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66)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66화(266/439)
266―――――
Requiem
신성 프러센이 마족들에게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여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이 마법 통신을 통해 누디아 측의 선봉을 맡고 있는 1군 지휘부에도 전해졌다.
누디아가 히스파냐를 향해 공격을 결정한 바로 전날.
다수의 마물들을 선두로 마족들이 거세게 신성 프러센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악의 무리가 빛의 성지를 공격하는 바로 그 순간, 누디아는 또 다른 인간 왕국인 히스파냐를 공격하게 되었고 말이다.
바로바로 소식을 전해 듣는 지휘부와는 달리 병사들은 아직 소식을 모른다.
아직까지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터질 둑을 알면서도 그 밑으로 걸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위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결국에는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모든 것을 의심하며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어쩝니까, 사령관님.”
“별 수 있나?
이대로 계속 진군해야지.
본대에서도 재촉하고 있고.”
“하지만 보십쇼.
너무 절묘하지 않습니까.
마족들이 신성 프러센을 공격한 것과 저희가 히스파냐를 공격하는 것이···.”
“입조심하게.
우리가 마족 추종자라도 된다는 소리인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미니 그게 병사들의 귀에 들어가서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란 말일세!”
“죄, 죄송합니다.”
“알아도 모르는 척, 들려도 못 들은 척 하게.
이기는 것만 생각해.
승리만 생각하라고!”
아직 전투 한 번 겪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회의 막사에는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문제라고 되느냐고, 바보 같은 걱정을 왜 하냐고 물을 테지만.
누디아가 어떤 이유로, 무슨 명분으로 이 엄청난 전쟁을 일으켰는가 생각해보면 그리 바보 같은 걱정이 결코 아니었다.
히스파냐의 군대가 지나간 후 계속해서 그 자리마다 흉흉한 기세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후 마족 추종자들이 히스파냐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누디아 내부에서 빛의 후예들이 이번 성전에 실망하고 분노하여 그 흔적을 남긴 것이라는, 빛을 저버리려는 히스파냐에 대한 경고가 필요하다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그저 소문으로만 이어지던 것이,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귀족 회의까지 나왔고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이나 누디아의 영달이 아닌 빛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침략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규정했다.
빛의 교도가 신성 프러센 다음으로 많고, 신성 프러센보다도 더 극성맞은 교도들이 있는 터라 민심마저 전쟁 분위기로 흘러갔으며 반대를 외치는 이들은 자연스레 빛의 뜻을 거부하는 자.
즉 마족 추종자들로 몰리게 생겼으니 자연스레 그 목소리가 작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국가적인 지지와 명분을 얻고, 백 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원한 적이 없었던 대규모의 병력을 일으켜 히스파냐로 진군하기에 이른 누디아다.
그런데, 그런데 만약에?
알고 보니 마족 추종자들은 히스파냐가 아니라 누디아였고.
그걸 감추기 위해 귀족들과 왕실이 의도적으로 무슨 짓을 저질러서 그 원망과 비난의 화살을 히스파냐에 돌리고서 아예 쐐기를 박기 위해 전쟁까지 저지른 것이었다면?
‘그렇게 되는 순간 이 전쟁은 우리 누디아의 참패인 거죠.’
아이브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단순히 전투에서 패하고, 그렇게 해서 전쟁에서 또 패하는 것보다 더 큰 패배가 있다.
그건 바로 싸우기도 전에 싸워야 할 이유도, 명분도 전부 잃어버리는 것.
그렇게 되어서 군대라는 집단이 목적을 잃은 채 방황하다가 결국 뿔뿔이 흩어지는 것.
그게 바로 최악의 패배이자, 가장 큰 패배였다.
차라리 전투에서 물리적으로 패배라도 한다면 어떻게든 패잔병을 규합해서 저항을 하던가 질서를 지켜서 퇴각이라도 할 텐데, 그런 식으로 싸울 이유와 명분조차 잃는다면 그냥 병력이 통째로 증발할 수도 있었다.
“아이브님.
본국에서 온 소식 중에 다른 건 없습니까?
잘못 전해진 소식이라던가···.”
조금이나마 희망을 품은 얼굴로 그리 묻는 귀족들.
하지만 아이브는 그럴 리가 없지 않겠냐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모두가 사실입니다.
현재 엄청난 수의 마물들이 신성 프러센에 육박했고, 그 뒤를 이어서 전대미문의 악의 세력들이 거칠게 성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신성 프러센과의 모든 육로가 끊어졌고,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이럴 수가···.”
“정말로 마족이 공격을···.”
마족들이 신성 프러센에, 빛의 교도들에게 성지라고 불리는 곳을 공격했다.
그런데 그 직후, 갑자기 누디아가 히스파냐를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연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아무리 말을 한다고 해도.
마치 누디아가 마족들과 뜻을 같이 해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그림이 절로 그려질 정도였다.
‘하늘마저 시온 클라우젠, 당신을 돕는군요.
