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7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79화(279/439)
279―――――
일곱 번은 너무 많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요정들이 개입한 것만큼은 확실시 보인다.
―
아이브는 그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히스파냐의 심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왕성, 그 중에서도 어느 곳보다도 중요한 왕궁이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은 누디아 출신인 아이브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외부로 정보가 거의 유출되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스파냐 왕실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그랬다거나, 아니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마족이나 마족 추종자들이 그런 짓을 벌였다고 생각했었다.
차마 요정들이 앞장서서 그런 짓을, 인간 세상에 극악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일을 벌였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 했던 것이다.
“···.”
아이브는 히스파냐 왕궁 습격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내려두고,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한 남자.
정확히는 요정 남성을 바라보았다.
“끄으윽···.”
대충 보자니 엄청난 고문을 당한 것 같은데, 막상 또 피골이 상접한 것 외에는 신체에 딱히 고문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눈가가 퀭하고 눈빛도 썩은 물고기 눈깔 같았지만, 단순히 육체적 고문으로 인해 저런 꼴이 되었다고 보기에는 요정들의 자존심이 워낙 드세다는 걸 아이브는 잘 알고 있었다.
“잘나신 요정 분이 이러고 있는 꼴을 보니 조금 당황스럽지?”
“그, 그게··· 조금은 그러네요.”
“이 녀석으로 말하자면 클라우젠의 뒤에 몬스터들을 풀고 너희 누디아를 선동해서 이전에 또 클라우젠을 공격하게 만들었던 세력의 일부지.
그리고서 수인들의 짓이라고 거짓말까지 해서 혼선을 주려고 했고 말이야.”
“정말인가요?”
“그래.
혹시 내 말만 듣기에 의심스럽다면 이 친구 말을 들어보자고.”
시온은 요성 남성, 노바시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그의 머리통을 짓밟고는 땅에 처박히게 만들었다.
“꺼윽!”
“영광스러운 빛의 종자, 노바시님.
삼가 이 미천한 인간이 질문 올립니다.
답을 해주시겠습니까?”
“꺼으으!
제, 제발 살려줘.
제발, 제발 그것만은···.”
“그거 잘하는 친구는 아직 여기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고귀하신 노바시님께서 답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신다면 부득이 그 친구를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만.”
“아, 안 돼!
안 돼!
안 돼!
끄아아악!”
도저히 그 고귀하고 도도한 종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처절한 비명이었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돼지가 꽥꽥거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브는 ‘아, 요정도 저렇게 병신 같은 비명 소리를 내는 종족이구나.’ 라는 가르침을 우연히 얻을 수 있었다.
“노바시님.
부탁인데 그 입 좀 닥치세요.”
퍼억!
시온의 발길질이 그대로 옆구리에 꽂히자 노바시는 그제야 꺼억, 하고 신음을 토해내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멈추었다.
“감사합니다, 노바시님.
역시 제 말을 잘 들어주시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지요?”
“끄으으···.”
“그렇다는 것으로 알고 말하겠습니다.
노바시님은 왜 제게 붙잡혔죠?”
“크, 클라우젠의 뒤를··· 노리다가.”
“더 정확히 말하세요.
친구 데리고 오기 전에.”
“으아악!
클라우젠의 뒤에 몬스터를 풀고!
누, 누디아에 있는 동지들이 때를 맞춰 클라우젠을 공격하여 앞뒤에서 무너트리려고 했다!
으아아!
그 인간 데려오지 마!
으아악!”
참 잘 했어요, 노바시님.
시온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머리통을 지그시 밟아준다.
그러는 사이 아이브는 두 눈을 깜빡이며 지금 자신이 뭘 듣고, 뭘 보고 있는지 열심히 뇌에서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었다.
“그, 그러니까··· 요정들이 히스파냐의 왕궁을 습격하는데 중심이 되고, 이후에는 클라우젠을 노렸으며 누디아에 은밀히 제 동족들을 풀어 누디아가 공격을 하게 만들었다, 라는 건가요?”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늦어.
이보세요, 노바시님.
당신이 말을 제대로 못 하니 인간이 이해를 잘 못 하지 않습니까.
앞으로 자꾸 이런 식이면 제가 조금은 괴롭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온이 입으로 ‘치이익!’ 하는 소리를 내자 노바시가 기절초풍을 한다.
김유현의 수법이 세상 그 어떤 고문보다도 더 한 고통을 주었다면, 시온의 수법은 숨을 쉬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김유현에게 ‘분근착골’ 이라는 무림산 진실의 방이 있다면, 시온에게는 ‘코에 탄산’ 이라는 자본주의산 진실의 방이 있었다!
“이럴 수가···.”
“요정들은 제 입으로 그렇게들 말하지.
입을 열고 싶지 않을 때에는 그 어떤 회유와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이고, 입을 여는 순간에는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한다고.
그렇게 따지면 저 노비사라는 친구가 나나 네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 안 되는데.”
아이브는 시온의 말을 들으며 미친 듯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정들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히스파냐를 적대시 여기며 자꾸 뭔가를 꾸미고 있다.
