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47)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47화(247/439)
247―――――
고생은 주인공이 하고 악역은
마을의 경계를 서던 요정들이 기억하는 유일한 것은, 섬광과 굉음뿐이었다.
빛이 번쩍이며 눈앞을 가리는 순간 폭음과 함께 몸이 붕 떠오르더니 마치 폭풍에 날아가는 낙엽마냥 한없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커억!”
“꺽!”
마족을 가려낸다는 천족의 장치에 걸린 건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자신들의 경계 범위 내에서 다가오는 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적’ 은 그 모든 것을 완벽히 회피한 채 마을까지 들어섰다.
시뻘건 불길과 벼락을 몰고 다니며 마을의 모든 것 하나, 하나를 파괴해나간다.
그걸 막아서기 위해 요정들이 저마다 무기나 마법을 휘두르며 달려들면, 일말의 자비도 없이 섬광을 휘둘렀고 그럴 때마다 요정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 한 채 두동강이 났다.
“꺄아아아!”
“으아악!”
정체불명의 침입자, 가공할 만한 무력을 지닌 학살자를 피해 달아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침입자, 아니 소설 속 주인공인 ‘김유현’ 은 딱히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저 더러운 일까지 차마 하기는 싫었고, 무엇보다 자신과는 다르게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불길이 있지 않은가.
화르르르륵!
불길이 마치 살아서 춤을 추듯 이리저리 흔들리며 달아나던 이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 한 채 도망치던 이들은 산 채로 타오르다가 허물어져 내렸다.
‘볼 때마다 신기하군.’
마나를 이용한 마법이 아니다.
오히려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 발화한 ‘불꽃’ 이라고 봐야 할 터인데.
도대체 어느 불꽃이 저런 움직임을 보이며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는가.
턱!―
“끄으으으···.”
아직 숨이 붙어있는 요정 하나가 김유현의 발목을 붙잡았다.
치명상을 입은 터라 얼마 못 갈 적이기에 그는 가볍게 다리를 터는 것으로 요정을 떨어트렸다.
“다, 당신···.”
뭔가를 말하려고 하던 요정은 김유현의 등 뒤에 붙어있는 흰색의 뭔가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홉뜨다가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죽어서도 눈을 부릅 뜨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버지!”
아직 앳되어 보이는 소년 하나가 비명을 지른다.
그러더니 자신의 키보다도 더 큰 검을 들고서는 김유현에게 달려든다.
아마 저 요정족 소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짓을 벌인다면 저 괴물의 손에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원수를 갚겠다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죽겠다고 뛰어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렇게라도 발악하지 않으면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
김유현의 얼굴이 순간 고민으로 일그러졌다.
저항하는 이들은 자비 없이 전부 죽여 버렸지만 저런 소년까지 검을 들고 달려드는 걸 보니 조금은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죄 없는 놈은 없어.’
그 순간, 주인공의 머릿속에 어떤 악역이 한 말이 떠올랐다.
물론 스스로는 악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김유현조차도 이제는 아군이라고 여기는 남자의 한 마디가 말이다.
‘오늘 살려둔 적으로 인해 내일 내 사람이 상처를 입는 것보다 더 병신 같은 짓이 어디 있을까?
그놈들이 억울하다고 하면 일 잘했구나, 하고 생각해.
뿌리까지 뽑은 거니까.
놈들이 욕을 하면 더더욱 잘 하고 있는 거야.
놈들은 욕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욕을 하는 거니까.
김유현, 말했지만 난 나와 내 곁이 먼저다.
그러니까 내가 부탁한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해.’
깊이 침잠한 눈동자로, 김유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소년을 바라보다가 섬광을 그려냈다.
잠시 후 상대는 점차 달려오는 속도가 늦어지더니 결국에는 김유현의 앞에서 죽었던 제 아버지 바로 위에 허물어져서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죄책감 따위 가질 필요 없어.
나한테 그 책임, 그 죄책감 다 전가해버려.
나쁜 놈은 사실 나였다고.
넌 그냥 하라는 대로 한 것뿐이라고 생각해.
그러다가 언젠가 짐을 조금 나눠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책임을 같이 들어주면 되고.’
처음에 시온을 만났을 때는 분명 스무 살, 이제 겨우 사회로 발을 디딘 애송이라고 했었다.
이후 거의 1년 가까이 시온이란 사람과 지내면서 김유현은 자신의 생각이나 세간의 평가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아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맨 처음 있었던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시온의 여러 모습을 보며 김유현은 이 남자야말로 어쩌다가 기연을 얻어서 강해진 자신과는 달리 정말 철저한 준비가 되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의 혼란함이 평범한 이를 영웅을 만든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시온 클라우젠은 그냥 처음부터 다른 이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약하고 바보 같아서 제 여인조차 지키지 못 했던 무림에서의 자신과는 달리.
시온은 다른 이들의 시선이라는 무게에 깔리지 않고 오히려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스스로를 영웅이 아닌 악역이라고,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라고 하며 그 중압감에 압사당하지 않았다.
“저기요.”
