간의 적의를 심어둔 것만으로도 이미 수확은 할 만큼 했다.
어차피 천족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나중에 가면 대륙 위의 모든 이들에게 적대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정말 그들에게 미친 극렬한 요정들이나 광신도들을 뺀다면 어느 누구라도 여기 곱게 앉아서 산 채로 불에 타 죽으라는 소리에 바로 반발할 것이다.
천족들은 바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죽으라 하면 네, 하고 곱게 죽어주는 그림을 위해서 여태까지의 불온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마족들의 짓이라는 분위기를 조장해왔다.
마족들을 전부 세상에서 지워버리면, 성전을 일으킨다면 그 혼란에서 너희 모두가 벗어날 수 있다고 속삭였다.
‘그리고 난 바로 그걸 엿 먹이기 위해 천족이라고 그리 좋은 놈들이 아니라는 걸, 우리 대륙 위의 존재들끼리 뭉치고 뭉쳐 서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고.’
진실을 안다고 나 혼자 고생할 필요는 없다.
아니, 애초에 혼자 고생해줄 생각도 없다.
거짓된 빛을 빛이라고 믿는 저들에게 진짜 의미의 빛을 보여주며 너희는 속고 있다고 외치고, 그렇게 해서 분노한 이들이 횃불을 들고 그 그림자를 쫓아내게 만들면 된다.
‘나는 그 뒤에서 김유현의 뒤를 따라 새로운 빛이 되면 그만이고 말이지.’
판은 시온 자신이 짜고, 거기에서 극한의 연기를 펼치는 건 김유현이 하면 된다.
영웅과 악당의 차이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이니 그 경계만 잘 잡는다면 문제될 건 하나도 없었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빛의 교단이나 교도라고 해서 무조건 믿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건 빛의 후예들이 말하는 그 뜻의 실현이지 이 히스파냐가 아닐 테니까요.”
“···그렇겠지.
생각해보니 북쪽의 부족들이 움직이고 남부에서 해적들이 준동할 때 왕국 내에서 빛의 교단이 크게 확장을 했었는데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히 수상하군.”
오오, 확실히 차기 여왕님이라고 눈치도 참 좋군.
시온은 속으로 가볍게 박수를 치며 히스파냐에서만큼은 바네사가 자기 대신 광신도들의 모가지를 싹둑 하고 잘라내는 철혈의 여왕이 되었으면 했다.
욕을 혼자 먹으면 제아무리 시온이라고 해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걸 굳이 같이 먹어주겠다는 이가 있는데 말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일전에 그대가 죽여 없앴던 그 두 남자 말이야.
노예상으로 지냈다던 그 쓰레기들, 빛의 교단에 헌금을 엄청나게 하고 죄를 사면 받기라도 한 것처럼 지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왕국의 법을 어긴 자들이 엄청난 공을 세워 왕실의 사면을 받은 것도 아니고 빛의 교단에 돈 좀 넣었다고 사면을 받았다기에 그 건방짐에 대한 죄를 제가 친히 물었죠.”
“부왕께서 아무래도 빛의 교단에 대해 조사를 더 진행하셨던 모양이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거대한 불길이 될 수 있는 정도로 정보가 모였더군.”
“그 말씀은?”
“빛의 교단이 그저 ‘빛’ 이 아니라는 것.
일단 그건 확실해졌지.”
에드가 4세가 몸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다음의 왕을 위해 나름의 준비는 해두었던 모양.
그런 이유로 시온에게 빛의 교단을 압박할 수 있는 일을 물어오라고 했고 말이다.
“일단 지금은 터트려도 크게 이득이 될 수도, 무기가 될 수도 없으니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겠어.
그대의 생각대로 빛이 정말 빛이 아니라면, 빛으로 우대해줄 필요도 없을 테니까 말이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시온의 대답에 바네사 왕녀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한숨을 내뱉는다.
무슨 다른 일이 있는가 싶어 시온이 슬쩍 그녀의 눈치를 살피니 왕녀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내가 아니라 그대 때문이다.”
“예?”