어쭙잖은 헛소리로 침략을 강행했던 누디아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고요.’
설마 시온이 마족을 끌여들였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 하는 아이브였다.
거기까지 생각하기에는, 그래도 아이브가 시온에 비해서 조금은 착하고 정상이었으니까.
후우, 한숨을 내뱉은 아이브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전쟁, 넘어버린 국경이다.
이제 와서 ‘아, 죄송합니다.
실수였습니다.’ 라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란 거다.
‘아니, 오히려 더욱 더 승리가 절실해졌죠.
이제 더욱 단순해진 겁니다.’
아이브는 그렇게 생각하며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지휘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모두 진정하세요.
오히려 잘 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예?”
“아이브님, 그게 무슨 말인지요?”
“이제는 우리 누디아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싸워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어지게 생겼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반응의 귀족들.
그에 아이브는 답답함에 가슴을 치고 싶은 생각을 억지로 참으며 말을 이었다.
“마족들이 신성 프러센을 공격하고, 누디아는 히스파냐를 공격한다.
여기서 공통점은 ‘공격’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 두 사건이 연관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죠.
절묘하게 때가 맞아떨어졌으니까.”
“그렇지요.”
“허면 우리는 그걸 결과로 뒤바꿔야 합니다.
마족들은 패할 겁니다.
예전처럼, 결국 다시 쫓겨 들어가서 필멸의 땅에 틀어박히겠죠.
그런데 만약 우리 누디아도 패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마족 추종자로 영원히 낙인찍히는 겁니다.
영원히 말이죠.”
“그, 그건 아니 될 말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당연히 안 되고말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답답해서 미치겠네.
아이브는 한숨을 내쉬면서 도대체 이런 자들을 믿고 어찌 이 전쟁을 수행해 나가야 싶어서 참으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긴다면,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모양새가 달라지죠.
신성 프러센은 마족을 상대로 이겼고, 우리는 히스파냐를 상대로 이겼다.
그리고 마족 추종자들을 반드시 색출해서 제거하겠다는 히스파냐의 확신을 듣고 물러난다.
이렇게 결말을 맺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녀의 말에 비로소 지휘부의 인사들이 탄성을 내뱉으며 조금은 안심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이브의 말은 어차피 모든 것은 승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니, 어떻게든 이겨서 명분을 되찾고 원래 하려고 했던 것처럼 히스파냐에 잘못이 있다고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런 전쟁에서 이겨도 얻는 것은 거의 없겠지만··· 최소한 패배해서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야 낫겠죠.
당신도 분명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렇죠, 시온 클라우젠?’
아마 아이브의 말을 시온이 들었다면 ‘뭔 개소리야!’ 라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이겨서 얻을 게 없다면 차라리 항복이라도 하라고!
라는 말과 함께.
“본대 상황은 어떠나요?”
“신성 프러센이 공격을 받았기에 군대를 돌려야 한다, 신성 프러센을 도와야 한다, 라는 의견과 여기서 군을 돌려도 이미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질 테니 마족들은 신성 프러센이 막고, 마족 추종자들이 있는 히스파냐를 누디아가 제압해야 한다는 그림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 중이랍니다.”
“이제 와서 신성 프러센으로 군대를 돌리면 못 해도 2주는 넘게 진군해야 하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요?
병참 문제도 생각지 않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들도 그냥 이대로 밀고 나가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 중이었습니다.”
“우리 1군의 사령관은 당신입니다.
당신이 판단하는 거예요.
내 의견은 어디까지나 조언일 뿐이지.
그러니까 결정은 당신과 옆에 모이신 분들이 내리세요.”
그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아이브의 말 속에는 또 다른 뜻이 숨어있었다.
혹 판단을 하지 못 하겠다면, 결정을 내리지 못 하겠다면.
여기 적임자가 있으니 사령관의 권한을 전부 아이브, 자신에게 넘기는 방법도 있다고.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말이다.
“실은 한 가지 생각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클라우젠 변경백령은 뒤에서 따라오는 본대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냥 이대로 안으로 빠르게 밀고 들어가는 겁니다.
저들은 클라우젠 변경백령을 지원할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그 틈을 노리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아이브는 흠,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국경을 클라우젠이라는 방패가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히스파냐로 빠르게 향할 수 있는 가도나 평지 부근을 막고 있는 것이 전부.
때문에 비록 좁은 길이라고는 해도 클라우젠의 눈을 속이면서 히스파냐 안으로 쳐들어가는 것이 가능하기는 했다.
문제는, 등 뒤에 적을 두고 눈앞에 또 다른 적을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세상 그 어떤 군대라도 앞과 뒤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으면 큰 피해를 입는다.
흩어진 적들은 오직 한 곳에만 공격을 집중하는데 반해, 집중된 아군은 사방의 적에게 공격을 나누어서 진행해야만 한다.
단순히 사방에서 공격을 받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병참 문제는?
예비대는?