여인이 목소리에 김유현은 상념에서 벗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여태 얌전히 숨어서 불꽃과 벼락을 뿜어내던 트리샤가 서있었다.
“어떻게든 도망치는 놈들을 다 잡으려고 했는데요.
그래도 빠져나간 몇몇 년놈이 있는 모양이에요.
그 녀석들은 어떻게 하죠?”
“···시온 공자가 말한 대로 하면 된다.”
저항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도망치는 놈들도 전부 죽여라.
그들이 살던 마을은 전부 불태워서 한 줌 재로 만들고 그 흔적조차 아주 사라지게 만들어라.
다만 그래도 도망에 성공한 이가 있다면 굳이 추격하지는 말고 다음 지점으로 이동해라.
이상이 시온이 김유현과 트리샤에게 주문한 내용이었다.
아마 시온과 같은 사람을 이세계가 아니라 무림에서 만났다면, 김유현은 당연히 반발하며 적이라고 해도 무고한 이들이 많은데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일 수는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반인륜적, 비도덕적인 행동들이었고 힘을 가진 자는 응당 자비심을 가지고 적이라고 해도 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김유현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도 이제는 참 많이도 속이 썩어 문드러졌군.’
하지만 그 포용과 자비의 끝에 돌아온 건 시리도록 아픈 배신과 그로 인해 제 사람들의 피와 눈물뿐인 김유현이었다.
당장 사랑했던 여인도 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적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상처가 채 아물 시간도 없이 갑작스레 자신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들.
김유현은 이제는 정말 지쳤다고 생각하며 그냥 조용히 지내려고 했었다.
괴팍하고 지랄 맞은 스승과 지내게 되기는 했지만 자신을 치료해준 은인이었고, 거기에 이세계에 대한 여러 정보도 얻을 수 있었으며 뜻하지 않게 무투술까지 배웠으니 나름 괜찮은 관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 와중에 시온 클라우젠을 만났다.
처음에는 그저 부모를 잘 만난,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는 애송이인 줄 알았건만.
알고 보니 자신처럼 재능과 운을 타고난, 이쪽 세상이 준비한 영웅일지도 모르는 남자를.
‘그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했어.
나처럼 다른 이들의 기대감 서린 눈빛에 깔려 이도 저도 못 하는 병신이 되지는 않을까, 바보 같은 생각에 오히려 더 많은 절망을 맛보지는 않을까 말이다.
하지만···.’
시온은 마치 잘 보라는 듯, 재능과 운을 모두 타고난 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듯.
과장을 좀 보태서 삶을 한 번 살아봤던 사람처럼 강단 있게, 자신의 모든 행동에 의심 한 점이 없었다.
그리고 결과는 김유현 자신과는 정 반대의 것.
시온을 사랑하던 이들이 피나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었고, 세상은 오히려 더더욱 그를 영웅이라고 칭송했으며 그럼에도 시온 본인은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 스스로를 좋은 놈이 아니라고 한다.
영웅이 아니라고 한다.
인간이라고,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언제든 악한 자가 되어서 나와 내 사람을 위협하는 자들에게 끔찍한 최후를 안겨줄 수 있다고 말한다.
‘나와는 다르다.’
그래, 나와는 다르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 남자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다.
정말 내가 틀렸던 것인지, 아니면 그도 결국에는 어느 순간 틀렸다고 말하며 좌절할지.
그리고 과거의 제 적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온갖 간악한 무리들에게 그때 풀지 못 했던 분노를 이번에만큼은 아주 마음껏 풀고 싶기도 했다.
“그보다, 그 날개는 도대체 뭐에요?
설마 천족이라고 속이려고 그런 건가요?”
“일단은 그렇다고 해두지.”
“···요정들이 바보도 아니고 너무 대놓고 속이겠다는 느낌이 강한데 넘어갈까 싶은데.”
트리샤의 걱정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이건 너무 조잡하다.
조잡해도 너무 조잡하단 말이다.
요정들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뜬금없이 천족이 자신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안다.
차라리 마족들이 움직여서 요정들과 천족 간의 관계를 갈라서게 만들려고 생각한다면 모를까.
“아니면 우리 같은 인간들이나 다른 이종족들이 공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답하는 김유현의 표정에는 그리 걱정한다는 기색이 담겨있지 않았다.
이미 그 부분에 관해서 자신이 먼저 시온에게 의문을 표했었고, 시온은 그에 대해서 상당히 괜찮은 답을 내놓았던 것이다.
‘걱정 마.
그렇게 생각해줘도 나쁘지 않고, 그렇게 생각 안 할 확률도 높거든.’
‘어째서입니까?’
‘정보에 의하면 요정들은 마족들의 접근을 알아차릴 수 있는 천족들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
자신들이 그렇게나 떠받드는 천족의 물건 말이야.
그런데 그 장치가 있는데도 마족들이 접근해서 마을을 공격하고 동족들을 학살했다?
그렇다는 건 결국 천족들의 물건에 하자가 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그렇게나 위대하신 빛의 후예들이 실수를 했다는 소리가 되는데?’
‘···.’
‘다른 종족들의 습격이라.
그것도 가능성 있지.
