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3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39화(239/439)
239―――――
즉위식
어지간해서는 제 영지를 잘 떠나지 않는 각 지방의 귀족들이 하나둘씩 왕성으로 모여든다.
몇 달 전에 있었던 누디아와의 전쟁에서 거둔 승전을 기념하는 왕실 주관 파티보다도 배는 더 중요한 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조금 갑작스럽긴 합니다.
에라더 왕자님이 아니라 바네사 왕녀님이···.”
“글쎄요.
저는 오히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유는요?”
“클라우젠이, 시온 클라우젠 공자가 공개적으로 바네사 왕녀님을 지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대귀족 가문 중 하나일 뿐인데요.”
한 귀족의 말에 다른 귀족이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서 ‘참으로 답답한 소리를 하십니다!’ 라고 핀잔까지 준다.
“클라우젠 변경백령은 왕국 동부에 있는 귀족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가문입니다.
왕국의 방패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굳건한 성벽이니까요.
클라우젠의 뜻이 곧 동부 귀족들의 뜻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아, 하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이후 북쪽의 야만 부족들을 진정시키는 것과 동시에 왕국 북부의 반역자들을 싹 잡아서 처형하셨죠.
이후 국경을 맡게 된 레포엠 남작은 자작으로 승격되었고 말입니다.
이게 시온 클라우젠 공자가 왕성에 요청해서 그리 되었다더군요.
그러니 레포엠 자작가와 그에 더해서 그 밑에 있는 다른 귀족 가문들은 북쪽을 정리해준 시온 클라우젠 공자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귀족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남부에서 있었던 여러 일들도 무척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 어떤 이도 생각지 못 한 방법으로 해적들을 처리하여 남쪽의 귀족들, 특히 가장 중요한 세력인 이시크 백작가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 최고의 수확이라고 말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시크 백작가의 후계자가 다른 귀족들을 만나면 시온 클라우젠 공자의 훌륭함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고 있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이시크 백작가와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관계가 훨씬 더 우호적으로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리고 클라우젠 변경백령은 바네사 왕녀를 지지하는 가문이다.
시온은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여기 있는 귀족들이 보기에는 그렇다.
그런 클라우젠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라더 왕자의 지지 세력이라고 알려져 있던 이시크 백작가가 갑자기 전례가 없던 친분을 과시한다?
이건 둘 중 하나를 의미한다.
클라우젠이 에라더 왕자 쪽으로 넘어갔거나, 아니면 이시크가 바네사 왕녀로 넘어갔거나.
그리고 그 결론은 바로 지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또 뵙는군요, 브레멘 백작님.”
“그렇게 되는군요.
그래, 왕녀님께서는 어때 보이십니까?”
“멀지 않은 때에 즉위식이 열리는데 당연히 긴장하고 계시죠.
그보다 헤먼 공자도 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남부의 일들은 거의 진정이 된 모양이군요?”
“시온 공자님 덕분에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었습니다.
그리핀들과 그 기수들은 포상으로 충분한 휴식 여건을 보장하고 며칠 전 돌려보냈고 말입니다.”
어찌나 사이가 좋아 보이는지 클라우젠 백작가와 이시크 백작가가 바로 옆에 위치하는 이웃사촌이라고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실상은 몇 주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문이었는데 말이다.
더해서 이시크 백작가 여전히 두문불출하는 에라더 왕자에 대해서는 일말의 이야기도 없이 그저 바네사 왕녀의 이야기만 하는 걸 보면 답은 이미 나오고도 남았다.
남부는 에라더 왕자의 지지를 철회하고 클라우젠을 따라 바네사 왕녀에게로 간 것이다.
“그보다 리히텐 변경백은 못 오신 겁니까?”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누디아의 움직임을 경계하시는 모양입니다.”
왕실은 마법 전서를 통해 새로운 왕이 들어설 것임을 누디아와 신성 프러센에 알렸다.
그러자 신성 프러센은 바로 축하의 뜻을 보내며 일정에 늦지 않게 최대한 빨리 사신을 보내겠다는 뜻을 보내왔다.
헌데 누디아는 그런 신성 프러센과는 달리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더니 축하 인사는 물론이고 사람도 보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아무튼 도움이 안 되는 새끼들.
리시키다 내어준 거 빼고는 다 꼴 보기 싫은 것들이라니까.’
시온은 그런 누디아의 소식을 들었을 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를 갈았다.
원래는 리히텐 변경백도 이 자리에 와서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강함을 뽐내야 했다.
하지만 의무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충성스러운 그는 결국 영지에 머물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누디아가 자국의 즉위식 날에 이상한 짓을 할까 철저한 경계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신성 프러센의 사신은 어디까지 왔다고 합니까?”