심지어 누디아 측에 있는 동지들을 이용해서 클라우젠을 노렸다고 했다.
이후 누디아는 자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유로 히스파냐 안에 마족 추종자들이 있다고 외치며 자신들만의 성전을 개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처음 때만 해도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라고 생각하던 귀족들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이라도 당하듯 전쟁을 외치고 나섰다.
심지어 왕실조차 침묵하는 것으로 귀족들의 뜻에 동의한다는 것을 내비쳤다.
‘너무 과한 예측일까?’
아니,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합리적인 예측이고 의심이다.
만약 누디아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에 그들이 연관되어 있다면 비로소 모든 게 설명이 된다.
당연히 반대 의사를 표할 줄 알았던 귀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찬성한 것도 그렇고 이전에 누디아의 영토에서 벌어진 이유 불명의 화재 사건도 그렇다.
모든 것이 약속이라도 한 듯, 짜고 벌어진 듯 착착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의심한다면 한 가지 남는 의문이 있다.
자신들을 빛의 후예들의 종자라고 부르며 그렇게나 따르는 자들이.
왜 대륙에 혼란을 야기하면서 서로가 피를 보고 고통 속에 울부짖게 만드는가?
그게 빛의 교리에 적힌 내용이 아닐 텐데, 그게 빛의 후예들이 원하는 것이 아닐 텐데!
“아마 둘 중 하나겠지.”
시온은 이 쓰레기 좀 다시 치워달라고 리시키다에게 부탁하며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고 빛의 후예들을 따르는 종자라고 생각했던 자들이 타락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북쪽 전사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더라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아랫물이 구정물인데 윗물이 과연 깨끗할지, 조금 의문이 든단 말이야.”
그러자 아이브가 적잖게 놀란 눈치로 시온을 응시한다.
여태 시온이 보여주었던 분위기 때문에 그럴까, 그의 입에서 저런 냉정한 말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다른 이도 아니고 빛의 후예들을 의심하는 것도 아이브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도대체··· 도대체 시온 클라우젠 공자, 당신은.
당신은 어디까지 알고 있고, 어디까지 바라보고 움직이는 건가요?
그걸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니.
그런 건···.”
시온은 슬쩍 아이브 앞에 다가가서는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니라 노바시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게 만들며 입을 열었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아니야.
당장 누디아부터 걱정해야지.
히스파냐를 망가트리기 위해 누디아를 이용하려던 자들이 있는데, 오히려 누디아가 위험해지면 당장 그 패를 버리려고 들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결국 누디아만 덤터기를 쓰고 꼼짝없이 망해야 할 텐데.”
“아···.”
“누디아에 대한 내 감정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
하지만 그보다는 뒤에 숨어서 헛짓거리를 하던 놈들을 더 잡아 족치고 싶거든.
그래서 누디아로 들어가려고 한다.
가서, 그놈들과 연관된 모든 것을 부서트릴 거다.”
“···.”
“널 살려 보내는 이유, 경고.
돌아가서 누디아의 이들에게 경고해.
죄가 없는 자는 알아서 길을 비키고, 죄가 있는 자들은 도망치든 맞서 싸우든 하라고.
그래야 나도 조금은 더 즐길 수 있지 않겠어?
그렇게 하다보면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테고 말이야.”
그렇게 말한 시온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아이브의 반응을 기다렸다.
아마 지금쯤 온갖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조차 헛갈릴 지경일 것이다.
이 전쟁이 무리수로 가득한 명분으로 벌어진 것이라는 건 아는 눈치였지만, 그게 단순히 누디아 측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다른 뭔가가 개입하여 불을 지핀 거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일을 벌이기 위해 준비를 했다는 부분까지 알게 되었다.
단순히 양국 간의 싸움이 아니라 그보다 배는 더 복잡한 뭔가가 얽혀있다는 것.
그런 사실을 시온도 어느 부분 인정하는 이 영리한 여인이 알게 되었다.
“···저희에게 탈출구를 만들어주시는 건가요?”
“흠?”
“누디아도 속았다.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이라고 증오하기 보다는 이용당한 불쌍한 자들이니 너무 미워할 것 까지는 없다.
히스파냐에게 그렇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냐고 묻고 있어요, 시온 클라우젠 공자.”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사실은 누디아를 전장으로 써먹기 위해서는 그쪽 민심을 이쪽으로 돌릴 필요가 있어서.
그리고 이왕 그쪽 민심을 살 거 아예 귀족들까지 친 히스파냐 쪽으로 기울게 해서 누디아에서 진행할 일들을 조금 더 쉽게 만들 요량이었다.
‘히스파냐에서 싸우면 땅값이 떨어지니 문제고, 누디아에서 싸우자니 우리 집 근처가 아니라 불편한 것이 문제.
그렇다면 문제 해결은 간단하지.
누디아를 집처럼 만들면 된다.’