지원이 조금이라도 늦어지거나 아예 끊어지는 날에는 적지 않은 수의 병사들이 그대로 몰살되거나 공중 분해될 확률이 아주 높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누디아 스스로 벌인 이 전쟁을 이제는 누디아 스스로 멈출 수가 없음을 본대도 알게 된다.
이기지 못 하면 그냥 물러난다고 해도 최악의 패배보다 더 한 치욕과 오점들이 남을 테니 반드시 히스파냐를 상대로 승리하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 할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공격을 감행한 이유가 마족들의 공격에 호응하여 인간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마족 추종자들을 감싸려고 했던 히스파냐에게 경고를 하는 형식으로 보일 테니까 말이다.
본대가 바로 도착해서 클라우젠을 압박하고, 자신들 1군은 그전에 보급선을 마련한 직후 클라우젠을 무시하고 빠르게 히스파냐 내부로 들어간다.
자신들이 앞뒤로 둘러싸여 공격당할 수 있다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클라우젠 변경백령 역시 앞뒤로 공격당할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본대와 함께 클라우젠을 압박하면서 저들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던가, 아니면 일대에 있는 도시들과 귀족령을 쓸어버리면서 히스파냐에 피해를 누적시키고 전쟁보다는 협상에 나서도록 강요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서로가 많은 피를 보기 전에 누디아는 명분을 챙기고, 히스파냐는 비록 마족 추종자들이 나라 안에 숨어있다는 오명을 쓰겠지만 클라우젠을 포함한 동부의 여러 귀족령을 잃는 것을 피하는 실리를 챙겨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만 히스파냐가 그 오점을 뒤집어쓰려고 하겠는가, 그게 중요한 것이지.’
클라우젠과 동부의 국토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면 ‘그래!
우리 안에 마족 추종자들이 몇 놈 숨어있는 것 같다.
잡아 족쳐서 그 머리통을 신성 프러센에 보낼 테니 이쯤하고 우리 정의의 실행자들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 라고 협상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누디아 따위는 충분히 박살내고, 오히려 모든 오물을 누디아에 뒤집어씌울 수 있다면.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면 저들은 누디아의 모든 행위를 침략으로 규정하고 자신들 역시 총력을 기울여서 이 전쟁을 치르려고 할 것이다.
“시온 클라우젠···.”
아이븐 저도 모르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누디아에 전해지는 소식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것들 천지였다.
처음 그를 봤을 때, 분명 그는 이제 갓 성인이 된 스무 살이라고 했다.
시간이 꽤 많이 지난 지금도 시온은 스물한 살, 이제 막 세상을 제대로 알아갈 나이.
하지만 그는 마치 세상 흐름을 전부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모든 것을 제 뜻대로 바꾸었다.
히스파냐와 꽤나 긴 세월동안 이어지던 북부 야만 부족에 찾아가자 갑자기 그 사이에 친근한 기류가 흐르더니 최근에는 그들의 수장이라 하는 여인이 히스파냐의 새로운 왕이 들어서는 자리에 초대를 받아 아예 여왕으로부터 명예직이긴 하나 분명한 귀족 작위를 받지 않나.
최소한 반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해적 소탕은 이동 시간을 제외하면 단 한 달 만에 완벽히 끝내버렸다.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 했던, 그리핀을 이용한 공중 폭격으로 말이다.
‘지금 우리 누디아는 바로 그런 남자가 있는 히스파냐를 상대해야 한다.
실수 한 번이라도 한다면 그는 반드시 그걸 물고 끝까지 늘어지며 결국 누디아 스스로가 침몰하게 만들 거야.’
이미 시온의 작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설마 마족들의 대대적인 신성 프러센 침공이 시온의 작품이라고는 생각지 못 한 아이브는 그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고민에 잠겼다.
조금은 두렵고, 긴장도 되었지만 그러면서도 묘하게 흥분이 되었다.
그와 예전에 겨루었던 체스는 1:1 무승부.
물론 첫 대결은 시온이 대충 임해서 자신이 이겼던 것이고, 그 다음에는 생각지도 못 했던 수로 인해 자신이 완벽히 박살이 났지만 어찌 되었든 전적은 1:1 이었다.
‘이번에 그 승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겠네요, 시온 클라우젠 공자.
당신이 내게 어떤 천재 같은 수를 또 한 번 던질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저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할 테니 방심은 하지 말길 바랄게요.’
정작 시온 본인은 아이브에 대해서 신경을 1도 쓰고 있지 않았지만.
아이브는 반드시 시온이라는 남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각인시켜두겠다는 일념으로 정말 오랜만에 의지를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비록 여전히 자신보다 시온 클라우젠이 훨씬 더 뛰어난 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리핀도 하늘에서 추락할 때가 있다고, 천재라고 해서 항상 실수 없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아이브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천재의 실수를 자신이 유발하고, 떨어지는 그에게 비수를 꽂고 말 것이라고.
누디아의 또 다른 젊은 인재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