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63)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63화(263/439)
263―――――
Requiem
좀 많은 양의, 정정하겠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고기를 바치기는 했지만.
역시나 그만한 수확을 걷을 수 있었던 서쪽 여행이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감히 생각도 못 해볼 계획이었지만 시온은 이미 수인들과 요정들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후 수인들이 천족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바로 돌아서서는 송곳니와 발톱을 보일 자들이란 걸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인들의 땅을 벗어나면서, 시온은 미리 가지고 왔었던 쟌의 선물을 꺼내들었다.
북쪽 전사들이 사냥용이나 전서 전달을 목적으로 쓰는 작지만 날쌘 매였는데 발목에 쪽지를 써서 넣으면 바로 쟌에게로 날아가는 훈련이 되어 있는, 꽤나 똘똘한 녀석이었다.
시온은 그 쪽지에 수인들과 한 이야기들과 함께.
그들이 북쪽으로 가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처리할 것이니 괜히 적대하지 말고 전사들을 대우하는 것처럼 대하라는 말까지 적어두었다.
‘이걸로 쟌과 에오스 모두가 전사들을 이끌고 자리를 비워도 북쪽 부족들이 몬스터들에게 밀려서 큰 피해를 입을 걱정은 없게 되었고.’
천족이나 요정들과 싸울 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간과 싸울 때에는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한 카드가 되는 것이 바로 북쪽의 전사들이다.
그들이 가진 기동력이나 유인 전술 등은 빛의 뜻이다, 뭐다 하면서 뭣도 모르고 달려들 미친놈들에게 딱 좋은 약이었으니까 말이다.
‘천족?
그래, 좋아.
그래도 작가가 천사들을 모티브로 했다는 종족이라고 했으니 혈통이 좋다는 건 인정할게.
요정?
성격 지랄 맞고 하는 짓은 맨날 저들끼리 싸우는 거지만 그래도 껍데기가 좀 괜찮으니 넘어간다 치자고.
그런데 그 빛의 교리를 광적으로 따르는 다른 인간 놈들은?
저들이 뭐 대단한 게 있다고 고귀한 척, 깨끗한 척일까?’
다른 건 몰라도 잘난 거 하나 없는 놈들이 잘난 거 등에 업으니 자신들까지 잘나졌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놈들의 머리통을 깨부수는 것이 진정 인류애를 위한 것임을, 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것임을 당장 소설에서가 아니라 원래 세상에서도 절실히 느꼈던 시온이었다.
“시온.”
얌전히 옆에 앉아있던 리아가 슬쩍 시온의 무릎 위에 앉고서는 조심스레 제 볼로 제 수컷의 턱을 간지럽힌다.
애교를 부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할 말이 있으니 제 말을 들어달라는 묘은족 특유의 행동.
시온이 말해보라는 듯, 자신은 듣고 있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리아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고마워.”
“뭐가?”
“배려해 준 거 말이야.
우리 수인들이 천족들과 부딪칠까봐 북쪽으로 돌린 거잖아.”
그 말에 시온은 오오, 하고 일부러 과장된 탄성을 토해냈다.
설마 네가 그걸 이리도 빨리 알아낼 줄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정신 나간 광신도들과 싸울 생각이라면 북쪽의 전사들도 좋지만 굳이 고르자면 그보다는 수인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말을 먹이고 관리해줄 필요도 없고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더 단단하다.
전면전이 아닌 측면과 후방 교란, 그리고 유인 및 섬멸 목적으로는 안성맞춤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수인들은 아직까지는 천족들을 믿고 있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을 빛의 후예들이 뒤를 봐주는 존재들, 빛의 대행자라고 지껄이는 자들을 향해 송곳니와 발톱을 마음껏 드러내기에는 확실히 모호한 상황이기도 했다.
‘괜히 아군 구별도 잘 안 되는 곳에 좋다고 넣었다가 뒤통수 맞으면 곤란하거든.
아직 천족들이 희대의 개새끼들이란 걸 모르고 있으니 수인들은 나설 때가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우리 귀여운 강아지, 고양이들.’
천족들이 말하는 그 새로운 세상은 오직 불꽃과 재만이 가득한 지옥.
