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7)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7화(27/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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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리던 이가 갑자기 그 목표를 잃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황당할까?
당황스러울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을까?
아니면···.
‘지랄, 당연히 좆같지.’
리시키다의 목표는 단 하나.
주인이라는 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자신의 인생이었을 것이다.
상당히 묘한 분위기의 목표이긴 하지만 개인 취향은 존중해야 하니 넘어가도록 하자.
‘누디아 국왕이야 원래 부랄이 사춘기를 맞이해서 언제 발싸!
할지 모르는 새끼이니 아무 여자나 건드릴 줄은 알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제 기사를 죽으라고 내치는 놈은 정말 옘병할 새끼다.
차라리 제 손으로 죽이던가, 여태 실컷 이용해먹고 이상한 소문 좀 퍼지니 나가 죽으란다.
여태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 하던 리시키다로써는 그 때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다.
‘덕분에 나야 생각지도 못한 월척을 건졌지.’
이 당시 대부분의 실력자들은 이미 세력, 혹은 따르는 이가 정해져있다.
릴리트야 운 좋게 만났다고 하지만 나머지는 자신의 곁에 둘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
그런 와중에 상급 기사인 리시키다는 그야말로 경력 있는 신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1년 뒤에는 누디아가 통째로 지도에서 사라지는 터라 누디아 검술을 지닌 상급 기사들은 그 때를 이후로 씨가 말라버리게 된다.
‘맥이 끊어지게 되는 누디아 기사들의 검술을 유일하게 보유한 측이 다름 아닌 클라우젠 변경백이라.
이건 또 이거대로 개꿀잼 몰카지.’
슬슬 방으로 돌아가 볼까, 하고 릴리트에게 마련된 방을 나서려는데.
“시온.”
릴리트가 갑자기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는 시온의 질문에, 릴리트는 무척이나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른 여자 품에 껴안고 있다가 나한테 걸리면 뒈진다.”
“···.”
“미쳤다고 서큐버스를 두고 다른 여자를 곁에 두는 건 아니지?
그건 몽마들의 여왕인 나를 상당히 무시하는 처사야.
설마 나한테 빼줄 게 남아서 다른 여자들한테도 주려는 거니?”
“아하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직 저는 릴리트님 외에는 아무도···.”
“아직?
너 말이 이상하다?
영원히, 나 절대, 가 아니라 아직?
아지이이이익?”
“···.”
아무래도 대답을 잘 못 한 것 같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릴리트는 시온을 향해 갸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시온은 재빠르게 도주해서는 제 방으로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자꾸만 루시아가 시온에게 달라붙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녀였는데, 이번에는 여기사가 등장하니 상당한 경쟁 심리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해해 주십쇼, 누님.
이게 다 먹고 살라고 지랄하는 거랍니다.’
마음속으로 용서를 빈 시온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여태 앉아서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던 리시키다가 다급히 수첩을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고기가 미끼를 덥석 문 것을 확인한 시온은 속으로 웃음를 내뱉었다.
여태 그녀가 보아온 자신의 모습이 있으니, 저 시를 그저 풋내기 귀족의 멋부림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을 것이 확실했다.
“···뭐야.
뭔 짓을 했기에 그렇게 후다닥이냐?”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네 얼굴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닙니다.’ 라고 쓰여 있는데?”
“그, 그렇습니까?”
“···.”
그러긴 뭘 그래.
바로 그렇게 수긍하면 안 되는 거 아니니?
“됐고, 결정은 내렸어?
자정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내가 보아하니 넌 한 시간을 고민하든 열 시간을 고민하든 간에 결정을 못 내릴 것 같다.”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 죽여주십쇼, 내지는 검 주세요 같은 대답이 나올까 우려했는데, 다행히도 리시키다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꽤나 희망적인 것이었다.
시온은 속으로 야쓰!
하고 탄성을 내질렀지만 겉으로는 덤덤한 척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는, 저는 빈민가에서 자라 평생 거기서 살다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기사가 되었고, 저를 거두어준 분이 기사로 있던 가문에 들어가 정식으로 기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은인처럼 영원히 명예로운 기사로 살다가 죽을 줄 알았습니다.”
“원래 세상 일이 마음대로 풀리는 법이 없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주인이라고 부르며 따랐던 이에게 버림 받은 제가 이렇게 공자의 곁에 있다는 것이.
그 주인의 명령으로 여태 수많은 히스파냐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벤 제가, 그 히스파냐의 귀족인 당신에게 이끌려 이렇게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시온은 이렇게 질질 이야기를 끌어봤자 또 원점으로 돌아올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리시키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때로는 4번 갈비뼈를 후려치는 팩트 폭력이 그 어떤 위로보다도 더 좋을 때가 있었다.
“어제까지는 죽겠다며.
그런데 하루 만에 그렇게 흔들리는 거야?
고민할 시간을 주기는 했지만 이건 조금 예상 밖인데.”
