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46)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46화(246/439)
246―――――
고생은 주인공이 하고 악역은
“그러면 부탁 좀 드릴게요, 릴리트님.”
“걱정 마.
빠르게 다녀올게.
원래는 그냥 정신체만 보내도 되는데 그랬다가는 다른 녀석들이 경우가 없는 무례한 짓 아니냐고 징징거릴 테니 말이야.”
“혹여나 천족들이랑 부딪친다면···.”
“걱정 마.
너 두고 또 다시 위치도 모르는 곳에 봉인되거나 죽을 생각 없어.
최대한 피하고 도망 다니면서 갈 생각이니 안심해.
설마 나 못 믿는 건 아니지?”
“제가 릴리트님 안 믿으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말은 잘 해.
네 주변에 아주 여자가 그냥 득실거리는데!”
릴리트의 투덜거림에 시온은 ‘이런 매력적인 남자라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가 그대로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 말았다.
물론 전력을 다한 스매싱이 아니라 그냥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가볍게 후려친 정도였지만 시온 입장에서는 그냥 똑같이 아플 뿐이었다.
그렇게 릴리트까지 어딘가로 떠나고, 시끌벅적하던 별장에 적막이 찾아들었다.
“···.”
쟌은 제 방으로 걸어가는 시온을 바라보며 요 며칠 간 일어난 변화를 떠올려 보았다.
일단 릴리트, 마족이라는 여인이 항상 붙어다니던 시온의 곁을 떠니 어딘가로 사라졌다.
시온의 이야기로 미루어 봤을 때 그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자 다른 여인들이 말하기를 첫 번째라고 하는 여인이었는데 자리를 비우는 것이었다.
‘심지어 마족이라니.’
대륙의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마족이란 종족에 대해서 별 다른 적대감은 없다.
하지만 마족하면 나쁜 놈들이고 그림자라는 인식이 조금은 있어서인지 왕국의 영웅이라는 시온 옆에 마족이 붙어있다는 사실은 처음에 쟌으로서도 꽤나 놀라웠던 부분이었다.
물론 지금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들짐승··· 아니, 아니.
수인이라 했지.
이름이 리아, 라고 했던가.’
자신의 기척을 일부러 날 듯 말 듯 하면서 시온의 곁을 맴돌던 고양이 여인.
리아도 얼마 전부터 시온을 만난 후로 갑자기 기척이 완전히 지워졌다.
처음에는 그냥 몸을 완벽히 숨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예 어딘가로 길을 떠났음을 바로 어제 눈치 챈 쟌이었다.
‘그나마 호위 기사라는 리시키다는 바로 옆에 머물러 있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김유현, 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닌 남자.
북쪽의 강자라는 자신조차 애들 팔목 꺾듯 제압해버린 무시무시한 괴물.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 그 남자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시온 말에 따르면 자신의 명령으로 어딘가 향했다고 하는데, 그 말을 하던 시온의 입가에 상당히 무서운 미소가 서려있던 것으로 보아 결코 좋은 목적은 아닌 듯 했다.
‘그 남자가 갑자기 사라졌던 날 트리샤라는 여자도 같이 없어졌다.
도대체 뭐지?
혹시 둘이 눈이 맞아서 손잡고 도망갈 리도 없고 말이다.’
그래도 릴리트나 리시키다, 리아나 루시아라고 하는 여인들은 괜찮은 수준이었다.
한 남자를 마음에 품은 여인들치고 꽤나 우호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트리샤라는 여자는 그녀들과는 아무리 봐도 다른 모습을 가진 이였는데, 애써 휴전을 하고 있지만 시온에게서 허락만 받아낸다면 언제든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기운도 팍팍 내뿜고 있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트리샤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도망을 간다고 생각할 바에 차라리 당장 내일 세상이 망하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이었다.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시온 클라우젠?
그대 곁에 붙어있던 실력자들이 어딘가로 향하는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닌 것이 확실한데 도저히 모르겠구나.’