“소식에 의하면 누디아와 히스파냐의 국경 근처까지 왔다고 하더군요.
아쉽게도 누디아의 사신은 없지만 말입니다.”
“뭐,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 한 사람한테도 무참히 밀린 자들인데 우리 히스파냐가 뭐 대단하다고 그들을 기다려야 합니까?”
혹시나 누디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귀족들이 술렁거리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저들은 패배한 전적이 있는 자들이 오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시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는 차후 일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신성 프러센의 사신이 전속력으로 오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일주일 후면 즉위식 시작이겠군.’
바네사 왕녀가 정식으로 이 히스파냐의 여왕이 되면 확실히 한 시름은 덜게 된다.
반대로 에라더 왕자가 왕이 되었다면 그건 빛의 교단에게 놀아나는 꼴이 될 테니까.
‘···문제는, 마치 독약이 퍼지듯 잊을 만하면 여기저기서 일렁이는 그 불길들인데.’
처음에는 히스파냐 측의 원정군이 머물렀던 누디아 지역이 그 시작이었지만.
이제는 히스파냐 내부에까지 그 원인불명의 불꽃들이 발화했다는 소식들이 잊을 만 하면 들려오고 있었다.
그나마 자국이기에 바로 바로 관리가 되어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자꾸만 흉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시온에게도, 바네사 왕녀에게도, 그리고 히스파냐 전체에게도 이득이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꼬리를 잡아야 하는데, 이것들이 한 두 번 엿을 먹어보니 너무 조심한단 말이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상황.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하는데 비둘기고 뾰족귀들이고 작정을 하고 아주 조심스레 움직이니 시온이라고 해도 뭘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거 김유현이나 릴리트를 파견해서 상황 좀 확인해볼까 했지만, 괜히 전력이 나뉘었다가 일이 터지면 또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일었다.
놈들도 김유현의 정체를 알았으니 그에 대비하여 어떤 괴물들이 주변에서 잠복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김유현이 당할 거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김유현이 원래 소설 흐름보다 훨씬 더 빨리 힘을 회복했다곤 하지만 현재의 그가 현재 시간대의 ‘최강자’ 는 아닐 것이다.
최강자라 하면 모름지기 어떤 놈들이 얼마나 많은 수로 밀어붙이든 그냥 가소롭다는 듯 미소 한 번 띄워주고 힘 한 번 쓰면 전부 날아가는, 그런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김유현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시온이었다.
상위 천족이 아니라 최상위 천족들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무력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놈들은 개개인이 움직일 때보다 서로가 힘을 합쳐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강한 부분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데에 선수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아직은 아니야.
놈들이 나를 끌어내는 게 아니라 내가 놈들을 끌어내서,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죽게 만들어야지.’
무대를 기획하고 공연 시간을 정하는 건 자신이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까지 전부 불러 모아서 한 편의 사기극을 널리 퍼트리고 동시에 진짜 연극이 무엇인지 비둘기들한테 알려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고 이름이 좀 있다 하는 귀족들은 전부 왕성으로 오게 되어 이전에 있었던 왕실 파티 때보다도 이 거대한 도시가 더욱 붐비게 되었다.
즉위식에 오르기 전 바네사 왕녀는 국왕 에드가 4세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몇 번이고 성대한 파티를 열어 기쁜 자리에 참석해준 왕국의 귀족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때 에라더 왕자가 잠깐 자리에 등장해서 제 동생인 바네사 왕녀에게 히스파냐의 번영과 영광을 부탁한다는 말을 함으로서 사실상 이제부터 히스파냐는 바네사의 나라임을 공언하게 되었다.
“이제 신성 프러센에서 왔다는 손님만 오면 바로 즉위식이군요, 주인님.”
“그래, 일단은 그렇지.”
이번 파티에서만큼은 자신이 최대한 뒤로 물러서고 바네사 왕녀가 빛을 받아야 한다.
아무리 영웅이 좋다고 하지만 왕의 권위까지 가릴 정도로 대단한 영웅은 나중에 가면 절대 환영 받지 못 하는 인물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내가 심부름시킨 건 알아봤어, 리시?”
“네.
은밀하게 하이네스 상단으로 가서 헬렌 상단주에게 정보를 건네받았어요.”
“뭐라고 하더니?”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사람을 풀어봐서 알아본 결과 누디아의 귀족, 혹은 그 이상 되는 세력이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어요.”
“그 이상 되는 세력이라.”
귀족 이상 되는 세력이라면 결국 하나밖에 없지 않는가.
‘누디아 왕실.’
소설대로라면 지금쯤 요정들이 내어준 여인들에 의해 아주 뿅가죽으려고 하는 놈이 왕의 자리에 앉아서 급진파 요정들에게 조종당하다시피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는 천족 비둘기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는 꼭두각시이고 말이다.
