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75)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75화(275/439)
275―――――
일곱 번은 너무 많소
“오늘에야말로 반드시!
저 성을 넘고 히스파냐로 들어간다!
빛의 뜻을 한사코 거부하는 이들에게 그 광명이 얼마나 밝고 따스한지 우리가 깨우치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이 너머에서 우리들의 군사들이 피땀을 흘리며 싸우고 있다.
오늘 여기를 넘지 못 하면 그들을 무슨 낯짝으로 보려는 거냐!”
“누디아의 그 어떤 이도 넘지 못 했던 저 벽을, 누구도 깨트리지 못 했던 방패를 오늘 우리가 뛰어넘고!
우리가 깨부순다!”
공격에 앞서 사기 진작을 위해 누디아의 본대 사령관이 병사들을 독려했다.
“해자 상태는?”
“반 넘게 메운 상태입니다.
오늘 총공격을 감행하고 엄호를 받는다면 공병들이 마저 해자를 메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해자가 메워지면 바로 사다리를 들이밀고 계속 몰아붙인다.”
“알겠습니다.”
“놈들이 최후의 발악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계속 정찰병들을 사방으로 운용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알리도록.
특히 그리핀!
그것들을 조심하고!”
그리핀에 대해서 아주 이를 가는 사령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가 떠있는 동안에 방어 측에 밀려 아무 활약도 하지 못 했던 이들이 밤을 틈타 공중에서 기습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밤에는 서로의 시야가 차단되는지라 당연이 움직일 수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이 얄팍한 수를 지닌 자들이 밤중에 피워둔 불을 노리고는 거기로 마법 스크롤을 쓴 것이었다.
덕분에 꽤나 많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누디아는 밤에도 비상사태를 유지하며 그리핀들에게 혼선을 주기 위해 일부러 빈 천막 쪽에 불길을 크게 피워두고 그들이 접근하면 요격하려는 방법도 써먹었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수를 읽고 나니 또 시들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 안으로 승기를 잡고, 늦어도 내일 중으로는 클라우젠의 성을 점령한다.
이미 1군 측에서 피해 보고가 올라왔어.
여기서 발목을 잡히면 1군은 전멸하고 역으로 우리가 밀려날 수도 있다.
오늘만큼은 병사들을 가혹하게 밀어붙여라.
오늘이 아니면 더는 희망이 없어.”
“알겠습니다.”
중간 지휘관들과 현장 지휘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자리로 향한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누디아의 사령관은 클라우젠의 성을 바라보았다.
수성전을 치르며 원래 가지고 있던 그 아름다운 모습은 많이 가셨지만, 그래도 그 당당한 자태만큼은 잃고 있지 않은.
누디아 입장에서는 히스파냐보다도 더욱 숙적이라고 여겨지는 곳이었다.
‘저기를 넘는 자만이 히스파냐로 진격할 수 있다.
저들을 두고서 히스파냐로 들어갔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
누디아 측이 이렇게나 클라우젠에 목을 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과거 히스파냐를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히스파냐를 침공했다가 그 클라우젠에게 병참선도 끊기고 본대까지 뒤에서부터 유린당하며 전멸을 당했던 전적이 있는 게 첫 번째.
그리고 여태 아무도 함락시키지 못 했던 클라우젠을 기어코 무너트린다면 히스파냐의 자신감을 완전히 눌러버릴 수 있는 것이 두 번째이며.
마지막으로 히스파냐 동부의 중요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클라우젠을 점령하면 자연스레 그 지역까지 전부 누디아의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것이 세 번째였다.
자신들이 빛의 뜻이니, 마족 추종자들을 몰아내겠다느니, 그들을 애써 모르는 척 하고 있는 히스파냐 왕실에 진실을 알리고 경고를 하기 위해 왔다느니 하지만.
결국 누디아도 속으로는 이번 기회에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자신들을 앞지를 수도 있는 라이벌을 아예 넘어트리고, 그 라이벌을 밟고 올라서서 더 강력한 국가로 거듭나기로 말이다.
“정렬해라!
정렬!”
“제자리, 제자리 찾아서 똑바로 서!”
“오늘 반드시 이 지루한 공성전을 끝낸다!”
“성을 점령하면 물자에 한해 약탈을 허용하겠다!”
약탈을 허용한다는 말까지 나오자 병사들이 수군거린다.
어지간해서는 민심을 생각해서 약탈은 금하는 게 일상적인데, 저 정도까지 나오는 거라면 오늘 반드시 끝장을 보겠다는 뜻이었다.