물어볼까, 물어보면 대답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자신도 내일이면 왕국을 떠나 다시 북쪽으로 돌아갈 여인이다.
이제 와서 사정을 묻는다고 해도 곧 외지인이 될 자신에게 시온이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 쟌이었다.
그냥 내일 아침 일찍 떠나기 위해 준비가 미리 해두어야겠구나, 라고 결심한 쟌은 평소의 그 힘 있는 발걸음이 아닌, 상당히 터덜거리는 모습으로 제 방으로 이동했다.
“···.”
그 모습을, 시온이 저 뒤에서 역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상상치 못 한 채로.
‘원래 목적은 이게 아니었는데.’
방 안으로 들어선 쟌은 잠시 멍하니 안을 둘러보았다.
참, 며칠을 지내도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자신의 막사가 그 어떤 부족장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넓이를 자랑하는데, 이 건물은 별장이라고 하는데도 방 하나 하나가 자신의 막사보다도 몇 배는 더 컸다.
‘왕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왕국의 귀족들 앞에서 당당히 시온과의 관계를 밝히고 그들의 놀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 남자가 내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건만.’
상황도 영 좋지가 않았고, 예상 외로 시온 옆에 있는 경쟁자들이 전부 쟁쟁한 이들이었다.
아직은 자신보다 약하거나 확 눈에 띄는 이들은 아니지만 그들은 이제야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자신은 스스로를 정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이제 유지를 하거나 내려앉을 일만 남은 상황에서 남자가 과연 어떤 판단을 할지는 이미 북쪽에서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는지라 혼약이 과연 유효할지 진심으로 걱정되기도 했다.
그나마 시온이 여전히 혼약에 확실하게 답을 해주고 있고, 쟌이라는 여인에게 호감이 있다고도 답을 해주었으니 아무것도 얻지 못 하고 돌아가는 길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스륵―.
늘 입고 다니던 털이 달린 외투를 살짝 벗고서 의자에 앉아 부츠를 벗으려던 찰나.
쟌은 누군가가 자신의 방 앞쪽으로 조용히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누구냐고 묻거나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쟌의 손에는 자신이 즐겨 사용하던 애병인 북쪽 전사들의 곡도가 잡혀있었다.
“···.”
하지만 곧 상대방의 기척을 더 자세히 파악한 쟌은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왜 일부러 기척을 죽이는 거지?
하마터면 적으로 인식할 뻔 했다, 시온.”
“리아한테서 잠입술이라고 한 번 배운 건데 역시 내 수준에서는 무리인건가?”
문을 열고 들어서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이는 시온 클라우젠, 이 별장의 주인.
자신과 혼약을 한 남자이자 묘하게 여인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을 지닌 진짜 ‘괴물’.
쟌은 그런 시온을 바라보다가 슬쩍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대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리아라는 고양이 여인의 잠입술이 모자란 거다.”
그래도 자신과 혼약을 한 남자라고 그가 스스로를 비하하는 건 보기 싫다는 반응.
시온은 쟌의 꽤나 귀여운 대답에 미소를 짓고는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오후인데도 비가 오려고 하는지 바깥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때문에 방 안 역시 오후임에도 저녁때처럼 어두운 기운이 가득한 상황.
그럼에도 쟌은 불을 다 켜지 않고 그냥 앞에 놓인 촛불 하나로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어둡지 않아?”
“괜찮다.
북쪽에서는 불을 피운다는 것이 곧 땔감을 소모한다는 것이기에 되도록 불을 피우지 않도록 교육을 받고 자라왔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는 왕국이지.
그러니 조금은 편하게 있어도 될 텐데.”
“난 북쪽 부족들을 대표하는 이, 그들에게 ‘테무친’ 으로 불리는 자다.
한순간 몸의 편함을 위해서 마음의 긴장까지 놓고 싶지는 않아.”
쟌은 그리 말한 후 물끄러미 시온을 바라보았다.
