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4)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4화(24/439)
<―>
짜악!
짜악!
짜악!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 어찌나 그 소리가 매서운지 밖에서 듣고 있던 시종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제 뺨을 어루만질 정도였다.
“쓸모없는 년.
가문에 도움이 안 되는 년!”
짜악!
짝!
남자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당장 여인의 볼이 거센 충격으로 인해 시뻘겋게 변하다 못해 피가 고여 퍼래졌고, 입술은 이미 터져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자는 사납기 짝이 없는 손길을 거두지 않았다.
“더러운 년!
그냥 죽어야지, 왜 돌아온 거야!
거기에 뭐?
병사들까지 물려?”
짜악!
여인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얼마나 손찌검을 했는지 남자의 손마저 팅팅 부어서는 감각이 없어졌을 정도.
“당장 출정해라.”
“···.”
“이미 중앙에서 지원 병력이 도착했다!
가서 지금의 패배를 만회하란 말이다!
그리고 가서 죽어버려.
뒈지라고!
그 더러운 몸뚱이 내 앞에 들이밀지 말란 말이다!”
와장창!
온갖 장식품과 화분 등이 사정없이 깨져나갔다.
그렇게 하고도 분노가 다 가시지 않았는지 남자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리시키다를 노려봤다.
“너 같은 쓰레기를 거두는 것이 아니었어.”
“···.”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주제도 모르게 마음까지 내주었더니 꼬리를 치다가 뒤통수를 치고 이렇게 내 앞길까지 가로막는 년 인줄 알았다면!
그 때 빈민가에서 죽도록 놔둬야 했다, 이 벌레만도 못 한 년아!”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듯 했다.
울고 싶었지만, 가슴이 너무 아파 주저앉고 싶었지만 리시키다는 그리하지 못 했다.
자신은 우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그저 눈앞의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죽인 채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어떻게 눈물을 흘리는지조차 잊은 채 싸워왔는데.
“꺼져.
다시는 돌아오지 마.
죽어.
죽어 버리라고.”
“···네, 백작님.”
그 주인은 자신에게 끝끝내 죽으라는 말을 내뱉는다.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리시키다는 고개를 숙인 채 백작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녀가 방에서 나오고 시녀들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다시 뭔가가 깨지고 박살나는 소리와, 남자의 괴성이 들려왔다.
“···.”
리시키다는 두 눈을 감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터져서 피가 흐르던 입술은 대충 손등으로 닦아내고, 아직 전장의 열기조차 제대로 식지 않은 몸을 이끌고 성을 나섰다.
그 곳에는 누디아 중앙에서 막 도착한 병력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암셸 경.”
저 남자는 왕성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자다.
군대를 이끌고 온 지휘관이 저 남자인 모양이다.
지휘 능력은 평범하지만 병사들은 제법 아끼는 자이니 다행이었다.
자신은 이제 죽으러 가야 하니까, 병사들은 저 남자가 맡아줄 것이다.
“···가시죠.
시간을 주면 적들이 정비할 여유가 생깁니다.”
“그대는 쉬지 않는 건가?”
“괜찮습니다.
아직 못 다 한 승부를 내야 할 상대도 있고.”
이미 그녀의 얼굴 상태를 본 남자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누디아에서 공공연히 돌고 있는 소문이 있으니,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
리시키다는 가장 선두에 서서 빠르게 병사들을 이동시켰다.
설마하니 이렇게 빠르게 공격을 재개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 했는지, 적들의 정찰대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부리나케 클라우젠 변경백의 성으로 내달리는 것이 보였다.
‘···그 남자가 다시 나오려나.’
차라리 그 남자의 검에 죽을 걸 그랬다.
바보 같이, 등신 머저리 같이, 그 일격을 피한 자신을 원망했다.
무슨 그런 멍청한 상상을 했던 것일까.
적국의 귀족을 바라보며 그의 곁에서 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누디아와는 영원히 적대적인 관계인 클라우젠 가문의 공자를 말이다.
“곧 적과 조우하겠군.
어떤가, 암셸 경.
히스파냐가 회전(會戰)을 치르겠는가?
아니면 공성전을 강요하며 버티겠는가?”
“아마도 전의 승리로 자신감이 붙었을 테니 회전을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쪽이 완전히 새 병사들인 걸 눈치 챈다면 수성전으로 전환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극과 극이니 헛갈리는군.”
진군 속도가 점점 늦춰졌다.
적진이고, 거기에 코앞에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성이 자리하고 있다.
매번 누디아의 공격을 격퇴하고, 불과 몇 시간 전에는 역으로 기습을 가해 큰 피해를 주었던 클라우젠 변경백이 바로 저기에 있는 것이다.