지금은 히스파냐와 누디아의 사이가 원수지간이 되었다지만, 원래 사람 관계고 나라 관계고 쉽게 벌어지고 또 생각 외로 쉽게 회복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길로 이끌기에 최고의 방법은, 공통된 적을 만들어서 서로 연합을 해서 맞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시작은 요정,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천족에게까지 경계심을 보이게 하면 된다, 이거지.’
천족은 신이 아니다.
신성시 여겨지지만 불가침의 존재라고 여겨지는 것도 아니다.
언제든 그들을 의심할 수 있고 언제든 그들을 적대시 할 수도 있다.
다만 여태까지는 그들에 대한 믿음이 워낙 강해서 그런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마족 추종자로 몰리고 적들만 넘쳐날 확률이 높았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믿음에 균열이 한 번 가게 되면 그 틈이 순식간에 벌어지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아직까지 이게 옳은지 그른 것인지 확실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많으니 그들의 등만 좀 떠밀어주고 귓가에 ‘이건 좀 아닌 듯.’ 이라고 속삭여주면 알아서 들고 일어날 것이다.
‘나 혼자만 고생하자니 너무 억울하잖아?
같이 고생해야지.
나 혼자서는 절대 안 된다!’
히스파냐와 누디아, 이 둘 사이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을 대신 받아줄 이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온은 이미 그 존재들을 완벽하게 만들어준 상황이었다.
“역시··· 당신에게는 절대 닿을 수가 없네요.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한 가지 더 있어.”
“네?”
“너를 살려주는 이유.
네가 말한 것처럼 탈출구를 일러주며 경고를 하는 것도 있고, 다른 하나가 더 있다고.”
“그게 뭔데요?”
“언제까지 원수 사이로 살 수는 없잖아?
서로가 어떤 개자식들에게 이용당하고, 괴롭힘 당했는데 그 분노를 서로에게 터트리는 건 병신 짓에 불과하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당신의 말이 맞아요.”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다리를 놓아야지.
그리고 되도록 그 다리를 놓자고 누디아를 설득하는 이가 네가 되었으면 한다, 이거야.”
시온은 아이브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조금 전부터 말 한 마리를 끌고 와서 기다리고 있던 리시키다를 곁으로 불렀다.
“확실히 경고해.
그리고 확실히 알려.
더는 멍청하게 이용당하지 말고, 그 잘난 명분을 히스파냐를 공격하는 데 써서 괜한 국력 낭비 말고 훨씬 더 만만하고 훨씬 더 빈틈이 많은 자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써서 적절하게 이용하자고 말이야.”
“···.”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그건 네 자유야.
어찌 되었든 널 살려 보내는 건 결정한 일이고 그럼으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지.
네가 나와 동점인 상황에서 기어코 승부를 보겠다고 또 덤벼든다면 난 웃으면서 그 승부를 받아줄 거다.”
“그 때는 오늘과 같은 친절함도 없겠군요.”
“지금은 적보다는 아군이 되는 편이 더 좋다고 여겨서 보내주지만 두 번은 없어.
그러니 잘 생각해, 아이브 기 레스티온.”
그러는 사이 리시키다가 준비가 다 되었다는 듯 시온을 바라본다.
단순히 말 한 마리 줘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잡혔던 누디아의 기사들 역시 풀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아, 그리고.”
아이브가 생각 많은 얼굴로 말 위에 오르다가 시온의 말에 그를 바라본다.
더 할 말이 있냐는 그 무언의 질문에 시온은 그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제법이었어.”
“···네?”
“훌륭했다고.
너는 네가 완패를 당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여태까지 만난 그 어떤 적보다도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친구였다면 머리 맞대고 재미난 일 많이 꾸몄을 것 같은데 무척이나 아쉽단 말이야.”
“···.”
자신이 결코 넘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가 갑자기 자신을 칭찬한다.
그런 상황에 빠지면 대부분의 이들이 그러하듯 아이브 역시 두 눈을 깜빡이다가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애써 그 말을 무시하며 말의 고삐를 잡아 쥐었다.
“···정말 후회하시지 않으시겠어요?
누디아 재상의 외동딸이라면 협상 테이블에서 꽤나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을 텐데.”
“내가 널 또 못 잡을 거라고 생각하나?”
“···.”
“그런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어서 가.
더 늦으면 너희 본대가 퇴각하는 길에 맞춰서 당도할 수도 없을 테니까.”
“본대가 퇴각하는 길?
그건 또 무슨 말이죠?”
하, 거 참.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궁금해 하는 것도 많네.
슬쩍 짜증이 치밀었지만 이제 와서 닥치고 꺼지라고 하기에는 좀 그러니 시온은 거기까지만 알려주기로 했다.
“내가 설마 클라우젠 쪽에 손을 안 썼을까.
당연히 거기도 다 정리가 되었다는 거지.”
“아···.”
혹시나 남은 본대를 믿고 더 싸워보자는 미친놈들이 나오지 않게.
시온은 클라우젠 앞에서 공성전을 벌이고 있을 누디아 본대에게 두 개의 멋진 선물을 던져준 후였다.
―――――――작품 후기―――――――
추천은 연참 쿨을 줄여줍니다!