“···.”
“리시키다 암셸.
모르겠다, 라는 대답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여기, 가슴으론 인지하고 있는데 여기, 뇌가 따라가지를 못 할 때 나오는 대답이지.
여기서 갈리는 거야.
어디를 따라가느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느냐, 아니면 재도약을 하느냐.”
시온은 제 자리에 앉아서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말을 이었다.
“주인에게 버림 받았다.
이제 너는 주인이 없는 기사이다.
여기까지가 네 상황.
그러면 내가 적절한 모범 답안을 내줄게.
까는 소리 하지 말라고 외치고 네가 먼저 버려.
뭐 좋다고 꺼지라는 놈 명령에 죽겠다고 난리를 치냐.
그 병신은 너 같은 인재를 보호하기는커녕 감당도 못 해서 내쫓은 병신 머저리라고.”
“그건···.”
“나였다면 진작 왕궁으로 쳐들어가서 깽판이라도 쳤어.
아니면 그냥 반역을 하던가.
정말 내 사람이, 내 부하가 소중했다면 그런 험한 꼴을 당하고 그런 소문이 도는데 눈깔이 안 돌아갈 수가 없지.
막말로 오는 게 있어야 가는 법 아니겠어?
저쪽이 내게 엿을 먹였다면 나도 똑같이, 아니지.
더 큰 엿을 먹이는 게 정상이야.
엿 먹었다고 부하를 쳐내는 게 정상이 아니라고.”
리시키다는 괴롭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시온이 무슨 의미로 저 말을 하는 지는 그녀도 눈치 채고 있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주인을 버리라고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버림받은 거, 멍청하게 바짓가랑이 붙잡고 울지 말고 그 새끼 발목을 물어뜯으며 ‘그래, 시발.
잘 먹고 잘 사세요.
시발 놈아.’ 라고 외치라고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전 오직 그 분에게만 충성을 다 하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었습니다.”
“어겨.”
“예···?”
“가끔 가다가 스스로도 좀 속이고 살아야지.
우리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백날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는 없잖냐.”
그렇게 말한 시온은 슬쩍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리시키다를 응시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뭐 하나만 묻자.”
“···무엇입니까?”
“아까부터, 정확히는 어제부터 자꾸 충성, 충성 거리는데 말이야.
너, 정말 충성을 바치고 싶어서 주인을 찾는 거야?
아니면···.”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시온은 씨익 미소를 짓는다.
“그냥 주인한테 사랑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가짜로 충성했다면 바로 주인 면상을 걷어찼을 테고, 진짜로 충성했다면 어제 바로 목숨을 끊었을 텐데 둘 다 아니었으니까.
넌 마치 누가 제발 자신 좀 잡아달라고 앙앙거리는 새끼 고양이 같다고 해야 할까?”
“모욕적인 언사는 그만 두십쇼!
아무리 공자라고 해도!”
“모욕적인 언사는 내가 아니라 그 새끼가, 잘난 네 전주인이 한 거지.”
순식간에 시퍼런 예기를 뿜어내는 목소리로 돌변한 시온.
그 바람에 리시키다는 화들짝 놀라서는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까지 나긋하던 분위기를 지니고 있던 남자가 저리 변하니 두려움이라는 생경한 감각이 전신에 파고들었다.
“헛소리 작작 해라, 리시키다 암셸.
충성을 다 한 너를 배신한 한 놈은 네가 주인이라 부르던 놈이고, 널 이렇게 살려두고 고민하게 두는 시간을 준 건 나야.
그 새끼는 너보고 죽으라고 했고, 나는 네게 살라고 등을 떠밀고 있지.
그러면 여기서 문제.
과연 네게 모욕감을 준 놈은 누구일까.
나?
아니면 네 그 잘난 주인 새끼?”
“···.”
대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다만 그걸 입 바깥으로 내버리면 여태 그 남자에게 충성을 다 한 자신이라는 존재가 통째로 부정 당하는 것 같아 차마 그리할 수는 없었다.
“나한테 와.”
그리고 텅 비어버린 마음속으로, 악마의 달콤한 유혹이 날아들었다.
“난 너 같은 실력자가 좀 필요하거든.
그것도 아주 많이.”
“···저는 누디아 출신입니다.”
“그래서?”
“클라우젠 백작가의 적이었던 사람입니다.”
“그게 그래서 뭐.”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아무렇기라도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저는 클라우젠 백작가의 병사들을 해쳤습니다.
당장 공자도 병사들의 고통을 봐서 알지 않습니까.
제 사람들을 그리도 아끼시는 분이, 저 같은 자를···.”
“그러니 더더욱 너를 내 밑에 둬야지.”
강한 적을 제거하면 좋지만, 그 강한 적을 내 편으로 두면 더더욱 좋다.
“리시키다 암셸.
내 밑으로 들어와.”
“그, 그건···.”