“대외적으로는 왕국민들을 진정시키는 것 같은데, 뒤에서는 은밀하게 ‘빛이 노하셨다.’ 내지는 ‘자신을 저버린 이들에게 분노하고 있는 거다.’ 라는 말들이 나돌도록 그냥 방치하고 있다고 해요.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는 절대 그런 말을 못 하게 한다고 하지만요.”
“상당히 더럽게 나오는군.
히스파냐는 새로운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정신이 없는데 놈들은 축하 인사도 대충 하고 언제든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라.”
갑자기 짜증이 확 치미는 시온이었다.
그래도 신성 프러센 놈들은 최소한의 매너로 축하 인사도 성대히 해주고 그 먼 곳에서 사람까지 직접 보내겠다고 하는데 누디아 놈들은 그것도 못 하겠다고 한단다.
원래 나쁜 짓을 할 거면 그 전까지는 하하호호 웃으면서 최대한 방심하게 만드는 것이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놈들은 그럴 정성도 없는 모양이다.
‘개 같은 놈들.
정도가 있는 법이지, 최소한 통수를 칠거면 앞에서는 웃으란 말이야.
앞에서부터 인상 잔뜩 찌푸려놓고 통수를 칠 준비까지 하면 기분이 더러워도 너무 더럽잖아.’
그럴 거면 차라리 앞에서 대놓고 주먹을 휘두르던가.
뒤에서 호박씨 까는 게 슬쩍 고개만 돌려도 훤히 보이는데 뒤통수를 치겠다고 열심히 준비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웃기는 걸 떠나서 그냥 어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뱉은 시온은 즉위식이 끝나는 대로 이 앙큼한 짓들을 한 번에 물 먹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이면 더 좋겠지만 즉위식 전에 움직인다면 괜히 이런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시일이 흘러 마침내 신성 프러센의 사람이 왕성 근처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식이 전해지자 더는 지체할 것이 없다고 판단되었는지 히스파냐의 왕성은 즉위식 이전에 행해질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히스파냐의 새로운 국왕, 왕국 역사에 얼마 없던 여왕의 즉위.
맨발로 왕성의 모든 길을 걸으며 히스파냐를 위해 그 어떤 길도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의식.
때문에 왕국민들은 자의적으로 왕성의 모든 길을 쓸고 닦으며 혹 바네사 왕녀가 다치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고, 귀족들은 꽃을 마련하여 자신들의 군주가 걸어갈 길의 앞에 깔기 위해 준비를 마쳤다.
“후우.”
며칠이 지나고 마침내 즉위식 당일이 되던 날.
바네사 왕녀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긴장할 이유가 하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어제 밤에도 겨우 잠이 들었는데 당일이 되니 이제는 그것마저 힘들 정도였다.
“긴장되십니까?”
그 말에 바네사 왕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서있던 미청년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본인 역시 엄청나게 긴장한 것 같은데 안심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시온이 자리하고 있었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왕녀님이 긴장하신 모습을 보이면 자연스레 다른 귀족들이나 왕국민들도 굳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시온 클라우젠 공자.
그렇게 말하는 그대가 더 긴장한 것 같다.”
그 말에 시온이 크헉,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자 바네사 왕녀는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누디아의 군대가 성 바로 앞까지 쳐들어와도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는 인물이 자신에게는 긴장하지 말라면서 정작 스스로는 초조한 기색을 보이고 있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더는 나를 왕녀라고 부를 수 없겠군.”
“그렇겠군요.”
“이전과 같이 조금이나마 내게 친근하게 굴던 모습들도 더는 보여주지 않을 테고 말이다.”
“···.”
시온은 바네사의 말에 따로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어차피 알고 있으니까, 왕이 된다면 그래도 시온과 가지고 있던 조금은 장난스럽고 가벼운 관계도 이제 전부 끝이 난다는 사실을.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해두겠다.”
바네사 왕녀는 ‘왕녀’ 로서 마지막으로,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난 아직 마음을 다 접은 게 아니다.
선례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영웅’ 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이 있으니 예외가 될 수도 있는 법이지.
왕국의 어느 누구도 나와 그대 사이에 대해서 반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습니까.”
“그러니 방심하지 말란 말이다.
언제든 내 옆에 두고서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어.”
“폭군이 되시겠군요.
이거 히스파냐의 미래가 걱정입니다.”
“아하하!
그건 확실히 문제구나.”
약간의 농담을 주고받으니 조금이나마 긴장감이 사라진다.
시온도, 바네사 왕녀도 다시금 숨을 내뱉고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는 밖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의 앞으로 나아간다.
“그동안 고마웠다, 시온 클라우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바네사 왕녀님.”
그리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히스파냐의 여왕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