수인들이 원하는 그 지상 낙원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설에서처럼 수인들은 바로 ‘이 사기꾼 새끼들아!’를 외치며 천족들에게 엄청난 적의를 표할 것이었다.
물론 수인들의 전력은 지금의 지도자들과 이후 자리를 이을 몇몇 신흥 세력들.
예로 들어서 옆에 있는 리아나 며칠 전에 봤던 라프라 정도가 전부이다.
모두가 상위 천족과 엇비슷한 무력을 지니고 있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이다.
수인들 입장에서는 그들이 대체 불가능 최고의 전력이지만 천족 입장에서 상위 천족은 얼마든지 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전력이었다.
무엇보다 이쯤 되었으면 천족들도 성흔을 지닌 자들을 최소 셋 이상은 확보했을 것이다.
시온이 하나를 제 편으로 들이고, 하나는 팔다리를 분질러서 아예 사람 구실조차 못 하게 해두었으니 조금은 안심이라지만, 아직도 칠익의 근간이 되는 성흔 보유자는 다섯이나 있다.
그리고 그 다섯이 전부 천족들의 편에 서면 비록 ‘김유현 레플리카’ 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긴 하나 그 강력함만은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인원들이 모두 적이 되는 것이었다.
‘염병하겠네.
작가 놈이 전조도 없이 바로 등장을 시켜서 칠익이 정확히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디서 살았는지 정보가 거의 없어.
트리샤처럼 대충의 정보라도 있으면 어떻게 해볼 텐데.
이렇게 되면 운에 기대던가, 아니면 현재 가진 전력으로 상대할 생각을 해야 한다.’
김유현이라는 만능 키가, 누구 말대로 엑X디아 급의 카드가 손에 있다지만 결국 김유현은 하나인데 반해 적은 비록 김유현 레플리카라고 하지만 그 수가 훨씬 많다.
더해서 아직 소설에서는 나오지도 않았던 천족들의 진정한 강자, 일명 ‘수호성’ 이라고 불리는 이까지 고려한다면 김유현에게 가해질 부담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당장 소설에서도 천족들의 계략으로 인해 대륙의 네임드들이 거의 쓸려나간 상태에서 오직 김유현과 그에 비교해서 훨씬 못 미치는 이들로 싸움을 하니 매번 김유현만 개고생이었다.
주인공이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그 괴물이 없는 곳에서는 뚱뚱한 비둘기가 괴조가 되어서 날뛰기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다행인 건 그 칠익 중 하나인 트리샤는 내 것, 그리고 캡틴은 아주 박살을 내서 가뒀다.
릴리트님을 위시해서 잘 하면 최고위 마족들도 움직일 수 있고, 나머지 최상위 천족들은 어떻게든 이쪽의 네임드들을 동원해서 막는 수밖에.’
시간이 더 있었다면 당장 리시키다나 루시아, 리아 같은 이들을 더 강하게 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시간을 끌어서 유리한 건 시온보다는 역시나 천족들이었다.
어떻게든 일을 망쳐서 천족들이 조바심에 결국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하고, 비로소 그들의 본뜻이 무엇인지 세상이 알게 하는 것.
그게 시온이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타격을 주려는 방법이었다.
‘실패한 영웅은 혼자 다 짊어져서 싸우려고 했던 놈이고, 성공하는 영웅은 다 함께 싸우자고 하는 법이다.
피는 적게 흘리면 좋다지만 그 적은 피가 오직 나만의 피일 이유는 없어.
성공하면 다 같이 살고 실패하면 다 같이 죽어야 하는데 왜 혼자 고생을 해.
다 같이 고생해야지.’
절대 혼자 고생하는 게 억울해서 그러는 건 결코 아니다.
이 사람들아, 나 그렇게 쪼잔한 놈은 아니라고!
라고 시온은 소리쳤다.
솔직히 자신이 잘 되는 게 다 이 세상 구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의 과정인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리아.
너희 수인들은 천족들이 말하는 좋은 세상이 수인들이 원하는 지상 낙원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들을 따른다고 했었지?”
“응.
모두가 마음 놓고 뛰어놀고 무시도 안 받고, 배를 곯을 일 없이 사냥감이 넘쳐나는 곳.
물론 난 거기에 시온이 무조건 있어야 하지만 말이야!”
냐앙!
하고 안겨 들어서는 또 골골송을 시작하는 리아였다.