“난 내 건 절대 포기 안 하는 주의라 좀 피곤할 수도 있어.
남에게 내어줄 바에 차라리 내가 부숴버리고 말지, 절대 못 넘기는 스타일이니까.
왕이든 황제든 내 사람 건드린다?
그 날 바로 역모지.
나에 대한 소문은 너도 알고 있지?
귀족답지 않은 병신이라는 거.
그게 다 헛소문은 아니야.
난 수틀리면 일단 뒤엎는다가 이번 인생 모토거든.”
대놓고 리시키다의 아픈 구석을 노린 말이었다.
아마도 그 말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믿었던 주인이 왕의 한 마디에 바로 돌변해서는 자신을 버리겠다고 했을 때 그녀가 느꼈던 배신감, 그리고 실망감은 감히 말로도 표현하지 못 할 정도로 컸을 것이다.
“사실 여태 나도 병신처럼 살았는데 말이야.
이제부터 제대로 좀 해보려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사람이 필요해.
그것도 아주 많이.
출신이나 국가, 종족 가리지 않고 전부 끌어다 모을 생각이야.
그리고 한 번 내 사람이 되면, 죽을 때까지 알차게 부려먹을 생각이고.”
처음 소설 속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인물에게 빙의 했을 때만 해도, 그저 ‘시온 클라우젠’ 으로 살아가면 될 것 같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김유현의 눈에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고, 말도 안 되는 병신짓 지양하고, 어느 정도 착한 짓 좀 하면서 백작가를 물려받아 조용히 살면 되겠지, 싶었다.
‘는 시발.
그게 되겠어?
이미 사방팔방 여기저기서 다 지랄인데.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가 김유현이 되어야 하고,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김유현한테 모든 걸 맡기다가는 대륙 반이 날아간다.
그 반에 어쩌면 클라우젠 영지가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른다.
천족들에 의해 릴리트가 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소설 바깥에서 볼 때, 주인공은 정해져 있었다.
김유현이 중심이었고, 그가 행동해야 뭔가가 해결되었으며 그의 주변에서 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소설 안에서는 그도 누군가에게 있어서 그저 지나가는 엑스트라 1 이었다.
시온 클라우젠의 몸에 들어왔지만, 시온 클라우젠처럼 살 필요는 없다.
누가 그걸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게 바른 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자정까지 5분 남았어.”
“아.”
“그 안에 대답 안 하면, 그냥 내다버린다.
넌 다시 길로 내쫓기는 거야.
그러니까 빨리 결정을 내려.
그게 안 된다면 되도 않는 전주인에 대한 미련 때문에 멍청하게 죽던가.”
설득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리시키다가 분명 좋은 패는 맞지만, 더 매달려서 얻어야 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
당장 지미 페이커의 상처가 얼추 다 나으면 사익, 트리샤 페이커를 끌어들이러 가야하고, 어제의 승전보를 접한 왕궁에서 곧 클라우젠 가문을 왕궁으로 초대할 것이다.
거기에서 또 커다란 사건이 터지는데, 그 부분에 대한 대비도 필요한 형국이었다.
“3분.”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리시키다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비록 버림받았지만 그래도 주인을 버릴 수 없다는 기사의 의무감과, 새 주인을 찾아 그에게 인정받고, 애정 어린 시선을 받고, 또 사랑 받고 싶다는 감정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1분.”
“하, 한 가지만.”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리시키다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시온이 말해보라는 듯 그녀를 응시하자 리시키다는 너무나도 간절한 눈빛을 띤 채 말을 이었다.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저, 저를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저를 내치지 않겠다고.
저는, 저는···.”
“리시키다 암셸.”
시온은 여기사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아까 전 병동의 부상병들에게 보였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난 병사 하나 구하겠다고 그 지옥 불에까지 뛰어든 놈이야.”
“아···.”
“너 같이 실력 좋은 기사를 미쳤다고 버릴까.”
“아아···.
아아아···.”
어쩌면 우는 법을 잊고 있던 것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그저, 마음 편히 울 수 있는 장소조차 없었던 자신이라.
그래서 이렇게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되자 눈물이 차오르는 게 아닐까.
“···흐윽, 흑!
흐흐흑!
공자님, 시온 공자님···.
저를 버리지 마세요.
또 버리지 말아주세요.
제발, 제발 저를···.”
자신의 손을 붙잡은 채 애처롭게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시온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저도 모르게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
넌, 이제, 뒈졌어.
시온을 가리키며 목을 손날로 슥, 하고 그어 보이는 릴리트였다.
갑자기 저 분이 왜 저러시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시온은 곧 릴리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억.”
갑자기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동시에 뭔가 따스한 것이 가슴팍에 안겨들었다.
“리, 리시키다?”
“주인님, 주인님···.”
“···.”
아무래도 시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리시키다의 뭔가, 상당히 위험한 부분을 일깨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