“선두!
진격하라!”
“투석기 발사!
발사!”
또 다시 지루한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누디아 군이 천천히 클라우젠의 성으로 향하고, 그러는 와중에 공성 병기들이 쉴 틈 없이 성문과 성벽을 때리며 적들이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
이번에는 정말 끝장을 보겠다는 듯 약탈까지 운운하며 병사들의 사기를 높인 채 다가오는 누디아의 군세.
“···으음.”
리히텐 변경백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침음을 내뱉었다.
이미 자신들을 굳건히 지켜주고 적들이 성 근처로 다가오지 못 하게 해주던 해자는 반 넘게 메워진 상태였다.
아마 한 번에서 두 번의 작업이 더 들어가면 이제 저 해자도 사람이 충분히 건널 수 있을 만큼 메워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태까지와는 또 전혀 다른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그나마 해자 덕분에 숫자의 차이를 무시하고 싸울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그 숫자에 질식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백작 각하.”
라이온 기사단장이 슬쩍 리히텐 변경백을 부른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는 기사단장이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옆에 서있는 중이었다.
“적들이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보이는군.
병사들 상태는?”
“이번 수성전이 다른 때보다 몇 배는 길어져서 슬슬 힘들어하는 기색입니다.”
“역시 이런 짓을 길게 할 상황은 아직 못 되는군.”
“원래라면 이때쯤에 히스파냐의 원군이··· 아, 죄, 죄송합니다.”
“음?”
“죄송합니다, 백작 각하.”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왜 저리 혼자 놀라서는 낑낑거리는 것인지.
리히텐 변경백은 왜 그러냐고 물으려다가 이내 아아, 하고 속으로 웃었다.
시온에게서 온 서신, 자신은 아주 멀쩡하다는 내용을 기밀 유지를 위해 일부러 라이온 기사단장에게까지 비밀로 한 것이었다.
덕분에 라이온 기사단장은 자신이 히스파냐 본대 이야기를 하고, 자연스레 거기 섞여 있다가 이번에 전사했다고 알려진 시온 클라우젠에까지 닿으니 다급히 입을 다문 것이고 말이다.
“괜찮아.
그래도 아들 녀석이 무슨 일을 당했다는 것 덕분에 오히려 꺼져가던 불씨에 장작을 쏟아 붓는 수준으로 다시금 사기가 활활 불타오르지 않았던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시온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클라우젠에서도 조금씩 퍼져나갔다.
원래라면 이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그 소문을 퍼트린 자들의 목적이었겠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식은 역으로 이들의 사기를 더욱 충만하게 만들었다.
―그분은 귀족임에도 우리 병사들과 함께 하시던 분이셨다!
―다른 귀족들이 뒤에서 대충 팔짱이나 끼고 앉아있을 때 앞장서서 적들과 싸우셨던 분!
―병사 하나를 구하기 위해 적진 앞으로까지 달려가시기도 했다!
―부상을 당한 병사들을 확인하기 위해 병동까지 오셨었다!
―심지어 지극히 평범한 영지민을 실력이 있다고 하시며 견습 기사로 발탁하셨다!
―어느 누구보다도 귀족 같지 않으시지만 어떤 귀족보다도 더 귀족 같은 분!
―
그런 시온을 누디아가 죽였다고 하니, 속에서 열불이 뻗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길어지던 수성전으로 인해 점차 무뎌져가던 기세에 다시금 날이 섰다.
더해서 당장 시온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스콰이어(견습 기사), 지미가 나서서 눈물의 연설을 하며 그 분을 위해서라도 모두가 여기를 사수하고, 죽는다고 하더라도 싸우다가 죽어야 그분을 만날 때 한 줌 부끄러움이 없을 거라고 외쳤다.
“정말이지, 작은 주인이 그 짧은 사이에 얼마나 많이 변하고, 또 어찌나 많은 일을 했는지 비로소 눈과 귀에 들어옵니다.
이 정도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비인 나조차도 당황스러운데 그대가 오죽하겠는가.”
라이온 기사단장은 애써 리히텐 변경백을 위로하느라.
그리고 리히텐 변경백은 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약간의 장난을 하느라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백작님.”
이때, 망루 쪽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는 일반 병사들이나 기사들이 차려입는 무장이 아닌, 꽤나 특이한 가죽 옷을 걸치고서 머리에는 마법사들이나 쓸법한 보안경까지 걸치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오게, 맥클스키.”