시온이 자신을 먼저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왜 하필이면 떠나기 전날, 이렇게 자신의 방으로 온 것이냐고 무언의 질문을 날리고 있었다.
“물어볼 게 있어서.”
“···듣고 있다.”
언젠가 자신과 시온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리는 쟌이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시원하게 뻗은 다리를 살짝 앞으로 내밀어서는 부츠를 벗으며 시온의 대답을 기다렸다.
“왕국에 조금만 더 머물면 안 될까?”
순간 쟌의 몸이 말 그대로 ‘우뚝’ 하고 멈춰 섰다.
잠시 자신이 무엇을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두 눈을 깜빡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시온을 쳐다보더니 몇 번 더 눈을 깜빡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마저 부츠를 벗는 장면이 아무래도 ‘내가 뭘 잘못 들은 게 맞구나.’ 싶은 반응이다.
“내 옆에 조금만 더 있으라고, 쟌.”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아니, 이 여자가 정말 잘못 들은 걸로 착각하고 있었던 거야?
시온은 살짝 어이가 없어서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 사이 쟌은 슬쩍 다리를 꼬고 앉으며 입고 있던 털외투를 팔에 아슬아슬하게 걸쳤다.
옆에 놓아두었던 칼의 손잡이 끝을 잡은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서는 시온을 바라본다.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옆에 있으라는 말에 무슨 의미가 필요한가?”
“···.”
“그냥 더 있다 가라는 소리야.
지금 올라가면 또 언제 올지 모르고, 나도 일이 바빠서 왕성에 없을 수도 있어서.
이왕 온 김에 좀 더 있다가 가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은데.”
“··· ···.”
시온의 말을 들은 여인의 얼굴에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해진다.
마침 이렇게 또 둘이 마주앉게 되었는데 미리 말을 해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나 혼자 끙끙거리며 앓고 있기에는 너무 성가신 일이고, 이걸 북쪽 고향까지 다시 가지고 가고 싶지도 않다.
모든 전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때의 걱정과 우려는 그때 해소하고 싶다.
그래, 말하자.
시온에게 털어놓자.
차라리 이게 나도, 그리고 저 남자도 조금은 편할지 모르니까.
“시온 클라우젠.
그대와 나 사이의 혼약 말이다.”
“그게 왜.”
“어차피 그 약속이 없어도 우리 부족과 왕국의 동맹이 깨질 것 같은 분위기나 상황이 아니니 굳이 꼭 지켜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더해서 그대가 아무래도 곤란해 하는 상황이 많이 찾아올 듯 한데.”
“···?”
아니, 갑자기 이 여자는 왜 또 이래?
소설 속 ‘칸’ 이라는 여자가 언제 남의 사정을 신경 쓰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했다고?
시온이 잠깐 당황해서 바로 입을 열지 못 하고 눈만 껌뻑이니 쟌은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더니 다 이해한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지금의 여왕이 왜 나와 그대의 혼약을 듣고 분노를 했는지 알겠다.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이름이 지닌 무게가 너무 무거워.
그 와중에 나와 엮이게 되면 그대만 손해이지 않느냐.”
“···.”
“아, 물론 동맹을 깨겠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저 이 혼약이 아니더라도 부족과 왕국의 동맹이 유지가 될 터이니 굳이 강제성을 띈 약조를 이행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거다.”
“쟌 테무친.”
“더해서 혼약만 깨겠다고 하는 것이지 그대를 가지고 싶다는 내 마음은 ··· 아, 미안하다.
뭐라고 했느냐?”
“겁먹었어?”
“···뭐라?”
“겁먹고 꼬리 내리고 도망치는 거냐고.
쟌 테무친.”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은 기운이 들었다.
시온은 까딱 잘못 하다가는 저 여자의 손에 들려있는 칼로 제 신체 일부가 썩둑!
하고 잘려나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냥 눈 딱 감고 더 질러보기로 했다.