다 큰 여인이 하는 짓은 아직도 아기 고양이라서 조금은 난감하기도 했지만, 이런 맛에 다들 고양이 한 마리씩은 키우는 법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그러면 천족들이 수인들이 생각하는 지상 낙원과는 다른 뭔가를 꿈꾼다면?”
“냐앙.
어떻게 되겠어?
바로 지지 철회야.
뜻도 안 맞는데 왜 붙어있겠어.”
“하긴 그렇지.
괜한 걸 물었네.”
그렇게 말하며 시온은 돌아가면 헬렌이나 만나볼까 생각을 했다.
현재 이렇게 왕성으로 타고 가는 이 마차도, 그리고 이전에 왕국 서쪽으로 향할 때 탔던 마차도 모두가 하이네스 상단 측에서 지원해준 것이었다.
비공식적인 방문이었으니 정체를 숨기고자 하는 건 당연한 일, 그에 헬렌이 그래도 귀하신 분이 막 다니는 건 왕국 입장에서 반드시 반대할 일이라고 말하며 상단의 마차를 내어준 것이었다.
덕분에 평범한 여행자 내지는 상단과 관련된 인물 정도로만 해서 오고갈 수 있었던 시온은 그에 대한 보답도 할 겸, 그리고 볼 때마다 자꾸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캐릭터를 좀 보듬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2주가 조금 넘었던 서쪽 여행을 마치고 막 별장으로 돌아오니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뭔가 다급한 분위기가 서려있었는데, 그걸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시온이 누구 하나를 붙잡고 막 이유를 물으려는 찰나.
“주인님!”
시온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바로 달려왔는지 반은 무장 상태인 리시키다가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단순히 반가워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또 아니었다.
리시키다는 정말 급하다는 표정과 목소리였던 것이다.
“뭔데, 뭐야.
리시.
진정하고.
왜 그러는 건데?”
“며, 며칠 전에 왕궁에서 사람이 왔었습니다!
정말 급하다고 했어요!
잠깐 머리를 식히실 겸 왕성 근처로 외출을 나갔다고 하니 중대한 일이라면서 복귀하면 그 즉시 왕궁으로 와달라는 여왕님의 명이었습니다!”
“···여왕님께서?”
“네!
그리고 직후 후작령들로 파발이 떠났다고 하는데 꽤나 급해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영 느낌이 좋지가 않았다.
시온은 돌아온 즉시 몸단장을 마치고는 정식으로 왕궁으로 향했다.
언뜻 보면 평소와는 크게 다른 것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내부에서 흐르는 분위기가 유독 차갑고 또 무겁게 내려앉아있음을 시온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온의 그 예감은, 바네사 여왕이 자신을 응접실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부른 것에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왕실 기사들의 안내를 받아 향한 곳은 왕궁에서도 가장 깊은 곳, 바로 왕이 머무는 침소 근처였던 것이다.
시종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침통한 얼굴로 시온을 맞이하며.
더욱 조심스러운 손길로 방문을 열어준다.
‘···쯧.’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온은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차고 말았다.
분명 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느껴지는 건 오직 차가움.
그리고 서서히 드리우는 죽음의 기운이었던 것이다.
“여왕이시여.”
“···왔는가, 시온 클라우젠 공자.”
어느 때보다도 조용하고, 힘이 없는 목소리.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네사의 약한 모습에 시온은 조용히 한숨을 내뱉고는 발소리가 들릴까 최대한 소리를 죽여 그녀가 앉아있는 침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침대 위에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정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군주.
에드가 4세가 바싹 마른 채로 힘겹게 숨만 내뱉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 하아···.”
그 소리가 너무나도 옅고 약해서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비록 선대 국왕이긴 하지만 그래도 왕이었던 사람이며 한때는 귀족들에게 가장 두려웠던 존재로 꼽히던 남자다.
그런 에드가 4세의 저런 약한 모습을 어찌 되었든 신하인 자신이 이렇게 봐도 되는가 싶어서 시온이 살짝 눈치를 보자 바네사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버지께서 부탁하신 일이다.
그 어떤 인간이라고 해도, 손에 무엇을 쥐고 있던 자라고 해도 결국 죽을 때는 빈손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그걸 자신과 함께 히스파냐를 이끈 노장들과, 앞으로 그 의무를 대신해야 할 젊은 영웅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셨군요.”