그 특이한 복장을 한 이가 바로 그리핀 부대의 편대장, 맥클스키였다.
맥클스키는 리히텐 변경백에게 인사를 올린 후 라이온 기사단장에게까지 고개를 숙여 보였다.
“기사단장님.”
“맥 대장님.”
비록 기사는 아니지만 웬만한 기사들보다 더 많은 활약을 해주고 있는 그리핀 부대라 라이온 기사단장이나 클라우젠의 기사들은 그리핀 기수들을 거의 기사 급으로 대우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그리핀 기수 중 가장 막내라는 리빗,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녀에게까지 말이다.
“백작님.
말씀하신 대로 준비가 전부 끝났습니다.”
“하나는 몰라도 다른 하나는 그리핀들이 놀랄 수도 있어.
조치해두었는가?”
“예.
하루 종일 같이 옆에 두고 상대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기게 해주었습니다.
출격했다가 놀라서 허우적거리는 일은 이제 없을 겁니다.”
“좋군.”
리히텐 변경백과 맥클스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라이온 기사단장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둘 사이에 어떤 말이 오고 간 모양인데, 그게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적들이 공성전을 시작하고 나서 잠시 후에 투입하도록.
누디아 군이 가장 기세등등할 때 역으로 그 기세를 완전히 깨부숴야 한다.”
“알겠습니다.
방금 전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었으니 20분 후에 출격토록 하겠습니다.”
“고생해주게, 맥클스키.”
맥클스키는 당연한 일이라고 답하며 인사를 해보이고는 먼저 망루를 나섰다.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겠군.
병사들을 오늘도 독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긴 합니다만.
백작 각하.
낮에 그리핀들을 투입하실 생각이십니까?”
“적들의 기세가 최고조에 달한 바로 이때가 무너지기도 좋은 때이니까 말일세.”
“누디아도 그리핀들에 대한 방비를 전부 해두었습니다.
여태까지는 운이 좋아서 단 한 기의 그리핀도 잃지 않았지만 오늘은 적들의 기세가 매우 매섭습니다.
차라리 저번처럼 밤에 기습을 가하는 편이 좋을 텐데요.”
“그렇게 하면 아군들이 잘 볼 수 없지 않은가.”
“예?”
리히텐 변경백의 말에 라이온 기사단장은 반사적으로 ‘불꽃은 밤에 더 잘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라고 말할 뻔 했다.
그러다가 제 주인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잠시 두 눈을 껌뻑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군요?”
“아들 녀석이 건의한 것이야.”
“시온 공자가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이란 말입니까?”
“마지막이라니.
이틀 전에 온 서신인데.”
“···에?”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기사단장의 멍청한 모습이었다.
리히텐 변경백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껄껄 웃고는 말했다.
“시온은 살아있네.
아주 멀쩡히.
헌데 이 녀석은 제 죽음조차 이용해 먹으면서 적은 물론 아군까지 몽땅 속이려고 했던 모양이야.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그러는 것인지, 원.”
―
“공격!
공격!”
“쏴라!”
공성전이 막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저 빌어먹을 성을 뚫어버리겠다는 듯 누디아의 의지가 참으로 대단했다.
투석기에서 발사된 거대한 바위가 성벽에 부딪치거나 그 너머로 날아들고, 궁병들이 쏘아 보낸 화살들이 쉴 틈 없이 내리꽂히며 클라우젠을 거세게 몰아붙인다.
“해자!
해자는!”
“거의 다 메웠습니다!
곧 병사들도 무리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좋아!
힘내라!
머지않았다!
우리가 처음으로 저 클라우젠을 점령하고 누디아의 깃발을 끝에 꽂는 영광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클라우젠을 뚫을 수 있다는 희망에 사령관부터 말단 병사까지 모두가 힘을 냈다.
누디아 역사에 자신들이 처음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앞에 찾아왔다.
이번 기회를 잃는다면 다시는 저 성을 넘어서서 히스파냐로 진격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게 누디아가 엄청난 공세로 클라우젠을 밀어붙이던 순간이었다.
한창 하늘을 살피던 병사들이 갑자기 두 눈을 홉뜨고는 옆에 두었던 나팔을 불었다.
뿌우우!―
“사령관님!
그리핀이 나타났습니다!”
“하!
위급해지니 이제는 낮이고 밤이고 가릴 처지가 안 된다는 건가!
늦었다!”
“대응 부대는 그리핀이 사거리에 들면 바로 쏴라!