“아니면 왜 혼약을 깨자고 하는 거지?
내가 싫은데 차마 싫다고는 말을 못 하겠으니 그런 적당한 핑계 좀 붙이고 나한테서 도망이라도 치겠다, 뭐 이런 건가?”
“말조심해라.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그런 소리를···.”
“네가 왜 왕국 걱정을 하지?
넌 그냥 북쪽 부족들만 잘 제어하면 그만이고, 왕국에서 날 잡음은 네가 아니라 내가 잡아야 할 일이야.
그런데 네가 왜 그걸 걱정해서 혼약을 깨자, 말자 하고 말하는 거냐고.”
“몰라서 묻는 것이냐!
그건···.”
“날 위한다는 소리 관둬라.
난 당장 네가 필요해.
앞으로도 필요할 테고.
그래서 너를 이용하기 위해서, 내 곁에 붙잡기 위해서 반드시 널 내 여자로 둘 거란 말이다.”
그야말로 노빠꾸, 오직 직진만 한 시온의 대답이었다.
쟌조차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 했는지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로 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북쪽의 전사들도, 그리고 여인들도 다 똑같다.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보다 그냥 직진해서 쾅, 하고 들이받는 걸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했어.’
그런 이유로 김유현의 편지에는 대놓고 에오스를 사랑한다는 말로 도배를 해두지 않았던가.
눈앞에 앉아있는 이 여인, 쟌 테무친도 별 다를 것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게 있으면 힘을 써서라도 쟁취하려고 했던 여인이다.
그런 여자가 갑자기 물러서는 게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면 돌려말하기 보다는 그냥 그대로 들이받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나, 나를 이용하기 위해 붙잡을 거라고?”
“그래.
무척 강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심지어 휘하 부족원들이 믿고 따르는 여인인데 탐을 내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어.
왕국에서 들리는 잡음?
말 그대로 잡음 따위인데 내가 너 같은 여자를 두고 그 잡음에 신경을 쓸 거라고 생각했나?”
“하, 하지만 왕국의 귀족들은···.”
“이득 관계로 움직이지 않냐고?
맞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손해가 쌓이면 대귀족이라고 해도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득이 되는 부분으로 움직이는 게 맞아.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쟌, 너라는 여자는 더더욱 내가 붙잡아야 하는 사람이야.
네가 다른 남자한테 가는 꼴을 보다가는 심사가 뒤틀려서 죽을 것 같거든.”
“어, 어어···.”
“혼인 동맹, 그 약속을 했잖아?
내가 희생하는 생각으로 그걸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어?
천만에.
네가 내게 호감이 있었던 것 그 이상으로 난 네게 품은 욕심이 있거든.”
여태까지 자꾸만 뒤로 물러서는 것 같았던 시온이 이리 강하게 들이받으니 쟌은 정신을 차리지 못 하겠다는 듯 ‘어어어.’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낸다.
“그러니까 그 혼약, 못 깬다.
아니, 안 깬다.
너 내 여자야.
혼인 동맹을 내건 그 순간부터 내 여자라고.
이거 깨고 다른 남자한테 가면 바로 너희 부족이랑 전쟁이야.
알아둬.”
“···.”
부족의 초짜 전사들만도 못 한 무력을 지닌 남자, 시온 클라우젠.
헌데 이렇게 보고 있자니 자꾸만 자신이 위축이 되는 이유는 뭘까, 싶은 쟌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 한 채 그냥 원래부터 쥐고 있던 칼의 손잡이만 만지작거리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속으로 미친 듯이 고민했다.
‘내가 그렇게 필요하다고?
내가 그대에게 품었던 호감 그 이상으로 나에 대해서 연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다른 남자한테 가기만 해보라고?’
바로 전쟁이라는 협박이 담겨있는 험악한 내용, 그리고 목소리였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시온의 그 협박에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참으로 어이없게도, 그리고 바보 같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쟌이었다.
‘이, 일단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이 분위기를···.’