“클라우젠 변경백령을 떠난 것이 북쪽으로 출발하기 전이었으니 벌써 몇 달이나 집에 가보지 못 한 것이 아니던가.”
“아···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워낙 바쁘게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세 달이 훨씬 넘는 긴 시간동안 클라우젠 변경백령에.
이제는 자신의 집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지 못 했다는 걸 자각한 시온이었다.
소식이야 마법을 통해 전해 듣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후계자가 이렇게 오랫동안 제 안방을 비우는 건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즉위식이 끝나면 그대는 클라우젠 변경백령으로 돌아가도 좋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을 해주었으니 그대도 응당 휴식이란 걸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한 말씀입니다, 왕녀님.”
휴식?
당연히 취하고 싶다.
지금도 그냥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하루 다 보내고 저녁에는 산해진미로 배를 채우며 후식으로는 여신 뺨을 시원하게 후려치는 여인들 중 하나를 골라서 밤새 맛보고 싶다.
뜬금없이 소설 속 세상으로 끌려온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몸뚱이는 마나 한 톨 못 쓰는 마나 고자에 지금이야 자신의 활약으로 바뀐 것이지 원래는 개망나니 소리를 듣는 놈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 했으면 자 때려치우고 영지로 돌아가서 조용히 지낸다고 해도 평생을 왕국의 영웅으로 기억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너무 늦었어.
이제는 그냥 할 일 다 마치고 이 세상에서 나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즐겨보고 가는 것.
그게 베스트다.’
이제까지의 영웅이라 하면 왕국민들과 귀족들이 시온 클라우젠을 떠올렸다고 한다면.
이제는 다른 모습의 또 다른 영웅이 등장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불의를 처단하고 빛으로 위장한 그림자를 가르는 검.
그 어떤 적을 상대로 하든, 어떠한 힘겨운 전장으로 나서든 결국 승리하는 그런 영웅.
시온은 결코 보일 수 없는 무력의 위용을 보여줄 이가 나서야 할 순간이었다.
‘김유현아, 너 어제 보니까 그냥 아주 날아다니더라?
몸도 고생 안 하고 마음고생도 안 하니 몸이 아주 쑥쑥 나은 모양이더라고.
여태까지 잘 먹고 잘 잤으면 이제 고생 좀 해야지.
네가 멋진 활약을 해야 에오스도 네게 확실히 넘어오는 거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활약 없이도 에오스라 하면 김유현한테 넘어올 만한데 괜한 헛소리를 하는 시온이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주장을 해두어야 나중에 일말의 양심통 없이 김유현을 부려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즉위식은 정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 달 이내로 반드시 거행할 거다.
부왕께서 살아서 꼭 내가 여왕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시더군.”
“며칠 내로 그 사실을 왕국 내부에 공표하고 누디아나 신성 프러센 측에도 알리시겠군요.”
“그래.
해서 하는 말인데 쟌이라는 그 여인, 그 전까지 괜한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히스파냐의 예의에 맞추어서 언행을 하도록 알려주게.
야만족이 괜히 야만족이 아니다, 또는 즉위식으 그런 무례한 사람을 불러들여서는 안 된다, 따위의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야.”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하겠다는 말로만은 부족해.
반드시 그리 해야 해.
난 북쪽과의 그저 그런 잠깐의 평화를 원하는 게 아니야.
이왕 시작한 우호적 관계는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하는 법이다.”
그래준다면 나야 환영이지.
시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소를 내지었다.
북쪽의 여러 부족들은 조금씩 세를 넓히고 있는 빛의 교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들.
어떻게 이용해 먹어도 빛의 뜻 어쩌고 하면서 뒤통수를 칠 사람들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바네사 왕녀는 잠깐 시온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대가 즉위식에서 해주어야 할 일이 있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오직 그대만이 해줄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라고 시온이 질문하자 바네사 왕녀는 대답 대신 손짓을 해보였다.
조금만 더 가까이 와보라는 왕녀의 뜻에 시온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바네사 쪽으로 살짝 몸을 숙였다.
“···그대에게 내 옆을 맡길 생각이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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