클라우젠을 넘어서는 동시에 저 날짐승까지 전부 떨어트려서 그 날개를 잘라버리는 거다!”
낮에는 서로가 훤히 보이는 상황에서 결국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쪽은 그리핀이다.
누디아의 대응 부대는 사정거리 안헤 저 가증스러운 몬스터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화살과 마법을 준비하고서 노려보고 있던 찰나였다.
“···어어?”
“어어어?”
여전히 그리핀 두 마리는 하늘 높이서 뱅뱅 돌고 있었다.
마치 정찰이라도 하듯이, 여유로운 날갯짓으로.
그러다가 별안간 그 그리핀의 등에서 뭔가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위라도 던지는 줄 알았지만, 조금 더 가까워지니 이내 누디아의 대응 부대는 그리핀에게서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하하!
멍청한 놈들!
기수가 떨어진 모양입니다!”
“사람이잖아!
크하하!
뭐야, 신종 자살 방법이라도 되는 거냐!”
그렇다.
저건 분명 사람.
그것도 그리핀 두 마리에서 각각 하나씩 떨어졌으니 기수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누디아의 대응 부대는 웃음을 토해내며 자살인지, 아니면 실수로 떨어진 것인지 모를 이들이 지상으로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꼴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일반 병사든 상급 기사든 그냥 으깨진다고 봐야 할 수준.
때문에 그들은 기수를 잃은 듯 처량하게 하늘을 맴도는 그리핀을 바라보며 낄낄거렸다.
하지만 곧 그들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콰아아아앙!―.
쿠와아앙!―
“쾅···?”
쾅이라니?
퍼석!
이나 와직!
이 아니라 쾅?
사람이 떨어져서 저런 소리가 날 수 있나?
무슨 마법이 터지는 것보다도 더 한 굉음이 났는데?
스스스―.
사람 둘이 떨어졌을 뿐인데, 먼지 구름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응 부대를 이끄는 자가 슬쩍 공중을 바라본다.
그리고 곧 그는 자신들의 생각이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핀 위에 기수들은 아주 멀쩡한 상태로 타있었던 것이다!
“헬캣, 목표물 투하 완료.”
“슈퍼 호넷!
임무 완료!”
그렇게 외친 그리핀들이 재빠르게 공중에서 이탈한다.
마치 자신들이 투하한 물건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 알기에 도망치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약속했어.”
“···.”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면, 계속해서 나와 싸워주겠다고.”
“네 실력이 기대 이하라면 더는 상대 안 할 거다.
미친년.”
“아하하!
고마워.
그렇게 불러주다니 내 기분이 다 좋네.
다들 하는 말이 살려달란 말 밖에 없어서 요즘 들어 많이 외로웠거든.”
“···.”
도대체 왜 시온 클라우젠 옆에는 하나 같이 나사가 수십 개는 빠진 여인만 모이는 건지.
소설 속 주인공은 한숨을 내뱉으며 서서히 먼지가 걷히고, 자신을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군세를 응시했다.
―시온 클라우젠이 죽었다!
―
그럴 리가.
그 남자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지.
멍청한 나조차 이렇게 살아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이가 죽었을 이가 있나.
김유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검을 빼들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검을 뽑고 누군가를 향해 겨누는 것마저 참으로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오직 자신만의 의지와 생각, 그리고 결정만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때, 김유현은 그런 때가 찾아올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여전히 자신이란 사람은 그저 평범한 이라고 생각하는데, 몸은 그 평범함과는 애초에 궤를 달리하는 수준으로 들어선 지 오래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조차 이제는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시온은 그에게 길을 일러주었다.
그 길을 따라가니 사람들이 미소를 짓고, 행복해하고, 그러면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소중한 이들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더는 잃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시온 클라우젠, 그 남자와 함께 하며 그의 뜻대로 행동하면서 말이다.
‘이번만큼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
여전히 이렇게 검을 빼들고 누군가를 베는 건 영 달갑지 않은 일.
허나 김유현은 원래 소설 속 그와는 달리 마음을 가라앉혔다.
―남 생각 하다가, 네 사람들 다치면.
그 때는 누구 탓할 건데?
―
시온의 묵직한 한 마디를 떠올리며 김유현은 남아있던 망설임을 전부 털어냈다.
여태까지 참고 참았던 전술핵 백사병이라는 또 다른 무기와 함께 누디아 군 한복판에 투하되는 순간이었다.
―――――――작품 후기―――――――
추천을 ···.
주 ···.
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