“···.”
“···.”
하지만 곧 리시키다와 지휘관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쯤이면 도개교가 열리고 병사들이 나온다거나, 아니면 성 위에서 분주한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그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일이지?’
전장의 급격한 상황 변화는 그녀도 잘 알고 있고, 많이 겪어봤다.
폭풍전야라고, 대규모 공성전이 벌어지기 전에 이렇게 고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건 확실히 이상하다.
드드드드―.
“저기!”
앞에 있던 기사 하나가 손끝으로 도개교를 가리켰다.
곧 도개교가 내려앉고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모습을 본 지휘관은 병력들에게 진형을 갖추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무래도 승리로 자신감이 붙은 적들이 회전을 하려는 모양.
오히려 이쪽이 환영이라며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는 누디아의 군세였다.
하지만, 성문 너머에서 등장한 건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날이 선 병기를 든 병사들이 아니었다.
“···어?”
지극히 평범한 복장을 한 남녀들이 도개교를 건너서는 그 앞에 놓여있던 도로를 열심히 닦기 시작한 것이다.
물을 뿌리고, 빗자루질을 하고, 그러다가 서로 가벼운 농담을 하기도 하고.
지척에 적의 군대가 와있는데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곧 성 안으로 들어올 손님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듯 그렇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도,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인가?”
“지휘관님.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일반인들 같습니다.”
“미친 것이 아니냐.
군대가 바로 앞에 와있는데 도개교도 내리고, 성문까지 열어둬?”
지휘관은 바로 공격 명령을 하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불현 듯 치솟는 의심에 절로 입이 다물어지고 말았다.
‘···함정?’
원래 ‘상황’ 이라는 것이 그렇다.
팽팽한 가운데에서 아주 미약하게 흐름이 넘어온다면 또 모를까.
조금도 예상치 못한 전개로 상황이 유리하다 못해 완벽히 넘어오게 되면 누구라도 확신보다는 의심이 먼저 들기 마련이다.
저럴 리가 없는데, 저럴 수가 없는데, 미쳤다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는데.
지금 자신들이 눈에 담고 있는 장면은, 바로 직전까지 혈투를 벌이던 상대가 재차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바닥에 드러눕고 ‘어서 오세요!
이럇샤이마세!’ 라고 외치는 것과 똑같았다.
“뭐야, 뭔데 도대체···.”
“왜 저러지?
항복하는 거 아냐?”
“미쳤나?
클라우젠 가문이 항복을 하겠어?”
지휘관이 망설이니 병사들의 수군거림이 커진다.
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발목을 붙잡는다.
클라우젠 가문이 항복?
차라리 고블린 좆을 붙잡고 이게 우리의 비밀 병기다!
라고 외치는 편이 더 재미있는 농담이겠다.
띠링―.
갑자기 들려오는, 악기의 줄을 튕기는 소리.
누디아 군세의 모든 시선이, 그리고 리시키다의 눈길도 그곳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돌출된 성벽 위에 누군가가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류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띵, 띠딩―.
따랑―.
잠시 음을 맞추던 남자는 곧 처음 듣는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저게 도대체 뭔···.”
창칼을 번뜩이며 살벌한 기세로 도열해있는 병사가 3천을 훨씬 넘어간다.
그런데 그 앞에 있는 이들은 잡담을 나누며 길을 쓸고 있고.
성벽 위에 걸터앉은 남자는 오후의 햇살을 즐기며 류트를 연주하고 있다.
“···.”
만약 누군가가 다가와서, 멍청하게 뭘 고민하고 있냐고.
딱 봐도 대책 없이 저러는 거 같은데 들이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 말하는 놈이 있다면 지휘관은 아마 그대로 검을 뽑아서 목을 쳤을 것이다.
상대는 클라우젠 변경백령이다.
히스파냐의 국경을 백년이 훨씬 넘는 세월동안 지키며, 누디아의 공세를 막아내고 오히려 역공을 펼쳐 번번이 누디아의 정복 야욕을 좌절시켰던 굳건한 방패다.
그런 곳이 갑자기 방패를 내리고는 ‘어서 오세요!’ 라고 손짓을 한다고?
띠링!
따당!
띠디디딩!―.
술렁이는 누디아를 마치 재촉이라도 하듯 류트를 연주하는 남자는 더욱 바쁘게 손을 놀렸다.