“그러니 보아라.
그리고 그 두 눈에 확실하게 새겨두어라.
비록 해가 저물 때 빛을 잃고 천천히 어둠 속에 잠길지언정, 그 품위까지는 잃지 않는다.”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다거나, 두려워한다거나,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었다.
에드가 4세는 그저 두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내쉬며 조용히.
아주 조용히.
자신에게 내려졌던 모든 의무를 마치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하.
볼코 레데넨 후작이 당도했습니다.”
“에스티아 오네르 후작이 막 도착했다고 합니다.”
“구첸 후작가의 호아킨 후작이 왔습니다.”
다들 왕성과는 거리가 제법 있는 곳에 머무는 후작들임에도 전부가 모여들었다.
급보를 듣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말을 달린 모양인지 다들 행색들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그런 걸 어느 누구도 신경 쓸 생각은 없었다.
원래는 후작이라도 해도 이런 곳에까지 와서 왕의 임종을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에드가 4세의 지시로 인해 3후작들, 그리고 시온 클라우젠이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대들을 부른 건, 단순히 아버지만의 뜻을 위해서가 아니다.”
“전하?”
“첩보가 전해졌다.
누디아가 곧 대대적인 공격에 나설 것 같다고 하더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눈빛이 변했다.
다들 분노와 불쾌함이 가득한 와중에, 오직 시온만이 ‘그래, 드디어 움직이는구나.’ 라고 중얼거리며 차갑게 내려앉은 모습으로.
“저들도 얼추 눈치는 챘을 것이다.
굳이 아버지께서 왕위를 넘기시고 언젠가부터 나타나시지 않는 이유를.
누디아 측이 모를 리가 없다.
그 분의 마지막이 가까워졌음을 말이다.”
“···.”
“헌데 저들은 기어코 일을 벌이는구나.
히스파냐를 위해 어느 누구보다 헌신했던 분의 마지막 순간에.
그분이 가시는 길에 왕국의 모두가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해야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외치듯 말이다.”
“전하.”
“빛의 뜻을 거부하는 자들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빛의 교리에 어긋나는 일로 인해 불길한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빛을 배신한 자들이 필시 히스파냐의 안에 있다.
이것은 누디아의 뜻이 아니라 빛의 후예들께서 원하시는 전쟁이다.
이게 여태까지 전해진 누디아의 소식이다.”
말은 빛의 뜻이니 뭐니 번지르르하게 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다.
너희들은 악이고 우리는 선이며 정의이고 빛이다.
너희들이 잘못을 했으니 공격을 ‘당하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이전처럼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누디아의 대군이 몰려들 것이다.
클라우젠 변경백령이 제아무리 단단한 방패라고 해도 중과부적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그래도 한 때는 나름 가깝게 지냈던 자들인데.
누군가가 떠나는 길에 이리도 소란을 일으키니 내 어찌 해야겠는가.”
히스파냐가 보일 행동은 이미 정해져있다.
다만 바네사는, 히스파냐의 여왕은 묻고 있는 것이었다.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들은 이 나라의 여왕인 나를 빛의 뜻을 따르지 않는 악한 자라고 하는데.
과연 그대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저들의 말을 믿고 어쩌면 정말 마족 추종자일지도 모르는 나를 칠 것인가.
아니면 빛의 뜻을 가로막는다는 오명을 들을 수도 있는 전장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러자 볼코 후작과 호아킨 후작, 그리고 후작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에스티아까지.
모두가 시온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뜻은 이미 정해져있음을.
그것을 이 왕국에 나타난 새로운 별인 그대가 대표해서 해달라는 뜻을 전해온다.
‘거절할 이유 따위는··· 없다.’
겸손 따위는 이제 집어치울 때였다.
여태까지 준비하고 쌓아올린 모든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임이 아니었던가.
“여왕이시여.”
“말하라, 시온 클라우젠.”
“선대 국왕의 가르침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떠나시는 길이 적적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 하겠습니다.”
비로소, 시작이다.
지금부터 행해지는 모든 것은.
떠나는 자를 위한 진혼곡 (Requiem) 이 되리라.
―――――――작품 후기―――――――
I will sing my requiem, my requiem to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