하지만 지금부터 네가 향할 곳은 조그마한 마을도 아니고 규모가 있는 큰 마을이야.
당연히 실력자들도 여럿 있겠지.
그런 이들이 지키는 곳에 어느 누가 기습을 할 수 있겠냐고 생각하겠어.
자신들이 빛의 후예들 다음으로 고귀하고 강한 종족이라고 생각하는 요정들인데.
당연히 자신들이 전부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족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천족들의 물건에 하자가 있었다고, 더 나아가 자신들이 그렇게나 따르며 완벽하다고 믿는 천족들도 실수를 한다는 말이 된다.
만약 인간들이나 다른 종족들의 기습이라고 한다면 그건 요정 측 전사들이 생각보다 훨씬 약하다는 말, 그리고 다른 종족들이 훨씬 강하다는 뜻으로 변한다.
천족을 제외한 어느 종족보다도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는 주장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는 것이었다.
‘둘 다 아니리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한 가지 경우는 마족 탐지 장치에도 안 걸리면서 요정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종족이 범인일 수도 있겠지.’
‘그래서···.’
‘맞아.
그래서 과격하게 움직이는 요정들의 마을이 아니라 온건파 쪽 요정들을 건드리는 거야.
의심할 거 한 번 제대로 의심해보라고.’
천족을 따르면서도 정작 행동으로는 잘 나서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난 정체불명의 적.
마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종족도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연 그 적이 뭐라고 생각할까?
‘···공자가 원하는 대로 넘어가겠습니까?’
‘안 넘어가도 상관없어.
온건파 요정들이 천족을 의심해도 그만이고 아니면 천족들이 자신들의 상상대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해도 그만이지.
아니면 그 알량한 자존심 접고 다른 종족들이 자신들만큼 강해졌구나 하며 초조해 하는 것도 괜찮아.’
시작부터 요정들의 믿음을 완전히 박살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 시온이었다.
그들의 믿음에, 그리고 자존심에 아주 조그마한 균열만 가도 얼마든지 파고 들 수 있다.
광신도들은 그냥 같이 불태워 죽이면 그만이지만, 일반 신도들은 귓가에 ‘사실 너희 신 별 거 없더라.
이거 봐.’ 라고 좀 보여주기만 하면 알아서 이탈할 자들이다.
그런 부분에 더해서 시온이 최고로 원하는 그림은 바로 이것.
요정들이 천족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냐, 와 일단 생각 좀 해보자, 라는 두 파벌로 갈려서 저들끼리 물고 뜯고 싸우며 또 다시 난장판이 되는 것이었다.
‘잼을 발라서 먹냐, 안 먹냐로 종족 전체가 내전을 겪었던 놈들이야.
고귀하다, 아름답다, 강하다 따위의 수식어로 그 병신 같았던 과거를 가리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게 가능하겠어?
태생이 딱 그런 놈들인데.’
굳이 내 쪽으로 오라고 온갖 고생을 해가면서 회유할 필요 없다.
적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고 거기에서 이탈한 놈들이 이쪽으로 달려와서 나 좀 받아달라고 머리를 박고 비는 순간을 만들면 되니까.
내가 가는 게 아니라, 상대가 오게 만들면 되니까!
“시온 공자가 다 생각이 있겠지.
너도 그 분의 명령 때문에 이렇게 일대를 전소시키고 있는 거 아니었나?”
“그렇죠?”
시온은 트리샤에게 따로 명령을 해두었다.
김유현이 청소를 끝내면 너는 시체는 물론이고 마을 전부, 그 일대까지 전부 불태우라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병과 오물로 더럽혀진 일대를 소독이라도 하는 느낌처럼 아주 깨끗하게 소각하라고 말이다.
김유현이나 트리샤는 모를 테지만, 시온은 알고 있는 사실 하나.
마족들은 상대방 진영을 공격하고 나면 시체들을 장난감처럼 여기저기 늘어놓는 걸 즐겼으며 인간들은 대부분 노예상들이라 마을을 파괴하기 보다는 최대한 물건을 생포하는 것에 치중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아주 깔끔하게 일대를 전소시키는 건 모두가 잘 하지 않는 짓이란 소리였다.
화르르륵―.
나무와 집, 죽은 자와 산 자가 전부 불꽃에 먹혀가는 데도 트리샤는 별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냥 그 찬란한 화염을 바라보며 ‘예쁘다.’ 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다음 장소로 간다.”
“버, 벌써요?
으으···.”
시온이 명령대로 마을 전체를 아주 흔적도 없이 불태우던 트리샤는 또 다시 얌전히 짐이 되어서는 김유현의 옆구리에 장착되었다.
직후 김유현은 트리샤를 옆구리에 끼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다음 장소로 섬전처럼 내달렸다.
“어, 얼마나 더 걸릴까요!”
“모른다.”
얼른 끝내고 시온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으아아!
트리샤는 속으로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김유현의 옆구리에 끼워진 짐이 되어서 어딘가로 슝슝, 하고 날아갔다.
정작 시온은 별장에서 한 여인과 마주 앉아서 천하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이었지만 말이다.
―――――――작품 후기―――――――
추천은 항상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