참고로 저들은 알 수 없겠지만, 그리고 클라우젠의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류트를 연주하는 남자, 시온 클라우젠이 서툴지만 조금씩 음을 맞춰 연주하고 있는 곡은 ‘나란 놈이란’··· 하고 중얼거리며 ‘흔한 노래’ 좀 부르다가 ‘소주 한 잔’ 마시는 ‘임’ 가수님의 ‘문을 여시오’ 였다.
‘드르와 드르와―’
―
“예?
공자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성 위의 병사들 전부 내리고, 성문 열고 도개교 내리고 청소나 좀 하자고요.”
시온의 당당한 말에 라이온은 그대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곧 적이 당도한다.
당장 성문을 굳건히 사수하고 적이 지쳐 물러날 때까지 방어할 수 있는 전략을 짜도 모자랄 판국에, 갑자기 성문을 열고 도개교를 내려서 청소를 하자니?
“우리 조금 전에 한바탕 하지 않았습니까.
일을 했으면 쉬어야죠.”
“공자님!
농이 지나치십니다!”
“내가 지금 농담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웃고는 있지만, 그 미소가 진짜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라이온 기사단장은 차마 험한 말은 하지 못 하고 대신 리히텐 변경백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 상황을 자신은 이해치 못 하겠으니 백작님이 어떻게 해보라는 뜻.
“기사단장.”
“네, 백작 각하.”
“문 열어.”
“···예?”
“시온의 말대로 하게.
가서 얼른 준비하도록.”
“벼, 변경백!”
무례임을 알면서도 라이온은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뚫기 어려운 것이 성문이고, 넘기 어려운 것이 도개교이며, 함락하기 어려운 것이 성이다.
그런데 지금 이건, 칼을 든 강도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인사까지 하고 문을 열어주고 나서 귀중품은 어디에 있고 현금은 어디에 있다, 라고 하는 것보다 더 미친 짓이었다!
“기사단장.”
“그런 명령은!”
“실행하게.”
리히텐 변경백의 냉담한 반응에 라이온 기사단장은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렇게 공명의 함정을 준비하며 시온은 낄낄거렸다.
“이걸 다 해보네.
와, 제갈량 마음이 이랬을까?
이거 존나 흥분되는데?”
글쎄, 아마도 공명은 흥분보다는 상당히 쫄렸을 것이다.
그 때와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그리고 대비가 아예 안 된 것도 아니고.”
설마 좋다고 들어오는 미련한 놈들이 몇 있을까 성문 뒤에는 김유현을 선두로 해서 기사들과 병사들이 대기 중이었다.
저들이 속지 않는다면 결국 수성전을 할 수 밖에 없을 테지만, 시온은 저들이 당장의 상황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혼자라면 ‘질러보자’ 라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 수백, 수천이 모이면 단 한 명의 불안감도 순식간에 몇 백배로 불어난다.
더군다나 전투라는 최악의 상화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그건 다시금 수 천 배로 증폭된다.
‘누가 더 잘 싸우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쫄보 새끼인지 가리는 것.
그게 맞짱이다!’
어릴 적 누구나 다 다녔던 태권도 도장에서 사범이 했던 말이었다.
맹자니 순자니, 성선설이 성악설이니 그딴 똥철학보다 저런 말들이 실생활에 더 유용했다.
‘그것보다 시온 클라우젠, 무료할 때 띵가 좀 했다더니 손에 잘 맞네.
가끔 가다가 류트 좀 튕겨봐야겠어.’
의도지 않게 재능까지 발견하니 기분이 다 상쾌했다.
한 번 날카로운 기세를 잃으면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 공성전이라, 저들도 얼마 견디지 못하고 물러날 것이라고 시온은 확신했다.
만일 물러가지 않고 전투를 고집한다면, 뭐 죽는 거야 저들이고 말이다.
“···!”
“!···.”
잘 들리지는 않지만 지휘관과 그 부관들로 보이는 여럿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분명 이 상황에 대해서 어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터.
제정신이 박힌 자라면 차라리 뒤로 물러서며 상황을 살필 것이라 여기고 시온은 다음 곡은 뭘 쳐볼까 고민하려던 참이었다.
“하아앗!”
두두두두!
고요하던 때를 뒤로 하고,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게 뭔 일이여?’ 하고 고개를 돌린 시온은 곧 복숭아 먹다가 반쯤 잘린 벌레를 발견한 표정이 되었다.
“뭔데, 시바!”
놀라서 지랄하다가 그대로 책상을 정강이로 냅다 후려갈김.
띵띵 부었는데 너무 아픔 ㅠㅠㅠㅠ
금 갔다고 하면 ‘이제 앉아서 글만 쓰겠구나!
풍악을 울려라!’ 할 거죠?
금 안 갔어!
안 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