쟌은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작 나온 건 전혀 말도 안 되는 말, 그냥 아무렇게나 내뱉은 헛소리였다.
“기, 김유현.
그, 그 남자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내, 내 동생에게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그 직후 갑작스레 사라졌는데.”
“···뜬금없이 김유현은 왜 찾아.”
“뜨, 뜬금없다니.
이건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까···.”
“걔 지금 내가 부탁한 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그 놈에 대한 신경 끄시고.”
자리에서 일어선 시온이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자 쟌 테무친이 전례 없는 ‘바짝 긴장한 얼굴’ 로 그를 응시한다.
“혼약 깰 거야, 안 깰 거야.
대답해, 쟌 테무친.”
가장 중요한 일이 터지기 직전인데 북쪽 전사들이 없으면 안 된다고.
시온은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쟌을 붙잡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렇게 강한 누님을 더욱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
“···이쯤인 것 같은데.”
깊은 숲속에 들어와서 그리 중얼거리고 있는 남자는 다름 아닌 소설 주인공, 김유현이었다.
누군가가 만들어준 지도를 확인한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그 때까지 자신의 옆구리에 끼고 있던 여인을 바닥 위에 내려놓았다.
“···괴, 괴물.”
어찌나 멀미를 했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트리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말을 타고 달려도 최소한 나흘은 걸린다는 거리를, 이 남자는 그냥 내달리는 것만으로 사흘 만에 주파해냈다.
심지어 소리는 물론이고 기척까지 최대한 줄이면서 그 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트리샤 입장에서는 정말 말 그대로 ‘괴물’ 과도 같은 것이었다.
“잡담은 되도록 하지 마라.
근처에 목표 지점이 있다.
조금의 소음이나 기척만으로도 우리 존재를 눈치 챌 수도 있으니 숨 쉬는 것도 조용히 쉬는 편이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김유현의 목소리에는 감정은 물론이고 음의 높낮이까지 느껴지지 않았다.
트리샤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이런 무서운 남자와 같은 일을 맡게 된 것이 너무나 싫다고 외쳤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시온의 부탁이자 또한 명령이니 어떻게든 이겨내고 또 상을 받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시온 공자가 한 말, 기억하고 있겠지.”
김유현의 질문에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미래의 세계관 최강자, 걸어 다니는 전술핵, 1인 버스터 콜인 김유현은 앞쪽을 주시했다.
우거진 수풀에 가려져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너머에 시온이 말한 목표가 있었다.
‘이건 전쟁이야, 김유현.
그리고 전쟁에서 ‘죄 없는 이’ 는 없어.
언제 그자들이 내 사람을 해치는 칼날을 만드는 원수가 될 지도 모르는데.
모두가 적, 모두가 살상해야 할 적이야.’
나는 성인군자도, 영웅도 아니야.
그냥 인간이지.
내 거 하나, 하나가 소중한 이기적인 인간.
내 사람 하나가 다칠 바에 그런 놈들 수천, 수만 명이 죽는 게 나아.
김유현 자신은 차마 그렇게 생각하지 못 했던 일을 너무나 담담히 말하는 시온이었다.
찰칵―.
미리 준비해 온 하얀 날개를 걸치며 김유현은 마음을 다잡았다.
과거의 나는 차마 그럴 수는 없다고 하다가 결국 많은 이들을 잃지 않았던가.
그에 비하자면 시온이란 남자는 비록 적들에게는 악마일지언정 그의 사람들에게만큼은 그 어떤 영웅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요정들보다는 당신을 더 믿을 수 있는 아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들에게 따로 사과는 하지 않겠다.
다만 비명은 지르지 말기를, 그렇게 해서 내게 그나마 조금의 죄책감만 지워주기를.
“가자.”
직후, 전술핵과 불벼락이 동시 투하되었다.
―――――――작품 후기―――――――
별 다른 일이 없다면 추석에도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즐거운 추석 보내시고 코로나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연휴동안 푹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